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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14화 (114/233)

114화

“이거, 왜 이런 식인가 했더니… 자주 확인해 봐야겠네요.”

─제때제때 울리는 시스템이 아닌가봄ㅋㅋㅋㅋ

─킹직히 한 번에 주면 다 못 받아먹잖아

─아 팩트 아파요

─울 옵빠는 아니거든요? 다 먹거든요?

─구울왕이라서 인간도 먹음

“안 먹습니다.”

은우는 지도를 켜 기생이 살해당했다던 거리를 눌렀다. 아까 와 봤던 거리가 시간대만 바뀌어 모습을 드러냈다.

딸랑.

“이곳에 뭔가 있긴 한가 봅니다.”

그렇지만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없나? 은우는 손쉽게 다른 그림 찾기를 해냈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바닥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이거겠죠?”

그는 그것을 눌렀다. 컷신 비슷한 것이 시작되었다.

『유랑화가: 괴이는 되지 못하셨나 보오. 그렇지만 원은 남았구려.』

일러스트 속 화가가 바닥에 납작 엎드리더니 붓과 종이를 들었다.

『유랑화가: 자, 그대의 죽음을 알려 주시게.』

화가는 눈을 감고 붓질을 했다. 붓질에서 탄생되는 그림이 일러스트 전체로 화하며 당시 상황을 비추기 시작했다. 굉장히 사실적인 그림이었다.

─저 당시 기법이 아닌데ㅋ

─저게 어딜봐서 동양풍 그림임ㅋㅋㅋ

─유화 치덕치덕한 것 같은데

“뭐… 동양풍이면 단서 얻기가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려워서 그런 걸지도 모르죠.”

동양화는 추상적이니까. 아니더라도 그가 보기엔─교과서에서 봤다─실제와 좀 거리감이 있었다.

그때 화면에 터치 버튼이 떠올랐다. 미니 게임이다.

은우는 선이 줄어드는 걸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동양화는 너무 과장되거나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제가 아는 동양풍 그림은 묵으로… 어… 휘적휘적 저은 것밖에 없어서.”

─휘적휘적 미친ㅋㅋㅋㅋㅋ

─수묵기법이 좀 글킨 한데ㅋㅋㅋㅋㅋㅋ

─실사체랑은 좀 거리가 있긴 하지

─예술이랑 진짜 담쌓았냐ㅋㅋㅋㅋ

“못 그리진 않습니다. 예술적 감각이 없는 거지.”

그가 사지에 뛰어들 때 예술이 별 도움이 안 되어서인 건지, 아니면 그냥 타고나지 못한 건지 그림과 조각은 지금도 감상할 자신이 없다. 특히 기하학적이거나 추상적이거나 실제와 거리가 멀수록 무슨 의민지 몰랐다.

─이과져ㅋㅋㅋ

─님 이과지ㅋㅋㅋ

─이와중에 그림 못 그리진 않는다고 깨알 자랑하는 거 실화냐

─존나 커여워ㅠㅠㅠ

터치에 성공하자 그림 진행이 이어졌다. 은우는 유화를 치덕치덕 발라 그리는 듯한 그림을 가만히 보며 말했다.

“네. 이과입니다.”

─역시 이과ㅋㅋㅋ

─체육쪽 아녔어???

─수학 잘하나봐,,,,

─킹직히 체육쪽인줄;;

─이과라고 수학 잘할 거라 생각하는 놈들 문과임 아무튼 문과임

─예체능일 수도 있다

사회나 역사보단 과학과 수학이 더 쉬워 보였다. 그게 아니란 건 기벡(기하와 벡터)을 만난 후였지만.

기벡의 악몽에 은우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그 전까지는 그래도 잘 쫓아갈 수 있었는데, 기벡을 만나고 나선 도통 뭔 소린지 모르겠더라. 아니, 사실 함수도…….

『염사*(1)를 획득했습니다.

(염사念寫: 상상만으로 풍경이나 인물의 상을 찍어 내는 심령 현상)』

『유랑화가는 괴이뿐 아니라 장소에 남아 있는 원이나 한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방울을 통해 원이나 한을 찾아 단서를 알아내세요.』

짤막한 설명과 함께 단서가 화면에 떠올랐다. 은우는 모니터 화면에 떠오른 그림을 보며 목덜미를 쓸었다. 공부 안 하게 돼서 정말 다행이다.

