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XXXX년 7월 27일
오늘 아침, 너무 끔찍한 것을 보았다. 새까만 몸체에 핏줄 같은 것이 엉겨 있는 괴이한 것이었다.
그것은 정확히 나를 보고 있었고, 내 본능은 그것에게 잡혀선 안 된다고 말해 왔다. 그 때문에 오랜만에 가진 가족 식사에서 뛰쳐나오고 말았다.
아버지랑 동생들이 나를 어떻게 여길지…….』
『XXXX년 5월 8일
아버지가 최근 이상해지셨다. 역시 그 모임이 문제였던 건 아닐까? 아버지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고, 그 사람들을 멀리하는 건 어떻겠냐고 말씀드려야겠다.』
『XXXX년 6월 15일
아버지께서 또 그 모임의 사람을 저택으로 데려오셨다. 여전히 그 사람들에게선 정말 옅은 피 냄새과 약품 냄새가 풍긴다.
거기에 그들이 나를 볼 적이면… 마치 뱀이 내 살갗 위를 기어 다니는 것처럼 소름 끼치는 느낌이 든다. 불길하다.
에디와 폰에게 절대 다가가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줘야겠다.』
『XXXX년 8월 3일
유모에게 그것을 사 오도록 부탁했다. 그것이 있으면 지금보다 도망치기 수월해질 거다.
…아버지께서 나를 더욱 광인처럼 여기겠지만, 그 괴물에게 잡히는 것보단 나을 거야.』
『XXXX년 7월 29일
유모가 날 깨울 때 쓰는 손잡이 종 소리에 괴물이 물러났다. 혹시 녀석들은 큰 소리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
『XXXX년 8월 23일
불쌍한 내 동생들. 이 글을 보거든 제발 이 저택에서 도망쳐. 이곳은 지옥이야.』
『XXXX년 X월 XX일
XXXXXXXX XXX XXXXXXX XXXXXXX(글자가 지워져서 알아볼 수 없다)』
▣ 164. 침입자아아아!
“왜 필요한 아이템을 하나밖에 안 먹었는데도 난리들이랍니까.”
─ㅋㅋㅋㅋㅋ
─구울들 켄 찾는 소리 보소ㅋㅋㅋ
─혀어어어엉
─동생 손 한 번만 잡아줘어어!!
「‘이등병코헤’ 님이 ‘1,000원’ 투척!
오늘 팬미팅하시나요?」
“글쎄요.”
은우는 서라운드로 들리는 종소리와 그 사이를 채우는 발소리─육족 보행이니까 팔 소리도 겸해서─를 들으며 철푸덕 앉았다. 쪼그려 앉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게 5분쯤 되면 그냥 앉아 있는 게 낫다.
“머리만 딸 수 있었어도…….”
「‘미지의존재’ 님이 ‘1,000원’ 투척!
시스템이 우릴 살렸다.....」
─보통은 십자가만 있었어도라고 하지 않냐고ㅋㅋㅋ
─학살자답게 죽일 생각부터 하시는;;
─도망 템보다 죽일 템을 바라는....
“십자가는 제가 안 가지고 있잖습니까.”
보자마자 이성 수치야 깎이든지 말든지 그 안에 모가지 딸 자신 있건만, 그게 안 된다.
권총? 십자가? 이 게임을 시작하고 나서 그는 기이할 정도로 아이템 운이 없었다. 퀘스트 필수 템이라도 발견한 게 다행일 지경이었다.
결국 그는 공포감 하나 없이 소리가 사라지길 기다렸다. 그사이 사방을 돌아보면 2챕터와 좀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촛대의 불빛이 단순한 주홍빛에서 자줏빛으로 변한 탓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자줏빛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피를 본 느낌의 자줏빛.
“필요한 물건을 많이 찾을수록 미지의 존재들이 더 날뛴다던데. 잘 상상이 안 가네요.”
지금도 나가려고 하면 소리를 퍼트리며 자신의 존재를 피력하는 게, 충분히 날뛰고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여기서 미지의 존재 숫자가 늘면 그건 그냥 하지 말란 소리와 같지 않나 싶고.
“다음에도 소리가 들리면 그냥 걸릴 거 각오하고 피해서 가겠습니다.”
