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쿠웅-
새까만 갑주를 두른 괴수가 붉은 모래 위로 몸을 뉘였다. 거대한 양 집게도, 꼬리도 잘려 나간 덕에 무척이나 처참한 모양새였다.
끼잉, 낑.
흐딕스가 다친 다리를 이끌고 절뚝이며 걸어왔다. 캐릭터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꺙!
흐딕스는 앞발로 죽은 유슬라카프의 머리를 박박 긁었다. 이렇게라도 복수한다는 게 여실히 보였다.
“불쌍해라…….”
“자연이란 이다지도 잔혹한 존재이니… 카라카시여.”
전투원이 아닌 탓에 뒤에서 물러나있던 조사원 NPC가 울먹거렸다. 마찬가지로 조사원 NPC를 보호하느라 전투에 참전하지 못한 전투원 NPC 역시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깨갱!
그때, 흐딕스가 그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발을 절며 다가왔다. 공격 의사는 딱히 보이지 않았다.
주춤거리는 두 NPC를 뒤로하고 캐릭터가 세 발짝 앞으로 나섰다.
끼잉…….
흐딕스의 머리가 캐릭터의 손에 닿았다. 짧은 털이 나 있는 흐딕스는 커다란 귀를 접으며 얼굴을 비볐다. 그게 꼭 대형견 같아 썩 귀여웠다.
“흐딕스가… 켄 님을 마음에 들어 하는군요.”
조사원이 슬쩍 다가왔다. 흐딕스가 주춤 물러났다. 그렇지만 순한 눈망울에는 딱히 적의가 보이지 않았다. 한 발짝 물러났을 뿐 캐릭터의 근처에서 떠나가지 않는 걸 보니 경계가 심한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면 길들이는 게 가능할지도 몰라요!”
“…길들인다고?”
“네. 고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옛 카카라 전사들은 괴수들을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쩌면 켄 님도 그런 능력을 타고나신 걸지도 모르죠.”
의아해하던 캐릭터가 다시 흐딕스와 눈을 마주쳤다. 시선을 마주하는 흐딕스의 갈색 눈동자는 그저 말랑말랑했다.
“같이 가겠습니까?”
캐릭터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흐딕스가 약간의 망설임 끝에 손 위에 머리를 얹었다.
『괴수를 타고 다니는 전사│ 이제부터 괴수들을 길들일 수 있습니다. 괴수들을 파트너로 삼아 미개척지를 탐방하십시오.』
『어린 흐딕스 길들이기 성공!』
새로운 능력이 주어졌다.
▣ 054. 이너 피스
은우는 로크즈류로 돌아왔다. 파론의 머리 위에 메인 스토리 고유의 마크가 떠올라 있었다.
“흐딕스는 어디 갔을까요.”
─마이하우스 옆에 있어요ㅋㅋ
─하우스 옆에 우리 있어요!
─우리 지으면 쓸 수 있음
─댕댕이 보로 가쟈!!!
시청자와 함께한다는 것은 이런 점에서 유리하다. 은우는 장비 점검 할 겸 마이 하우스로 향했다. 몇 번의 강화를 통해 돌벽 집으로 변한 오두막 옆에 느낌표 표시가 생겨나 있다.
“강화까진 좀 남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느낌표 근처로 다가서니 알림 창이 떠올랐다.
『우리│길들인 동물을 넣어 둘 수 있는 우리.
-필요 재료: 목재 72/20, 트크트마의 가죽 68/10…….』
재료는 넘쳐났기에 바로 지을 수 있었다. 그러자 무언가가 뚝딱뚝딱 지어지는 컷신이 스쳐 지나갔다. 오두막 옆에 우리가 생겨났다.
『우리│우리에는 길들인 동물을 넣어 둘 수 있습니다. 확장할 경우 더 많은, 더 강한 동물을 기를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에 들어 있는 짐승 수 1/4』
“흐딕스가 여기 있었네요.”