“어둑어둑한 걸 보니 화연이 살해당한 건 밤이네요.”

검은 하늘에 온통 어두운 색감뿐인 그림은 그 흔한 불빛도 없었다. 아무렴 옛 과거가 배경이었다. 지금처럼 가로등도 없고 집집마다 불을 켜고 살지도 않을 거다.

유일한 광원은 구름에 가려져 흐릿한 달뿐이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데… 일단 시신부터 볼까요.”

화연의 시신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길 한가운데 덩그러니 쓰러져 있으니 어려울 리가 없다.

“의원의 말대로 배가 하늘을 보게 쓰러졌네요. 그렇지만 자연적인 자세는 아니고, 엎어졌던 걸 타인이 돌린 느낌에 가까워 보입니다.”

은우는 달빛 때문에 빛을 희게 머금은 핏물을 살폈다.

“피는 대충 이만큼.”

마우스가 피 웅덩이의 가장자리를 따라 그렸다.

“범인이 화연을 찌르고 몸을 수색한 후 도망치는 동안 이 정도의 피가 흘렀다면… 적어도 일곱 번은 넘게 찌른 것 같은데.”

─아니 그걸 왜 아는 거야

─투디겜이 그정도로 고증을 철저히 했을까...?

─Hoxy...?

─이분은 잊을만 하면 떡밥을 주시네

─(금지된 채팅입니다)

─아 맞다니까ㅡㅡ

“…칼은 여기에 버려져 있군요.”

은우는 말을 돌렸다. 명백한 화제 회피에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은우는 외면했다.

“달빛 덕분에 칼은 잘 보이네요. 확실히 도축용 칼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긴 칼이 찌르기도 쉽고 살 가르기도 좋죠.”

그렇지만 피범벅이다.

“확실히 백정은 범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인간과 돼지, 소는 물론 다르다. 장기의 형태도 다르고 골격의 형상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백정같이 뼈와 살을 분리하는 일을 오래 하다 보면, 형태 차이가 심해도 본능적으로 어디에 뼈가 있고 어디에 살이 있을지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몸은 자신의 것을 더듬어 대충 살필 수도 있지 않나. 밤이고 기습이니 처음 찌르는 것은 실수할 수 있어도 두 번째부터는 얼추 감이 잡힐 터다.

“이렇게 피범벅이 될 정도로 찌를 이유가 없죠. 이 정도면 자기 손과 옷에도 피가 튈 텐데. 백정이었다면 이것보단 피가 덜 튀게 공격했을 겁니다.”

─왜 본인 얘기하는 것 같지,,,,ㅎㅎ,,,

─왕이시여!!

─아니면 켄 부검 일 배워본 거 아님?

─점점 오리무중이 되어가는 켄 현실직업

─ㄴㄴ데이브맄에서 이미 끝남

─?? 밝혀졌음??

─신임ㅎ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상처가 보이지 않으니 확신하진 못하지만요.”

상처가 보였다면 그 상처가 가로인지 세로인지 만으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칼을 세로로 찌르는데, 숙련자는 갈비뼈 새로 칼이 잘 들어가도록 가로로 쑤시니까.

좀 더 나아간다면 허리 어디쯤에 위치한 것 정도로도 범인의 신장을 추측할 수 있다. 비록 15세 추리 게임이라 직접적으로 상처를 보여 주진 않겠지만 말이다.

─킹직히 고백해봐요 님 사람 죽여봤지

─중범죄자를 다박이 받아들였겠음?

─그럼 합법적 살인,,,?

─그런게 존재하냐고ㅋㅋㅋㅋ

─우리나란 사형도 금지잔아ㅋㅋㅋ

사람들의 물음에 은우는 딴청을 피웠다. 살인자는 맞는데 그건 전생에서 한 거니까 참작되지 않을까? 아닌가?

“옷은… 달빛을 반사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군요. 의원의 말대로라면 대충 수수한 평민들 옷을 입고 있었겠죠.”

그는 대신 매의 눈으로 나머지를 살폈다.

