44화
엔젤 돈 크라이에서 와이어는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다룰 수 있다.
트릭키한 함정을 파거나, 실 자체를 무기로 쓰거나, 단순한 이동 수단으로 쓰거나.
사람들은 보통 세 번째만 쓰는 편이었다. 첫 번째도 영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엔젤 돈 크라이가 앞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게임이다 보니 효용이 덜했다. 함정을 만드는 데 오래 걸린다는 점 역시 단점이었다.
반면 이동기의 경우, 손에서 사출되는 작살을 벽에 박고 움직이면 되므로 상당히 편했다. 실이 끊기는 일도 없다 보니 부담도 한결 덜했다.
그렇지만 은우는 역시나 사람들의 생각을 산산조각으로 깨부수었다.
“일단 실의 질긴 정도부터 확인하죠.”
그는 실을 쥔 채 돌격했다. 그러곤 손가락에 꼬고 있던 작살을 빙글 풀어내어 팽팽하게 돌렸다. 웅웅과 붕붕 사이에 있는 소리가 짓뭉개진 채로 들려왔다. 아무것도 아닌 듯하다가도 위협적이다.
그러다가 한 악마와 가까워졌을 때 그는 그것을 던져 악마의 몸에 휘감았다. 촤아악. 바닥을 긁듯이 멈춰선 그가 곧바로 실을 회수했다.
악마가 끌려오는 듯하더니 묶여 있던 신체 부위가 그대로 잘려 나갔다. 깔끔한 절단이었다.
“괜찮네요.”
─우욱
─켄 비위 좋다;;
─장기자랑도 했는데 새삼 뭘ㅋ
─와이어를 저렇게도 쓰네
─반갈죽 오졌다
─학살좌 어디 안가죠ㅋ
시청자들이 눈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저건 잔인한 축에 들지도 않는다. 은우는 그의 자리에 쏟아지는 공격을 피하며 바닥에 작살을 박았다. 그리곤 잡악마 중에서 그나마 강한 놈의 몸을 휘감았다.
크아아악!
악마가 발버둥을 치니 실이 곧장 끊겼다. 실을 사출할 수 있는 작살은 다행히 3초 후에 재생성되었다.
“이 힘은 못 버티고.”
그럼 그보다 좀 더 낮은 놈은? 더 낮은 놈은?
은우는 차근차근 시험해 보았다. 이 순간에도 대공이 회복하고 있다는 건 아무런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저기 대공 회복하고 있는디요?
─대공 안 잡으세요??
─켄님 대공! 대공!!
“회복해 봤자 어차피 약하잖아요?”
─아ㅋㅋㅋㅋ대공 1패ㅋㅋㅋㅋ
─최고난이도에서 보스보고 약하다 말하는 패기ㅋ
─자신감 on!
─약하니까 회복하게 내버려두는 것보소
─보스몹이 플레이어 회복하게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보스몹 회복시간 내줌ㅋㅋㅋㅋㅋ
─켄이 보스라서 그럼ㅋㅋㅋㅋ
─(그에게 주어지는 승리목걸이)
은우는 피식 웃으며 실이 못 버티는 공격을 하는 적들을 손수 썰어 죽였다. 실이 끊기지만 않으면 그들의 신체를 조각내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다행인 일이었다.
그렇게 실을 끊을 수 없는 것들만 남았을 때, 그는 쫄 악마의 복부에 박은 뒤 그 어깨를 짚고 훌쩍 넘어갔다.
퍼억!
넘어간 그의 다리가 적의 대가리를 후려친 후, 대지에 내려앉으며 팔을 흔들었다. 적의 머리가 바닥으로 처박히기 전, 휘둘러진 팔에 의해 둥글게 퍼져 나간 실이 그 목을 한 바퀴 휘감았다.
은우는 그 상태로 계속 달렸다. 실이 끊임없이 늘어나며 그가 교묘하게 적 사이를 오갈 때마다 그들 신체 부위 하나에 내걸렸다.