은우는 4칸으로 나눠져 있는 우리 중 한 칸을 확인했다. 흐딕스가 그곳에 있었다. 보자마자 꼬리를 살랑살랑하는 게 정말 귀엽다.
『어린 흐딕스│ 성장기의 흐딕스입니다.
-적이나 포식자를 발견하면 으르렁거림으로 경고합니다.
-탈것으로 이용 가능합니다.
능력치 펼치기>
파트너 설정하기 OFF』
가까이 다가가니 정보 창이 떠올랐다. 은우는 거기서 눈에 띄는 정보를 발견했다.
“탈것으로 이용 가능합니다? 설마, 탈 수도 있습니까?”
─넹
─이제 야생 율피드 잡아다 길들이면 됨ㅋㅋ
─타면 개멋지겠다ㄷㄷ
─ㅇㅈ,,,,,,
─초반 탈것으론 흐딕이가 젤 나음
─파트너는 한 마리만 가능해요~
놀랍다. 은우는 매번 외부 지역으로 나갈 때마다 이동의 편의를 위해 돈 내고 고용하던 율피드를 떠올렸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매번 대여해야 한다는 귀찮음이 있었다. 잃어버리거나 죽이면 큰돈을 물어 줘야 했고.
그렇지만 직접 길들일 경우 그 문제가 전부 사라진다. 은우는 파트너 설정을 ON으로 돌렸다. 흐딕스가 좋아서 펄떡였다.
“이렇게 작은 걸 탈 수 있나……?”
은우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대형견 크기의 흐딕스를 바라보았다. 아까 컷신에선 그가 탈 수 있을 정도로 컸던 것 같은데, 정작 우리 안에 있는 놈은 작다. 이게 본래 크기인지, 아니면 우리 안에서만 작아지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마을 내에선 못 타고 다니나 보네요. 그건 좀 아쉽다.”
은우는 흐딕스를 한 번 쓰다듬곤 우리를 빠져나왔다. 햇빛이 쨍했다.
“그럼 슬슬 메인 퀘 하러 가 볼까요.”
과연 부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까, 아니면 발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까.
은우는 파론에게로 향했다. 이벤트 신이 시작되었다.
“푸른 하늘이 그대를 반기노니. 켄, 잘 왔다. 안 그래도 널 부르러 갈 참이었다.”
“푸른 하늘이 그대를 반기노니. 무슨 문제라도?”
“오늘 아침 스홀들라의 정찰병이 발견됐다. 얼마 전 에임든브의 부락까지 쳐부쉈건만… 간이 큰 놈들이지.”
은우는 캐릭터와 파론이 떠드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녀석들의 주거지로 다시 한번 쳐들어가야 하나 보다.
한편 그의 시야에 비치는 채팅 창에서 시청자들이 그것을 뭐라 떠들었다. 전쟁이라곤 하지만, 거의 주인공이 혼자서 다 하는 거 아니냐며 게임 특유의 불합리함을 성토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은우는 그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일인 전쟁이 뭐가 이상하단 말인가?
물론 일반인과 일반인들의 전쟁에는 일인 전쟁이란 단어가 성립할 수 없다. 은우조차도 일반인 수천을 상대하라 하면 조금 어려울 터였다. 그는 아주 강한 자를 죽일 수 있지만, 전투를 오래 지속할 유지 수단이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그가 강대한 하나를 상대할 수 있는 것처럼, 혼자서 수천을 상대할 수 있는 인간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다. 비록 배반으로 얼룩진 기억일지언정 은우는 그런 존재들을 알고 있다.
화염을 온몸에 두르고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던 화검사, 시체를 일으켜 독기를 퍼트리던 시체교주.
결국 능력만 있다면 일인 전쟁이란 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거다.
“켄, 부탁한다. 스홀들라와 에임든브가 만든 부락을 기습해 전부 해치워 다오.”
『◈│스홀들라와 에임든브의 부락 해치우기
□ 스홀들라 병사 해치우기
□ 에임든브 병사 해치우기
□ 부락에 점령표시 꽂기』
이벤트 신이 드디어 끝났다.
