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93화 (93/233)

93화

─??새로운 루트요?

─히든루트임??

「‘히든루트아님’ 님이 ‘1,000원’ 투척!

애초에 오늘 발매된 겜에 뭔 히든루트임 다른 엔딩 찾은 게 맞지」

「‘진엔딩각?’ 님이 ‘1,000원’ 투척!

딴 스트리머가 본 건 예술엔딩이고 켄 님은 다른 엔딩 루트 찾으신 듯」

─일회차에 오진다;;

─예술엔딩은 머임?

─폭발은 예술이다!

─아놔ㅋㅋㅋㅋㅋㅋㅋㅋ

새로운 루트란 말이 채팅 창에 나왔지만, 은우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이번이 첫 플레이였다. 새 루트니 헌 루트니 말을 해도 별다른 감상이 들지 않는 게 당연하다.

“인당 하나씩.”

“이건… 알겠다, 자폭용 폭탄이구나.”

“방금 같은 상황이 반복될 때 쓰면 되겠네.”

레드들이 폭탄을 하나씩 받았다. 이제 남은 건 탈출이다. 은우에게 감각이 다시 깃들었다.

“새로운 루트가 아닐 가능성을 배제하시면 안 됩니다. 시간 단축에 다른 이벤트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는 차분히 시청자들부터 진정시켰다. 효용은 없었다. 사람들은 벌써 그의 영상을 클립으로 퍼 나르고, 커뮤에 글을 올리며 소문을 퍼트리고 있었다. 증가하는 시청자 수가 그것을 증명했다.

“잠깐, 가지 말아 봐.”

그들이 서둘러 나갈 준비를 시작할 때, 스칼렛이 막아섰다. 선두에 있던 은우는 문 앞에서 경계를 서며 고개만 살짝 틀었다.

“좀 생각해 봤는데, 인디고B를 비롯해 우리 R 전원이 생존 및 복귀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그렇다면 차라리 역해킹을 통해 정보를 얻어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스칼렛은 방금 전까지 그들을 가두었던 기계 더미들을 탕탕 두드렸다.

“통신도 뚫렸고, 마침 녀석들의 단말기도 여기 있잖아.”

“모험 없인 이익도 없지. 난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해.”

“나도 찬성.”

그들에게 죽음은 진정한 죽음이 아니었으므로, 결정은 빨랐다. R들은 순식간에 의견을 통일한 후 은우를 바라보았다.

“넌 어때?”

은우는 대답 대신 살짝 열린 문틈으로 바깥을 확인했다. 많이도 몰려오고 있다. B의 채널에선 기계장치들이 갑자기 안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며 소식을 전달해 주었다.

“지키면 되겠죠.”

그것은 중얼거림에 불과했으나, 인공지능은 대답의 하나로 판단했다. 스토리가 진행되었다.

“본부에 보고는 내가 하지.”

“부탁해요, 대장님!”

보고가 빠르게 이어지고 인력 분배가 이뤄졌다.

“해킹 실력은 스칼렛이 가장 뛰어나니, 스칼렛을 축으로 다섯 명이서 기계장치들을 역으로 타고 올라가라. 나머지 일곱 명은 인디고B를 도와 이곳을 사수한다.”

“마침 B쪽도 안쪽으로 진입하고 있다 합니다.”

“좋아, 부탁한다.”

“전투 특화는 아니지만, 서포트는 자신 있다고.”

“잘 부탁드립니다.”

다섯 명이 해킹을 바로 시도하고, 나머지 일곱 명은 은우의 곁에 섰다. 무장을 거의 다 빼앗긴 탓에 대충 주워 온 총기 정도가 다지만, 그들의 눈은 결연했다.

은우는 그것을 보며 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혹시 문이 닫히나 싶어 문을 발로 밀어 보면 잘 닫힌다.

“잠입, 레이드에 이어서 이번엔 디펜스네요.”

NPC의 인공지능은 아직 문을 열고 바깥에 나와 합류할 수준은 아닌 모양이다. 문은 닫힌 이래 열리지 않았다. 은우의 손이 우산과 검을 빼 들었다.

─아니 이분이 또;;

─솔로 웨이브 on

─이건 너무 무리수잖어

─학살좌 on

─동료 NPC들 어디감?

─켄이 버림ㅋ

─님 강한 거 아니까 적당히 하죠

─형 이건 좀 아니야

“글쎄요…….”

