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82화 (182/233)

182화

─켄하

─목소리 뭔가 들뜨셧네

─기분 좋은 일 잇으셧?

─안녕하세요!

─오늘따라 밝아보입니다! wwww

“아, 티가 납니까?”

은우는 사람들의 말에 목소리를 더듬었다. 방송에 대한 어중간한 마음가짐이 생각보다 그의 큰 고민거리였나 보다. 사람들이 저렇게 알아챌 정도면.

─우울햇는진 모르겟는데 기분 좋은 티는 확 난다ㅋㅋ

─설마 애인 생김?

─우리 비수를 두고 애인을 사귀엇다고?

─대장! 솔로나라를 탈출해버린 거야?!

─켄이 우릴 배신햇을 리 없음 아무튼 없음

─커퀴벌레는 구독 해제합니다

“애인 생긴 건 아닙니다만… 다들 왜 제가 못 사귈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못 사귀는데 니가 사귀면 안 되지

─휴... 하마터면 구울왕 잃을 뻔 햇네^^ 영원히 충성합니다!

─근데 켄 정도 되는 사람이 애인 못 사귀는 것도 큰 일 아니냐ㅋㅋㅋ

─켄도 애인을 못 만들면,,, 그보다 더 떨어지는 비수에겐,,,,,, 아앗!

─아냐 구울왕이 삼천궁녀 하는게 분명함

─삼천궁녀ㅇㅈㄹㅋㅋㅋㅋㅋㅋ

은우는 사람들의 드립을 보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비수들이란 참…….

“그냥, 요즘 답보하는 것 같아서 고민을 좀 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방송 관련 문제는 시청자들도 관련이 있다. 은우는 순순히 토설했다. 저들은 충분히 들을 자격이 있다.

─답보?

─그래서 결론은?

─답보상태엿나,,,?

─시청자 성장세가 주춤하긴 햇지

─너무 커져서 그런 거 아님?

“결론이라……. 일단 초심을 되찾기로 했습니다.”

사실 될 것 같아서 어버버 시작한 느낌이라 초심이랄 것도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땐 약간의 절실함이라도 있지 않았던가? 은우가 말하는 초심은 그런 것이었다.

“그것 외엔 없습니다. 생각해 보니까 제가 해 보고 싶은 게 뭔지 제가 모르고 있더라고요.”

모름지기 승리는 나를 알고 적을 아는 것에서 온다. 비록 적이 없는 상태지만, 그렇다고 나를 아는 걸 포기해서야 될까?

그는 헬멧의 뒤통수를 살살 쓸었다.

“개인적인 고민이니 이 부분은 해결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방송은 어제 ‘네 개의 가지’ 종료했던 부분에서 잇겠습니다.”

─아잉 더 말해줘잉

─사적인 고민이라서 캐기 뭐하긴 하다...

─그치만 궁금해

─내 스트리머의 사적인 비밀?! 루삥뽕

“네, 안녕하세요.”

은우는 속속들이 들어오는 이들을 반기며 방송 시작했다.

게임을 켜니 보인 건 내륙으로 막 발을 내디딘 상태의 시야다.

은우는 그 상태에서 마저 스토리를 이어 갔다. 불발된 거래에 엘프가 상당히 불만을 표했으나, 은우의 무력 앞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으로 느껴지는 건… 아무래도 나이안 같네. 이 찌릿찌릿함은 그밖에 없으니까.】

【성질이 다소 급하긴 하지만, 그의 가호는 상당히 유용할 것이다. 서두르도록 하지.】

【이 도시를 기점으로 북동쪽에서 느껴져. 아무래도… 귀네드의 영역으로 넘어가야겠네.】

이그리트때 그랬듯 샤를로테는 지도에 나이안의 위치를 표기해 주었다. 동쪽 제도의 중간보다 약간 위였다. 다르게 말하면 더베드와 귀네드 간의 국경 지대였다.