─겁이 없으신가요;;
─진짜 구울이라서 간을 배밖으로 내놓으신듯
─그냥 안에 있어도 될 것 같은데...
“글쎄요. 지루하지 않습니까?”
─별로?
─지루하기 이전에 내 심장 쫄려서 숨엇음 좋겟음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것도 ㄱㅊ은듯
─ㅇㅈ 막간 잡담타임 좋음
이건 또 새로운 의견이다. 그가 부족한 말재주를 가리기 위해 잡담 시간을 거의 안 갖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또 불만일 줄은.
은우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씨익’이란 수식 어구가 꽤 어울릴 정도로 진하게 웃었다. 웃음소리를 내며 웃는 것만큼 흔하지 않은 미소였다.
왜 그렇게 웃느냐면, 글쎄. 요즘 미묘하게 여유가 생겨서 그런 걸까? 여유라고 칭하면 조금 애매하긴 한데, 전체적으로 좀 더 편해졌다. 웃는 거라든가 장난치는 거라든가.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아마도.
“형, 누나. 내가 그렇게 좋아?”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하는 대신 그는 잘 말린 꽃잎을 두 손으로 가득 쥐어짜듯 사근거렸다. 바스락거리는 마른 소리 속에는 은근히 풍기는 향이 있다.
─구에에에엑
─구독 해제합니다
─아;; 요즘 한동안 또 뜸하더니;;
─귀여워 디비짐ㅋㅋ
“누나들은 그렇다 쳐도 형들, 슬슬 저를 막 대하시네요. 슬픈데.”
─조련에서 탈출했다 이거야
─애교 어림도 없지!
─사내놈 애교 ㄲㅈ
다들 그보다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어른들일 텐데도 채팅 올리는 걸 보고 있으면 참 귀엽다 싶다. 은우는 시청자들이 들으면 ‘구에에엑’거릴 생각을 하며 미소를 슬슬 지웠다.
입꼬리가 슬그머니 내려가면 평소의 뚱함이 떠오른다.
“출발합시다.”
소리가 완전히 멎은 지 20초. 슬슬 나가 볼 때다. 그는 다리를 펴고 방 문 앞에 섰다. 문을 슬근슬근 열고 복도에 발을 내디디면 어둠에 휩싸인 저편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따르르랑-
두다다다다-
“아, 진짜.”
「‘입구컷’ 님이 ‘1,000원’ 투척!
강해져서 돌아와라ㅋ」
* * *
그가 탈출을 꾀할수록 저택은 점차 이상하게 변해 갔다. 보다 기괴하고 섬뜩하고, 끔찍한 형태로 변형되는 것이다.
매 챕터 시작 부분마다 놓인 쪽지는 그런 상황을 두고 ‘저택을 좀먹는 괴물은 먹잇감이 빠져나가길 원치 않는다.’라 평했다. 대체 누가 그런 쪽지를 두고 가는지, 그런 사실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예상 가는 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은우는 새까만 혈관 따위로 뒤덮인 사방을 한 번, 앉으면 죽거나 망가질 것 같은 뼈 의자를 한 번, 이 광경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장롱을 한 번 보았다.
의자와 마찬가지로 뼈 재질의 장식장에는 스토리 관련으로 추측되는 일기장의 한 페이지가 있다.
『XXXX년 3월 24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슬픔에 잠겨 식음을 전폐하셨고, 두 동생은 울다 지쳐 쓰러졌다.
나 또한 그러고 싶지만, 여기서 나까지 무너지면 안 되겠지.
정신 차리자. 어머니께서 말하지 않으셨던가. 크리필드의 여성은 언제나 우아하고 고고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타인의 희극이 되지 않도록.』
『일지를 획득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획득한 일기장 중에선 가장 빨리 쓰인 페이지네요.”
뒤 페이지에서 아버지나 두 동생만 언급됐던 건 역시 어머니가 돌아가서였나 보다. 은우는 해당 페이지를 수첩 안에 집어넣었다.
바삭.
걸을 때마다 밟히는 검은 혈관들이 기기묘묘한 소리를 냈다. 기실 이게 혈관인지도 정확하지 않다.
다만 지그시 쳐다보고 있으면 볼 수 있는 떨림과 핏줄처럼 사방에 뻗어 연결되어 있는 형태가 혈관 같아 보일 뿐이다.