기계장치가 파도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도전 정도는 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 093. 미래를 위하여

사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적을 상대한 경험은 전생에서도 적다. 긴 호흡의 싸움과 어울리지 않는 그의 특성상 매번 다른 동료가 맡아 준 탓이다.

그렇지만 그건 적어도 천 단위, 만 단위였다. 5백 이하의 숫자라면 그도 상대할 수 있었다. 그가 구태여 문을 닫은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강한 적을 하나를 만나는 게 어렵다면 차라리 대규모 싸움에 임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런 가벼운 마음도 있었고.

조금 자만이었던 모양이다.

은우는 손등으로 조금 찌그러진 헬멧 위를 쓸다가 은근슬쩍 일어나려는 기계장치의 목을 잘랐다.

이걸 놓치고 있었다는 게 조금 자존심 상한다.

“몸이 조금 너덜너덜해졌네요.”

빠진 왼팔이 덜렁거렸다. 원래 신체였다면 억지로 끼워 맞출 텐데, 이 게임은 그것까진 구현해 두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조금 너덜너덜이요...?

「‘학살좌가’ 님이 ‘1,000원’ 투척!

학살했다 이말이야」

─오늘 본방 안 본 새끼 인생 송두리채 손해ㅇㅈ?

─ㄹㅇ;; 오늘 진짜 레전드 여러 개 뽑았다;;

「‘웨이브가’ 님이 ‘10,000원’ 투척!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заявление об отставке’ 님이 ‘52,020원’ 투척!

만족.」

─러씨아 좌 짧고 굵직한 것 보소ㅋㅋㅋㅋㅋㅋㅋ

「‘이게피지컬이지’ 님이 ‘1,000원’ 투척!

스트리머 한 트럭 데려와봐 솔로로 웨이브 따나보자」

다만, 그래. 그의 생각과 시청자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은 이제 기만이니 뭐니를 떠나서 그냥 경외하는 중이었다.

은우의 입장에선 부족한 싸움일지언정 사람들에겐 천외천의 경지였으니 당연하다.

그는 기어코 5번의 웨이브를 혼자 버텨 냈다. 수십 개의 무기를 바꿔 가며 기백은 될 것 같은 기계장치를 잡으며.

은우는 옆구리에 길게 난 자상을 더듬다가 거의 다 망가진 문에 몸을 기댔다. 한 손으로 열 구멍 못 막는다고, 흘린 기계장치들이 부순 문이다.

덕분에 안쪽에 대기하고 있던 레드의 총구 역시 불을 뿜었다. 고작 열 몇 번에 불과하긴 했지만.

웨이브가 더 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섯 번째 웨이브가 끝날 즈음, B팀이 난입했으므로.

“수고했다.”

잔당을 해치운 버킹햄B가 은우에게 다가와 손을 뻗었다. 설마 일으켜 주는 것까지 프로그래밍 되어 있나? 은우는 긴가민가하며 손을 잡았다. 컷신이 시작되었다.

“부상자는 안쪽으로 옮겨! 그리고 B들은 여기서 진을 친다!”

“네!”

너덜너덜해진 인디고B와 하나도 안 다친 R들이 들것에 실려 후방으로 이동됐다. 컷신이 정해져 있되, 플레이어가 일궈 낸 형태를 반영하는지라 졸지에 그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된 거다.

─R들 배탈나겠네ㅋㅋㅋ

─너무 날로 먹었는데ㅋㅋㅋ

─하나도 안 다쳤는데 이송되누

인디고B가 뒤쪽으로 실려 가는 동안, 해킹을 시도하고 있던 스칼렛과 눈이 마주쳤다. 스칼렛이 입술을 꾹 깨물더니 곧 이울은 미소를 지었다. 가슴을 주먹으로 톡 치는 행위는 제게 믿고 맡기란 뜻이다.

거기서 시점 전환이 일어났다. 저번처럼 스칼렛의 입장이 되어 해킹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심층까지 이동해야 해.”

그때와 달리 해킹은 퍼즐로 이뤄지지 않았다. 매끄러운 백색의 큐브 조각들로 이뤄진 장소로 이동된 것이다.

스칼렛이 무언가를 조작한 후 눈을 감고 나서 이 광경이 펼쳐진 것이므로, 대충 시스템 내부를 형상화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럼 가 볼까요.”