은우는 떠오른 퀘스트를 수락했다. 다행히 저번 메인 퀘스트 때 빠른 이동을 개방해 놨기 때문에 근처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어서 갑시다.”
카카라 헌터가 나섰다.
* * *
“나 혼자 돌입한다.”
짙은 빛깔의 입술이 달싹였다. 처연한 눈매 속 눈동자는 요정의 날개자락처럼 고운 녹색이다.
“그건 네 마음대로 해. 그런데 너, 제국이랑 원수졌어?”
“…뜬금없네.”
“제국만 나왔다 하면 죽이려 들잖아.”
화검사의 말에 웃음을 터트린 건 그림자술사였다. 그림자를 가지고 놀던 그는 화검사의 말에 딴죽을 걸었다.
“제국이 저 녀석한테 원수진 거겠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의 손에 죽은 제국인만 기백이었다.
“애초에 그네들 수작은 왜 방해한 거야? 이렇게 귀찮아질 걸 모른 건 아닐 테고. 새삼스럽게 왕국에 대한 충성심을 얘기할 건 아니지?”
“나름 왕, 괜찮지 않아?”
“난 계속 간 보는 것 같아서 별로. 해 주는 것도 없잖아?”
“난 화검사의 의견에 동의하네.”
“하! 그렇게 나약한 왕은 필요 없어!”
화검사와 그림자술사가 계속해서 이야기 나눴다. 왕 이야기가 나왔을 땐 나머지 동료도 끼어들었다.
“말이 돌아갔네. 그래서 진짜 왜 방해한 거야? 그때 그 야만 전사만 네가 안 죽였어도 괜찮았을 텐데. 너 정도면 야만 전사를 피해 움직일 수 있지 않아? 그렇게 강했냐?”
그림자술사가 물었다. 그는 그 당시 일을 얄팍하게 떠올렸다. 야만 전사를 필두로 제국의 특전사들이 무고한 마을을 점거했던가. 그는 그 마을을 막 떠나던 참이었다. 원한다면 피할 수 있었다.
“녀석들이 먼저 건드렸어.”
“야만 전사가?”
“아니.”
그가 말없이 몸을 피하는 대신 나서서 싸운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몸담고 있던 용병대가 제국군 손에 죽었어.”
녀석들이 먼저 시작했을 뿐이다.
“…너, 정 없는 녀석 아니었냐?”
“복수였나…….”
“하, 복수 같은 건 하등 쓸모없다고!”
복수인가? 복수였나? 그는 동료들의 지적에 곰곰이 고민해 보았다.
“그랬던 것 같기도.”
“…아니야?”
“계기는 맞는 것 같아.”
다만 지금 와선 복수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혹여라도 옷자락이 흩날려 전투에 방해될까, 온몸은 가죽띠들로 단단히 동여매져 있다.
“계기는 복수가 맞는데, 그럼 지금은? 아니란 소리냐?”
“아마도.”
뱀이 몸을 뒤틀 때 날 법한 스산한 소리가 대기 위로 얇게 펴 발라졌다. 그것은 아마 빽빽이 채워진 무기의 합주일 것이다.
“내가 복수했듯 그네들도 복수하려 들고 있잖아. 그게 쌓이니까 그냥 귀찮더라고.”
모란꽃은 향기 없이 피어난다. 그 핏줄기도 그랬다. 소리 없이 피어나 얼어붙은 북녘에 소복이 뿌려졌다.
언제 뽑혔는지 그의 손에 쥐어진 무광의 검이 붉은 핏물을 흩뿌렸다.
그렇지만 그것을 보며 그 누구도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너무 여유를 부린 나머지 기습이 발각됐다는 걸 아까부터 눈치챘던 탓이다.
“아, 엄청 몰려온다. 성가셔졌네.”
그림자술사가 손가락을 까닥이려 했다. 그는 칼을 치켜세움으로써 그것을 막았다.
“그러니 너희는 제국과 싸우지 마.”
“엥.”
“원수지면 나처럼 귀찮아지니까.”