─머하는 거임?
─실 길이 재시나
─아......설마.....
─굴비 엮는줄ㅋㅋㅋ
─아 잠;;
사람들은 그의 행위를 이해하지 못했다. 눈치채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저 웃기만 했다.
키아아악!
가끔 실을 자르려 드는 것들도 있었다. 설마 잘리진 않겠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은우는 그것들에겐 친히 목에 실을 휘감은 후 잡아당겨 주었다. 실이 악마의 살점 속에 파고들더니 기어코 뼈까지 갈랐다.
그런 행동을 수어 번 반복하자 실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순간이 다가왔다.
은우는 실이 뿜어져 나오던 장갑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시야에 비치는 광경은 악마들이 희미한 실들에 굴비처럼 엮여 있는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장면은 어지간한 비위로도 버티기 힘듭니다. 그러니까…….”
은우의 입술이 삐뚤어졌다.
“못 버티겠으면 눈 감아.”
─오우쉣
─목소리 녹는다ㅠㅠㅠㅠ
─눈감아!!
─아 진짜였냐고;;;
─퍄퍄ㅑㅑ
─19금 온다!!!
윙-
기묘한 구동음과 함께 실이 회수되기 시작했다.
살을 가르고 근육을 끊으며, 뼈를 조각내는 소리가 귀를 물들일 즈음이면 공중에 덧그려지는 강을 볼 수 있다. 그 강은 무척이나 새빨갛다.
실이 꼭 누군가의 미소처럼 가느다랗게 반짝였다.
『숨겨진 도전 과제를 달성함! -악마 30마리를 동시에 죽일 수 있어?』
쿵쿵쿵!
육신의 편린이 무너지는 곳에서 은우의 걸음이 대공을 향해 나아갔다. 사출된 작살이 멀리 내던져진 대낫의 손잡이를 휘감아 회수했다.
천사가 사신의 낫을 들었다.
▣ 044. 진심을 뽑아 들다
대공을 찢어 죽인 후, 은우는 다음 목표인 사제를 찾았다. 설정상 지옥의 왕을 만나기 위해서는 사제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그건 사제가 꽁꽁 숨어 있다는 점이라.
과묵하지만 성급하고, 고독하지만 무데뽀 기질이 있는 캐릭터는 그런 사제를 찾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를 행했다.
그(또는 그녀)는 사제가 나올 때까지 악마들을 찢어 죽였다. 학살이었다.
은우의 몸이 특정 공간에 들어섰다. 이제 여기서 출현하는 모든 악마를 죽이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
그의 샷건이 오른쪽에서 튀어나온 악마를 터트렸다. 멀리서 그를 노리는 탄환이 날아왔지만, 가볍게 스텝을 밟아 피한다. 그리곤 접근하며 총구를 아래로 내렸다.
그의 발이 악마의 어깨를 밟고, 아래쪽을 향해 있던 총구가 빛을 뿜었다.
단숨에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꿰뚫린 악마의 몸이 터져 나갔다. 은우의 몸이 자연스럽게 바닥에 내려지며 정면의 타깃을 향해 달려들었다.
샷건을 다른 손으로 떠넘긴 왼손이 허리춤의 쌍둥이 검 한 자루를 잡았다. 바로 앞에 있던 악마의 손톱을 피해 허리를 낮춘 은우는 그대로 악마의 입에 칼날을 꽂았다.
그 상태에서 오른손은 샷건을 들어 옆에서 접근하던 악마의 머리를 날렸다.
“그러고 보니 이 게임 이름이 ‘천사는 울지 않는다’였나요?”
─울지 않는다/울지 마라 정도?
─보통 전자로 해석하긴 하죠?
“그럼 악마도 울지 않을까요?”
─글쎄요...?
─ㅋㅋㅋ나 같음 켄 보자마자 울듯
─아ㅋㅋㅋㅋㅋㅋㅇㅈㅋㅋㅋㅋ
─울어라! 울어서 네 순수를 증명해봐!!