─누나ㅏㅏㅏㅏ

─속지마! 저건 켄이다!

─그래서 더 좋은 거다!

─?

그는 통통 뛰며 육체에 다시 적응한 후, 시스템 내부를 내달렸다. 길이 하나밖에 없었으므로 길치가 될 여지는 조금도 없다.

“특별한 건 보이지 않는데…….”

언제나 말이 화근이라고, 은우가 그 말을 내뱉자마자 바닥에서 검은 것이 솟아올랐다.

“보안 장치네.”

스칼렛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제거하겠습니다.”

은우는 담담히 말한 후 스칼렛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건 총이었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스칼렛으로 근접전은 어려울 테니 나쁘지도 않네요.”

정확힌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어려울 거다. 은우는 득달같이 그를 변태로 몰아 가려는 사람들을 외면했다.

총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흔한 기계장치 형태의 검정들을 평균 세 번 정도 탄환에 얻어맞으면 터져 죽었다. 정말 빈약한 내구도였다.

심지어 그것들은 공격도 안 했다. 정확힌 접근만 하려 들었다. 아마 무기가 없어서 손으로 때리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어찌 됐건 결국 쉬운 상대였다. 거리만 잘 조절하면 됐으니까.

─레이드보고 이거 보니까 혜자 그 자체

─근데 그건ㅋㅋㅋ켄이 혼자 싸워서 그런 거잖아ㅋㅋ

─최고난이도에서 더 난이도 높이는 남자,,,

“그건 저도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은우는 총의 탄창을 갈며 총구를 잠시 바닥으로 겨눴다. 정확히 3초 갈기면 그의 발밑에서 막 솟아오르던 검정이 사라진다.

“1인 디펜스는 좀 더 숙련도를 쌓아야 할 것 같네요.”

─또한단 소리잖아ㅋㅋㅋㅋㅋ

─숙련도 ㅇㅈㄹㅋㅋㅋ

─이분은 참...기만을 참신하게 해....

─남들은 해내지도 못하는데ㅋㅋ

그는 그렇게 길을 뚫으며 계속 전진했다. 곧 새하얀 벽이 길을 막았다.

조금의 흠집도 없이 매끄러운 성벽은 그 높이가 5m 어림쯤 되어 보인다. 아무리 그라도 통과할 여지가 없다.

[체리R, 길을 형성할게요. 그동안 보안 장치들이 몰려올 텐데 버틸 수 있겠어요?]

버틸 수 없는 순간에도 버텨 냈는데 이런 상황 하나 못 넘길까. 은우는 대답 없이 총을 견착했다. 성벽 앞, 넓은 공터에 검정들이 하나둘 솟아올랐다.

─근데 옛날보다 더 잘쏘시는듯

─정확히 맞추는데 속도가 더 빨라진 느낌

─예전엔 그냥 쓰시더니 지금은 견착하시네

“총기 다뤄 본 경험이 적다 보니 사격장에 가서 연습했습니다. 그럴싸합니까?”

─어쩐지,,,

─총기 다뤄본 경험이 적은건데 왜 총기'만' 적은 것처럼 들리냐

─고거슨 쓰앵님, 켄이라서 그렇습니다

─자세 진짜 죽여준다 FPS 랭커들 보는 기분

─ㅇㅈㅇㅈ

은우는 시청자들의 인정에 그러려니 하며 총을 거두었다. 거기서도 FM 자세라며 칭찬받긴 했는데, 실전에서도 이리 써먹을진 모르겠다. 총기는 역시 낯설다.

[체리R, 길을 완성했어요. 곧 무너질 테니 어서 지나가세요.]

바닥이 두두두 일어나며 계단을 만들었다. 은우는 빠르게 그것을 밟고 성벽을 뛰어넘었다. 그 뒤로는 비슷한 행위의 반복이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백색 세상의 끝에서 스칼렛은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기둥에 다가갔다. 키패드가 펼쳐지며 열 개의 손가락이 빠르게 자판을 두드리면 세계가 점차 다른 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해킹 완료. 공장 위치를 알아냈다!”

스칼렛의 머리카락과 같은 붉은색이었다.

* * *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인류를 위협할 위험을 넘기니 반격의 기회가 주어졌다. 찾을 수 없던 나머지 공장의 위치를 알게 된 것이다.

