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병사들이 떠들던, 차출된 이들이 실험장에 끌려갔다는 소문은 반쯤 사실이었다. 1문과 2문 사이 중간 보스라는 지하 감옥 간수장을 상대한 결과 알아낸 정보였다.
【이 개 같은……! 진짜 미쳤나!】
귀네드는 무려 ‘저주를 통한 신체 강화병 양성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간수장이 그걸 알고 있던 건 단순히 연구 재료로 쓰인 게 감옥 내 죄수들이어서였고.
문제는 2문과 3문 사이 중간 보스─왕실 마법사─까지 잡은 결과 추가로 획득한 정보였다.
【그녀는 저주의 해주법으로 같은 저주를 골랐었지. 저주의 반작용을 이용해 건강을 좀먹는 저주를 건강회복에 쓰이는 것으로 바꾸려 했어.】
【그런 그녀의 연구가 이런 데 쓰이다니…….】
마법사가 토로한 사실 중에는 이 연구의 바탕이 되는 지식이 십 년 전 마녀의 연구실에서 발견된 자료라는 게 있었다.
십 년 전, 마녀의 연구실. 이 두 개의 키워드가 조합됐을 때 그 마녀가 누구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다 죽여 버릴 거야!】
【…나도, 찬성이야…….】
이 게임에서 저주는 본질적으로 마물에 기반을 둔 기술이었으니. 안 그래도 불쾌한 연구에 그들이 아끼던 존재의 연구까지 끼어들어 갔다. 심지어 그 결과물은 신체 강화랍시고 인간을 반쯤 마물화시키는 것이었다.
정령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흠.”
물론 프러데리의 유산을 귀네드 녀석들이 이상한 데 써먹든, 파기하든 은우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한 연구도 아닌데 기분 나쁠 이유가 없다.
“일반 병사도 꽤 피통이 컸는데, 더 커지겠네요. 최대한 무시하고 가긴 하겠습니다만… 인챈트라도 쓸까요?”
─ㅇㅇ 씁시다
─인챈트 하면 댐지 훅 뜨나?
─ㄴㄴ 화속성 아니면 그닥
─이건 쓰자
─솔직히 잡몹 잡는데 넘 오래걸리긴 함
은우의 관심사는 딱 그것뿐이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돼 버렸다는 게 아쉬운 일이지만 말이다.
3문 너머, 강화 병사가 절반이라는 왕궁의 심처가 개방되었다.
▣ 188. 진짜 최종 보스전
“크으, 너는… 아무것도… 모른…….”
마스 왕의 방을 지키는 기사단장이 스러졌다. 그 역시 신체 강화랍시고 마물화된 상태라 죽이는 데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드디어 끝인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요.”
─ㄹㅇ 왕성 개넓어,,,
─마지막 기사단장 목숨이 거의 바퀴수준
─그래서 켄이 먹었잖어
─ㅅㅂㅋㅋㅋㅋ
─.....
은우는 숨을 내뱉으며 이제 마지막 장소에 섰다. 마스 왕의 거처였다.
“문이 굉장히… 비루합니다. 역시 그위디온이 최종 보스인 것 같죠?”
─무조건이지ㅋㅋ
─아 그위디온도 목숨 개질길 듯;;
─마스왕쉑 면상이나 함 보자
마스 왕의 거처는 왕성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기엔 너무도 초라한 문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껏 지나온 연회장이나 식당, 집무실 따위의 문에도 금과 보석을 처발랐던 걸 생각하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은우는 그런 문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대로 열어젖혔다. 샤를로테도 그렇고, 시스템이 여길 가리키는 이상 가야 할 곳이 맞겠거니 하는 심정이었다.
자연스럽게 육신의 통제권이 뺏기고, 시선이 뒤로 후욱 빠졌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창가로 새어 들어온 햇빛이 휘날리는 먼지들을 하얗게 비추는 것이었다. ‘얼마나 청소를 안 했으면’이라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이곳이 왕의 방이란 게 다시 한번 다가온다.
