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여어, 영웅. 동료를 사귀었다던데, 어쩐 일이야?”
그날 뒤로 ──는 그를 영웅이라 불렀다. ─가 영웅이란 말을 싫어하는 만큼 그들의 거리감이 유지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귄 게 아니야. 따라온 거지.”
“신기하네, 곁 잘 안 내주면서.”
“강하니까.”
“얼마나 강하길래?”
“살아남았어. 그거면 알 수 있지 않아?”
“아, 그건 그렇다.”
화검사와 성주, 그림자술사, 시체교주를 용납한 건 변덕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을 용인하도록 한 건 그의 이성적 사고였다.
먼저 그들은 그와 같은 전장에 설 수 있었다. 단순히 한두 번의 출진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자기 자신만의 무력으로.
그리고 그보다 먼저 죽을 것 같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죽을 때, 그들은 살아 있을 것 같았단 말이다. 그게 그들을 용인하게 만든 유일한 이유이자 절대적인 까닭이었다.
“너는 웬일로 헌터 애인을 뒀는데?”
“귀찮게 달라붙어서 그냥 허락해 줬지. 어차피 금방 죽을 테고… 헌터가 보통 뭘 하는지 궁금해지기도 했고. 적어도 며칠간은 심심하진 않을 거 같아.”
“애인이 아니라 이야기꾼을 들였다고 하지 그래. 성격 나쁘긴. 너, 그러다 벌 받는다, 진짜.”
“이제 알았어?”
끈질기게 달라붙는다고 해도 헌터라면 질색했으면서 이번만은 허락해 준 이유가 뭘까. 궁금했으나 ─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헌터가 뭘 하는지 궁금하다 말할 때 그를 본 이유 또한 묻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상처받든 받지 않든, 그건 ──의 선택이었다. 관여할 이유도, 생각도, 필요도 없다.
“이야, 둘이 바람 피우냐?”
“그건 이미 한물간 이야깃거리 아니었어?”
지나가던 도중 가게 상인들이 농을 던졌다. 그가 방금 내뱉은 말마따나 한물간 추측이었다.
“어머, 자기야. 나한테는 이미 애인이 있거든? 그러니까 영웅님이랑 나랑 비비지 말라고.”
듣다 보니 자그만 의문이 들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을 ‘자기야’라고 부르는 ──가 그에게 만큼은 그러지 않게 된 건 언제부터였지?
“말버릇은 왜 고친 거야? 오해받는 게 새삼스레 귀찮았을 리는 없을 텐데.”
“그을쎄.”
알아차리기야 진즉에 알아차렸다. 그러나 지금껏 묻지 않았던 건 굳이 물을 이유를 못 느껴서였다. 지금 물은 건 그냥 떠오른 김에 질문한 거였고.
“답하기 싫으면 말아.”
굳이 듣고 싶을 정도로 궁금하진 않다. ─는 쉽게 포기했다. 그러자 ──가 달라붙었다.
“물어봐도 되는데.”
“됐어. 귀찮아.”
“물어봐.”
“진짜 넌……. 어휴, 됐다. 앓느니 죽지.”
이럴 때 ──는 정말 귀찮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아이와 어울려 주는 심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넌 왜 날 유혹하지 않아?”
물어봐 달라고 본인이 강요했으면서 정작 물어봤을 때 당신의 얼굴은 어땠는지.
“…넌 영웅이잖냐. 사람들에게 영웅을 빼앗을 수 없지.”
역시, ─는 ──를 좋게 생각할 수 없었다.
▣ 156. 목을 던져 줄 시간
시작 지점까지 내려간 끝에 구원군을 모집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 그들은 통태진, 야등포를 거쳐 길주까지 왔다. 중간 커다란 교전이 몇 번 있었는데, 대체로 은우가 적장을 따면 상황이 승리로 돌아갔다.
대규모 전투를 상당히 잘 표현한 축에 속한지라 나름 싸우는 맛은 있었다.