“이쪽, 여기 보이십니까?”

은우는 마우스로 담벼락 한쪽을 뱅글뱅글 가리켰다. 코너를 막 돌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 치렁치렁한 옷자락이 달빛을 반사함으로써 실루엣을 확실히 하지 않았다면 은우로서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 인물들은 옷이 전부 치렁치렁해서 이것만으론 정체를 추측하기 어렵네요. 그래도 범인인 건 확실해 보입니다.”

그는 그나마 실루엣이 명확한 범인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게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고, 현실이 아니라 게임이라서 방금 알아챈 부분이 단서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잘 모르겠다.

“…혹시 여기서 더 단서가 보이시는 분 계십니까?”

─아녀

─켄이 찾기 전엔 단선지도 몰랐다

─ㅇㅈ,,,,

─걍 누가 죽었네,,,,이정도,,,ㅎ

은우는 매끄러운 헬멧을 더듬다가 일단 그 부분은 보류해 두기로 했다. 게임이니까 선입견은 내려 두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이건 단서니까 단서 창 가면 언제든 볼 수 있겠죠. 일단 닫도록 하겠습니다.”

은우는 창을 껐다. 그러자 그림이 사라지고 본래 거리가 보였다. 범인의 실루엣과 길 한가운데의 시체 대신 주인공이 서 있는 게 다르다. 아무래도 그때와 지금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모양이다.

─켄님 일지도 보여주세요

─일지

─일지 궁금해여

“아, 보여 드릴까요.”

그는 일지를 켰다. 자주 켰던 마을 지도 빼고 인물 칸을 누르면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원하는 인물의 이름을 누르면 그에 대한 평가가 나온다.

“캐릭터 본인이 내린 평가, 타인이 내린 평가, 관계된 인물 등을 알려 주네요. 마지막엔 메모장도 지원이 됩니다. 본인이 추측하거나 알아낸 게 있는데 게임에선 추가해 주지 않을 때 쓰면 되는 기능 같습니다.”

─와 개쩐다

─디테일 오지네;;

─좋다

─근데 저러면 멍청이들은 더 못한다?

─특: 본인이야기임

“다음으로 단서 칸에는… 아직 방금 그 사진밖에 없네요. 그렇다면 소문 칸은…….”

은우는 소문 칸을 켰다가 잠깐 말을 잃었다. 주우욱 이어진 목록들은 사람을 기함하게 만들거나 잠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좋다.

“지금까지 대화한 모든 스크립트가 기록되어 있군요. 정리는 잘되어 있네요.”

─미쳤누;;

─잠깐 저러면 단서 찾으려고 저거 다 뒤질 수도 있단 소리네

─너무 빡신대

“지금은 시간대에 따라 분류되어 있지만, 본인이 원하면 장소나 인물에 따라 분류도 가능한 것 같습니다. 원하는 걸 찾는 건 어렵지 않겠네요.”

은우는 목록 중 하나를 눌러 보았다. 제목 아래로 칸이 생겨나더니 그때 나눴던 대화가 주욱 나열되었다.

─주인공은 저걸 다 기억한 거임??

─기록했다 하지 않았나

─기록인듯

─손 ㅈㄴ 빠르다ㅋㅋ

그렇지만 기록이라도 대단하다. 추리를 워낙 많이 해 와서 이런 게 습관이라도 된 걸까. 은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전부 관찰은 끝났으니 그럼 가 볼까요.”

주막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114. 상당히 의심스럽네요

주막으로 돌아가니 휴식을 취할까 하는 독백과 뜨끈뜨끈한 국밥을 먹는 일러스트가 떠올랐다. 닭 우는 소리와 함께 검어졌던 화면이 다시 밝아졌다.

“두 번째 날이네요. 어떤 구조로 날이 넘어가는 건진 아직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단서 다 찾아야만 넘어가는 거 아닐까요?

─찾을 수 있는 거 전부 찾아야 넘어간다든가?

─중요 단서 확인하면,,?

“글쎄요, 아마 그럴 것 같긴 하네요.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은우는 거기까지 말한 후, 숙제 방송을 내줄 때 제작사에서 신신당부했던 부분을 떠올렸다.