“또 나를 조롱하러 온 것이냐……? 쿨럭, 쿨럭.”
끼익, 하고 열리는 문 사이로는 쉰 목소리가 컥컥거렸다. 그렇지만 그것은 연약하게만 들리지 않았다. 색색거리는 호흡 속에서도 본인이 강골임을 알리는 존재감 탓이다.
“너 따위에게 굴하지… 크헙.”
정면에, 가로로 놓인 침대에선 끊임없이 자기 피력이 흘러나오니. 누워 있던 이가 다급히 숨을 삼켰다. 이어지는 건 심각한 기침 소리였다.
주인공은 그것을 들으며 조용히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
그 조용함 속에서 마스 왕은 이질감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마스 왕의 붉은 눈동자와 플레이어의 녹색 눈동자가 서로를 담았다.
“넌…….”
【마스 밥 마소누이…….】
【…이렇게나 달라졌나.】
다섯 정령이 주인공의 뒤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방안으로 퍼졌다. 그러자 마스 왕의 눈이 커졌다. 지금까지 정령들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마스 왕만은 정령을 볼 수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저 새끼. 꼴 좋다, 진짜.】
【나이안.】
【흥.】
【…화내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는 모습이구나.】
정령들이 떠드는 사이, 주인공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눈빛으로 마스 왕 앞에 섰다. 그가 내려다본 마스 왕은 참 볼품없었다.
관리되지 않은 머리카락은 길게 자라 뱀처럼 이불 위를 기어 다녔고, 얼굴은 피골이 상접해 홀쭉하다.
형형히 빛나는 적안만이 그나마 그의 위엄을 살리고 있었다.
“잠깐, 넌 대체 누구냐. 누군데 정령을…….”
저주로 인해 움직이지도 못한 채 마스 왕은 발악하듯 소리쳤다. 금방이라도 숨넘어갈 듯한 모양새였으나, 절박함이 엿보였다.
주인공의 눈이 잠시 감겼다.
나이안처럼 꼴 좋다 말할까, 혹은 샤를로테처럼 화낼 가치도 없다 말할까.
시청자들이 술렁거리게 될 정도로 길지만, 복잡한 심경을 정리했다 여기기엔 너무 짧은. 그 눈이 뜨인 건 딱 그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주인공의 손이 ‘불완전한 염려’를 꺼내 들었다.
“대체 누구냐 물었다!”
그는 마스 왕의 외침은 무시한 채 왕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던 탄이 조심스레 나섰다. 그의 몸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돌은 왕의 손가락 끝을 깔끔히 베어 낸다.
“이게 무슨 짓…….”
토톡.
마스 왕의 피는 보랏빛 액체에 닿아 느리게 퍼져 나갔다. 고작 두세 방울이었음에도 번져 나가는 혈흔은 연금약액 전체를 진하게 물들일 기세다.
“줘야 할까.”
불완전한 염려의 뚜껑이 닫히고, 그 병이 살짝 흔들렸다. 그동안 내밀어지는 속삭임은 주인공의 것이다. 정령들과 마스 왕의 입이 본능적으로 다물렸다.
“주지 말아야 할까.”
그는 고개를 들어 창가와 천장의 딱 가운데 부분을 응시했다.
“이걸 당신에게 주면, 그 입으로 말했던 모든 것을 지켜 줄까? 왕위에 올라 많은 것이 달라지고, 바뀌어 버린 지금도?”
“너…….”
그건 일기장에서 봤던, 프러데리와 마스가 나누었던 대화의 일부라. 마스 왕의 눈동자가 커졌다. 제3자의 시점으로 보고 있던 은우에겐 그것들이 너무 잘 보였다.
“난, 당신을 살릴 수 있어.”
“프러데리……!”
“살릴 수 있지만…….”
