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07화 (107/233)

107화

[수르트는 무스펠하임이라 불리는, 작열하는 대지의 왕입니다. 라그라로크가 일어났을 당시 세상을 불태웠죠. 그런 그가 로키를 자신의 검이라 불렀다니 예삿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로키가 살아남은 이유는 수르트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아니, 아니에요.]

“발칙한 주제에 실력은 있나 보구나. 짐의 권속을 또 쓰러트릴 줄이야. 심지어 강화까지 해 두었건만. 좋다. 너를 칭찬하마. 그리고 네게 시험을 내리지. 짐의 권속을 하나 더 죽인다면 친히 네놈이 모르는 진실을 말해 주마.”

[로키가 라그나로크를 일으킨 후 대부분의 신들은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헬의 도움 끝에 죽은 발두르의 힘을 지상에 내릴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인간의 시대가 열렸죠.]

“로키는 짐의 검이니라. 라그나로크를 불러왔을 당시 헤임달과 같이 죽어 가는 것을 거두었지. 그것이 세상의 멸망을 부르짖는 게 퍽 마음에 들었거든.”

[미미르의 머리는 오딘과 함께 펜리르에게 먹혔습니다. 그렇지만 펜리르의 시신을 거둔 헬이 늑대의 배를 가르니 미미르의 머리가 산 채로 튀어나왔습니다. 산 자는 그녀의 대지에 있어선 안 됐기에 헬은 그 머리를 지상으로 던져 버렸지요. 만약 그 일이 아니었다면 인간은 진즉에 멸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로키에 대해서라. 그래, 로키가 시긴이라는 아내를 맞이하기 전 세 명의 자식을 둔 것을 아느냐? 그것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도? 단지 신들의 적이 될 거란 예언이 있단 이유만으로 장남인 펜리르는 글레이프니르에 묶여 멸망 때까지 속박되었다. 헬은 태어나자마자 니플헤임으로 던져져 반신이 망가졌고, 요르문간드는 바다 깊은 곳에 버려졌지.”

[…그건 어디서 들었나요? 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로키가 거인 앙그르보다를 잡아먹고 낳은 세 자식에 대해 예언이 내려졌지요. 그것들이 신들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그래서 신들은 그들을 경계했습니다. 그렇지만 구원자여, 신들은 그 셋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발두르를 죽인 로키와 다르게.]

“으하하,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로키에 대해 묻는군. 괘씸한 것. 그렇지만 약속을 어길 순 없지. 로키가 발두르를 죽인 건 제 자식의 처우에 대한 복수였다. 만약 거기서 사건이 끝났다면 라그나로크는 오지 않았겠지. 그렇지만 오딘은 보복으로 로키의 아들인 발리를 늑대로 만들어 쌍둥이 동생인 나리를 죽이게 만들었다. 나리의 창자로 로키를 묶기까지 했지. 자, 이래도 이 세상의 멸망이 부당하다 생각하느냐?”

[그 시절의 신들은 분명 어리석고 선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구원자여, 그렇다고 죽음을 택하실 건가요? 신의 잘못에 의해 인간까지 멸망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 아닌가요?]

“인간은 신들의 힘에 의해 태어났고, 그들의 힘으로 번영했다. 그것 하나면 네놈들이 절멸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느냐?”

▣ 107. 당신의 헌신에 감사를

「‘어제밤새보고’ 님이 ‘10,000원’ 투척!

출근한 뒤로 못 봤는데,,,,왜 퇴근길에도 방송이?」

─예,,,,24시간째 방송 중이십니다,,,

「‘이건좀아니다’ 님이 ‘10,000원’ 투척!

자러가면 10만 원」

─좀 주무세요ㅠㅠ밥도 계속 굶으셨잖어ㅠㅠ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님?? 법이나 그런거

─법 그거 통과 못하고 폐기 돼서 뭐

─국회에 뭘 바람ㅉㅉ

은우는 채팅 창을 보며 목덜미를 쓸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시간 감각이 없는 건 아니나 구태여 의식하지 않아 몰랐다.