만일을 대비해 잡혀 갔던 R들은 링크 해제 및 검사를 받게 되었다. 아무도 그 사항에 대해 반발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모두가 이 상황의 중대함을 너무 잘 알았다.

─딴 방송이랑 상황이 진짜 다른데 비슷하게 흘러가네

─거긴 어떤데.

─폭탄으로 걍 다 날려버림

─거기에서도 스칼렛이 와중에 역해킹했다고 공장위치 말해주긴 하는데....

─강제로 링크 끊은 거다보니 죽은 레드도 있어요

─헐

─확실해질 때까진 쉿

다음 메인 임무는 두 번째 공장 정찰이었기에, 은우는 무기 연구소부터 들렀다. 새로운 무기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신종이 아니었다. 상위 무기에 좀 더 가까운 것이다. 은우가 살 만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상위 무기라고 안 사기엔 사람들이 너무 열렬히 반응하는 것 하나가 껴 있었다. 1렙 노 강화 클리어를 지향하는 은우임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고집부리는 상위 무기.

“쇠지레 좋아하시는 줄 몰랐네요.”

그것은 소위 빠루라 불리는 쇠지렛대였다. 다른 이름으론 쇠지레, 노루발장도리, 배척 정도가 있다.

─킹갓빠루좌

─행성도 부수는 절대무기 강림

─크, 게임사 뭘 좀 아네;;

─아, 고든 선생님...! 당신이 그립읍니다!

은우는 쇠지레를 들고 가볍게 휘둘러 보았다. 적당히 묵직한 게 그립감은 나쁘지 않았다. 길이는 좀 짧지만, 불편할 정도로 짧은 것도 아니다.

다만 대가 가늘어서 둔기로 쓰기도 애매하고 날이 없으니 이기利器는 애초에 아니다. 그럼 끝에 구부러진 곳으로 찍어야 하나?

그는 쇠지렛대가 반겨지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구매했다. 쿼터라이프-리메이크 버전조차도 세대 차이로 알지 못하는 자의 비애였다.

“그럼 이제 바로 가겠습니다.”

아바타 개조나 강화는 필요 없다. 은우는 바로 메인 임무에 돌입했다. 스칼렛은 검사를 받고 있었으므로 이번엔 그 혼자였다.

“인디고B지? 이걸 타고 가면 돼.”

“바이크네요.”

격납고에 갔을 때 그를 기다린 건 산악용 바이크였다. 2인이 아니라 1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이게 더 정찰에 적합해서인지는 알 겨를이 없다. 아마 두 가지 다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은우는 목덜미를 쓸다가 바이크에 올라탔다. 크루 러시 광고 찍을 때 이후론 타 본 적 없어서 그런가, 감회가 새롭다.

“잘 될지 모르겠네요.”

그러고 보니 그 광고는 어떻게 됐을까. 담당자가 광고가 나오기까지 최소 석 달은 걸린다고 했는데.

찍은 지 아직 한 달도 안 흐른 만큼, 광고는 더 기다려야할 성 싶다.

─바이크 탈 줄 아심?

─머야, 바이크 운전도 있네

─균사 생각하면 잘하실 듯

─ㄴㄴ 그거 자동임ㅋ

“균열 사냥꾼 땐 제가 조종한 게 아니라 자동 보정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바이크에 탔다. 친절한 안내 창이 액셀 밟는 법부터 브레이크 밟는 법, 후진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덕분에 은우는 쉬이 액셀을 밟았다. 크루 러시 때와 비슷하지만, 좀 더 비현실적인 감각으로 바이크가 확 나갔다. 레이싱 게임이 아니다 보니 현실성보다는 편리함을 고른 모양이다.

“약간 붕 뜬 느낌이네요.”

몸이 들썩거리기는 한데 딱히 엉덩이가 아프진 않다.

은우는 바이크 기어를 더욱 올리며 박차를 가했다. 무너지거나 여전히 서 있되 녹음으로 뒤덮인 빌딩들이 휙휙 지나갔다.

“대기실 온 기분인데.”

─아, 왜 익숙한가 했더니ㅋㅋㅋㅋㅋㅋ

─세기말인데 좀 근사하다잉

─역시 인간만 사라지면 되는 거임

중간중간 기계장치들이 튀어나오는 건 무시했다. 그것들을 잡아 파밍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갈수록 단단한 외피를 가진 기계장치가 나오는 건 사실이나, 약점을 노리면 기본 무기로도 사살할 수 있으니. 그렇다면 레벨링이나 장비 강화를 위한 노가다를 뛸 이유가 없다.

