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은우는 생전 처음 타 보는 비행기에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처음 타 보는 비행기의 감상은 생각보다 더 넓다는 것이다. 비즈니스석이라는 게 한몫하겠지만, 그래도 넓다.
“비행기는 처음인가?”
옆에 앉은 이가 툭 말을 걸어왔다. 오현 관장이다.
“네.”
은우는 옆쪽 창가에 팔을 걸치며 창문 밖을 보았다. 지금은 공항의 광경이 보이나, 곧 하늘과 구름이 저것을 메울 것이다.
순간 이동이라든가 돌 같은 것을 던질 때 그 위에 올라탄 적은 있지만, 이런 기물을 통해 비행하는 건 처음이다. 무섭지는 않지만 조금 신기하다.
“앞으론 자주 타게 될 걸세. 자네가 바란다면.”
“그렇군요.”
하긴, 그가 번 돈이면 비행기 타는 게 대수는 아니다. 이렇게 밥 먹듯이 비즈니스석을 타는 건 어려울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은우는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넣듯 의자에 전자 노트를 넣었다. 하면 해당 좌석과 전자 노트가 연결되며 컴퓨터 정도의 기능을 낼 수 있게 해 준다.
홀로그램 모니터가 자판이 그의 앞에 떠올랐다.
『나> 곧 출발.』
『희수> ㅇ』
간단한 답장을 보고 대화 창을 나왔다. 문득 연락처에 등록되어 있는 가족들의 이름이 눈에 걸렸으나, 고작해야 1초도 안 되는 망설임이었다. 그는 메시지를 완전히 종료했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진행됩니까?”
은우의 질문에 오현이 턱을 매만졌다.
“게임사별로 무술가들의 데이터를 수집해 둔 게 있네. 우리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저장하고 재생하는 AI지. 물론 당사자처럼 꾸준히 정진하고 발전하는 게 불가능하니 정기적으로 기록을 추가해야 하네만…….”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무술가들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법이 싸움밖에 더 있겠나?”
“대련입니까?”
“대련보단 생사결에 더 가깝겠군. 뭐, 사람마다 방식은 달리하네만, 중요한 건 게임사에서 수집한 데이터들을 상대한다는 거 아니겠나.”
오현의 대답에 은우는 눈을 껌뻑였다. 세계 각지의 무술가들을 따라 하는 AI. 그런 AI와의 싸움.
“우리 도장에서도 이 방식을 사용하네. 실제 사람과 사람이 싸웠다간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원. 반면 데이터는 죽여도 문제가 없지. 정신적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 심리 상담도 꾸준히 받아야 하네만, 나쁘지 않네.”
가상이니 실수로 죽인다 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또한 수집한 데이터를 불러오기만 하면 되므로 여러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동할 필요도 없다. AI일 뿐이므로 친분을 쌓으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
은우는 목덜미를 쓸었다.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그게 그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도 있다.
“많습니까, 그 데이터란 것?”
자동으로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그의 심정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오현이 피식 웃었다.
“많다는 말론 부족하네. 원한다면 데이터끼리 결합해 새로운 대상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그네들이니.”
▣ 070. 그래야 재밌다
텍사스의 밤은 서늘했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한기가 훅 덮쳐 왔다.
“낮이 되면 더워지네. 반팔만 입고 다니면 피부가 탈지도 모르지.”
오현의 충고는 들어 둬서 나쁠 것 같지 않았다. 은우는 티 위에 걸쳐 입고 있던 반팔 셔츠를 매만졌다. 내일은 이걸 벗어야겠다.
“한국보다 더 덥습니까?”
“더 덥지.”
“심각하네요. 한국도 더운데.”
“나 때는 그것보다 더 더웠네.
은우의 눈동자가 도르륵 굴렀다.
“그때란 건?”
오현이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2, 30년은 벌써 된 것 같군.”
은우가 태어나기도 전 일이었다.
“환경 운동 붐이 일어서 망정이지…….”
오현은 갑자기 꼰대가 되어서 환경이 어떻고 과거가 어떻고 일장 연설을 했다.
은우는 거기서 오현과의 내적 거리감을 느꼈다. 세대 차이로 인한 서먹함이었다. 그건 무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오는 동질감을 엎어 버릴 지경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 괜찮습니다.”
다행히도 서먹함은 마중 온 셔틀 덕에 무너졌다.