─보통은 이렇게 한 번에 못깨는데;;
─ㄹㅇ? 쉬워보이는데
─ㄴㄴ 일정 시간 내 적장 못 따면 애들 반격이 오짐
─아닌 척 하는 타임어택 겜이라
─적장 목 따도 남은 지휘관들이 있어서 전황 봐가면서 싸워야함
은우는 말을 몰아 마지막 장수의 목을 떨어트렸다. 전황을 신경 쓰며 싸우는 것 정도야 별 어렵지도 않았다. 적들이 너무 약해서 대규모 전투를 했다는 감흥조차 안 드는 건 조금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그사이 입으로 실력자라 떠드는 자들과 게임을 해 본 경험자들이 채팅 창에서 부딪쳤다.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실력을 깎아내리고자 하는 자들과 그것을 용납 못 하는 이들의 격돌.
은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시청자 수가 평균 7, 8만쯤 되니 이젠 신경 쓰기도 어려웠다. 특히 채팅을 예전처럼 대충대충 읽을 수가 없었다.
저가의 일반 구독이 아닌, 더 값비싼 고급 구독자의 채팅만 시야에 띄워짐에도 갱신 속도가 워낙 빠른 탓이다. 읽으려면 좀 집중을 해야 했다.
“난이도에 대한 논란이 계속 올라오는데…….”
그래도 싸움이 너무 길어지면 그한테도 손해다. 은우는 여상스럽게 목덜미를 쓸었다.
“직접 해 보시면 결정 나지 않겠습니까.”
─자연스럽게 영업
─근데 이게 맞찌
─지금 보는 애들 다 구매자 아님?
─ㄴㄴ 아직은 아님
─담퀘부터 잠길듯
“난이도는 사람마다 받아들이기 나름이니, 직접 해 보고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은우의 극이 적병의 모가지를 수확했다. 지휘관은 전부 죽었으나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곧 여진의 패배 소식이 전해졌다.
은우는 창에 묻은 피를 털며 말에서 내렸다. 처음부터 타고 있던 흑마는 화살에 맞아 죽고, 갈아탄 말은 검에 베여 죽고, 세 번째 말은 창에 찔려 죽어 네 번째로 바꿔 탄 말이다.
당연하지만 전 주인은 말을 헌납할 때 목숨도 같이 헌납했다. 흑마는 다시 소환하기 좀 귀찮았다.
“웅주 성이 거의 마지막 파트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방송 둘째 날 영주 성 전투에 이어, 숭녕진, 동태진까지 구원했으니, 사건 터질 만한 성은 이제 별로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의 느낌이 강했다. 적들도 슬슬 한계까지 강해진 느낌이고.
─맞을걸요?
─척준경은 이후에 유격대만 처치하고 돌아가는데,,,
─역사를 참고하긴 했는데 스토리 좀 꼬아서 안 그럴 듯
은우는 여기서 어떻게 완안발타와 문제를 마무리 지을지 고민했다. 알쉬라는 중간 보스는 이미 정리됐는데, 완안발타는 어떨지.
솔직히 초반에 한번 싸워 보면서 기대가 팍 식은지라 꼭 싸우지 않아도 될 것 같긴 하다마는.
그는 앞을 한번 점쳐 보다가 어차피 그가 무엇을 상상하든 게임사가 정해 준 대로 흘러갈 것임을 떠올렸다.
그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클리어까지 걸리는 시간과 그 속에서 보일 수 있는 퍼포먼스, 부가 목표 성공 여부뿐이지 미래의 갈래가 아니었다.
그 부분이 가끔은 허망하다가도 그게 또 게임의 매력이 아닌가 싶어 납득하게 된다. 은우는 지원군을 이끄는 장군에게로 다가갔다.
실제 역사에선 척준경이 이끌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이 게임에선 이운이 방랑 무사였으므로 장군은 항상 따로 있다.
“이번에도 큰 공을 세우셨군. 고생했네. 자네 덕에 수월히 여진족을 물리칠 수 있었어.”
장군은 절대 이운을 얕잡아 보지 않았다. 하기야 누구든지 혼자서 적장의 수급을 여럿 따오는 사람과 적대하긴 싫을 터였다.