아무렴 며칠 단위의 작전을 수행할 때 총 시간을 생각하는 건 정신적 피로만 더 불러온다. 차라리 작전에 포함된 각각의 절차를 빠르게 해치우는 게 시간 단축을 도왔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 풀 다이브 캡슐 사용 중이었다. 인간의 3대 욕구인 식욕과 수면욕, 배설욕 중 수면욕을 제외한 2가지 욕구가 채워진 거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의 흐름을 감 잡긴 역시 어렵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밥은 풀 다이브 캡슐이라서 안 챙겨도 됩니다. 걱정과 후원은 감사합니다.”

그는 태연히 응대하며 그의 발아래에 깔린 적을 창으로 찔러 죽였다. 챌린지 때문에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추적자 이벤트다. 3번 이겨 내면 성공이므로 이젠 더 이상 없을 거다.

『챌린지 성공│ 추적자 3회 제거

기술 포인트 +3』

“쓰지도 않는 기술 포인트만 쌓이네요.”

벌써 하루 넘게 방송을 했지만 중간중간 길을 샌 덕에 스토리는 ⅔ 조금 안 되게 진행된 수준이다. 만약 그가 지금껏 마주친 보스격 몬스터들을 한 번의 시도로 잡아 내지 못했다면 그것보다 더 걸렸을 것이다.

─아니 그러다 쓰러지신다니까요

─밥이 문제가 아니라 잠이 문젠데

─풀다이브 캡슐은 대체 어디서 얻은 거임

─다박 스트리머 안 챙기냐ㅡㅡ

─규제 해결됨?

─방송시간 규제 진짜 제정해야하는 거 아니냐

글쎄. 슬슬 피곤하긴 하지만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닌데.

시청자와 소통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체력을 잡아먹는 일이나, 그럼에도 아직은 문제없다.

“애초에 이 캡슐도 다이아박스에서 지원한 거라.”

─팀장님 나와

─박 팀장님 손들어

─다박 유죄

은우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웃음소리를 흘렸다.

“시범 도입인데 반응이 거세네요. 이러면 상용화 안 되려나.”

사람들이 바로 반응을 달리했다.

“일단 이것부터 하죠.”

─풀다이브가 삼시 세끼를 챙겨주는 거지 밤새라고 있는 게 아닐 텐데,,,,

─오히려 켄 님 때문에 막히는 거 아니냐

「‘????’ 님이 ‘1,000원’ 투척!

저것 때문에 게임 중독자들이 늘잖아욧! 금지해야해욧!」

“아, 저 때문에 막히진 않을 겁니다. 애초에 사용 후기 받으려고 지원해 준 건데요.”

─진짜?

─ㄹㅇ?

─사용후기: 밤새기 좋다

─편하긴 하겠다

“아마도 그렇겠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확신이 아니잖아ㅋㅋㅋㅋ

─왜 당당하게 말한 거야ㅋㅋㅋㅋㅋ

은우는 어깨를 으쓱이곤 멀리 보이는 동굴을 시선에 담았다. 히든 엔딩에 가장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는 숨겨진 동굴이다.

“앞에 뭐가 지키고 있는 걸 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숨겨진 동굴은 달리 퀘스트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NPC와의 대화와 책에서 읽은 정보를 토대로 위치를 특정, 그것으로 찾아야 했다.

물론 그가 본 영상 중 하나에서 이곳이 나오긴 했다. 그러나 그는 추측이 아니라 지나가다 얻어걸린 거였다.

“얻어걸렸네요.”

그에 반해, 그는 추측으로 찾아냈다. 확신하는 건 그 영상 때문이 맞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가 삐뚜름하게 웃자, 시청자들이 어이없다는 듯 ‘ㅋㅋㅋ’만 채팅 창 위로 올렸다.

참고로 시청자들은 은우의 목적을 대충이나마 짐작해 낸 상태다.