【…놀랍군. 귀네드가 이렇게까지 성장했단 말인가?】

샤를로테가 경악했던 부분을 이그리트 역시 놀라워했다. 다만 반응은 살짝 달랐는데,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그 남자가 귀네드의 왕이 됐다면, 충분히 그럴 수밖에. 그렇지만 달가운 소식은 아니군.】

그러나 예상했다는 것과 별개로 해당 이야기가 썩 마음에 들진 않는 모양이다. 이그리트는 착잡함을 표했다. 기억이 없다는 설정인─실제로도 아는 게 없다─은우로선 감 잡기 힘든 반응이었다.

단순히 더베드가 밀려서 저런 감상을 토로하는 걸까? 정령이?

하기야 샤를로테는 과거 더베드에 대해 약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보단, 그냥 그땐 이 땅이 멀쩡했는데 귀네드가 차지하고 나서 망했어! 쪽에 가깝긴 했어도.

어쨌거나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은우로선 알 방도가 없다. 과거를 물어보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대답을 주질 않으니 당연하다.

결국 정령 회수─스토리 진행─만이 유일한 기억 회상 방법이었다.

“그대에게 목숨을 빚졌군……. 상식적인 선에서라면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지. 참고로 나의 목숨은 왕의 것이니, 목숨을 달라는 소원은 들어줄 수 없네.”

“오오, 엽마꾼님. 엽마꾼님 덕분에 제 아이들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흐흑, 가여운 것들. 그간 얼마나 괴로웠을지.”

“설마 인간의 도움을 받게 될 줄이야……. 고맙다. 인간은 정말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존재지만, 너는 좀 다르군. 아니, 애초에 인간이 맞긴 한가……? 뭐, 은인이 된 이상 아무래도 좋아.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다.”

대신 은우는 이동하면서도 갖가지 퀘스트를 놓치지 않았다. 대체로 이동 경로에 있는 서브 퀘스트였는데, 그중 하나는 메인 퀘스트였다.

“요즘 굉-장한 엽마꾼이 나타났다던데. 인간인데도 비인간 같아 보이는, 아주 이상한 엽마꾼이 말이야. 뭐… 그래도 우리 단원을 살려 준 건 고마워. 달리 원하는 거라도 있어?”

국경 근처에 상주하고 있는 의적단의 막내 구해 주기가 바로 그것이었으니.

그들은 막내를 구해 준 대가로 그의 밀입국을 도왔다. 중간에 국경 수비대와 충돌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은우가 나서서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충고하는데,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어지간히 험악한 게 아니야. 더베드도 마물과 징집에 시달리는 중이지만, 그쪽은 더해. 참다못해 백성들이 도적으로 돌변한 상태라니까.”

의적단의 두목은 거기까지 말하곤 깔깔 웃었다. 본인도 참다못해 도적으로 돌변한 부류였으므로, 그 점을 지적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브란 왕도 어지간한 폭군이었는데, 귀네드의 마스 왕은 그보다 더한 미친 왕이라니! 예나 지금이나 고달픈 건 우리들이라니까.”

【귀네드의 상황이 안 좋다니… 미친 왕이라니…….】

【…속단하긴 이르다, 샤를로테.】

【그래…….】

의적단 두목이 남긴 말에 두 정령은 작게 속닥거렸다. 영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나 키워드 대화를 시도한 지 얼마 안 됐으므로 다시 하긴 애매했다. 무엇보다 대답이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지도 않고, 귀네드에 대해 물어봤자 입을 꾹 다물 것 같다.

“됐고, 마지막으로 더베드로 돌아오고 싶어지면 저기 저 사람에게 말해. 그럼 밀입국을 다시 도와줄 테니까.”

어쨌거나 은우는 의적단의 도움으로 귀네드의 영토까지 넘어왔다. 돌아갈 길까지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완벽한 서비스였다.

“이제부턴 귀네드에서 활동해야 하네요. 귀네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데 과연 어떨는지.”

─저 맵을 진짜 다 도는 거구나...

─마 이게 오픈월드다

─귀네드 상황 얼마나 안 좋은 거임?

─안 가본 남쪽도 궁금한데....