“난 부대를 이끌고 웅주 성을 포위하고 있는 여진족들에게로 향하겠네. 준비가 되면 그쪽으로 와 주게.”
메인 스토리이긴 하지만 전투 때 외엔 따로 움직였다. 아마 서브 퀘스트나 사이드 퀘스트를 깨라고 내준 시간일 것이다.
“부디 안전하게 가시길.”
다만 이운의 인사를 듣고 있으면 이운 자체가 그들과 동행하지 않는 이유가 보인다.
그는 동행하는 군사들을 그다지 신뢰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실력이든 뭐든 간에.
뭐, 플레이어 입장에선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시청자들도 일부가 서늘함을 느끼는 것 외에 별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만큼 더더욱.
“이 근방엔 딱히 할 만한 게 없네요.”
─이미 다 해치워버렷잖어~
─깔-끔
할 것도 없는데 굳이 메인 스토리를 미룰 이유가 없기에 은우는 휘파람을 불었다. 흑마가 푸르륵거리며 달려왔다. 죽어도 부활하고 부르면 언제든지 오는 말 시스템 하나만은 정말로 편하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빠른 이동이 있다면 그것으로 이동했겠지만, 지금은 금지된 상태다. 정확히는 전투가 있을 지점 근방만 막혔다. 은우는 결국 말을 타고 이동했다.
* * *
웅주 성에 진입한 직후 어김없이 전투가 이어졌다.
“자네는 완안발타를 주력해서 쫓게! 그만 죽이면 이 전투는 우리의 승리야!”
『◈ 완안발타에게 접근하기』
목표는 단출했으나, 가는 길은 험했다. 은우는 표기되는 완안발타의 위치를 확인하며 경로를 설정했다. 그사이 전투의 막이 올랐다.
【쏴라!】
시작부터 하늘을 빼곡히 채워 가며 화살이 날아왔다. 말은 이럴 때 별 쓸모가 없다. 방금 죽어 나간 걸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은우는 바닥을 구르며 이번에 허락받은 환도를 꺼내 들었다.
“검 하나는 영 어색하네요.”
그는 그리 말하면서도 쉽게 자세를 잡았다.
손잡이를 한 손으로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론 칼등을 엄지와 검지 사이에 댄 채 검 면을 최대한 넓게 펼친다. 그런 후 각도를 달리해 가며 화살을 튕겨 내면 제법 손쉽게 화살을 피해 낼 수 있다.
물론 상체 한정이므로 다리를 향해 쏘아질 경우 불가피하게 자세를 풀어야 하긴 했다.
시베리아에 내던져진 양동이 물이 얼어붙듯 휘둘러진 검날이 화살들을 쳐 내고 부쉈다.
─어색? 어새애액?
─켄의 어색>>>>>넘사>>>>>비수
─이미 충분히 당했으니까 기만은 그만해주시죠!
그 과정에 시청자들만 허탈해질 따름이었다.
직후 은우의 다리가 대지를 박찼다.
짧게 깎은 풀숲이 그의 발아래에 짓뭉개질 적이면 여진군 측에서도 전사들이 튀어나왔다. 화살을 쳐부순 검이 이젠 전사들과 맞부딪치기 위한 준비를 했다.
【흐아압!】
적이 검을 한 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위로 들어 올린 채 달려들었다. 저럴 경우 내려칠 때 힘이 강하게 들어가 무언가를 쳐 내기 좋다.
당연히 상대가 가만히 맞아 줄 때만의 이야기다.
스르르릉-
검과 검날이 맞부딪쳤으나, 쨍하는 소리 대신 매끄럽게 마찰하는 소리가 나왔다. 은우의 환도가 빛살처럼 방향을 바꾸며 적의 목을 긋고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다음 적은 창이었다.
스텝을 밟아 창대를 피한 몸이 팔을 부드럽게 움직였다. 고운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 검이 창을 쳐 냈다. 발이 적의 몸을 차 냈다.