“6챕터가 마지막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 더 업그레이드될 수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3챕터에선 촛불 색 변경, 4챕터는 폭풍이 쓸고 간 것 같은 쑥대밭, 5챕터에선 보다시피 검은 혈관과 뼈 재질의 가구들. 이쯤 되면 6챕터의 형상이 궁금해서라도 게임 못 그만둔다. 별 기대 안 했던 것과 달리, 방송 시간을 알차게 채워 준 덕도 있지만.
은우는 램프를 달랑거리며 방을 나왔다. 그리고 다시 장롱으로 백Back했다.
침입자가 있어… 침입자가 있어…….
벌레 기는 듯한 음성이 장롱 앞까지 다가왔다가 곧 나가 버렸다. 은우는 그제야 삐그덕 소리와 함께 장롱에서 나왔다.
─살았다....
─진짜 저놈 너무 싫음
─시종쉑
저 미지의 존재는 닿는다고 이성 수치가 0이 되어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닿아도 된다는 건 아니다. 저 녀석에게 잡히면 저택에 있는 모든 미지의 존재가 달려오므로.
십자가나 시계, 권총을 적절히 쓴다면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그에 쓰이는 아이템들이 얼마나 아까운가. 가능하면, 아니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미지의 존재였다.
“…엄밀히 따지면 제가 집주인일 텐데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집주인은 나라고~
─어림도 없지! 우릴 이겨야만 이 집을 주겠다!
은우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방을 나섰다. 검은 혈관과 더불어 가끔 고인 피 웅덩이가 파장을 일시적으로 높인다.
그것에 주목을 끌지 않으려면 바닥을 잘 보다가 피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바닥만 보며 걷다가는 앞, 뒤, 옆에서 다가오는 미지의 존재를 못 보고 죽을 수도 있다.
소리 없이 다니는 미지의 괴물─방금 걔─이 추가된 시점에서 그건 분명 조심해야 할 일이었다.
「‘강남건물주’ 님이 ‘100,000원’ 투척!
진짜, 진짜 걸리시면 안 됩니다.」
“…건물주 님, 후원과 응원 감사합니다. 왠지 건물주 님이 무서우셔서 안 걸리길 바라시는 것 같지만, 조언에 부응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팩-트
─ㅋㅋㅋㅋ안돼! 팩트에 당해버렷!
─ㅠㅠㅠ
─이와중에 돈 주는 클라스 보소;;
─ㄹㅇ 강남 건물주 아니냐고
잡혔을 때 미지의 괴물들이 몰려오는 게 그렇게나 무서운가. 속도가 느려 터진 덕에 아직 잡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회중시계와 십자가가 있는 이상 걸려도 한 번쯤은 탈출할 수 있기도 하고.
“내려가는 길 발견했습니다.”
기괴해진 것에 더해 저택의 변경점은 더 있다. 층계가 생겼단 것이다. 3챕터에선 2층, 4챕터에선 3층, 5챕터인 지금은 최소 4층이다.
─유령저택이면서 왜 미로만 나오는 거임;;
─저택 실종
─왜 갈수록 저택과 멀어지고 있냐;;
“글쎄요. 저는 오히려 저택이 본모습을 찾아가는 거라고 봅니다.”
─?
─어딜봐서?
─왜요?
“흉측해진 외관과는 별개로 구조는 앞선 챕터들에 비해 정상적이잖습니까.”
물론 그는 이 시대 때 유명했던 건축물의 구조 따윈 모른다. 그가 멍청한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모를 거다.
그러나 그가 다닌 길을 기억하고 그것을 평면으로 그려 냈을 때, 무엇이 정상적이고 무엇이 비정상적인지는 알 수 있다.
“3챕터까지가 미로에 불과했다면, 4챕터부터는 슬슬 저택의 구조를 갖춰 가고 있다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건 그들이 지금까지 오간 길을 평면도로 볼 수 있어야 감 잡기 쉽다는 것인데…….
은우는 잠시 품을 뒤적거렸다. 쪽지나 일기장을 접어 넣는 수첩에 혹시 그림이 그려지나 싶어서였다.
“그림이 그려지네요. 다행스럽게도.”