“제가 모든 지역을 가 볼 수는 없는 만큼, 궁금한 지역에 대한 탐험은 스스로 플레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관도를 따라 터벅터벅 걸었다. 아직 바람이 모이는 곳을 모르니 관도를 따라 걷는 게 최선이었던 거다.

지도에 그의 위치가 표기되긴 하지만, 숲은 마물이 많으니. 오픈 월드답게 탑승물을 탈 수도 있으나, 숲을 관통하던 중에 마물의 습격으로 탑승물이 죽는 경우도 있다. 괜히 객기 부리다 뚜벅이가 되는 것보단 나았다.

“으아아아악!”

물론 관도라고 마물이 안 나오는 건 아니다. 더베드뿐 아니라 귀네드도 그런 모양이다.

“시작이 좋다고 말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넌 못- 지나간다!

─시작부터 마물이 나오네

─재수봐ㅋㅋㅋ

─이벤트 on

누군갈─NPC지만─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건지, 마물과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나쁜 건지 모르겠다.

은우는 대충 잡아 온 사슴의 배를 걷어찼다. 한번 타면 계속 탈 수 있는 말과 달리 내리면 도망가 버리는 생물이지만, 숲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죽어도 별 상관 없다는 점에서 곧잘 타고 다니는 녀석이다.

스릉-

그는 연이어 무기로 클레이모어를 들었다.

「‘заявление об отставке’ 님이 ‘74,350원’ 투척!

만-족」

─짧고 굵다ㅋㅋㅋㅋ

─와 러씨아 좌 개오랜만

─쓰앵님 돈은 생기셨읍니까...

자신이 신청한 무기를 계속 써 줘서 그런가, 오랜만에 러시아 시청자가 큰돈을 던져 주었다. 딱히 돈을 바라고 그런 건 아니지만, 나쁘지 않았다.

저 돈이 그가 미래를 결정할 여유를 가져다줄 거란 걸 형한테 배웠으니까.

“꺼져!”

사슴이 겅중겅중 뛰며 관도를 내달렸다. 같은 길 위,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점점 커지는 것들은 사람을 습격하는 마물들과 마물에 대항하는 인간이다.

은우는 그 상태에서 검을 들었다. 이런 거검을 사슴의 뿔에 걸리지 않도록 휘두르려면 약간의 요령이 필요하지만, 그거야 어렵지 않다.

끽?

사슴이 고블린을 스쳐 지나가듯 달렸다. 그 과정에서 타이밍 맞게 휘둘러진 거검은 두 마리의 고블린을 베어 넘겼다.

마상 전투 시 공격력 보너스를 받는지라 둘 다 단칼에 처리되었다.

끽끽끽!

졸지에 혼자 남아 버린 고블린이 땅을 발로 찼다. 물론 은우는 사슴의 뿔을 잡고 신호를 줌으로써 부드럽게 유턴하는 중이다.

퍼억!

마지막 남은 고블린이 날아갔다. 시체가 반짝 빛나는 걸 보니 잡템이 나온 모양이지만, 굳이 주울 필요는 없다.

팔아도 얼마 안 하는 잡템보다는 내렸다가 도망갈 사슴이 더 귀했다.

“가, 감사합니다!”

은우는 클레이모어를 한 손으로 돌리는 묘기를 보여 주며─한 손으로 휘두를 수도 있다. 느릴 뿐이지─사슴을 멈추었다. 사람을 뒤에 태울 수 있을 정도의 거체가 적당히 멈추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이건 제 성의입니다.”

그 상태에서 NPC가 다가오며 선물을 주었다. 드롭으로 꽤 자주 보는, 그러나 상점에서 사기엔 은근히 비싼 체력 회복 포션이었다.

─아 이속포션주지

─이속포션이 개꿀인데

─필요도 없는 걸 주네

시청자의 말마따나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몰라도 은우에겐 별 필요 없다. 그러나 보상을 거절하는 것 따위 제작진은 넣어 두지 않았다. 은우는 포션을 받았다.

NPC의 표정이 조금은 나아졌다.

“그럼 안전한 여행 되시길.”

