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66화 (166/233)

166화

[도시 한복판에서 지나가는 행인을 공격하는…….]

[비이상적인 폭동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으며…….]

[현 시간부로 국가비상상태를 선포…….]

TV 화면이 노이즈와 함께 바뀌었다.

[국민 여러분,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셔야 합니다. 가장 먼저 문을 잠그시고, 창문이나 베란다 등 외부에서 침입을 시도할 수 있는 모든 곳들을 단단히 틀어막으십시오. 그리고 당국의 구조를 기다리십시오. 그때까지 절대 밖으로 나가선 안 됩니다. 그것들에게 물린다면…….]

뚝.

라디오 역할을 하던 TV와 몇 개 켜 두지 않았던 전등이 갑작스레 꺼졌다. 그러자 쏴아아아아 하는 빗소리가 귀를 때렸다.

“흠.”

누군가가 콧바람을 내고, 어둠은 곧 옅은 빛에 흑백 명화 같은 잿빛으로 변화했다. LED 랜턴이 켜진 것이다.

랜턴을 방 한가운데 둔 이는 TV를 비롯해 냉장고, 컴퓨터, 전등을 달칵거렸다. 그러나 켜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희미하게 비치는 창가는 나무판자로 꽁꽁 막혀 있다.

손가락으로 뺨을 톡을 톡톡 두드린 이는 옷장 앞에 섰다. 캐비닛이 끼익 소리와 함께 그 내용물을 내보였다. 그렇지만 끌려 나오는 건 단 하나뿐이니.

천끼리 맞부딪칠 때 나는 특유의 사륵거림이 귀를 간지럽히고, 그림자가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넉넉한 외투는 희미한 그림자마저 비대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지이익-

마지막으로 지퍼가 올라갔다. 소리 없는 걸음은 방문으로 향하되, 책상 쪽을 거쳐 간다.

잿빛 손이 책상 위 권총과 가방을 집었다.

“Fighter, Oximated, World's gonna get up and see.”

Nina Sublatti의 ‘Warrior’가 나지막한 중얼거림으로 퍼져 나갔다. 퇴색된 빛깔의 집안과 어울리듯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걸음은 어느새 무언가가 많이 설치된 현관에 다다라 신발을 꺼내 신었다. 발목까지 오는 워커는 광택이 돌지 않는 검정색이다.

그리고 신발 안에 발뒤꿈치를 밀어 넣는 데 성공했을 때, 잠시 굽었던 허리가 천천히 펴졌다. 늘어진 손은 은근히 옆으로 뻗어 가 벽면에 기대 둔 야구 배트의 손잡이를 쥔다.

휘익-

야구 배트가 빙글 가볍게 돌며 어깨에 얹어졌다. 손가락은 내려 쓴 마스크를 올리고 후드를 끌어 올렸다.

“Violence, set it free. Wings are gonna spread up.”

작게 흥얼거리는 목소리는 약간의 경쾌함과 다량의 서늘함을 가지고 있으니.

마스크와 후드 사이 눈동자가 가늘게 웃는 순간, 쿵 소리와 함께 화면이 검게 변했다.

[BIOTERRORISM PartⅠ]

하얀 글자에는 피가 묻어 있다.

▣ 166. 재수도 없지

「역시 은우 씨는 공포 게임도 잘하시네요! 그렇지만 일방적으로 당하는 건 은우 씨랑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공포 게임은 웬만해서 빼는 게 어떨까요? 절대로 제가 무서워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은우는 하하 웃으며 전화한 박기철을 떠올리며 그가 준비한 게임을 보았다. 팀장님이 공포 게임은 싫다 하시니 뭐, 어쩔 수 있나.

좀비가 튀어나오는 서바이벌 호러 게임이라도 하는 수밖에.

─바하

─오프닝을 실사로 찍엇네;;

─하....바테는 못참지

─2연속 곰보겜

─바테가 공포겜은 아니지ㅋㅋ

─바테다~

사람들이 낄낄 웃고, 그는 스타트 지점을 둘러보았다.