그렇게 그들은 숙소에 한 번 들러 반나절을 푹 쉬었다. 요즘 미국행 비행기는 비행 시간이 5시간 아래까지 떨어졌는지라 그렇게까지 피곤하진 않았다. 시차가 바뀐 건 좀 애매했지만.
그렇게 밤을 보낸 후 카롬 본사로 향했다. 당연하지만 은우는 헬멧을 쓰고 움직였다.
도착하자 카롬에서 붙여 준 직원이 본사를 구경시켜 주었다. 방송으로 송출해도 된다고 허락받았기에 은우는 드론 카메라를 매단 채 쫄쫄 안내 직원을 따라다녔다.
그게 그날 일정의 끝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비행하느라 힘들었을 테니 더 쉬라고 본사만 안내해 준 후 휴식 시간을 주었다.
은우는 사양하지 않았다. 바뀐 시차는 은근 거슬렸다.
늦어짐에 따른 아쉬움은 가이드─호텔에서 제공했다─와 함께 시내를 탐방하는 것으로 해소했다. 사진 찍는 유형도 아니거니와 가이드가 한국말도 할 줄 알아서 전자 노트는 꺼낼 일도 없었다.
가이드는 정말 일을 잘했고, 그가 추천해 준 아이스크림의 가게는 맛있었다.
* * *
다음 날, 은우는 방송을 끈 채 다시 본사에 방문했다. 오현은 어디 갔다 올 곳이 있다며 다른 곳으로 빠졌다.
저래도 되나 싶지만 저래도 되니까 그렇게 구는 거겠지. 은우는 그런가 보다 하며 혼자 본사로 갔다. 오늘도 직원이 안내하러 나왔다. 참고로 그 직원은 한국인이었다.
방송에는 내보낼 수 없던 안쪽으로 안내하며 직원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도 제법 키가 커서 그런지 은우에게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저보다 큰 사람은 처음 본다며 신기해하긴 했다.
“푹 쉬셨습니까?”
“예. 덕분에.”
호텔을 최고급으로 제공해 준 덕에 소파에서 잤다. 참고로 소파마저도 그의 방침대보다 넓었다. 침대는 너무 푹신해서 소름끼칠 지경이고.
“어제자 방송이 벌써 조회 수 50만을 찍었더군요. 역시 켄 님이십니다.”
직원이 떠드는 그 말엔 당사자가 오히려 더 놀랐다.
은우는 어제 생방을 지켜본 사람이 그렇게 많았나 고민했다가 저게 생방을 말한 게 아님을 깨달았다. 유어튜브 얘기였다.
“놀랍네요.”
“놀랍죠.”
단순한 게임사 탐방 영상일 뿐인데 그렇게 많이 볼 줄이야. 카롬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의 영상이라서 그런 걸까. 은우는 목덜미를 쓸었다.
“덕분에 새삼 스트리머의 위력을 깨달았지 뭡니까. 요즘 시대에 인플루언서는 결국 광고와 뗄 수 없는 존재란 거겠죠.”
직원은 말이 많았다. 그런데도 시끄럽다는 느낌은 안 들었는데, 은우는 그것에서 약간의 낯익음을 느꼈다. 검은기사의 돌이 된 캐릭터가 떠오른다.
“…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의 유명 스트리머에게 사주한 것도 이해가 간다니까요?”
“…네?”
은우는 뜬금없지만 왠지 그가 연관된 것 같은 주제에 눈썹을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켄 님도 그 대회에 참가하셨죠?”
“그렇습니다만… 방금 그 얘기는……?”
“어… 유명 스트리머에게 사주한 것 말입니까?”
“네.”
직원의 표정이 모호해졌다.
“으음… 이건 암묵적인 비밀이니까 방송에서 대놓고 발언하시면 안 됩니다.”
그도 자신이 말을 가볍게 떠들었다는 건 인지하고 있나 보다.
“스트리머란 게 워낙 게임 홍보와 직결되잖습니까? 그러다 보니 가끔 스트리머의 이미지가 게임과도 연결될 때가 있습니다. 특히 게임 초기는 좀 많이 그렇죠.”