행상인으로 보이는 NPC는 짐을 다시 고쳐 맨 후 그 자리를 떴다. 그러면서 바람결에 흩어지도록 남기는 한 마디는 유독 은우의 귀를 건드리는 성질이었다.

“하, 마스 왕께선 뭘 하시는지……. 브란 왕 때가 차라리 더…….”

여기서 더 말을 걸어 봤자 저것에 대한 답은 주지 않는다. 은우는 그것을 알기에 NPC를 붙잡기보단 그를 토대로 추측성 발언이나 내뱉었다.

“마스 왕이라면… 귀네드의 왕이었었죠.”

─ㅇㅇ

─브란왕 폭군 아니엇음?

─헐 폭군을 그리워할 정도면 대체 뭔 일이 있는 거임

─마스왕 뭐하냐 진짜

귀네드에게 복속된 지 3년. 저 위쪽 지방으로 가면 8년이라 들었다. 그런데도 더베드 시절을 그린다? 심지어 이 시대 땐 그렇게까지 국가에 대한 소속감이 없을 텐데?

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럴 땐 둘 중 하나죠, 보통.”

그는 사슴의 배를 살짝 걷어찼다. 사슴이 펄떡이며 출발했다. 저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통치는 비슷한데 애국심이 넘쳐나서 과거를 그리워하든가, 새로운 웃대가리가 엉망이거나.”

멀리서 봐도 상당히 허름하고 너절한 마을이었다.

“의적단의 충고가 괜히 있었던 건 아닌가 봅니다.”

▣ 182. 교수님

〚세상은 언제쯤 평화로워질까. 아니,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그럴 리가. 이대로는 영원히 오지 않을 테지.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백성들이 더는 무고한 피를 흘리지 않게, 부정부패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반드시.〛

〚설마 네 소중한 친우이자 주군이 될 자가 계속해서 전쟁을 겪게 만들 셈은 아니겠지? 전쟁을 몸소 겪은 너라면 내 말을 이해할 거라 믿는다. 이게 옳은 일이다. 망설이지 마라.〛

〚상냥한 내 친우여, 나는 너를 배신하지 않는다. 그 어린 날에 강제로 행해진 맹세일지언정 이 땅에서 나를 진심으로 대해 준 건 오직 너뿐이었기에. 그렇지만 그 남자를 보고 있거든 때때로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 정말, 이것이 최선인 걸까?〛

〚나와 그위디온은 나라를 바꿀 것이다, 더베드의 개야. 왜,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어리석구나. 그런 네게 기대를 거는 나도 어리석긴 마찬가지고. 전하라, 그대의 왕에게. 다음 대 왕위 계승자가 부디 두 나라 간의 지겨운 소모전을 그만두길 바란다고!〛

〚귀네드의 적자를 죽여라. 그것이 혹시라도 귀네드의 지고왕이 되어 귀네드를 바꾸기 전에. 적국을 부강하게 만들기 전에.〛

〚이것은 배신이 아니다. 감히 역심을 품고자 함도 아니다. 다만 감히 판단을 내리건대, 이것이 옳은 길이다. 이것이 나의 군주와, 나의 나라와, 나의… 많은 것을 위한 길이다. 우리는 더 나은 길을 걸을 수 있다.〛

기억 회상은 네 명의 정령을 찾아 헤매는 동안 착실히 이루어졌다. 하필이면 이그리트를 제외한 3명의 정령이 귀네드의 땅에 있어 각고해야 했지만, 그거야 게임이니 당연한 고난이었다.

그 과정에서 기억의 주인에 대해서도 밝혀졌는데, 관련 인물은 세 명이었다.

먼저 전 더베드의 지고왕, 브란.

그는 기억의 주인에게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주종 관계였다. 대우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정령들이 싫어하는 이유도 이와 관계 있어 보였다.

두 번째로 브란의 후계자이자 현 더베드의 지고왕, 마나워딘.