“주인공은 어제랑 옷이 같고.”

─단벌신사ㅋ

─투디겜이 그렇지 뭐ㅋㅋㅋ

─쓰리디겜도 옷 잘 안 갈아입히잖어

─그건 글치

─일러스트 값 때문에라도 안 갈아입힘

“뭐, 맞는 말입니다. 일러스트 값이 얼만데 옷을 갈아입히겠습니까.”

은우는 그러면서 설정을 켰다.

“그렇지만 이 게임은 다릅니다.”

─킁킁 이것은 숙제 발언의 냄새

─ㅋㅋㅋㅋㅋㅋㅋ

─설마??

─옷갈아입히기 갓겜?

“숙제 내주시면서 당부한 건 맞는데, 솔직히 듣고 나서 좀 놀랐습니다.”

『게임 저장하고 계속하기

게임 저장하고 종료하기 ⋖ 』

“이 게임, 옷 바꿔 입는 게 가능합니다.”

은우는 두 번째 선택을 눌렀다. 화면이 까맣게 물들더니 시작 메인 화면으로 돌아왔다.

“상점에 들어가면 이렇게… 주인공 옷을 많이 팝니다. 머리색도 바꾸는 게 가능합니다.”

─헐 갓겜

─근데 유료잖아ㅋㅋㅋㅋ

─가격은 좀 싸다

─비싼 거 아님?

─적용되는거에 따라 싸거나 비쌈

“해당 효과는 게임 내 대사 창과 걸어 다닐 때 쓰이는 삼등신 캐릭터에도 적용됩니다. 이벤트 신이야 어쩔 수 없이 기본 디자인으로만 진행됩니다만.”

─아 그럼 킹정이지ㅋㅋ

─오졌다;;

─디자인들 다 주옥같네

─지갑전사 각인가

“받은 게 하나 있으니 그걸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은우는 잠시 뒤로 가기를 눌러 환경 설정을 눌렀다. 잘 찾아보면 거기에 ‘코드 입력하기’가 있다.

“코드 입력해야 해서 잠깐 프라이버시 모드로 돌리겠습니다. 화면 검어질 거니까 놀라지 마세요. 3, 2, 1.”

방송에 송출되는 화면이 검어졌다. 은우는 재빨리 코드 입력 창에 코드를 입력했다.

CNFL-RPDLA-EKTLS-DKSGO.

금방 인증이 완료되었다.

“선물 왔네요.”

─ㄲㅂ

─아 쫌 보여주지

─우리도 공유해줘요

“공유하면 저 혼납니다.”

─^^7

─^^7

─혼난다고 하는 거 넘 귀엽다ㅋㅋ

─^^7

─펜리르도 잡은 양반이 혼나는 거냐고ㅋㅋㅋ

─역시 물주가 최강

다시 상점에 들어가니 방금 전만 해도 유료였던 의상 하나가 구매한 상태로 변해 있다. 기본 옷처럼 한복은 맞는데, 검정색에 빨간색 테두리가 들어가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옷이다. 하물며 전 옷이 수수했다면 이것은 비단과 노리개 같은 장식이 들어가 엄청 화려했다.

은우는 그것 옆에 있는 ‘착용하기’ 버튼을 눌렀다.

“자, 다시 본게임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저장하고 종료했던 부분부터 다시 이어졌다.

“단벌 신사 신세 탈출이네요.”

캐릭터의 옷은 정말로 바뀐 채였다.

“기본 옷도 괜찮았는데, 이것도 굉장히 예쁘네요.”

─ㅇㅈㅇㅈ....

─제작사가 장사할 줄 아네

─홍보는 일케 하는 거지

─어떤 비수가 벌써 실검에 올렸냐?

─ㅇㄴ,,,,

“이제 본격적으로 이틀 차 진행하겠습니다.”