대충 연립 주택의 최상층 같은데, 복도 디자인과 꾸밈새가 한국과 거리감이 있다. 미국 회사에서 만들어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탓이다.

“다른 집들은… 안에 아무것도 없네요.”

주인공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부터 계단까지 가는 길은 그럭저럭 깨끗하다. 그 사이에 위치한 방들 역시 가구 하나 없이 휑했다. 창문만 나무판자로 꽉꽉 막혀 있을 따름이다.

“계단도 못 쓸 것 같습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사물들로 꽉 막혀 있었다. 방들이 가구 하나 없이 비어 있던 걸 생각하면 그곳에서 가구를 가져와 차곡차곡 쌓아 둔 모양이다.

“방비가 엄청 철저합니다. 하루 이틀 만에 완성한 수준이 아니네요.”

가구를 쌓아 둔 것도 모자라 함정도 설치해 놨다. 누가 저걸 치우고 올라오겠냐마는, 그렇게 꾸역꾸역 올라온다 한들 함정만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은우는 캐릭터의 준비성에 고개를 주억였다. 다른 건 몰라도 괴이한 바이러스가 퍼져 문명이 괴멸한 세계관이란 건 알고 골랐으니. 그런 세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답다.

“그럼 내려갈 길은…….”

그는 유일하게 열려 있는 문을 발견했다. 캐릭터가 사는 방도, 그가 확인을 위해 열어 봤던 방들도 문이 죄다 닫혀 있었건만, 단 하나만은 처음부터 문이 열려 있었다. 마치 그곳으로 가란 것처럼.

“저기가 나가는 길 같으니 다른 방부터 먼저 수색하고 가겠습니다.”

─ㅋㅋ템은 못참지ㅋㅋㅋ

─이분은 템도 안 쓰면서 수색은 열심히 해ㅋㅋㅋ

─수색가즈아아아ㅏㅏ

─템.절.대.챙.겨

은우는 그 방으로 나가는 대신 다른 방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모든 가구를 계단에 갖다 둔 건 아닌지, 썰렁한 방에도 가구 몇 개는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가구 위에는 아니나 다를까, 신문이 있었다.

『정체불명의 감염증 확산』

『폭동의 원인은 감염증?』

『현실판 좀비? 식인을 부르는 병』

발견한 신문은 3개였으나, 주제는 같았다. 정체불명의 감염증. 좀비가 나오는 게임임을 알고 시작한지라 새삼스럽진 않았다.

“신문 날짜가 2017년이네요.”

─두둥

─와,,,몇년 전임?

─배경부터가 현대는 아니다 싶었음ㅋㅋ

─2017년 ㄷㄷ

무려 35년 전이다. 은우는 혀를 내두르며 열린 문을 통해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다른 방과 달리 가구가 많았는데, 놓인 형태가 꼭 저지선을 만든 것처럼 보였다. 책장만 옆으로 쓰러트린다면 완성될 저지선이 2개, 아니 3개였다.

“아무래도 여기로 나가는 것 같습니다.”

유일하게 나무판자가 덧대지지 않은 창문 옆에는 책장이 있었다. 앞선 저지선 2개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쓰러트려서 침입을 방어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거의 결벽적일 정도의 방비였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해야만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단 뜻도 된다.

은우는 창문을 넘어갔다. 캉! 얇은 철판 밟히는 소리가 빗소리 속에서도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세상은 끝났다.〛

타다다닥!

빗줄기가 얼마나 굵은지 방수 재질의 옷 위로도 비 맞는 느낌이 전달됐다. 그는 후드를 좀더 끌어 눈가에 비가 튀기지 않도록 했다.

〚감염자라 뭉뚱그려 부르는 그것이 세상을 끝냈다.〛

계단참과 계단 전체가 철판으로 만들어진 까닭에 걸을 때마다 찰캉찰캉 소리가 났다. 직통 계단은 아닌 듯 3개의 칸을 내려가자 들어갈 만한 창문이 나왔다.