강제로 충성 맹세를 했는데도 아끼는 걸 보면 보통 사이는 아닐 것이다. 회상에서 대놓고 나오진 않았지만, 브란의 입을 통해 자주 언급됐다. 정령들은 마나워딘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좋게 보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현 귀네드의 지고왕, 마스.

왕이 되기 전 쌓은 관계지만, 친한 사이라고 하기엔 문제가 있다. 아무렴 일국의 후계자와 적대 국가의 첩자─추측이다─라는 간극이 있지 않나. 심지어 브란 왕은 기억 주인에게 마스를 살해하란 명까지 내렸고.

문제는 그래. 기억 속 주인이 마스에게 감화되어 브란 왕에게 항명했다는 점일까. 기억 속 인물이 비장하게 뇌까린 말을 통해 내린 추측이지만 아마 확실할 터였다. 정작 정령들은 끔찍하게 싫어했지만 말이다.

이제 남은 부분은 어쩌다 마스 왕과 만났는지, 항명한 이후는 어떻게 됐는지, 은우가 조종하고 있는 이 몸뚱이와는 어떤 관계인지다.

“마지막 정령을 만나면 그 부분도 밝혀질까요?”

─그럴듯

─스토리가 궁금해서라도 무조건 진행하게 만드는 게임...

─그래서 싸가지가 인기 많지...

“궁금해서라도 빨리 찾아봐야겠습니다.”

은우는 마지막 정령, 흙의 탄이 있다는 장소를 보았다. 샤를로테와 이그리트, 새로 깨운 나이안과 마나카가 입을 모아 말해 준 장소다.

《스카이 캐슬 지상 천공섬》

천공섬은 말하자면 귀네드 제2의 수도였다. 귀네드가 동쪽 제도─더베드의 영토─를 내침할 때 전초기지로 삼았던 장소에서 시작되어, 영토를 확장한 지금 가장 발전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천공섬이 발전한 이유에는 물론 전초기지였다는 사실만 있진 않다. 천공섬이 제2의 수도란 위상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천공섬이 천혜의 요새여서다.

“공중에 떠 있는 땅이라 흙의 정령을 봉인하기에 정말 완벽해 보입니다.”

─땅속성은 뭐 힘도 못 쓰겠는데

─저긴 대체 어떻게 떠있는 거임?

─와 개멋잇다

─기술력 ㅈㄴ 와리가리하네ㅋㅋㅋ

─저긴 어케 들어가누....

하늘에 떠 있는 섬. 이 얼마나 침공하기 힘든 조건인가. 물론 가공삭도가 끊기면 완전한 고립 상태가 될 터다. 그러나 다르게 말하면 저 도시는 가공삭도만 지켜내면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었다. 괜히 발전한 게 아니다.

“문제는 저길 어떻게 가느냐인데.”

은우는 스카이 캐슬 지상부를 둘러보았다. 가공삭도 부근에는 성벽이 한 겹 더 지어져 있고, 그 근처는 경비병들이 엄중히 지키고 있다. 그 안에 출입하려면 깐깐한 신분 검증을 필요로 했다.

『새로운 임무 획득!

하늘로 퍼 올려진 대지

천공섬으로 들어갈 방도를 찾자』

“여기서도 정보 조사가 먼저네요.”

딱 봐도 저 공중 섬에 가야 할 것 같지만, 일단 맵에 표기된 범위는 지상부까지였다.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와 근데 여기도 개판이다

─사람들 얼굴 완전 죽상인데

─피죽도 못 먹은 듯

“그러게요.”

은우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지상 쪽 캐슬을 돌아다녔다. 역시나 사람들 사정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빈민촌은 분명 아닌데,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 절반이 빈민인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여기도 사뭇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분명 기억에 따르면 마스는 기억 주인을 항명하게 만들 정도의 선군이었다. 왕위 계승은 못 했어도 그 자리에 오르기만 한다면 어질고 현명한 왕이 될 게 분명한 성품인 것이다.

그러나 이 도시를 비롯해 귀네드가 차지한 영토를 보고 있자면, 아무리 봐도 좋은 왕은 아닌 것 같았다.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귀네드의 병사를 처리한 것이 다섯 번이니 증거는 충분했다.