은우는 주막 마당에 있는 주막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주막 주인: 오늘도 나가시남?』

『유랑화가: 일거리를 찾아야 하니까요.』

『주막 주인: 아차차, 내가 어제 떠올린 게 있수다. 화공 양반이 좋아하는 그 주제에 대한 거요.』

『유랑화가: 이렇게 감사할 때가. 그것이 무엇입니까?』

『주막 주인: 그 기생이 죽기 며칠 전에 까아만 옷을 입은 남자가 주막에 온 적 있소. 어디 군 출신이 아닌가 싶은 옷차림이라 유독 기억에 남았지.』

『유랑화가: 그리고요?』

『주막 주인: 기방이 어디 있느냐 내게 묻지 뭐요? 나는 답해 주었고. 그게 다요. 그 남자는 그날 하루를 빼고 주막에 온 적이 없수다.』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 있는 주제가 새로 생겼네요. 근데 까만 옷이라…….”

대장장이가 봤던 그 존재일까? 그렇지만 백정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던 범인일지도 모르지. 은우는 아직 좁혀지지 않는 답에 추측을 좀 더 미루기로 했다.

“일단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듣도록 하죠.”

『주막 주인: 내가 무슨 일로 젊은 처녀나 기생이 가는 도자전에 들르겠수.』

『주막 주인: 의전주는 우리 집 단골이우. 전을 그리 좋아하지.』

『주막 주인: 교서관주? 하, 그 미친 영감탱이한테도 가 본 거요? 욕 좀 보셨겠구려.』

『주막 주인: 하여간 그 영감은 대화 나눌 필요가 없수다. 저는 글 읽을 줄 안다고 사람을 비웃고나 다니지. 그 작자는 제가 읽는 글은 저어기 높으신 분들만 읽는 글이고, 기생이 읽는 글은 저 저잣거리에 떠도는 음담패설이라 말하는 자요.』

『주막 주인: 참참, 백정이 정말 범인이 아니라면 화연, 고년을 죽인 건 그 양반일지도 모르오. 왜, 기생들이 정조를 얼마나 잘 지키는지 알면서도 예쁘단 이유로 헤벌레 하잖수? 혹시라도 결혼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근데 그 양반은 그러지도 못하오. 사내 구실을 못 하거든. 그것 때문에 더 패악질하는 것도 있소.』

『주막 주인: 마침 그 양반도 기생 년이 돌아다니다 살 맞기 전에 밤에 돌아다닌단 이야기가 있었소. 수상하지 않수?』

“…교서관주는 평이 정말 안 좋군요.”

심지어 사내 구실을 못 한다는 건…….

은우는 말뜻을 파악했지만, 교서관주를 위해 입 다물어 주기로 했다. 사실 배려라기보단 그런 늙은이 이야기를 꺼내서 본인 기분을 망칠 필요가 없다 생각한 쪽에 가깝다.

“수상하기도 수상하고.”

그렇지만 이렇게 대놓고 수상해서 오히려 범인 같진 않았다.

“그보다 승혜전주는 정말 발이 넓네요. 주막 주인도 알고 있을 정도면.”

─짚신 팔아서 그런 듯

─ㅇㅇ

─핵인싸 승혜전주

─다들 짚신 신으니까요

“하긴, 짚신은 누구나 신으니.”

승혜繩鞋를 파는 이가 소문에 빠삭한 건 어쩔 수 없다.

은우는 다른 인간들의 평을 전부 들은 후 주막을 나왔다.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므로 지금 해야 할 건 탐문 조사밖에 없다.

그는 대장간을 가장 먼저 들르고 백정의 불타 버린 집까지 갔다 온 후, 도자전에 들렀다.

『도자전주: 아, 손님. 역시 다시 오셨군요.』

『유랑화가: 어째 저를 기다리신 듯 보입니다만…….』

『도자전주: 맞습니다. 어제 가시고 나서 떠오른 게 있거든요.』

그렇게 말을 시작한 도자전주는 새로운 인물을 알려 주었다. 어제 승혜전주가 스쳐 지나가듯 언급했던 이름 높은 학자 이야기였다.

『도자전주: 목석으로 유명한 양반이라 화연에게 고백했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 못 믿은 이들이 많습니다. 흐지부지되기도 했고요.』

“학자라면 대장장이가 봤다고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ㅇㅇ

─그랬어요

─헐 그럼?

“흐음.”