가운데 있던 창문은 막혀 있었으니, 이쪽으로 가라는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자들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은우는 잠겨 있는 문을 열었다. 그가 일정 부분을 통과할 때마다 울려 퍼지는 내레이션은 우울한 이야기를 담담히 토로하고 있다.

〚나는 멸망 속에 있다.〛

2개의 문을 통과한 끝에 은우는 반대쪽 주거지에 붙어 있는 피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중간에 있던 정식 계단은 당연히 가구들로 막혀 있다.

“주인공, 엄청나게 철저하네요.”

─좜비를 막기 위한 발악

─이 정도는 되야 생존자가 될 수 있다 이거야~

─피난 계단만 멀쩡해 내놧네;;

『목표│발전기 고치기』

피난 계단을 통해 골목길로 내려오자 퀘스트가 떠올랐다.

『이놈의 고물 발전기는 비만 오면 먹통이 되는군. 괜히 다른 건물에 만들어 놨나? 아냐. 소음 때문에라도 멀리 두는 게 맞아.』

내레이션과 함께 알림 창이 떠올랐다. 이거라면 목소리가 겹쳐도 상관없다. 애초에 캐릭터 목소리가 따로 있어서─시작할 때 목소리 설정이 가능했다─, 겹쳐도 뚜렷하게 구분되지만 말이다.

“발전기가 어디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갑시다.”

이런 류의 게임들이 으레 그러듯, 이 게임 역시 골목 한쪽에 물건을 쌓아 둠으로써 나갈 길을 한정해 두었다. 유도를 따라 걷다 보면 분명 길이 나올 것이다.

은우는 발전기를 찾아 빗속을 걸었다. 벽에 부딪힌 차량이나 건물 벽면이 무너져 쌓인 벽돌 따위가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아 길 찾기는 걱정할 필요 없었다.

출입이 가능한 건물도 없어 대로만 편하게 걸으면 되는 셈이다.

“한적하네요.”

─감염자도 안 보이누

─다 정리해둿나 봄

─깔-끔

─구울왕이 나타낫으니까 다 쫄튀한 거지;;

─상급자 on

이 게임의 트레이드마크인 좀비, 게임 내 단어로는 감염자라 부르는 그것조차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은신처 방비를 빡빡하게 해 둔 주인공 성격상 이 근방의 위험거리는 다 처리해 둔 게 분명하다.

캬르르륵!

구역의 너비가 너비인 만큼 다 처리하긴 어려웠던 모양이다.

은우는 바닥에 엎어져 있던 사람 하나가 일어나는 걸 보았다. 온몸에 상처가 가득하기도 해서 시체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피는 멎되 피딱지가 앉진 않은, 시퍼런 피부엔 노란 종기가 울룩불룩 솟아 있는 시체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다리 한쪽을 절고 있어 그다지 위협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감염자│정체불명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자아를 잃은 존재들. 대체로 모든 감각이 둔하지만, 시끄러운 소리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조용히 걸어 그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다.』

“딱히 달리진 못하는 모양입니다.”

─다리 다쳐서 그래용

─상처 멀쩡한 애들은 뛰기도 함니다

─감염됏을 때의 상태에 따라 다름

“아, 그렇습니까?”

은우는 권총을 쓸까 하다가 시야 한쪽에 표기된 총알 개수를 보고 포기했다. 위험한 상황도 아니거니와 상대는 한 마리였다. 그것도 못 뛰는.

그는 대신 가방에 걸어 둔 야구 배트를 들었다. 못질이 되어 있는 야구 배트는 원초적인 무기지만 굉장히 위험해 보인다.

퍼억!

감염자의 머리가 한 방에 깨져 나갔다.

“손맛 괜찮네요.”

은우는 배트를 붕붕 휘둘렀다. 배트를 3초 이상 응시하면 떠오르는 알림 창에는 배트의 설명과 살짝 줄어든 게이지 따위가 보인다.

“게이지가 있는 걸 보니까… 내구도가 있는 모양입니다.”

─하드모드라서 그래요ㅋㅋ

─무한칼이 최곤데;;

─내구도 진짜 훅훅 까인다

내구도가 있는 걸 안 이상 근접 무기도 함부로 쓸 수 없다. 가능하면 전투 자체를 회피하면서 가야 할 성싶다.