한 손으로 붙잡은 검이 적의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가로질렀다.
그 상태로 둥글게 턴을 하면 은우의 몸은 옆을 보는 자세가 된다. 검을 쥔 손은 등 쪽으로 칼을 길게 늘여 두다가, 치고 들어오는 적의 칼을 내려친다.
은우의 손이 칼자루를 빙글 돌려 역수로 쥐고 그대로 위로 쳐올렸다. 적의 가슴팍부터 목까지 핏줄기가 튀었다.
그는 그 반동을 이용해 역수로 잡았던 검을 정수로 돌렸다. 그러곤 옆으로 맹렬히 내려쳤다. 우르르 몰려들던 적들이 순식간에 몸을 대지 위에 뉘었다.
“저 따라 숨 멈추지 않으셨길 빕니다.”
은우는 검을 비틀어 가볍게 피를 털어 냈다. 짧은 시간 내 연속 처치를 해낸 덕에 적들은 공포 상태 이상에 걸린 상태다.
흔하게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나, 이 방송에 한해서 심심찮게 보이는 장면이다.
【괴물!】
【인간이 아니야!】
─구울왕입니다
─학살좌입니다
─복수좌입니다
─켄입니다
─채팅 단합력 완-벽
적이 오지 않으면 그가 간다. 은우는 길이 뚫린다 싶자 바로 땅을 박찼다. 걸리적거리는 자가 있으면 목을 찌르고 다리를 베어 무력화시켰다.
한 개의 검은 두 개의 검보다 비효율적이나, 사람들이 바라는 게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은우의 몸이 두루미의 날개 끝처럼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대지를 오갔다.
【네놈, 내가 상대하겠다!】
그때 적 장수가 나섰다. 은우로선 편리한 일이었다.
지휘관이 죽으면 지휘 체계가 엉망이 되니. 목표인 완안발타까지 길을 뚫기엔 이것만큼 좋은 게 없다.
【나는 자랑스러운─】
“움직일 필요를 덜었네요.”
─직접 와주는 서비스
─친절배송
─장수 딱 대
말을 타고 달려드는 적 장수를 보며 은우는 바닥에 떨어진 무기를 발로 찼다. 공중으로 떠오른 검이 은우가 든 검에 의해 한 번 더 띄워지더니 그대로 뒷매기 부분을 쳤다. 검이 마치 창처럼 날아가며 말에게 쏘아졌다.
말이 놀라 앞다리를 들고, 장수가 낙마했다. 은우의 몸은 어느새 그곳까지 접근해 검을 찍어 내리고 있다.
푸욱!
핏줄기와 함께 적장의 목이 달아났다. 물론 정예 몹을 넘어 보스 몹이었으므로 일격에 죽진 않았다. 그러나 검날을 미간에 박았다가 빠르게 뽑아 목을 그으면 질긴 목숨도 끊기기 마련이었다.
【모극이 당하셨다!】
【도망쳐!】
【네놈들! 탈영병은 엄하게 다스릴 것이다! 당장 맞서 싸워라!】
고위 지휘관의 사망으로 적들이 혼란 상태에 빠져들었다. 장수 계급의 적이 방금 죽은 자만 있는 건 아니었기에 빠른 속도로 수습이 되었으나, 그뿐이었다.
【당장 저 고려인을 죽─!】
하나의 검신이 마치 맹수의 발톱처럼 적장의 목덜미를 할퀴었다. 말 위에 있다는 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은우는 주변 병사의 등을 밟고 그 위로 날아올라 적장을 덮친 것이었으니까.
말 위에 있던 적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은우의 검이 그 위로 내려찍혔다.
“이제 쉽게 갈 것 같습니다.”
장딴지까지 내려오는 검정색 저고리가 팔락거렸다. 복두幞頭 양쪽에 달린 날개에 맺힌 핏방울은 대지 위로 이슬처럼 흩뿌려졌다.
죽어도 촌스러운 갑옷은 안 입히겠다는 시청자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은우는 두 명의 장수가 연달아 죽으며 대혼란에 빠진 여진군 사이를 내달렸다. 퀘스트 마크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금세 이벤트 신이 시작되었다.