아무렴 이렇게 긴 게임의 경우 켠왕이라면 보통 메인만 깨는 법이다. 그런데 은우는 중간에 계속 새질 않나, 퀘스트 목록에 없는 숨겨진 동굴을 찾질 않나, 수집품을 아득바득 모으기까지 했다. 의심하기 딱 좋은 행동거지였다.

─솔직히 말해요 히든엔딩 찾는거지

─ㅋㅋㅋㅋㅋㅋ와, 진짜 스트리머다운 방식이다,,,

─이대로 히든엔딩 찾으면 레전드

「‘내가생각해봤는데’ 님이 ‘1,000원’ 투척!

이분 진짜 성격 나쁜 것 같아」

그들은 교묘하게 돌려 말했다. 보복, 복수같이 해당 게임 제작사가 불붙인 논란을 연상케 하는 단어를 넣으면 채팅이 삭제당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에선 대놓고 떠들고 있을 테다.

“제가 뭘 했다고 성격 나쁘단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까?”

은우는 그것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안 했다. 티가 다 나는 상황에서 부정해 봤자 구질구질할 뿐이다. 긍정은 대놓고 저격하는 게 되니까 못 하지만.

“물론 발견하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습니다만, 게이머로서 그런 영예는 영광 아닙니까.”

─ㅋㅋㅋㅋㅋ고건 고렇지

─핑계 완벽

─벌써 히든엔딩 나오냐고 제작진 똥줄 탈 각

─캬, 히든엔딩 사냥꾼이다 이거야

그는 목덜미를 쓸며 활을 들었다. 목표는 동굴 입구를 막고 있는 기계룡, 니드호그다.

* * *

“용치곤 약했네요.”

우연하게 이곳을 발견했던 영상 주인은 니드호그의 이동 도시락이 되었다. 그러나 은우에겐 니드호그가 도시락이었다.

“니드호그란 이름을 가지고 있을 정도면 좀 더 강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 거인보다 패턴이 더 지랄맞았는데요

─진짜 날아오르는 거 개극혐

─하,,,,저거 어케 잡냐 진짜

─날아서 까다로운 놈을 위에서 탑승한 채로 잡으셨으니 쉽죠,,,,

─잡으려면 템 강화 풀로 해야할 듯

─켄 님 기준이 넘 높아

안다, 그의 기준이 너무 높다는 것. 그러나 최소한의 즐거움조차 느끼지 못하면 그건 너무 슬프지 않은가.

그는 끝없는 갈증을 용의 핏물로 달랬다. 게임을 향한 야속함은 덤이었다.

“안쪽엔 아마 샘이 있겠죠. 미미르도.”

신화 속 니드호그는 세계수의 뿌리를 갉아먹는 독룡임과 동시에 샘을 수호하는 지킴이다. 하물며 미미르는 기계로 재탄생한 니드호그를 타고 샘의 수맥을 끊으러 갔노라 첫 번째 어머니가 말하지 않았나.

이 안에 있는 건 미미르와 지혜의 샘이 분명했다.

─미미르가 살아있을까요?

─저안에 미미르 있나

─템만 있으면 이제 레전드

“글쎄요. 전 죽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은우는 좁은 바위 틈새를 지나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멀리서 하얗게 빛나는 구멍이 보였다.

시청자들의 채팅이 한차례 변화를 일으킨 것도 그때였다.

「‘나지금’ 님이 ‘1,000원’ 투척!

외국영상까지 뒤져보고 왔는데, 여기 진입한 사람 지금 별로 없는데?」

─?

─??

─니그호드까진 찾아낸 사람 많은데 다들 피지컬 땜시 막혀서 늦어진듯

「‘아미친진짜’ 님이 ‘10,000원’ 투척!

히든엔딩 보는 거 아니냐고ㅋㅋㅋ」

─무쳤다 무쳤어

「‘그걸왜말하냐’ 님이 ‘1,000원’ 투척!