은우의 바이크가 경사지게 무너진 빌딩 외벽을 쭉 타고 올라가 그 끝에서 추락했다. 시청자들이 비명 지르는 건 무시했다.

뒷바퀴가 먼저 닿고 앞바퀴가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은우는 거기서 속력을 줄이기는커녕 더 붙였다.

추락하자마자 바이크가 부욱 튀어 나가며 장애물을 지나쳤다. 수십 미터 위에서 뛰어내린 모양새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바이크 왜 멀쩡함ㅋㅋㅋ

─여기도 길인게 레전드

─1인칭으로 보다가 식겁해서 튕겨나왔네

─진짜 개쫄았다;;;

“자동차 때 이미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탈것은 안 망가집니다.”

이것도 플레이어를 배려한 편의였다. 이런데 써먹으라고 준 게 아니고 기계장치와의 싸움으로 뚜벅이 되지 말란 의미였겠지만.

그리고 은우의 바이크가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것은 지하까지 통합해 만들어진 거대한 건물이었다. 쇼핑몰을 비롯해 영화관, 기타 오락 시설을 겸하는 종합 시설임이 분명하다.

[목적지 갱신.]

V2053이 붉은 점을 옮겼다. 건물과 바짝 붙은 지점이라 바이크를 끌고 가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닐 것 같다.

그는 그곳에 바이크를 대고 정찰을 위해 안쪽으로 진입했다. 말이 정찰이지, 녀석들의 동태를 확인하는 쪽에 더 가까웠으므로 깊게 들어갈 필요는 없다.

미리 파견되어 있던 R도 건너편 차창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합류하는 것은 임무 내용에 있지 않으므로 접근할 필요는 없지만, 은우는 반사적으로 목례를 했다. 무의식적인 행위였다.

사람들이 길 가다 타인과 눈 마주친 순간, 모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처럼.

“가끔은 사람처럼 대하게 되네요.”

─ㅇㅈㅇㅈ

─무심코 말 걸때도 있잔어~

─그럴때마다 괜히 무서워짐;;

─세상은- 스카이넷이 지배한다!

“뭐, 직접 마주치면 이질감이 듭니다마는.”

그의 손이 인벤토리 속 단검을 잡고 그대로 던졌다. 대각선 뒤쪽에서 접근하던 기계장치의 미간에 단검이 정확히 박혔다.

정작 단검을 던전 본체는 빠르게 장검을 꺼내 들고 기척에 맞춰 검을 휘둘렀다. 첫 기계장치 외 다른 두 마리의 목이 달아났다.

“나중에 인공지능이 더 발달하면 어떻게 될는지.”

「‘글쎄요’ 님이 ‘1,000원’ 투척!

일단 님한테 뒤질듯....」

─인공지능도 켄은 안 건드린다는게 학계의 정설

─쨉도 안 되지;;

“적이 아니라면 굳이 죽이진 않습니다.”

은우의 검이 한차례 더 흔들어졌다. 매복해 있던 기계장치가 또 하나 죽어 나갔다. 깔끔한 검로에 사람들의 반응은 언제나와 같았다.

─굳이 죽이진 않는데 죽이겠죠

─알쥐알쥐

─여윽시 학살좌

─이쯤되면 별명 학살좌로 바꿔야하는 거 아니냐

─? 몰랐음? 구울들 성좌로 개명한지 오래임

─진짜?

─당근 뻥이지ㅋㅋㅋ

─개쉨ㅋㅋ

“아니라니까요.”

은우는 그놈의 오명에 의미 없는 항변을 하며 갱신된 목적지로 움직였다. 목표지는 대형 건물의 무너진 벽을 타고 올라 부서진 통유리 앞에 서는 것이다.

건물의 본래 입구는 무언가로 가득 막혀 있거니와 기계장치가 너무 많다.

그리고 그가 그 구멍 앞에 섰을 때, 컷신이 시작되었다.

“어서 도망쳐!”

[달려!]

인디고B가 있는 위치는 건물의 천장에 가까우니. 그곳에서 내려다본 건물 안은 굉장히 넓은 홀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을 비추고 있었다.

“뭐지……?”