─뭔 드립임?
─ㅁㄹ
될 수 있으면 머리를 쪼개 눈물샘과 눈물주머니의 존재를 파악하고 싶지만, 그건 너무 잔인하겠지. 은우는 탐구심을 삼켰다.
탄환이 거의 다 된 샷건이 바닥에 처량히 버려졌다. 은우는 검을 들고 종횡무진 악마들을 썰었다. 빠르게 돌아다니던 악마의 목을 낚아채어 기둥까지 몰아붙인 후, 그 목에 검을 꽂거나 빛으로 이뤄진 총알─권총─을 이마에 박아 주기도 했다.
경쾌한 록─어쩌면 헤비메탈일지도 모른다─풍 BGM이 귀를 때렸다. 노래 감상은 취미가 아닌지라 전자 악기가 쓰였다는 것밖에 모르겠다.
은우는 고층 계단에서 뛰어내리며 몸을 휙 뒤로 돌렸다. 화염방사기가 악마의 피부를 태웠다.
그는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뒤로 점프했다. 그와 동시에 한 손을 허리춤에 넣었다가 다시 꺼냈는데, 무언가가 바닥을 굴렀다.
퍼엉!
성류탄이 쫓아오던 악마들을 날렸다. 은우의 몸이 제한된 공간을 왔다 갔다 하며 악마들을 쳐 죽였다. 점착 폭탄이 적의 머리통을 터트리고 주위에 있던 악마들의 신체를 날렸다.
다음으로 꺼낸 대검이 막 아래로 떨어지던 악마의 허리를 양단했다. 핏줄기가 그의 뺨을 흠뻑 적셨다.
“그보다, 이렇게 떼거리로 나온다는 건 중요한 게 이 앞에 있다는 건가요?”
─넹
─이제 곧 보스전ㅇㅇ
─게임이 상도덕이 없음ㅠㅠ
─자동저장은 그나마 잘 되어있지 않나요?
─그건 맞는데 켄은 지금 신의모드임; 목숨 하나ㅋ
─와, 그러고보니까 그러네
─인간임?
─구울이라니까요 휴먼
시청자들끼리 알아서 떠들었다. 쓸모없는 정보가 반이었지만, 지금 있는 건 은우뿐만이 아니다. 게임에 대해 모르는 시청자에겐 좋은 정보일 것이다.
은우는 해당 구간에서 나오는 모든 적을 쓸어 넘겼다.
그러자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균형을 무너트리는 자야, 네놈이 이리 발악한들 운명이 달라질 것 같으냐?”
사제는 정말 징글징글하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사제에 버금가는 존재가 대신하듯 나타났다. 지옥의 왕이 낳은 첫 번째 악마, 파우스트였다.
“루치페르Lucifer.”
은우는 이벤트 신을 보다가 목덜미를 쓸 뻔했다. 컷신이라서 육체 지배권을 빼앗긴 상태라는 게 다행이다. 아니었다면 어울리지 않는 멀뚱한 행위를 했을 거다.
“너는 천상에게 버려졌다. 아직도 모르겠나?”
─머임머임머임????
─주인공 이름이 시리즈 3편까지 와서 겨우 밝혀지는 매직
─루치페르면 그거 아니냐?? 루시퍼?
─아니;;; 파멸의 천사람서요;;
─ㄴㅇㄱ
이미 플레이했던 사람들이나 전작을 모르는 이들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전작을 알되 아직 플레이하지 못했던 이들은 비명을 질렀다.
처음으로 주인공의 이름이 나온 것도 그렇지만,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정말 컸다. 발음상의 문제일 뿐, 루치페르는 루시퍼와 같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지옥과 천상은 언제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시련과 고난은 악을 통해 이뤄지며, 너희 천상이 속죄와 교화를 담당하니, 우리가 멸망하면 천상 또한 존재 가치가 있겠느냐?”