그의 눈동자는 노골적으로 적의 수장을 담는다.
시체가 산을 이뤘다.
* * *
은우는 너무 쉽게 죽어 나가는 스홀들라와 에임든브의 병사들을 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땐 기동대 대장 녀석으로 재미라도 봤지, 이건 그냥 엔젤 돈 크라이를 재플레이하는 기분이다.
카악!
와중에 흐닉스는 열심히 병사들을 물어뜯고 있다. 도움을 주러 온 NPC들 역시 나름 싸우고 있었다. 적의 NPC를 죽이고 있긴 한 건지 싶지만.
“무기를 하나밖에 못 쓴다는 점에서 또 다른가…….”
은우는 짧게 스쳐 지나갔던 상념을 되새겼다. 그때의 그는 온몸을 무기로 채웠다.
육체가 극한으로 단련된 것과는 다른 의미다. 육체가 만들어질 수 있는 최선이 아닌 건 아니나, 그보단 병기고를 병기라 부르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만큼 소지 무기가 많았다.
한 번 옷을 벗을 때마다 두 시간씩 걸렸다면 이해가 될까.
장갑 손등에는 세 갈래의 칼날이, 손목 아래에는 암기가 하나. 그가 주로 사용하는 쪽은 손등 쪽 칼날이었으므로, 그 세 개의 칼날이 파훼됐다고 방심하던 인간들은 손목의 암기에 죽어 나갔다.
혹은 팔꿈치나 발꿈치에도 죽었다. 와이어를 피했다고 생각하면 밴드형 채찍을, 검이 부러졌다 생각하면 쌍도를, 장신구인줄 알았던 것은 창대를 분할해 둔 것이니 말 다했다.
당시의 그는 정말 걸어 다니는 무기 창고였다. 이후로도 줄기는커녕 늘어나기만 했고.
퍼억!
은우는 창대로 적의 머리를 내려찍으며 생각을 끊었다. 대낫 형태로 접혀 있던 칼날이 에임든브가 만든 기계병─이곳은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으므로 다른 원리일 것이다─을 갈랐다.
이것도 괴수 취급인지 부위 파괴가 가능해서, 팔다리를 쪼개고 몸통을 절삭하면 버티질 못했다.
그의 뒤에서 오는 공격은 흐딕스가 막아 주었다. 기척으로 하여금 그것을 예감하고 있던 그는 당황하지 않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더러운 용의 창부가!”
“15세 게임에 그런 발언은 안 되죠.”
은우는 스홀들라 병사의 머리를 걷어찼다. 시청자들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며 눈을 흘겼다. 아무렴 수위 수준으로 보면 창부란 단어보다 부락 단위를 혼자 썰어 버린 은우가 더 높았다.
“그보다, 대장도 없나요? 다 약하네.”
─아니 잠입해서 다 죽이는 미션인데 대장까지 나오면 양심 ㅇㄷ.....
─님한테만 약한 거임;;
─잠행 미션인데 돌격미션으로 바꿔버리는 구울왕 클라스
─학살좌 어디 안 가죠
“그렇지만 이런 부락은 보통 리더가 있잖습니까.”
은우는 크리스마스 날 양말에 선물이 들어 있지 않다며 투덜거리는 아이처럼 아쉬움을 표했다. 사막 장비에서 달리 바꾸지 않은지라 투구 대신 베일이 그 얼굴 위로 흩날렸다.
투박한 서클렛─그것보단 투구에서 떼 온 것 같은─이 이마를 가리고, 눈 부분을 뺀 체 베일이 얼굴을 가렸다. 약간 반투명한 베일은 그의 얼굴을 가리되 이목구비를 흐릿하게 내보였다.
콰앙!
그리고 창이 날아왔다. 은우는 무기를 제대로 쥐었다. 창이 지나가며 일으킨 돌풍이 그의 베일을 미친 듯이 휘날리도록 했다.
“이러다 베일 날아가겠어요.”
그는 힐끗 웃었다. 기대했던 리더가 나왔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네놈만은 반드시 죽인다!”