이젠 빼도박도 못하게 켠왕이잖아ㅠ」

은우는 채팅 창을 본 순간, 걸음을 좀 더 빨리했다. 영상을 올리지 않고 묵묵히 하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므로, 저들만 선두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더 빨라야 했다.

“보고 오셨다 해서 스포하시면 안 됩니다.”

─스포 절대 안 되지

─어제도 치킨 먹어서 오늘은 참으려했는데,,,,안 되겠다 시키러 감

─내 일도 아닌데 왤케 심장이 두근두근거리냐ㅠㅠ

─위얼휴먼 때보다 더 쫄린다

목표가 확정되다시피 하니 사람들도 덩달아 은우의 급박함에 휘말렸다. 외려 그가 평온하다 보니 사람들의 조바심만 유달리 튀어 보이기도 했다.

그사이 구멍의 빛이 강해졌다. 그러나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서면 서서히 건너편의 풍경이 비쳐졌다.

듬성듬성 난 천장의 구멍을 타고 내려오는 햇살과 바싹 말라 죽은 고목의 뿌리. 그리고 그 가운데 뿌리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지며 오목하게 난 구멍.

그건 모든 게 말라 죽었음에도 제법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쓸쓸한 기이였다.

“디자인은 잘했네요.”

「‘켄속마음’ 님이 ‘1,000원’ 투척!

디자인만 잘했네요」

─??: 게임 난이도는 좟같이 만들었네

─??: 홍보도 줫같이 하네

─그 얘기하면 밴임

─매니저님!! 칼 준비!!

─(호다닥) 죄삼다!! 이번 한번만!! 제 집에 토끼같은 제가!!

그는 천천히 구멍으로 다가갔다. 그 오목한 구덩이는 제법 커서 제법 가까이 가야만 밑바닥이 보였다.

“오, 불청객이 왔군. 샘물을 구하러 왔나 보지?”

구덩이의 밑바닥에선 머리통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떠드는 중이었다.

수염이 목이 잘린 지점에 맞춰 싹뚝 깎여 나갔고, 피골은 상접해 있다. 창백하다 못해 파르스름한 기까지 도는 피부는 주름으로 자글자글했다. 서양인 고유의 움푹 팬 눈두덩이가 그의 눈을 그림자로 가린 탓에 음산한 느낌도 들었다.

징그러운 거나 공포에 면역이 없다면 제법 혐오스러울 것이다.

“그렇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어. 이 수맥은 끊긴 지 오래거든.”

─ㅅㅂ 깜짝아

─진짜 모가지만 남았냐고

─워와ㅏㅏㅏㅏㅏ

─난 또 켄이 대가리만 딴 줄

“지혜를 구하나? 그렇지만 난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을 거야. 오랫동안 이곳에 있다 보니 생각한 건데, 멸망도 생각보단 나쁘지 않은 것 같거든.”

전승대로 목이 잘린 미미르는 밑바닥에서 주절주절 떠들었다. 컷신이었기에 캐릭터는 알아서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렇지만 미미르는 협조적이지 않았다. 과거 인간을 도왔다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야. 영원한 안식. 내가 가진 지혜조차 가져올 수 없는 것.”

그렇게 좀 떠들다가 미미르가 불쑥 선언했다. 세계가 정지했다.

『⦁미미르를 설득하기

⦁미미르를 협박하기

⦁미미르의 소원 들어주기』

이건 정보에 없다. 그러니 온전히 그가 생각해서 골라야 한다. 은우의 손이 목덜미를 쓸었다.

“하긴 오랫동안 이런 데 혼자 있다면, 그것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있다면 미칠 법도 하겠습니다.”

─불쌍하다ㅠㅠㅠ

─와,,,진짜 죽는게 더 낫겠다

─지혜도 안식을 가져올 수 없다,,,띵언

─근데 왜 안 죽는 거임?

─머리가 잘려도 안 죽었는데 뭐

“그보다 뭘 골라야 할까요.”