─이런 기능도 있었네;;
─ㄴㅇㄱ
─이거 다 깬 사람인데 이 기능 처음 앎
─ㅋㅋㅋ누구도 몰랐던 기능
어쩌면 길 찾기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걸 이제야 알아낸 건 조금 난센스지만.
그는 계단을 내려가기 전, 잠시 방 하나로 들어갔다. 그러곤 램프를 켜 두고 만년필로 그림을 그렸다. 예술은 못해도 기록은 할 수 있으니. 비교적 알아볼 수 있는 형상으로 길이 그려졌다.
“좌우 대칭은 아니지만, 본관을 기점으로 각 방들이 이어지죠. 그럭저럭 저택 같은 외형이지 않습니까?”
─? 설마 다 기억하시는 거임?
─미쳤나봐ㄷㄷ
─기억력 실화냐?
─근데 층마다 다르게 그림?
“아, 층마다 다르게 그린 게 아닙니다. 이건 4챕터, 이건 3챕터, 이건 2챕터입니다. 가운데 빈 부분은 제가 안 가서 모르는 지점입니다.”
─ㄷㄷㄷㄷ
─ㅇㄴ 저걸 다 기억하는 거임?
─암기력 인간 수준이 아니신데;;
─역시 구울왕.....
─찬양하라!
“암기 잘 못 합니다.”
이건 암기라기보단 생존 본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살기 위해서, 적을 죽이기 위해선 지도고 미로고 다 외워야 했으니까.
하여간 시청자들이 납득한 것 같으니 됐다. 이제 내려갈 타이밍이다.
“시작 장소를 기준으로 지하 2층엔 뭐가 있을지 봅시다.”
그는 방을 나오며 주변을 살피고 층계를 내려갔다. 그러자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정확히는 검은 핏줄 사이로 보이는 벽의 재질이 바뀌었다. 단단한 돌만을 맞물려 만든, 지하실에서나 쓰일 법한 돌벽인 거다.
“제가 해야 할 임무 하나를 여기서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맞습니까?”
─ㅇㅇ
─그런 듯....
─캬 이걸 바로 찾네
─지하실ㅠ
그는 돌벽으로 이뤄진 새로운 미로로 발을 내디뎠다. 물론 5챕터는 나름 정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길 찾기는 훨씬 쉬울 것이다. 층마다 비슷한 형태일 테니까.
“미지의 존재가 늘어난 점만 빼면 이번 챕터가 오히려 쉽네요.”
구조가 비슷해지니 이 게임의 가장 큰 적인 길 찾기의 수고가 사라진다. 소리를 잘 듣고 적만 피하면 끝인 셈이다. 다른 챕터에 비해 쉽다.
─나는,,,,더 거지같던데,,,,
─물흐르듯 나오는 기만
─근데 저 기억력에 피지컬이면 솔직히 후반이 더 쉬울 듯
─아아! 공포겜마저 고이고 만 스트리머...!
은우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얕게 웃곤 코너를 꺾었다. 램프 불이 일렁였다. 미지의 존재가 근처에 있다는 신호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복도를 응시했다. 이게 소리 없이 다가오는 미지의 존재 때문인 건지, 고정형 미지의 존재 때문인 건지 긴가민가해서다.
유일하게 소리 없이 다가오는 친구는 시야도 좁고 추적 반경도 작아서 걸리면 코너 돌고 위층으로 올라가면 그만이다. 그러니 여기서 조금 시간을 투자하는 건 절대 낭비가 아니다.
“…촛불이 껌뻑껌뻑 안 하는 걸 보니 고정형인 모양입니다.”
10초가 지나도록 램프는 처음 일렁임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한 자리에 붙박이처럼 있는 고정형이 분명하다.
은우는 램프를 끄고 발광석을 들었다. 어떤 미지의 존재건 간에 램프의 불빛은 정말 더럽게 잘 보므로, 빛이 필요하다면 야광석을 드는 게 더 나았다. 마침 지하실은 촛대도 거의 없었다.
찰박.
지하실에는 발목이 잠길 정도로 피가 들어찬 상태였기에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났다. 이조차 소음이므로 안 걸리려면 평소보다 늦되게 걸어야 한다. 대충 일반 상태에서 무소음으로 걷는 정도의 속도다.