【악귀 놈, 여기까지 왔구나!】
웅주 성을 포위하고 있던 여진군의 수장, 완안발타가 무기를 들었다. 혹시 보스전인가? 하며 살피면 정말로 보스 특유의 커다란 체력 바가 떠올랐다.
“드디어 다시 붙네요.”
─시스템 빽으로 이겼던 비겁자!
─이젠 시스템도 널 비호하지 않는다!
─형님 처리하시죠
은우는 검을 뱅글뱅글 돌리며 완안발타를 마주했다. 놀랍게도 완안발타는 부하들을 두고 그 혼자 덤벼 왔다.
극이 아닌 거대한 철퇴를 든 채 다가오는 게 퍽 위압감 넘쳤다. 비록 키는 은우와 비슷했지만.
─켄 덩치가 너무 커서ㅋㅋ위압감이ㅋㅋㅋ안 산다ㅋㅋㅋ
─켄 때문에 키굴욕 당하는 보스만 몇인가...
─이와중에 켄 얼굴 까고 있으니까 완전 외국인이라고
─서역인ㅋㅋㅋ
【여기서 네놈을 멈춰 주마!】
『▷ 뭐라는지 모르겠군.
▷ 멈춰지는 게 어느 쪽일진 하늘이 알지 않겠나?
▷ 폐하께 목을 진상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은우는 떠오른 대사 중 손쉽게 하나를 골랐다.
“목을 던져 주지.”
그 말이 단순히 대사에 그치지 않고 진심을 빚어낸 것임은 모두가 알았다. 시스템만 아니었어도 이겼을 놈이니 당연하다.
완안발타가 거대한 철퇴를 들고 그대로 내려찍었다. 은우의 몸이 그것을 가볍게 피해 내고 검을 휘둘렀다.
두 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휘두른 검은 완안발타의 가슴팍을 세로로 베었다.
완안발타가 철퇴를 들어 올리며 횡으로 휘둘렀다. 무게로 인해 그 몸도 같이 돌아갔지만, 그는 그것을 이용해 3연속 회전타를 넣었다. 은우의 발이 아슬아슬하게 사정거리만을 피했다.
그리고 완안발타가 호흡을 고르기 위해 무기를 내려놓은 순간, 그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검이 아까 베었던 자리를 또 베었다. 말이 가슴팍이지, 마지막 부분이 목과 맞닿아 사실상 크리티컬이었다.
완안발타가 뒷걸음질을 치면 그것을 따라 한 발짝 내디디며 발차기를 먹였다. 완전히 무너진 자세를 향해 찌르기가 정통으로 들어갔다.
【나는 죽지 않는다!】
키는 비슷하나, 은우보다 더 근육과 갑옷으로 무장한 완안발타의 어깨가 그를 밀치려 들었다. 찔린 상태에서 행한 행위였다.
그렇지만 그것도 통해야 기개 있는 행동이 되는 법이다.
은우의 발이 반 발자국 옆으로 틀어지며 찔렀던 검을 옆으로 빼냈다. 현실이었다면 심장과 갈비뼈, 재수 없으면 팔까지 잘려 나갔을 거다.
심지어 그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의 손이 검을 되잡고 대각선으로 내리그었다. 완안발타의 피통이 벌써 삼분지 일 가까이 깎였다. 연두빛 저고리는 어느새 피로 물든 채다.
【오아속 님을 위하여!】
철퇴가 맹렬하게 그를 내려찍으려 들었다. 은우는 그것을 가볍게 회피했다. 나풀거리는 옷자락과 함께 어느새 완안발타의 뒤로 돌아간 몸이 그의 등을 휘갈랐다.
완안발타가 다급히 허리를 뒤틀어가며 공격을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은우의 발이 대지를 박차며 완안발타의 허벅지를 그리고 명치를 밟고 뛰어올랐다.