폭군이라는 설이 도는 것이나, 대외적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건 마법으로 인체 실험을 하고 있어서라는 둥, 소문만 봐도 마찬가지다.

“이것도 마지막 정령을 깨우면 알 수 있을까요?”

은우는 힐끔 정령들을 보았다. 그 정령들은 이 도시에 발을 내디딘 후로 침묵에 잠겨 있다. 엉망으로 변한 땅을 보고 실망을 금치 못하는 느낌이었다. 정확힌 이 땅을 이렇게 만든 귀네드의 왕에게.

“추가된 키워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뭐가 달라졋을라나

─정령쉑들 한 번에 시원히 말해주면 뭐가 덧나나;;

─켄님은 키워드 쉽게 찾아서 좋음...

주황색 느낌표를 찾는 김에 그는 정보 조사를 시도했다. 마나카를 찾고 나서 한 번도 안 했으니, 분명 추가 키워드가 나왔을 터였다.

“마스 왕.”

은우는 귀네드의 왕에 대해 질문했다. 저번에 물었을 땐.

【마스 왕……. 적통임에도 왕가에서 내쫓긴 비운의 남자란다. 내쫓긴 이유는 그에게 하늘의 저주가 내려서였지만, 그 하늘이 누군지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지.】

【그럼에도 그의 재능은 눈이 부실 정도라서, 그 모든 걸 뒤집고 정당히 이어 받았어야 할 자리를 되찾은 남자다. 비록 그 과정을 우리가 다 보지는 못했다마는.】

라고 샤를로테와 이그리트가 이를 갈면서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해 줬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마스 왕……. 난 잘 모르겠구나. 그 남자가 왕위를 이었는데도 왜 나라가 이 상태인지. 우리가 기억하는 그 남자는 절대로 이럴 리 없는데.】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 뻔한 거 아냐? 애초에 그 새끼만 아니었어도 그녀가…….】

【엄밀히 따진다면, 그건 그 남자 때문은 아니다.】

【흥. 그래서 그 새끼, 봐줄 거냐?】

【…그럴 리가.】

【…짐작이 가는 데가 없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아직 네가 들을 만한 건 아닌 것 같구나. 나이안의 말마따나 사람이 변할 수도 있는 노릇이기도 하고.】

“대사가 달라지긴 했지만 역시 자세한 건 말 안 해 주네요.”

비우호적임에도 객관적으로 말하려는 말투는 여전하다. 그 외에 추가된 정보는 딱히 없는 것 같고.

은우는 목덜미를 쓸며 다음 단어를 툭 뱉었다. 기억에 있었으나 왠지 나중에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지금까지 묵혀 둔 이름이었다.

“그위디온.”

그 단어를 내뱉는 순간 정령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말수가 적어 구출한 뒤로 목소리를 들어 본 적 없는 마나카까지 그러했다. 성질이 급하다 못해 다혈질인 나이안은 아예 얼굴을 구기고 있다.

【그 새─】

【그는!】

이그리트가 나이안을 막고, 샤를로테가 나이안의 외침을 묻으려는 듯 언성을 높였다. 물론 나이안이 뭔 말을 하려 했는지 들을 사람은 다 들은 상태다.

【귀네드의 지고왕, 마스의 사촌이란다. 나라를 바꾸고자 했던 그 남자의… 유일한 조력자지. 내쫓긴 그 남자를 따라 성 밖으로 나온 신하이기도 하단다.】

샤를로테는 그것으로 설명을 그쳤다. 그렇지만 그녀의 눈가에 내비치는 건은 명백한 분노였다.

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위디온이 열쇠인가 봅니다.”

─그위디온이 누구임?

─회상에서 한 번 나왔던 것 같은디

─싸크리트 나와봐

「‘정보’ 님이 ‘1,000원’ 투척!

그위디온은 실제 마비노기온에서 나오는 인물로 마스 밥 마소누이의 조카이자 더베드의 왕 프러데리를 죽이는 인물이다」

─지식인 ㄱㅅ

─고마워요 지식인!