기계장치들이 정체불명의 한 무리를 쫓고 있다. 정체불명의 무리가 품에 무언가를 한 아름 들고 있는 걸 보면 뭘 빼돌리다가 걸린 모양이다.

문제는 그것들의 정체였다. 처음엔 기계장치인 줄 알았는데, 그렇다기엔 기계장치가 쫒는 이유를 모르겠다.

무엇보다 기계장치는 기본적으로 인간형이 대부분일지언정, 저들처럼 옷까지 차려입진 않았다.

그렇다고 인간이라 말하기엔 걸리는 게 있다. 차림새가 너무 추레하고, 채널도 개통이 되어 있지 않았다. 꽉 눌러쓴 후드 안쪽 턱은 인조 가죽도 덮여 있지 않다.

무엇보다 공장 습격을 위해 벼르고 있는 본부에서 저런 소규모 집단을 먼저 투입할 리가 없었다. 실패는 확정이고 애꿎은 경계만 올라갈 게 분명했으므로.

“내가 막을 테니 너흰 도망가!”

[엄버!]

[위험해!]

하나는 완전한 인간의 목소리이나, 나머지는 기계장치 특유의 노이즈 낀 기계음.

대체 정체가 뭘까? 구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혹 함정인 것은 아닌가.

인디고B는 짧게 고민하다가 결국 본부에 보고를 올렸다.

[브라이트Y. 인디고B, 당신은 지금까지 많은 걸 해내셨죠. 저는 당신의 판단을 믿습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순간, 선택지가 떠올랐다. 이건 아임휴먼 때와 비슷했다.

『 ■ 돕는다

❙❘ 함정이라면 그 하나만의 피해로 끝내야 하므로 후발대를 기다려선 안 된다. 또한 만에 하나 저들이 인간이라면, 그 사실 자체만으로 절대 두고 봐선 안 된다.

■ 돕지 않는다

❙❘ 저것은 절대 인간이 아니다. 기계장치일 확률이 농후하며, 그에 따라 저것은 필시 함정일 것이다. 아예 무시함이 옳다.』

─2222222

─111111111

─닥1

─1번이 진엔딩일 것 같긴 한데...

─그래도 2222

시청자들의 의견이 갈렸다. 어차피 주변의 시간은 멈췄으므로 은우는 마음 편히 고민했다.

사실 고민이랄 것도 없었다. 그 혼자만이었다면 그는 절대 돕지 않는다. 함정일 가능성이 너무 짙고, 상황이 너무 안 좋은 탓이다.

저들이 확실한 민간인이었다면 그래, 도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저들의 정체는 확실하지가 않다. 인간이 아니란 이유에서가 아니라, 종족 관계 없이 저들이 안전한 존재인지 아닌지 확인되지 않았기에 꺼리는 것이었다.

그는 이유 없이 타인을 도울 수 있는 호인임과 동시에, 너무나 많은 수라장을 겪어온 의심꾼이니. 의심병 환장에게 저들은 너무 수상한 존재였다.

“투표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이건 게임이고 방송이었으므로 함부로 결정할 수 없었다. 그는 민주주의에 맞는 방식을 채택했다.

─가즈아!!

─이거 무조건 도운다 각임 ㅇㅈ?

─뭐래 인간은 혼자입니다 형님

─절대 2번 해

─111111111111111

은우는 느긋하게 올라가는 표 수를 보며 중간중간 채팅 반응을 읽었다.

“이타적인 분들이 제법 계시네요.”

그렇게 하면 1번이 잠깐 주춤했다가 더욱 치고 올라갔다.

“냉정하신 분들도 많고.”

냉정하다 말하면 2번이 또 우뚝 올라왔다. 1번이 워낙 진엔딩의 냄새를 풍기는지라 압도적인 표 수를 받긴 했지만, 2번도 꽤 많다.

“투표 종료, 돕는 걸로 결정 났습니다.”

그렇게 1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투표가 종료되었다. 역시나 1번 승리였다.

은우의 손이 선택지-‘돕는다’를 눌렀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흘렀다.

“돕겠습니다.”

[브라이트Y, 인디고B의 판단을 지지합니다.]

쫓기는 무리와 쫓는 무리 사이에 인디고B가 끼어들었다.

“미래를 위하여.”

부서진 지붕 새로 흘러드는 햇빛이 헬멧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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