『도자전주: 그렇지만 요 근래 밤마실을 자주 다니는 게 보여서 영 아닌 것 같지도 않습디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손님은 숨겨진 이야기를 좋아하시니 얘기했습니다.』

『유랑화가: 아주…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혹시 그분의 거처가……?』

『도자전주: 관아로 가는 길에 있을 겁니다.』

새롭다 못해 조금 의심 가는 인물과 대화가 가능해진 것 같다. 은우는 물어볼 건 다 물어본 후 도자전을 나왔다.

“바로 앞에 있는 승혜전주까지만 말 걸어 보고 바로 학자에게 가 보도록 하죠.”

은우는 좌판에 짚신을 널어 둔 승혜전주에게 말을 걸었다.

『승혜전주: 화공 나리! 다시 올 줄 알았어요!』

『유랑화가: 제 동전을 반기신 거라면 더는 없습니다만…….』

『승혜전주: 아이, 참. 동전도 반기지만 이번에는 아니라고요. 기생이 죽은 거에 대해 조사하시는 거 맞죠? 그렇지만 기방에 들어가기 어려우셨을 테고.』

『유랑화가: 덕분에 엉덩이가 아리지 뭡니까.』

『승혜전주: 헤헤, 그러면 어서 약당으로 가 보세요! 기방에서 쓰는 심부름꾼이 아까 약당으로 가는 걸 봤거든요.』

『유랑화가: 이런, 어서 가 봐야겠군요.』

『승혜전주: 뭐 알아내시면 저도 알려 주기입니다!』

대화가 종료됐다. 물론 여기서 다시 말 걸면 물어볼 수 있는 선택지를 주며 조사를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을 테지.

“다 물어보고 가죠.”

─ㅋㅋㅋㅋㅋㅋ

─절대 못참지ㅋㅋㅋ

─동선손실 못 본다 이거야

─효율 챙겨ㅋㅋㅋ

이거 물어보고 간다고 NPC가 도망칠 리도 없으니, 은우는 그냥 한 번에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얻은 정보는 어떤 귀한 정부 쪽 사람이 곧 마을에 들를지도 모른다는 소문 하나였다.

* * *

『심부름꾼: 예? 기방 안쪽 이야기요?』

심부름꾼은 순박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물론 그 외형에 오히려 긴장하거나 의심하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잘생겨서 좋다는 평이 컸지만.

『심부름꾼: 으음… 저는 별로 아는 게 없어요. 저는 주방이나 창고만 오가는 짐꾼이라. 아, 화공이시죠? 그러면 알 만한 사람을 소개해 드릴 순 있어요.』

『유랑화가: 정말입니까?』

『심부름꾼: 물론이죠.』

일러스트 속에서 유랑화가가 빙긋 웃으며 동전 몇 닢을 꺼내 들었다.

“역시 정보는 돈으로 사는 거죠.”

─여윽시 세상은,,,

─돈이 최고지

─심부름꾼 웃는 거 봐ㅋㅋ

─상쾌 그 자체ㅋㅋ

─사이다 광고 하냐?ㅋㅋㅋ

돈푼을 챙긴 심부름꾼이 씨익 웃으며 내일 기방 쪽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다. 보통은 시간대까지 언급할 것이나, 이건 게임이었으므로 정확한 시간대에 대한 발언은 없다.

“날짜가 넘어가는 기준을 모르니……. 일단 학자부터 만날까요. 물론 의원부터 털고.”

─절대 효.율.해

─시간손해 못 참죠ㅋㅋㅋ

─동선 절대 지켜

은우는 나가기 전에 의원까지 털어 본 후, 학자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학자 역시 인상이 좋은 사람이었다. 온화하고 지혜로워 보인다.

『학자: 예기치 못한 손님이로군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렇지만 본래 저런 이들이 안 좋은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법이다. 헬멧 속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말 좋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속내가 음험한 사람일까요.”

─닥 후자

─22222222

─킹조건 음험이지ㅋㅋㅋ

“일단 대화를 더 나눠 봅시다.”

『학자: 진범이… 따로 있는 것 같다고요?』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통해 학자의 말문을 튼 유랑화가가 본격적으로 화두를 던졌다. 학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너무 빠르게 물어본 것 같은데

─저러면 입 다무는 거 아님?