─으으으 느낌 이상해ㅠ
─물보단 끈적거리고 액괴수준은 또 아니고...
─으ㅏ와와으으으
─그렇게 이상함?
─일인칭 주가 떡락중
“오수보단 낫지 않습니까?”
오수도 웃으며 걸을 수 있는 은우지만, 그래도 사람이란 게 선호도는 있는 법이다. 악취가 코를 찌르는 오물 물보다는 피비린내 나는 피 웅덩이가 더 낫다.
“문이네요.”
그사이 코너를 돌자 복도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살짝 파여 있는 공간과 문이 보였다. 문 너머에선 무언가가 잠방잠방 피 웅덩이를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암세포가 안에 있는 모양인데…….”
세로입은 두다다다 소리를 내니 아니고, ‘어디야’거리질 않으니 소년도 아니고, 종소리도 안 나니 종소리도 아니다. 그 외 다른 미지의 존재들도 저 잠방거림에 해당 사항이 없다.
소거법에 따라 안에 있는 녀석은 암세포가 분명했다.
은우는 잠시 복도 끝까지 가 보았다. 복도의 끝에는 코너가 하나 더 있었고, 코너에는 장롱도 있었다. 또 장롱이 있는 곳과 문 사이는 거리가 짧았다. 쉽게 말해 F자 형태였다.
제자리 뛰기 하고 봐도 아래쪽으로 오르골을 던진 후, 장롱에 숨었다가 암세포가 유인당하면 그 틈을 타 방에 들어가라는 구조다. 탈출은 뭐, 아이템이라도 쓰라는 거겠지.
그의 눈이 가늘어지고 시청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난이도 개빡세네;;
─피지컬까지 요구하는 미친 겜...
─스태미너나 넉넉하게 주던가ㅠ
“뭐, 자칫하면 템 쓸 수도 있으니까요.”
깨라고 만든 거니까 출시된 거 아니겠나. 아이템 아껴서 똥 되는 것보단 낫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쓰는 일이 없도록 하는 거겠지만.
“그래도 죽지 않도록 노력해 봅시다.”
은우는 일단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 작전엔 시야가 중요했기에 야광석을 쫙 깔아 놔야 했다.
“여러분은 잘 보이십니까?”
─ㅇㅇ
─이쯤되면 괴물도 잘 보일 듯ㅋ
─시야 훤-하다
사람들까지 잘 보이면 이제 준비는 완료다. 은우는 문과 장롱 사이에 선 후, 오르골을 꺼내 들었다.
끼릭끼릭- 딱.
인형이 최대까지 돌아갔다. 은우는 그것을 꽉 쥐고 그대로 던졌다. 흡사 야구 선수의 투구였다.
통, 토통-
복도 저편에 오르골이 내던져지고. 은우는 바로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었다.
끄아아아아아아!
발소리에 반응해 암세포가 비명을 질렀다. 소리는 문과 삽시간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은우가 장롱 쪽 코너를 돈 순간 오르골이 노래를 꽥 토해 냈다. 그것은 은우의 발소리를 완전히 묻고 암세포의 어그로를 가져갔다. 암세포의 비명 소리가 저쪽으로 꺾였다.
“바로 갑시다.”
은우는 다시 나갔다. 오르골 어그로 때는 달려도 괜찮으므로 이번에도 성큼성큼 걸었다.
─왜 멈춰요??
─ㅇ?
─뭐임뭐임
“혹시 모르니 하나 더 던지려고요.”
은우는 문으로 들어가기 전, 오르골을 더 투척했다. 지하실 복도를 거의 꽉 메우다시피 한 암세포지만, 은우의 적절한 투구 실력은 오르골을 그 틈 사이로 통과시켰다.
저건 암세포의 어그로를 더 연장시켜 줄 것이다.
“빨리 해치울까요.”
은우는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아니다 다를까, 그의 목표물이 그곳에 있음을 확인했다.
혈관들에 칭칭 휘감긴, 그러나 뚜껑까진 그래도 열 수 있을 것 같은 관이었다. 이 저택을 이상하게 만들고 있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은우는 잠방거리며 그 관으로 다가갔다. 오르골 어그로가 꽤 길다곤 하나, 여유 부릴 틈은 없다.
그의 손이 관의 뚜껑을 밀어젖혔다.