공중에서 회전한 몸이 그대로 검을 내려찍었다. 마치 단두대처럼 한 손은 칼자루를, 다른 손은 검 등을 내리누른 것이다.
은우의 발이 완안발타의 어깨를 짓밟으며 그를 넘어트리고 칼날은 목을 베었다. 절단 효과만 나지 않았을 뿐, 참수였다.
그 상태로 은우는 검을 한 번 더 휘두르기까지 했다. 이중으로 대미지가 들어가자 피통은 절반 언저리로 끌어 내려졌다.
【고려인 따위가!】
그 순간 컷신에 돌입했다. 완안발타를 구하기 위해 부하들이 달려오는 컷신이었다. 완안발타는 도주했고, 부하들이 대신 남았다.
2페이즈라면 2페이즈였다. 은우가 좋아하는 형식은 아니었지만.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 왜용?
─??
─ㅁㅇㅁㅇ
그는 달려드는 졸병을 베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완안발타 패턴 달라진다 했던 분, 혹시 달라진다는 패턴이 이 형식이었습니까?”
─^^7
─^^)> 충성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7
─쳇....이래서 눈치 빠른 스트리머는 싫다니까
─^^7
사람들의 반응은 눈을 감고 봐도 긍정이었다. 은우는 얕은 한숨과 함께 추가로 덤비는 창병의 목을 찔렀다.
“끝까지 제게 모욕감을 주는 보스군요.”
─모욕감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페이즈가 마음에 안 드는 부류인 건 그래, 어쩔 수 없다. 은우는 숨을 삼키며 목표를 따라 완안발타를 추적했다.
“무시하고 달리겠습니다.”
시간 낭비 하기도 싫어져서 일반 졸병들을 죄다 무시하며 달렸다. 가끔 너무 방해되는 것들만 빠르게 쳐 냈다. 그러자 완안발타는 금방 따라잡혔다.
졸병들이 추가로 등장하며 완안발타와 함께 합공을 시도했다.
─보스전 진짜 별로네
─사실 쫄 부르는 것 만큼 까다로운 애들이 없긴 한데ㅋㅋ
─최종보스전 많이 기대했는데,,,,
─아 국산이라서 기대 햇는데,,,,,많이 아쉽다,,,,
「‘프초언제나와’ 님이 ‘1,000원’ 투척!
아직 중간부분 못봐서 그런데 게임 별로임?」
“최종 보스전이 아쉽긴 합니다만, 게임이 떨어지진 않는 것 같습니다.”
그가 싫어하는 패턴이 나와서 그렇지, 최종 보스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까지 별로는 아니었다. 게임 본편은 이 정도면 재밌는 축이고.
“암살 플레이, 양민 학살, 대규모 전투 등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즐겁게 하실 만합니다.”
─그건 그럼
─검기사나 하는 변태가 아니고서야,,,
─가만히 있는 혈시들 뼈맞는다ㅡㅡ
─아 착한 혈시들 왜 때림;;
검은기사라. 오랜만에 나온 이름에 은우는 조금 아련해졌다. 카롬은 과연 그의 데이터로 재미난 보스를 만들고 있을까?
그의 검이 병사의 목울대를 찌르며 상념에 잠겼다. 그의 팔다리는 기계적으로 완안발타에게 가는 길을 뚫는다.
“검은기사 후속작이 나올까요?”
─꼭 나와야함
─떡밥을 그렇게 던져놓고 안 나온다고? 절대 안되지
─아마 나올 것 같아용
한 게임을 하면서 다른 게임 얘기를 꺼내는 건 실례임을 안다. 그러나 카롬사가 보여 줬던 걸 생각하면 역시 기대하게 돼 버리는 것이다.
은우는 얄팍한 희망에 미간을 좁혔다. 그사이 완안발타가 부리던 잡졸들은 전부 죽어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제 완안발타만이 남았다.
“목을 던져 줄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언행일치의 교재ㅋㅋㅋ
─뱉은 말은 지킨다 이거야
─목 씻고 딱 기다려
─모욕감에 대한 복수가 시작된다
완안발타를 향해 검이 겨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