─진도가 너무 빠른데,,,,

─진도가,,,너무 빨라,,,,?퍄퍄ㅑㅑ;;

─변태쉑 쳐내!

“아뇨. 학자 같은 타입은 이렇게 나가도 좋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변수가 탄생하는 걸 제일 싫어하거든요. 반응 확인하기 좋죠.”

범인이 아니더라도 학자는 지식인 계층이다. 심지어 화연을 좋아했던. 학자를 통해 추가 단서를 얻거나 얻을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건 저 반응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진짜라면 본인이 범인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단순한 놀람인지 구별하는 거네요.”

은우는 대사를 넘겼다. 학자가 표정을 간신히 수습했다.

『학자: 그럴 리가 없습니다. 증거는 확실했는걸요.』

『유랑화가: 직접 보셨습니까?』

『학자: 네?』

『유랑화가: 직접… 보셨냐 물었습니다만.』

화가가 어렴풋이 웃었다. 바뀐 옷 때문에 그 분위기는 더욱 신비롭고 엄숙하다.

『학자: 제가 어찌 직접 보겠습니까?』

『유랑화가: 그러면 어째서 그리 확신하십니까?』

『학자: 그거야 무도한 백정 놈 아니면 그녀를 죽일 자가 없으니 그런 거죠!』

유랑화가가 눈매를 가늘게 접었다. 요요한 미소는 어딘가 상대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느낌이 있다. 지금껏 마주쳤던 사람들에겐 넉살 좋게만 굴었던 걸 떠올리면 더욱 이질적이고, 섬뜩하다.

『유랑화가: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학자가 벌컥 화내는 표정을 했다.

『학자: 그럼 내가 범인이라도 된다는 겁니까!』

유랑화가가 입가를 더듬고 은우는 목덜미를 쓸었다. 그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 입매가 악의로 의심받을 만큼 삐뚜름하단 것이다.

“이런…….”

『유랑화가: 저는 학사님을 의심한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만…….』

“상당히 의심스럽네요.”

『유랑화가: 왜 그리 화를 내시는지?』

눈동자 두 쌍이 반짝거렸다.

『학자: ……!』

학자가 입술을 깨물더니 고개를 틀었다. 길게 기른 머리카락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학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화연에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절당했지요.』

『유랑화가: 그것에 분노하셨습니까?』

『학자: 아니요……. 그럴 리가 있나요. 좋아하는 건 저이고,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화연에게 있습니다. 심지어 기생들은 정조 관념에 투철한 여인들이니 충분히 거절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학자는 뜬금없이 제 사연을 구구절절 말하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자기는 그녀에게 유감이 없지만, 그녀의 곁에 유감을 가진 남자가 상당하다는 내용이었다.

외모와 성격이 반비례하는 여자이니─물론 본인은 알고도 고백했단다─거절당하고 앙심을 품는 경우가 많다고. 그래서 자기가 의심받는 줄 알았다고.

『학자: 그녀에게 고백했다 거절당한 사내는 많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마지막 순번이 저인지라…….』

학자의 보이스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학자: 동기들이 우스갯소리로 네가 그런 것 아니냐는 농을 하더군요. 그 소리에 학을 떼던 차에 하필이면 화공이 방문하셨고요.』

『유랑화가: 그런 거였군요. 확실히 질리실 만하겠습니다.』

『학자: 질리다마다요.』

『유랑화가: 그럼 밤마실도 정말 밤마실이셨겠군요.』

『학자: 그렇습니다.』

물론 저렇게 말해도 수상한 건 어쩔 수 없다. 은우는 저놈이 범인이라며 벌써부터 단정 짓는 시청자들을 뒤로하고 다른 주제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안타깝게도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별로 없었다. 학자는 자기가 의심받는 것에 예민했다.

『학자: 저를 의심하는 건 정말 불쾌하지만… 별개로 백정이 증거가 아니란 증명을 할 수 있다면, 관아와 연결해 드리죠.』

『유랑화가: 그런 친절을 어찌 베푸시는지?』

『학자: …그녀를 죽게 만든 사람을 내버려 둘 수 있겠습니까?』

『유랑화가: 뭐, 그러지요.』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은우의 시선은 학자의 검은 옷과 다친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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