은우는 어김없이 등장한 지식인을 보며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본래 신화에서도 협잡꾼, 모사꾼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면 앞으로 나올 이야기는 보지 않아도 명약관화다.

과정이 어찌 되었는지는 몰라도, 기억 주인이 죽은 이유는 그위디온이다. 아마 그위디온이 기억 주인에게 누명이라도 씌운 게 아닐까?

그 뒤로 몇 가지 키워드를 더 던져 보았지만, 그다지 쓸모는 없었다. 더구나 주황색 느낌표를 띄운 이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어차피 진행하면 밝혀질 것, 더 이상의 조사는 불필요했다.

은우는 주황색 느낌표를 띄운 이에게 다가갔다. 문득 알게 된 건, 지금 대화하려는 대상이 예전에 한 번 본 얼굴이란 것이다.

“설마, 켄 님이십니까?”

─저 소시지는?

─베이컨이다!

─베이컨 아재 ㅎㅇ

─베하

그는 귀네드로 넘어온 후 만난 상인, 베이건이었다. 비엔나소시지를 연상시키는 통통한 몸매와 이름 덕분에 별명이 베이컨인 사람이기도 하다.

“정말 켄 님이셨군요! 여기서 다시 뵙게 될 줄이야!”

그는 귀족에게 납품할 물건을 도적 떼에게 빼앗겨 곤란을 겪던 사람으로, 그것을 되찾는 데 은우가 도움을 주었다.

이 나라의 도적은 백성이나 다름없고, 상인은 대체로 백성들의 고혈을 통해 돈을 버는 자들이라지만, 베이건만은 달랐기 때문이다.

악독한 상인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베이건은 백성들을 위하기로 유명했다. 그런 그의 물건을 약탈해 간 자는 같은 백성마저 괴롭히는 악랄한 집단이었고.

그런 이유에서 사정을 알게 된 주인공─은우─는 흔쾌히 구원에 나섰다. 그게 불과 어제(현실 시간) 일이었다.

“네? 천공섬에 들어갈 방법이요? 으음… 그건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만…….”

베이건은 꼬불꼬불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곤란함을 표했다. 하기야 아무리 은인이라도 천공섬 안에 데려다 달라는 부탁은 퍽 어려울 터였다.

“그렇다면 이건 어떠십니까?”

그는 대신 제의를 했다. 귀족에게 바치기로 한 물건이 마침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서, 그것을 대체할 물건을 가져오면 안에 들여보내 주겠다는 것이다.

“아르라우네라는 약초가 사람을 회춘시켜 주기로 유명합니다. 마침 성주는 외모에 관심이 많고, 곧 대규모 연회가 열릴 예정이지요. 아르라우네를 가져다주면 최소한 교역권은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모르는 이를 섬 안으로 집어넣는다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교역권을 따낼 물건을 가져온다. 실로 상인다운 거래였다.

─이쉑 착한 놈이라더니ㅋㅋ

─도움 받아놓고 이따위로 구누,,,

─아 지건 마렵네;;

─이건 무역스킬 안 통하나

“그만큼 위험한 일이니까요. 검증되지 않는 이를 안으로 넣어 준다는 건.”

천공섬에 넣어 주는 거지 그곳에 위치한 성까지 들어가게 해 주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천공섬에 올려 주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건 사실이었다.

만에 하나 들여 준 이가 테러라도 저지르면, 피할 길이 없는 천공섬 특성상 엄청나게 피해를 볼 테니까.

자기 탓임을 걸리지 않아도 손해를 볼 거고, 걸리면 최소 전 재산 몰수다. 베이건 입장에선 충분한 도박이었다.

“거기에 저희, 보석 찾으려면 분명 난장판일 거 아닙니까. 아닐 수도 있지만.”

─고건 맞는 말이구연

─그건 그렇네;;

─이왕 부려먹히는 거 다 부수죠ㅋ

사람들이 낄낄 웃었다. 완전한 손해는 아니란 걸 알고 보이는 반응이 저것임을 감안하면, 참 성격들도 나쁘다.