“인벤토리 같은 것도 있습니까?”

─네

─ㅖ

─ㅖ

─있어요

─ㅖ

은우는 내친김에 인벤토리도 열어 보았다. 인 게임에선 아직 인벤토리 여는 법이 안 나왔지만, 그에겐 시청자란 치트가 있다.

그는 등에 멘 가방에 손을 가져다 대면 인벤토리가 열린다는 정보를 획득했다.

인벤토리 창은 꽤 컸다. 그리고 복잡했다.

일단 그것은 인간의 윤곽선만 표현된 그림 하나, 가방의 윤곽만 딴 그림 하나, 심박수 하나로 이뤄져 있었다. 그림은 제쳐 두고 심박수만 보자면, 아무래도 체력이나 상태를 표기한 것 같다. 아래 ‘정상’이라는 표시가 떠 있었다.

그림으로 돌아간다면, 그건 꽤 현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일단 가방 안에는 격자 칸 20개가 있고, 가방의 좌우에도 격자 칸이 존재했다. 그중 오른쪽에는 야구 배트가 채워져 있다. 가방 안에는 수리용 도구라며 무려 4칸을 차지한 아이템과 탄약─한 칸─이 있었고.

인간 실루엣에도 격자 칸은 존재했는데, 허벅지 옆, 양팔 옆 등 따위에 있었다. 허벅지 한쪽에 권총이 있는 걸 보니 아마 장비한 무기가 아닐까 싶다.

“뭔가… 많네요.”

─ㅋㅋㅋ

─나 저거 처음에 개헷갈렷는데

─처음엔 좀 보기 힘들지...

─나중엔 저거 늘리려고 발악이잖어;;

격자 칸이 많은 걸로 보아 무기가 다양하게 나올 것 같다. 또한 아이템당 무조건 한 칸만 차지하는 건 아닌 걸로 보아, 가방 정리 또한 중요할 테다.

“일단 계속 가겠습니다.”

잠깐 시스템 확인으로 길이 새긴 했지만, 그들의 진정한 목표는 발전기 찾기다. 은우는 제작진의 안배를 따라 차근차근 길을 나아갔다.

발전기는 조금 떨어진 건물 옥상에 있었다.

캬르르륵.

튜토리얼 부분이라 그런지 감염자들은 한 마리씩 다양한 패턴으로 나왔다. 기어오는 형, 달려오는 형, 근접할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확 일어나는 형, 덮치는 형 등등.

빗소리에 그의 발소리가 묻혀 어지간한 건 다 무시할 수 있었지만, 일부는 전진을 위해서 죽여야만 했다. 은우는 그 과정에서 맨손으로도 감염자를 죽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여러 번 때려야 죽는다고 해도 불가능한 것보단 낫다.

“아이템이 또 나왔네요.”

일부 감염자는 죽였을 때 반짝거리는 빛을 발했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조사 표시가 뜨며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었다.

『제작│특정 자원은 아이템 제작에 쓰입니다. 쓸모에 따라 제작하십시오.』

『조합│특정 자원끼리는 조합이 가능합니다. 여러 자원을 조합해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십시오.』

“제작이랑 조합이 있네요.”

─킹작 갓합;;

─자원 파밍on

─인벤토리 관리 개힘듬

─ㅇㅈ...

─천으로 붕대 만들 수 잇어용

─켄한테,,,붕대가 필요할까?

채팅 창을 보지 않아도 기본 제작법, 조합법은 알 수 있었다. 알림 창에 예시가 그려져 있던 덕이다.

천을 제작에 쓰면 붕대를 만들 수 있고, 천과 알코올을 조합하면 화염병을 만들 수 있다. 은우는 시험 삼아 화염병을 제작해 보았다. 인벤토리에서 자원 하나를 선택하면 제작, 조합, 버리기 따위가 뜨기에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방 안에 화염병 아이콘이 뿅, 생겨났다.