“빌어먹을 용의 아종이!”
─도망쳐...!
─아,,,,안돼,,,! 이곳은 죽음이다!
─여기서 보스도 나왔음??
─구울왕의 먹이가 오나?!
“안 잡아먹습니다.”
은우는 그들의 농담을 꼬집으며 등장한 녀석을 확인했다. 등장한 것은 두 명이었다. 전문가 모드에서만 등장하는 녀석들인지 채팅 창에서도 아는 이들이 드물다.
“두 놈이네요.”
한 놈이 강하지 못하다면 두 놈이라도 와 주는 게 좋다.
은우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낫을 대검형으로 바꾸었다. 칼날이 곧이곧대로 서며 시퍼런 광을 흘렸다.
흐딕스에겐 휙 소리를 내어 잡졸들만 처리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흐딕스가 부락의 울타리들을 헤집으며 돌진했다.
그사이 기계 갑옷을 둘러싼 에임든브가 가장 먼저 덤벼들었다. 쭉 뻗은 팔이 은우의 심장을 노리려 들었다.
은우는 몸의 축이 되던 발을 비틀었다. 그러자 몸이 슬쩍 움직이며 손을 피해 냈다.
창을 쥐고 있던 손이 창을 위로 곧게 던졌다. 손아귀 속 창대가 위로 치솟더니 금세 끝자락을 내보였다. 은우는 그 끝자락을 붙잡고 에임든브의 팔을 내려쳤다.
허공을 유영하던 오른손이 왼손 위로 우뚝 솟은 창대를 잡았다. 그러곤 방망이 휘두르듯, 혹은 부채질을 하듯 휘저었다. 바람이 후욱 일며 날아오던 스홀들라의 독 뭉치를 쳐 냈다.
콱!
칼날이 바닥에 강렬히 처박힘과 동시에 은우는 창대를 잡고 위로 뛰어올랐다. 에임든브가 휘두른 발이 쓱 지나갔다.
퍼퍽!
은우는 창대를 손으로 잡은 채 허공에서 몸을 빙글 돌렸다. 비보잉을 하듯 한 바퀴 회전하며 발을 차면 에임든브의 머리통을 깔 수 있다.
그의 발이 바닥에 내려서며 창대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바닥에 강하게 박혀 있던 칼날이 위로 솟아올랐다. 그는 조작을 통해 칼날을 접어 대낫의 형태로 바꾸었다.
쉬익!
일자 상태보다 절삭력이 더욱 올라간 낫의 날이 에임든부의 상체를 때렸다. 상체에 부착되어 있던 갑주가 떨어져 나갔다.
다시 낫날이 바닥에 박혔다. 은우는 창대를 놓고 두 손을 허공에 치켜세웠다. 무언가가 그를 향해 날아왔다.
음, 가능하려나? 그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가 오랜만에 검은기사 때 감각을 떠올렸다. 타격을 입기 전에 튕겨 낸다. 타격을 입기 전에 그것을 움직인다.
그의 손바닥이 무언가를 살포시 감쌌다. 본래는 터져야 하나, 세밀한 조절은 감싼 무언가에 충격을 전달하지 않았으니. 은우의 몸이 제자리에서 턴했다.
야구공 크기만 한 것이 날아온 방향으로 다시 돌아갔다.
퍼엉!
“으악!”
스홀들라가 길쭉한 귀를 바짝 세우며 깡총 뛰었다. 주변에 확 퍼지는 녹색 가루는 당연하지만 독이다.
─이너 피스.....
─아 ㅁㅊㅋㅋㅋㅋㅋㅋ
─틀니 압수!
─먼 드립임ㅡㅡ
─알아듣는 놈들 다 할배
고인돌 아래에 묻혔을 드립까지 출동했다. 은우의 혀가 입술을 쓱 핥았다. 그 순간에도 덤벼드는 적의 손을 잡고 그 목에 대낫의 날을 거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이거 재밌네요.”
에임든브의 투구가 벗겨지며 기어코 일격사했다.
그의 입술이 삐뚜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