이것만 들어도 대충 알 것 같다. 은우는 듣고 있단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입술을 적신 직원이 마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초기엔 문제 일으키지 않을 스트리머에게 홍보를 맡겨야 합니다. 시간이 흘러서 게임이 시장에 자리 잡은 이후라면 모를까, 정착하려는 초기엔 조금의 문제도 크게 불거질 수 있으니까요.”
거기까지 들으니 감이 잡히는 게 있다.
“그래서 그쪽도 스트리머들을 골라 골라 넌지시 전해 줬는데… 그, 아시겠지만 스트리머 빌리가 고른 사람들이… 좀 그렇잖습니까? 한 분은 벌써 고소당했고.”
“…네.”
“그래서 다급히 이미지를 덮어씌울 스트리머를 고른다는 게 그 밀키스 좋아하시는 분으로 압니다. 아무래도 한국은 게임 강국이다 보니 이래저래 주시받고 있거든요. 한국에서 문제 생기면 여파가 좀 큽니다.”
대체 이 사람들은 언제서부터 준비하고 대비한 걸까. 은우는 대회 발표 한 달도 전에 먼저 알고 있었다던 우유에탄산을 떠올렸다.
빌리가 그것보다 느리게 알았을 리는 없으니 그 시점부터 팀원을 모았다 치자. 네뷸라 워 개발사는 그 팀원 목록을 알아내자마자 화들짝 놀라서 우유에탄산을 대항마로 준비한 게 된다.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게임을 만드는 까닭일까. 이런 것까지 철저하게 대비하나 보다. 은우는 질린 눈이 되었다.
“놀라우십니까?”
“네, 좀.”
“게임 개발 비용이 비용이니까요. 이런 것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은 또 소비자분들의 도덕적 검열이 심하니까요.”
“그건 그렇네요.”
“제 예상이지만, 켄 님 덕분에 그쪽도 숨통이 좀 트였을 겁니다. 1등은 비록 스트리머 빌리가 있는 팀이 이겼지만, 화제는 2등 팀에서 다 가져갔으니까요. 팀원도 고소 사건이 터지기 전에 교체됐고.”
우유에탄산이 마지막에 가서 빌리에게 화젯거리를 넘겨 준 것도 대충 이것과 연관될 것 같다. 우유에탄산은 어찌 됐건 ‘문제 되는 팀원’들만 빠지게 하면 개발사 측의 의뢰를 완수하는 게 될 테니.
대충 빌리와 나눈 대화도 그에 관한 게 아닐까. 빠른 교체 또한 그 일환이었겠지.
은우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았음에도 알게 된 내막에 혀를 찼다. 정치는 역시 귀찮고 복잡하다.
“그럼 저를 자문으로 초청하신 것도 비슷한 일환입니까?”
은우는 홍보 효과를 노리고 있느냐는 것을 돌려 물었다.
어제 일로 벌써 홍보되었다는 건 조금 달리 치부해야 한다. 저들은 어제 본사 소개만 했을 뿐 신작 홍보를 하지 않았다. 작품이 개발사의 이미지와 직결되는 걸 생각하면 신작이든 전작이든 그네들 게임 홍보를 했어야 했다.
“그 반대입니다.”
대답이 돌아왔다. 반쯤은 예상했고 반쯤은 의문이 드는 답이다.
“저흰 본래 켄 님을 초청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 물론 출시된 이후엔 켄 님에게 외따로 홍보를 부탁드릴 거였습니다만… 적어도 신작 홍보로 써먹기 위해 자문을 부탁드린 건 아닙니다.”
“어제 신작 얘기를 하나도 하시지 않은 것부터 예감했습니다.”
직원이 슬쩍 웃었다.
“그러십니까?”
그는 어딘가 기뻐 보인다.
“저희가 켄 님의 초청하자는 오현 관장님의 제의를 받아들인 건, 사실 켄 님의 방송을 보고 난 후입니다.”
“어떤 방송 말입니까?”
“여러 가지 다 보았습니다만, 결정적인 계기는 아무래도 버블사의 게임 때문이겠군요.”
“아.”
은우는 헬멧 속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다시 생각해도 영 재미없던 게임이었다.
“문제가 있었습니까?”
“아뇨, 아뇨. 켄 님께는 문제가 없지요. 다만 지루해 하셨잖습니까?”
직원의 표정이 조금 애달파졌다.
“플레이하는 사람이 지루해지는 것만큼 나쁜 게임도 없죠.”