『장비│무기나 회복 아이템 중 일부는 장비가 가능합니다. 장비하고자 하는 아이템을 드래그하십시오.』

튜토리얼이라 그런지 툭 하면 알림 창이 뜬다. 은우는 알림 창이 시키는 대로 가방 속 화염병을 인간의 허벅지 옆쪽 칸에 드래그했다. 하얀빛과 함께 허리춤에 화염병 하나가 생겨났다.

“음, 그러면 화염병 하나 더 제작했을 땐 어떻게 됩니까?”

─가방에 생겨요

─가방쪽에 추가됨

─화염병 칸 많이 먹어서 그때그때 만드는게 좋아요

─가방

“감사합니다.”

대충 시스템을 알겠다. 겹쳐서 보관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아직 시험해 봐야겠지만.

은우는 목을 살살 쓰다듬다가 일단 사다리부터 올랐다. 발전기가 있는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피난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만 했다.

피난 계단이 옥상과 직통이 아닌 까닭에, 은신처 건물에서 그랬듯 건물을 관통해서 상층 피난 계단을 찾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감염자가 다수 나왔지만, 그것들의 말로는 야구 배트에 박살 나는 것이었다.

“문 잠가 두는 것도 모자라 감염자들이 피난 계단 못 쓰게 창문을 책장으로 막아 놨네요.”

─ㅋㅋㅋㅋㅋ

─진짜 철저 그 자체다;;

─캬아....

잠가 둔 문이야 바깥에 걸려 있는 열쇠로─캐릭터가 일부러 거기 둔 것 같았다─따고 들어왔다. 그렇지만 책장은?

“역시 밀어야겠죠.”

책장이 창문을 가리고 있으면 당연히 치워야 한다. 은우는 책장을 옆으로 밀었다. 넘어트리면 대참사이므로, 질질 끈다는 느낌으로 힘을 주었다. 책장이 밀리며 길을 내주었다.

─근데 왜 발전기를 따로 둔 거임?

─왜 집에 안 둿지

─멍청아 소음

─아까 말해줫잖아;;

─ㅉㅉ 난독들

“아까 소음 때문에 발전기를 집 건물에 못 둔다 했습니다. 감염자들이 소리 듣고 몰려왔다가 발전기 부숴 먹을 걸 대비한 거 같습니다.”

캉-

창문을 넘자 쇳소리가 빗소리를 뚫었다. 은우는 서둘러 발전기를 찾아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있는 창고에 발전기처럼 보이는 거대한 기계가 있었다. 거기서 시작된 줄은 은신처 건물까지 은근히 연결되어 있다.

시청자들이 그 부분을 보고 뭐라 했지만, 관련 지식이 없는 은우로선 딴 세상 이야기다. 그는 그냥 게임이 시키는 대로 발전기에 다가가기나 했다.

컷신이 시작되었다.

크르르릉-

“연료도 거의 다 떨어졌네.”

주인공은 혀를 차며 창고 안 연료통들을 하나하나 뒤져 보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꽤 먼 거리에서부터 굉음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캐릭터는 깜짝 놀라 창고 밖으로 나갔다. 옥상이라 그런지 빗줄기를 감안해도 꽤 먼 거리까지 볼 수 있었는데, 그런 그가 목격한 건 차량의 헤드라이트였다.

비틀거리는 차량은 엄청난 소음으로 감염자들을 불러내고 있었다.

“씨발.”

이러면 돌아가는 길이 험난해진다. 캐릭터가 욕설을 중얼거릴 때, 차량은 하필이면 그가 있는 건물에 처박혔다. 사람 세 명이 비틀거리며 차량을 빠져나왔다.

그러곤 차량을 뒤쫓아 온 감염자 무리에 화들짝 놀라며 피난 계단을 타고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보지 않아도 저들이 이 옥상까지 감염자를 이끌고 올 게 뻔했다.

“재수도 없지!”

캐릭터는 다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곤 피난 계단을 타고 올라온 인간들과 마주쳤다. 기나긴 복도를 두고 마주한 얼굴이었다.

“사, 사람?”

가장 덩치가 크고 나이가 많은 자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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