주인공은 고개를 다시 내렸다. 투명한 눈동자는 마스 왕의 비참한 모습을 거울처럼 비췄다. 밀색 속눈썹이 다시금 내려앉았다.
“하, 설마 여기까지 도달했을 줄이야.”
밀색 속눈썹이 다시 말려 올라가고, 주인공의 몸이 틀어졌다. 쾅, 하고 열린 문 사이로는 그위디온이 기사들을 동원한 채 서 있다.
【그위디온……!】
【이번엔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
【…나도, 함께야.】
다섯 정령이 이와 손톱을 세우고, 그위디온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 프러데리. 누군가는 마녀라 부를 여자. 그녀도 딱 너 같았지. 정령들을 데리고 다녔어. 끔찍하게도!”
그위디온은 이를 갈며 지팡이를 들고 그대로 땅을 내려찍었다.
설마 보스전을 연달아 하나? 그런 생각을 떠올릴 즈음이면 지팡이가 찍힌 지점으로부터 검은 점이 생겨난다.
마치 그림자와 같은 점이 그 크기를 불렸다.
“마스 왕은 아직 죽으면 안 돼. 암, 안 되고말고! 모두의 원망거리가 되기 전까진 절대 죽을 수 없어!”
그것은 주인공이 서 있는 지점까지 집어삼켰다. 다만 세상을 어둡게 만들진 않았는데, 꼭 점프한 사람을 줄넘기가 스쳐 지나가듯 사방을 한 번 휩쓸고 사라진 덕이다.
칠흑이 한번 훑고 간 자리는 더 이상 마스 왕의 방이 아닌 연회 홀이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순 없다!”
그 와중에 신기하게도 그위디온과 그 사이의 거리가 늘어났다. 그위디온이 근접 직군은 확실히 아닌 걸 생각하면 좀 아쉬운 일이었다. 근거리였다면 시원하게 달려 나가서 목을 쳐 버리면 될 일이니까.
반면 마스 왕은 당연하게도 같이 이동되지 않았다. 같이 이동됐다면 걸리적거렸을 테니 이건 좀 다행이다.
“당장 침입자를 죽여라!”
그사이 컷신이 끝나 신체 통제권이 돌아왔다. 주위를 살짝 둘러보면 사위를 포위하며 적들이 달려오는 걸 볼 수 있다.
죄다 풀플레이트를 차려입고 마물화까지 진행된 기사들이다.
─너무 멋없는 시작인데
─보스전 연달아 이어지는 거 실화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보스가 배려가 없네;;
─설마 바로 하겠음? 쫄 부르겠지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그렇게까지 멋없는 시작은 아니지만, 그위디온이 준 무게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좀 남는다. 마스 왕 방을 지키고 있던 친위단장과의 전투와 최종 보스전이 바로 이어지는 거야 그에겐 별 상관 없다만.
【우리도 돕겠어.】
【돌아온 힘은 얼마 되지 않지만…….】
【가호의 재사용 속도가 빨라질 거란다.】
다섯 정령은 시야에 방해되지 않도록 위로 물러나면서도 말들을 남겼다. 그 말은 실제로 한 치의 틀림이 없어, 재사용까지의 시간을 알려 주는 게이지가 2배 빨라졌다.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은우는 그 게이지들을 보다가 무기나 들었다. 지금까지 한 모든 게임을 통틀어 몇 번 써 본 적 없는 레이피어다.
시청자가 따로 신청했다면 모를까, 그가 먼저 레이피어를 쥐어 본 적은 없다.
이유가 있다면 글쎄. 레이피어가 베기보단 찌르기에 유용한 디자인이라서? 검끼리 맞부딪쳤을 때 비교적 폭 좁은 검신이 부러질 수 있어서?
아니면 그의 복부를 꿰뚫었던 배신자의 무기가 레이피어였기 때문에?
“싸우는 수밖에.”
레이피어를 본다고 해서 특별히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하진 않는다. 그런데도 그의 무의식으로는 레이피어를 멀리해 왔다.