그건 게임 개발자의 얼굴이다.
“켄 님이 배신자를 격파하셨을 때 저희 쪽에서 얼마나 환희했는지 모릅니다. 검은기사에서 가장 공들여 만든 존재가 배신자거든요. 그때 개발 부서에서 얼마나 날뛰었는지…….”
어느 쪽 담당이건 그 예술적인 전투에 미쳐서 찬양하고 다녔단다. 직원의 설명에 은우는 그렇군요, 하고 담담히 답했다.
그의 전투에 미쳐 날뛰는 예술가나 개발가는 (전생에) 종종 겪어 봐서 크게 당황스럽지 않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저흰 솔직히 배신자만큼 강력한 보스를 만들어 낼 자신이 없었거든요.”
단순히 속력을 높이고 체력을 높이고 방어력을 올린다면 강한 보스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그들은 분명 잡을 수 있되 잡기 어려운 보스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그냥 어려운 보스가 아니라.
“저희가 AI를 설계하고 보스를 디자인하고 그래픽을 구현할 순 있어도 싸움의 기술까진 어떻게 할 수 없잖습니까? 그래서 오현 관장님을 비롯한 많은 분께 자문을 구했습니다만… 다들 혀를 내두르시더군요.”
그들의 의견은 동일했다. ‘이기기는커녕 비등한 걸 구현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저희가 제일 두려운 것은 저희가 최선을 다해 만들어 낸 캐릭터가 파훼당할 때, 그것을 무너트린 분이 지루한 얼굴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겼다는 환희나 해냈다는 희열이 아닌 지루함. 그것만큼 게임 개발자로서 두려운 게 어디 있을까.
“그래서 저희는 켄 님을 이 자리에 모시기로 했습니다.”
은우는 그들의 설명에 뒷덜미를 쓰다듬었다. 돌려 말했지만, 결국 그조차도 즐길 수 있는 보스를 만들겠다는 포부 아닌가.
“그래서 제 데이터가 필요한 거군요.”
“예.”
“가볍게 노는 싸움보다는 상대를 죽이려 들 것처럼 격렬한 걸 바라실 테고.”
“그렇죠? 게임 보스는 살해 대상이니까요. 이렇게 말하니 무슨 살인 모의 같군요.”
저 말들이 기껍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리라. 애초에 그가 이 일을 받아들인 것도 그가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받아들인 것 아닌가.
그는 그가 싸움 자체를 즐겼던 일화들을 떠올렸다. 제발 완전히 구현하는 건 바라지도 않을 테니 조금만이라도 재현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 이쪽입니다.”
직원이 안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캡슐 한 대가 놓여 있다.
“내시는 목소리는 전부 저희 측에서 듣고 있기 때문에 요구하게 생기시면 바로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휴식 및 종료도 원하실 때 요청하시면 됩니다.”
이미 계약서를 통해 다 읽었고 오현에게 추가로 들은 설명들이었다.
“통각을 제한 모든 수치는 현실과 똑같게 고정이 됩니다. 오래 움직이면 숨이 막히거나 땀이 흐르는 것조차도 현실과 다름없이 구현될 겁니다.”
이것도 안다. 극사실적인 재현으로 인해 대련 도중 부상을 입을 경우 쇼크가 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까지.
“계약서에 명시했지만,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위험한 수준까지 도달하면 즉각 연결을 끊으니 너무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의료진도 대기하고 있습니다.”
관련된 사항엔 이미 사인했다는 걸 알면서도 직원은 말을 덧붙였다. 걱정을 누그러트리려고 한 모양인데, 쓸모없는 행위였다.
“무기는 구현됐습니까?”
“아, 네. 건네주신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근데 너무 많던데, 다 쓰실 수 있으신 겁니까? 거기에 그런 건 다 상상으로…….”
그럼 됐다.
“무기는 전부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연결 끊는 건 필요 없습니다.”
은우는 헬멧을 벗었다.
“통각 수치도 올려 주세요.”
“네, 네?”
그의 헬멧이 직원의 손에 떠밀려졌다. 주위 공기가 확 바뀌었다. 주위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너무 위험합니다!”
은우는 목을 쓱 쓸었다. 입술이 비죽비죽 올라가는 이유는 글쎄. 그도 잘 모르겠다.
“그래야 재밌는 거 아닙니까?”
그냥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