“무역 스킬이 안 통하는 건… 퀘스트라서 그렇지 않겠습니까? 만약 통하면 무역 안 찍은 분들이 너무 불리해질 텐데요.”

─너

─님

─<<<<<<

─<<<<<

─7시 방향

─<<<

참고로 말하지만 은우는 생활 재능 중 여행과 사냥 쪽에 재능을 몰빵했다. 야장, 연금, 재단은 장비 만들 일 없으니 챙기지 않았고, 무역은 자주 뭘 사지 않을 테니 찍지 않았다.

반면 여행은 낚시 캠프파이어, 감정, 휴식 따위의 유용한 것만 가득했다. 사냥은 야생동물 조련 하나만 보고 찍었고.

다 이유가 있는 선택이었다.

“아르라우네는 라보르자 산맥에서 발견된다 합니다. 소문으론 그곳에 마녀의 연구실도 숨겨져 있다는데… 뭐, 그건 소문일 뿐이니까요. 높으신 분들이 이미 수색한 후라는 설도 있고.”

【…라보르자 산맥인가.】

【운명이라면, 참 짓궂은 일이야.】

【운명은 얼어 죽을 놈의 운명.】

【나이안, 입.】

【…….】

“…정령들 반응이 영 아니군요.”

마침 베이건이 마녀의 연구실까지 언급한 걸 보아, 뭔가 숨겨져 있긴 한 모양이다. 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래도 베이건이 말한 마녀가 기억 주인 같은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쳇....이래서 눈치 빠른 스트리머는 싫다니까

─딱 봐도 그분이죠?

─ㅋㅋㅋㅋ무조건임

─빼박이지 이 정도면

“역시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네요.”

어찌 됐건 샤를로테는 그녀의 할 일을 이행했다. 지도를 펼쳐 헤라 봉우리의 위치를 알려 준 것이다. 동쪽 제도의 최북단이었다.

“저긴 왜 만들어 놨나 했더니 퀘스트 때문에 가야 했네요.”

─제작진이 의미없이 저만한 크기를 만들지 않는다 이거야

─무조건 가게 한다 이 말이야

─뭔가 땅이 있다? 가게 만든다

지금 있는 곳도 북쪽이지만, 서쪽제도와 연결되는 구간이라서 산맥과는 거리가 있다. 위치상 동쪽으로 더 가야 했다.

역시 아무렇게나 맵을 크게 만들지 않는다. 은우는 베이건에게서 돌아섰다. 그러자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새로운 임무 획득!

하늘로 퍼 올려진 대지

아르라우네를 찾자』

【…아르라우네는 굉장히 귀한 식물이란다. 그것을 찾으려면 몇 달은 걸리지도 몰라.】

갱신과 동시에 샤를로테가 운을 떼었다. 그녀의 말에 시청자들은 ‘몇 달이나 걸리는 걸 찾아오라 한 거임?’ 따위의 말을 토로했다.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가, 아니 우리가 마침 아르라우네 하나의 위치를 알고 있단다. 조금은 위험하고… 굉장히 비밀스러운 장소지. 어쩌면 이미 사람들이 가져갔을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한번 가 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단다. 그곳으로 갈 생각이 있니?】

【…거길 데려갈 생각인가.】

【…쯧.】

샤를로테의 말에 이그리트는 고개를 숙연히 숙였다. 나이안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고, 과묵한 마나카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어딘데, 그곳이?”

“가야지 그럼.”』

“어딥니까, 그곳이.”

【…라보르자 산맥의 최정상, 하브라의 봉우리.】

그녀의 손짓과 함께 목표 범위가 또 한 번 지정되었다. 바람이 모이는 곳에서 지도를 개방해 둔 덕에, 그곳이 가장 높은 봉우리임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등산 좀 해야겠습니다.”

─아!!

─부장님!!

─워크샵의 악몽이....;;

─교수님ㅠㅠ 주말 등산만은ㅠ

─아 겨슷님..!!

등산의 악몽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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