돌려 말하지만, 결국 주인공으로 인해 천상과 지옥의 전쟁이 기욺으로써 문제가 생겼단 소리였다. 이벤트 신 속 은우의 육신이 총을 둘러싼 금테를 빙글 돌렸다.
“천상 또한 네 죽음에 동의했다. 그러나 우리 악마들은 그런 위선자와는 다르다. 우리와 함께하라. 그러면 장군 두 명을 죽인 것도, 대공을 살해한 것도 눈감아 주겠다. 너 같은 강자는 숭상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주인공이 총을 아래쪽으로 내렸다. 지옥왕의 첫 번째 아들이 환한 얼굴을 했다. 제 설득이 먹혔노라 착각이라도 하는 것처럼.
─주인공이 이거 가지고 총을 놓는다고?
─어림도 없지! 반전 있을거임
─(대충 스포 불편하다는 채팅)
─ㅋㅋㅋㅋㅋ주인공에 대한 신뢰도 무엇
그러나 시청자들도, 침묵 속에서 지켜보던 은우도 회의적이었다. 천상이 주인공을 배신했다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 캐릭터가 변절을 할까? 과연?
“그래. 잘 생각했다. 너는 그런 위선자과 함께할 수준이 아니─”
타앙!
총구를 내렸던 것은 지옥왕 아들의 방심을 끌어내기 위한 수법일 뿐이었다. 총이 시원시원한 격발음과 함께 파우스트의 머리를 때렸다. 꼴에 고위 악마라고 한 번에 머리가 터져 나가진 않았다.
─여윽시ㅋㅋㅋㅋ
─캬ㅑㅑㅑㅑ 절대 안 넘어가쥬??
─후진 따위 모름ㅋㅋㅋㅋ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트리고 파우스트가 대노했다.
“…네 이놈! 오만의 대가를 치르리라!”
그 대사를 치며 전투태세로 돌입하는 것까지가 이벤트 신이었다. 움직임을 돌려받은 은우는 무기를 들었다.
* * *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 사람은 두 번째 훈련도 받아들였다. 그가 전생처럼 혹독하게 몰아붙이진 않았다 한들, 그 정도면 제법 좋은 끈기였다.
이런 성실함을 그는 싫어하지 않는다. 저 셋에 대한 평가가 좀 더 상향되었다.
“켄 님은 의외로 잘 가르치시는 것 같아요.”
훈련에 들어가기 전 레리가 한 말에 은우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말은 아니나, 이곳에서마저 들을 거라곤 생각 못 했다.
“그렇습니까?”
그는 목덜미를 쓸었다.
「선배님은 교관이 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언젠가 들었던 신입 녀석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빡빡한 게 단점이지만요.」
그것에 그는 뭐라 답했더라.
“네. 그, 원래 천재들은 범인을 잘 이해 못 한다잖아요? 그래서 설명도 잘 못할 것 같은 이미지인데, 켄 님은 정말 설명을 잘하셔서.”
“그쵸, 그쵸. 켄 님, 진짜 설명 잘하시는듯.”
“…예전에 누굴 가르친 적이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이곳은 베테랑도 픽픽 죽어 나가는 곳인데, 경험도 시간도 없는 네가 살려면 지식이라도 단단히 박아놔야 하지 않겠냐.」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그건 그렇지만요.」라고 그 녀석이 말했고.
다만 너무 오래된 나머지 녀석의 성별도 나이도, 그로 인한 목소리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저보다 큰 주제에 어리숙했던 것 같은, 그런 어렴풋한 인상이 다다.
은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한둘 가르치신 실력이 절대 아닌데.”
“…예. 좀 많았습니다.”
처음엔 그 녀석 하나를 가르치려 했던 게 다였다.
그렇지만 평판 말아먹고 나니 별것도 아닌 것에 차별론자 띠가 붙느니 귀찮은 게 좀 더 낫겠다 싶더라. 어차피 그가 뭘 가르치든 살 놈은 살고 죽는 놈은 죽을 테니까.
심혈을 들여 키워 낸 그놈이 제멋대로 출전한 전투에서 허무하게 죽어 버렸듯.