참수하는 것이 버릇인 그의 입장에서 베기에 부적합한 레이피어를 쓰지 않는단 건 변명이다. 검끼리 맞대기 어렵다는 것 또한 변명이다. 현실이 아닌 게임에선 그 점들을 죄다 무시하니까.
“주우욱어어어어!”
단지 그런 것일 테다. 아무 생각 없이 쓰다가도, 깊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분명 슬퍼질 테니까.
목소리를 외면했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흠.”
은우는 핏발 선 눈에 더불어 근육이 우락부락한 기사들을 보다 버릇처럼 물러났다.
내구도가 없는 게임이라 부서질 걱정은 없다지만, 그냥 그렇게 싸워야 할 것 같았다. 레이피어로 챙챙거리는 것보단 물 흐르듯 피해 가며 내지르는 게 그림이 살기도 하고.
방송 반년 차의 판단이었다.
“인챈트 하겠습니다.”
그는 검에 전격 속성을 부여했다. 대미지 상승보다는 공격 속도 상승을 노린 인챈트Enchant였다.
검에 찌릿찌릿한 전깃불이 튀기 시작했다.
─크 개간지
─레이피어 그렇게 낭창낭창하진 않넹
─갑옷 틈새에 찔러넣기 가나요ㅋㅋ
─겜 안 해본 냄시 난다
“음… 갑옷 사이로 찔러 넣는 거야 저는 그렇게 씁니다만.”
은우는 자세를 잡았다.
“원래 레이피어는 갑옷을 상대하기에 적격인 검이 아닙니다.”
그야 워낙 능력이 출중하니 갑옷 이음새로 칼날을 쑤셔 넣거나 하지만, 본래 레이피어는 그런 식으로 쓰는 게 아니다.
판금 갑옷을 상대할 때 레이피어를 드는 건 그가 멍청이거나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일 가능성이 높다. 게임에서야 개나 소나 다 들고 다니지만.
“그랬다간 검 부서집니다, 진짜로. 그러니 조심하세요.”
은우는 발을 틀어 몸의 방향을 바꿨다. 간발의 차로 기사가 휘두른 대검이 그의 발치를 때렸다. 발을 틀지 않았다면 반으로 갈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반으로 쪼개지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거였다.
그의 레이피어가 발진했다. 손목에 약간의 회전이 들어가며 적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발달한 승모근을 갑옷으로도 채 가리지 못해 참 두꺼워 보이는 목이다.
─게임인데 부서지겠냐고ㅋㅋㅋㅋ
─검 부서지는 건 어케 알어ㅋㅋ
─이 이 쉑 켄 모르냐? 켄은 다 알아
─왕이 그렇다면 그런 거야!
“왜 모릅니까.”
챙!
왼손은 보조용 단검 스틸래토로 적의 검을 막았다. 뾰족한 검신을 타고 검이 흘러내리는 것에 맞춰 검을 돌리면, 적의 검이 가드와 블레이드 사이에 끼기 전에 녀석을 밀어낼 수 있다.
은우는 팔로 원을 그리듯 적의 검을 튕겨 냈다. 그 순간에도 오른손은 적의 목을 찢으며 레이피어를 밖으로 빼내고 있다.
“으아아!”
인간형 적이라면 으레 가지고 있는 기합형 소리가 울려 퍼지며 대검의 공격을 예고했다.
은우는 스태미나가 소모되지 않는 선의 빠르기로 스텝을 밟았다. 타닥 소리가 날 것 같은 발놀림이 경쾌하게 대지를 지났다.
서걱!
물론 그냥 회피만 해선 재미가 없다. 은우는 몸을 뱅글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일반 레이피어에 비해 칼날의 폭이 넓고 검신이 짧아 베기용으로 제법 쏠쏠한 이 검은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듯 적을 쉽게 베어 냈다.
한쪽 어깨만 가리는 숏케이프가 화악 펼쳐졌다가 다시 오므라든 것은 여담이다.