관속에 담긴 것은 당연하게도 시체였다. 다만 담긴 것이 관이 아니었다면 그냥 잠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멀쩡한 시체. 흔한 관용구지만, 그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 사자는 기이할 정도로 썩지 않았다.
그렇지만 감상 따위 그들에겐 사치다. 은우는 그것을 두고 앞선 챕터에서 얻은 칼을 들었다. 빨간 루비가 박힌 그것은 불길하게, 혹은 성스럽게 반짝인다.
단검이 시체의 가슴팍을 찔렀다. 그러자 시체가 순식간에 썩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아!
암세포의 비명 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설마 도망칠 시간도 안 주나? 은우가 눈동자를 굴려 입구를 노려볼 때, 뒤쪽에서 그르렁 소리가 났다. 벽 일부가 열리는 소리다.
“추격 신 갑니다.”
은우는 빠르게 관을 뒤로했다. 스태미나가 쭉쭉 줄어들긴 했지만, 열린 통로로 몸을 넣는 건 일도 아니었다. 뒤에서 암세포가 쫓아오는 게 문제지.
끄아아아아아아아!
“왜 하필 암세포와의 추격전일까요, 귀 아프게.”
─ㅋㅋㅋㅋㅋ공포<<<<소음
─이분 때문에 공포겜이 곰보겜 됨
─오빠 달려!
과연 저 뚱뚱한 녀석이 이 좁은 통로로 들어올 수 있을까? 은우는 그 사실이 살짝 궁금해졌다가, 그 호기심을 채우려다가 죽을 수 있음을 상기했다. 무섭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이 챕터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도망치다 보면 알게 될 사실이기도 하고.
“비밀 통로답게 길이 안 다듬어져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실 때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이걸 하는 용자가 있다고...?
─불빛 없는데 뭔가 잘 보인다?
─방송 때문에 사면 돈 아까워서라도 한 번씩 해보는 편인디;; 이겜은 도저히 못하겟다
─오 밝아짐
“램프 켤 정신 없을 것 같으니 제작사에서 일부러 밝기를 높여 준 모양입니다.”
─ㅋㅋㅋㅋㅋ
─이런데서 발휘된 친절함;;
─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소리 근데 진짜 개시끄럽다
─끄아아아아아아
─그/아/아/앗
은우는 천연 동굴처럼 울퉁불퉁한 바닥과 벽면, 천장을 보며 속력을 잠시 낮췄다. 천장이 과하게 낮은 부분은 허리를 낮추고 기어야 했지만, 암세포가 들어오기 힘들 거라 생각하니 조금 괜찮아 보였다.
그렇지만 암세포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 좁은 구멍을 또 통과한 것이다. 암세포가 아니라 슬라임인 모양이다.
그러나 암세포의 이동 속도는 캐릭터의 최대 달리기 속도와 비슷했고, 중간중간 나오는 좁은 구멍들은 암세포의 진행을 늦춰 주었다. 은우는 수월히 녀석을 따돌렸다.
그리고.
“……?”
─?
─??
─ㅋㅋㅋ?
비밀 통로의 끝, 열린 문 너머에서 은우는 반투명한 인간형 미지의 존재와 맞닥뜨렸다. 열린 벽 바로 앞에 있던 거라 뭐, 피할 수도 없었다. 문이 자동으로 열린 거라 램프는 켤 타이밍도, 아이템을 소환할 시간도 없었다.
침입자아아아!
“참 재수도 없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방송천재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우는 이마를 짚었다. 데자뷔가 느껴지는 건, 이런 황당무계한 순간이 앞서 꽤 많았기 때문일까.
딸랑딸랑딸랑-
두다다다다다-
끄아아아아아아!
어디야! 어디냐고오!
히히, 히히히히!
미지의 존재들이 몰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은우는 십자가를 들었다. 신성한 빛이 흐르는 십자가는 오직 한 개만 소지할 수 있으니.
그것을 부러트린 순간, 하얀빛이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버그라고 하지 말아 주십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연타 홈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발 버그라고 하지 말아 주십쇼…….”
그는 아무리 봐도 저택이 아닌 곳에 떨어졌다. 말하자면 맵 밖. 아무것도 구현되지 않아서 새하얀 그곳에.
─버그갓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놈의 버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