“아, 진짜요?”
“크, 스트리머 중에도 있으려나? 다들 겜 잘하시겠죠?
잘하나? 은우는 그가 전생에 가르쳤던 녀석들을 기억해 보려 했다. 그렇게 중요했던 존재들이 아니라서 웬만한 건 다 기억하는 그로서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아~! 저도 켄 님처럼 됐음 좋겠습니다! 쉭쉭쉭 다 썰어 버려~!”
슬리퍼의 말에 하나 더 기억났다.
「저도 ─님처럼 영웅이 되고 싶어요, 모두를 지키는.」
별로 쓸모없는 이야기였다.
「죄송합니다, 저희를 지키시려다가…….」
남을 따라 해 봤자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
“죽지 마세요.”
“네?”
“대회에서요.”
은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산호 님은?”
알건 모르건, 레리와 슬리퍼는 화제 돌리는 것을 받아들였다.
“캡슐 정기 점검 날이래요. 자기도 오늘 기억났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전해 달랬어요. 지금 급하게 캡슐 방으로 가고 있다니까 곧 올 거예요.”
“하여튼 사람이 말이야, 응? 켄 쓰앵님이 시간 내주는데 지각이 말이 돼?”
슬리퍼가 으스대었다. 그런 그의 어깨를 잡은 건 레리도, 은우도 아닌 제삼자였다.
“그대에게 피어난 죽음이 보이나……?”
참고로 그것은 산호가 가장 잘 쓰는 쌍둥이 성좌의 궁극기 대사였다.
“끼야아악!”
슬리퍼가 비명을 질렀다.
“안녕하세요, 산호 님.”
“켄 님,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산호가 합류했다.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요.”
“넵!”
“크으… 고생 끝에 우승이 있나니…….”
“후.”
그들은 바로 Nebula War 대전 모드에 돌입했다. 각자의 대기실로 돌아간 후 접속해야 했지만, 보이스 채팅은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은우는 그것을 통해 줄곧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세 분은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은 이유가 있습니까?”
[우승하고 싶은 이유요?]
[이것도 이기는 데 필요한가요.]
“단순한 호기심입니다. 굳이 말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본인에겐 확실히 해 두세요. 동기가 있으면 좀 더 편해집니다.”
건조하게 소리를 흘려 내니 슬리퍼가 가장 먼저 답을 내놓았다.
[아, 전 큰 거 없고… 이름 날리려고 참가했습니다.]
[저도 비슷해요.]
슬리퍼 다음으로 레리가 답했다. 크게 이상하지 않은 대답이었다. 스트리머가 아니더라도 명예와 인기를 취하고자 특정 대회의 우승을 노리는 자는 많다.
[전 빌리 팀이 마음에 안 들어서 참가했어요. 걔네가 1등 먹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어서.]
산호는 사적인 감정 때문이었다.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개인적 원한도 훌륭한 동기다. 사감 때문에 일을 그르치지만 않는다면.
“빌리 팀 질이 안 좋나 보죠?”
[어… 뭐라고 해야 하지…….]
[이거 하나면 켄 님도 납득하실 듯? 반반마니, 그 쉑이 빌리 팀입니다.]
슬리퍼의 설명에 바로 이해가 갔다. 막 대전 모드로 들어서던 은우의 눈매가 서늘해졌다.
“반반마니가 그쪽에 있다고요.”
[오우, 쉣. 방금 켄 님 목소리 실화?]
[아, 켄 님도 사이가 안 좋으셨죠?]
[켄 님, 모르셨군요.]
은우는 뻐근하지도 않은 목을 굳이 두어 번 더 풀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넹?]
[어… 어떻게 바뀌셨는지.]
슬리퍼랑 레리가 불안에 떨며 묻고, 산호는 직감했는지 침음만 작게 흘렸다. 대전 모드에 진입한 은우의 손이 성좌를 골랐다.
“좀 더 진지하게 가 보죠.”
그가 진심을 뽑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