“여러분만 모르는 겁니다.”
─비수들 무식쟁이 됨
─뭐냐 왜 우리만 모르냐
─아냐 켄이 똑똑한 거야
─그게 더 슬퍼....
적들과의 거리를 아슬아슬하게 잡으며 피할 때마다 기사들의 얼굴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아래턱이 발달해 튀어나오고, 코까지 오는 송곳니로 인해 입을 다물 수 없는 얼굴들이다.
충혈된 눈이나 피부에 인 반점은 그들의 상태가 영 좋지 않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하필이면 키가 맞아서 그 모든 걸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왜 오크가 안 나오나 했더니;;
─아 렬루 오크 닮앗누ㅋㅋㅋ
─??: 더러운 호드 놈!!
─ㅅㅂ 비열한 얼라겠지
“오크라……. 그렇게 보이기도 하네요.”
은우는 폴짝 뛰어 내려꽂히는 메이스를 피했다. 이어 가장 외곽에 있던 적이 창을 찌르면 그것을 자연스럽게 피하며 역으로 창대를 붙잡았다.
푸욱!
검날이 적의 가슴을 뚫었다가 빠져나오며 폼멜 부분으로 또 다른 적의 눈알을 찍었다. 대미지는 소량 달았지만, 판정상 경직 정돈 줄 수 있었다.
은우는 창대에 맞댄 등 뒤로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상체를 낮췄다. 허공으로 무기가 쓱 지나가고, 은우의 몸은 창대 아래로 휙 넘어갔다.
그러곤 창대를 넘자마자 몸을 일으켜 세우며 왼손의 스틸레토를 반 바퀴 돌려 역수로 쥐었다. 그것을 빠르게 휘두르면 투구와 상체 갑옷 사이 목을 스틸레토가 정확히 꿰뚫을 수 있다.
현실이었다면 이걸로 사망 확정이다. 실제론 피통이 살짝 단 정도에 그치지만.
“피통이 너무 많은데.”
인원도 무려 일곱이고, 한 방 넣을 때마다 1/20은 다는지 의심이다. 이조차 인챈트한 거라는 걸 생각하면 참 엄청난 딜량과 피통이었다.
이러지 말고 마법으로 때려 넣는다면 아마 1/8은 달 것 같은데…….
「‘형’ 님이 ‘50,000원’ 투척!
마법 없이 가자」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시청자가 보고 싶다는데. 절대 돈 보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은우는 왜 사람들이 자본주의에 찌드는지 알 것 같은 심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비록 탐욕에 의한 것이나, 그 검로만은 올곧도록 깨끗하여 적의 심장을 쉽게 움켜쥐었다.
사각!
부드러운 스텝으로 적의 뒤를 잡은 뒤 오금을 베고 그 검로를 계속 이어 나가며 적의 공격을 튕겨 낸다.
그런 다음 스틸레토로 겨드랑이나 팔 관절 안쪽을 꿰뚫으면 기분상으로나마 제법 시원하게 대미지를 넣을 수 있다.
은우는 얄밉도록 거리를 유지하며 일곱 기사를 차근차근 처리했다. 한 놈만 집중적으로 패기보단 골고루 때렸던지라, 총 시간은 오래 걸려도 녀석들이 골로 갈 땐 연달아 갔다.
“강화 기사를 다 해치우다니, 제법이구나……!”
그쯤 되니 뒤쪽에서 관망하던 그위디온도 경악했다. 말투는 과장된 연극조이나, 은근슬쩍 뒤로 물러나는 게 썩 제 생각대로 흘러가진 않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네까짓 게 이곳을 살아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은 마라!”
그위디온은 그대로 후다닥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최종 보스란 녀석이 도망을 칠까?’라고 생각하기엔 ‘무신: 고려 제일검의 탄생’이라는 좋은 예시가 있었다.
은우의 눈에 약간의 짜증이 어렸다.
“이쪽 보스도 쫄 러쉬려나 봅니다.”