중얼거리는 말에 시청자들이 하나둘 의견을 꺼냈다. 대체로 도움이 안 됐지만, 가끔 날카로운 견해도 있었다. 은우는 목덜미를 쓸던 손에 손톱을 세웠다.

“…미미르는 그 누구보다 지혜로운 자입니다. 인간의 설득이 먹힐 리 없겠죠.”

협박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협박은 더욱 가능성이 없었다. 주인공이 로키를 막지 못하면 세계는 불타오를 거고, 미미르는 그때 죽을 수 있을 테니까. 주인공이 세계를 구하고 돌아오면 협박이 먹힐 테지만, 그 전까진 아닐 확률이 크다.

“3번으로 가겠습니다.”

은우는 짧은 숙고 끝에 결정을 내렸다. 이 선택이 맞다면… 아니, 맞을 거다. 세계가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오, 설마 날 죽여 줄 셈인가?”

“…저는 어렸을 때부터 미미르 님에 대해 듣고 자랐습니다. 당신의 지혜가 세상을 구했고, 우리 시어를 존속하게 만들었음을 배웠지요. 더 자세한 진실은 여행을 떠나고 나서 알았지만요.”

구덩이 아래로 발을 내디딘 캐릭터가 살살 내려갔다. 세월에 의해 부스러진 가루들이 그를 미끄러트렸다. 다행히 밑바닥이 넓어서 미미르에게까지 닿진 않았다.

“음, 그러면 보통 못 죽이지 않아? 아, 내가 죽기 싫다는 건 아니야.”

미미르의 지적은 타당했다. 캐릭터가 슬쩍 웃었다.

“네, 보통은 그럴 것입니다. 제가 등진 부족원이 이곳에 있다면 신성 모독이라고 말하실지도 모르죠.”

캐릭터의 걸음이 미미르의 앞에 다다랐다.

“그렇지만 할 수 있습니다. 네, 저는 할 수 있습니다.”

무릎이 꿇어졌다. 두 손은 미미르의 머리를 들어 올려 구덩이 밖으로 나갔다. 아니, 그것뿐만 아니라 샘 바깥으로 아예 나가 버렸다.

햇살이 흐드러진 숲이, 푸르른 창공이 찬란하게 빛났다.

“아…….”

미미르의 입술 사이로 희미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가 어떤 표정인지는 볼 수 없다. 은우뿐 아니라 시청자조차도 캐릭터의 시점에 갇혔으므로.

그러나 때론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게 있는 법이었다.

“당신이 이 풍경을 물려준 시점에서, 우리는 더 이상 미미르 님께 그 어떤 것도 요구할 수 없는 걸요.”

캐릭터는 천천히 주변을 걷다가 양지바른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평평한 바위 위에 미미르의 머리가 얹어졌다. 캐릭터와 시선을 맞출 수 있도록 얼굴이 이젠 정면이다.

“당신의 헌신에 감사를.”

캐릭터는 창을 역으로 들었다. 정수리부터 턱까지 단번에 관통할 수 있도록.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그리고 미미르가 입을 열었다.

“하문하세요.”

“많은 것을 보았나?”

“음, 아직 많이 본 것 같진 않습니다.”

캐릭터는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었다.

“그래서 로키를 막은 후 좀 더 세상을 둘러보려 합니다. 미미르 님께서 저희에게 내린 이름처럼.”

그건 은우가 보기에도 제법 사람 마음을 뒤흔드는 구석이 있었다.

미미르의 뺨을 타고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헬을 찾아. 그리고 발리의 위치를 알려 달라고 그녀를 설득해.”

“예?”

“그게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이야.”

캐릭터는 잠깐 당황했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당신에게 안식이 내리기를.”

창이 미미르의 두개골을 깨고 뇌를 관통했다. 그 순간 시점은 3인칭, 그것도 먼 곳에서의 시점으로 변했기에 잔인함보다는 숭고함이 부각되었다.

컷신이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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