─빤스런;;
─빤스런은 못참지
─팬티 내리고 튀어!
─학살좌가 간다!
은우는 얕은 숨을 내뱉으며 그위디온을 쫓았다. 당연히 그위디온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강화 병사들이 통로에 쫙 깔려 있다.
기사라면 모를까, 병사. 잡몹 중의 잡몹에게 낭비하기엔 그와 시청자들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
“마법으로 뚫겠습니다.”
은우는 서둘러 캐스팅을 한 뒤, 체인 라이트닝을 날렸다. 마법 재능을 전부 개방한 뒤라 그런지 중급 정도에 속하는 체인 라이트닝은 3초의 시간 끝에 발사됐다.
통로에 붙어있던 병사들 전원이 감전된 건 말할 것도 없다.
은우는 그런 그들을 발로 걷어차며 길을 뚫었다. 예기치 않을 땐 통로 벽을 밟고 뛰기도 했다.
일반 달리기에 비해 벽에 붙어 달리는 것은 더한 스태미나 소모를 일으켰지만, 거리를 벌리기엔 충분하다. 정 병사들이 거치적거리면 뒤로 돌아간 뒤 파이어볼을 날려 주면 그만이었다.
“막아! 저 괴물을 막으란 말이다!”
─추하다 그위디온아
─그하다 추위디온아
─ㅋㅋ맞말추
─보스라면 정면빵!
─도망 개잘가는디
병사들을 처치하는 데 몇 분이 걸리든 플레이어가 그위디온을 쫓아갈 수 있게 장치를 해 둔 모양이다.
달리기에 스태미나가 소모되는 것까지 고려한 속도로 그위디온이 멀찍이 도망쳤다. 코너를 트는 옷자락 따위가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게 얄밉기도 하고 참 귀찮기도 하다.
“멋지군! 이곳까지 온 게 허세는 아니었단 거겠지? 그렇지만 네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중간중간 그위디온이 함정을 발동했다는 것이다. 플레이어의 체력과 아이템 소비로는 일등 공신이나, 적어도 위엄이 완전히 죽진 않았다.
함정 발동을 통해 그를 붙잡아 두고 스스로가 마법을 쏘아 보내기까지 했으니까. 정확힌 그 함정 근처에 달리 마련해 둔 마법 도구를 이용한 것이지만 말이다.
콰직!
물론 위엄이 산다고 해서 귀찮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은우는 강화 병사로 모자라 마물까지 토해 내는 함정을 박살 냈다.
한 나라의 왕성에 이런 것들을 심어 둘 생각과 실제로 행할 배짱이 있다니. 그위디온도 어떤 의미론 범상치 않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왕성을 장악했겠지만 말이다.
은우는 서둘러 그위디온을 쫓았다. 그위디온이 함정을 발동시킨 이후부터 복도는 미로가 된 상태다. 어느 순간부턴 바닥에서 안개가 피어올랐다.
“죽음은 네 발목을 잡고, 승리는 나의 손을 들어 줄 것이다!”
안개를 타고 그위디온의 음침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또한 하나의 힌트였다. 안개 때문에 그위디온의 옷자락을 놓쳤다 싶으면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달려가면 되므로.
7분이 살짝 못 되는 추격전 끝에 그들은 한 방에 들어섰다. 마치 강당처럼 보이는 홀이었다. 너무 넓지도, 그렇다고 좁지도 않다.
촤르륵-
뒤에서 철문이 내려앉았다.
“너 따위가 나의 오랜 야망을 막을 순 없다!”
슬슬 도망을 포기했는지 그위디온은 대놓고 대항을 택했다. 그를 마주 보고 서 있는 얼굴은 제법 흉흉하다.
하기야 10년을 공들인 계획이 웬 침입자에 의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이라면 화가 안 날 수 없다. 그 계획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말이다.
“이 나라는 나의 것이다!”
그위디온의 포효와 함께 진짜 최종 보스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