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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201화 (201/233)

201화

은우는 아무것도 아닌 말에 울음을 왈칵 터트린 남자를 보며 당황했다. 다른 나라를 보지 않은 상태라 한국 한정으로 한 말인데, 그를 향한 신뢰가 왜 이리 높은지 모르겠다.

진짜 장인인가? 왜 이렇게 그의 무기를 담당하던 개발자들이랑 닮았지.

“제가 정말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 같은 재능이 그렇게 쉽게 보일 것 같진 않습니다만…….”

전생 같은 세계였다면 감히 영웅의 자리에 올라도 좋을 재목이다. 그리고 영웅이란 건 본디 쉽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요컨대, 그를 배신했던 이들과 동급의 재능이니까.

물론 그렇게 굉장한 재능이 있다 해도 기본적으로 발휘할 틈이 없다면 별 소용이 없다. 그의 도움을 받은 레리에게 당한 것만 봐도 딱 답이 나온다.

뭐,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재능이란 건 동체 시력 같이 단순한 신체 재능만을 뜻하는 게 아니니까.

타고난 신체 능력뿐 아니라, 그 신체 능력을 잘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필요한 부분에 힘을 할애하고 불필요한 부분에선 힘을 아낄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다만 일반인은 그걸 못 하고, 빌리는 그게 가능하다. 근데 빌리의 경우는 그 방법을 ‘모른다’. 그게 빌리의 수준을 현격히 낮췄다.

“지구상 인구가 워낙 많으니 없진 않겠군요. 그렇지만 보기 힘들 겁니다.”

더구나… 실전이 아닌 게임으로 재능을 먼저 발휘하다 보니, 습관이 잘못 든 것도 문제다.

은우가 몸을 다루는 기본기부터 마스터하고 기교를 부린다면, 이쪽은 기교부터 마스터했다. 게임에는 스킬이 있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기교에 눈이 돌아가 있으니 실력 발휘가 제대로 될 리가 있나.

기본기 없는 기교는 주춧돌 없는 기둥일 뿐이다. 결국 재능을 썩히는 꼴인 셈이다.

이건 빌리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검은기사 때 마주했던 이를 생각하면 외국도 비슷할 것 같은데…….

아니, 검은기사는 기교 거의 없이 순수 피지컬로 싸우는 편이니 그나마 낫다. 그가 직접 본 것이 아니니 확신할 순 없겠다마는.

그러나 확신이 없다 해서 기대하는 건 아니다. 외국에 재능 있는 이가 있더라도 빌리와 동급일 것이므로.

빌리가 검은기사 같은 걸 하는 스트리머가 아니라서 확실한 비교군이 없긴 하나, 그의 눈썰미가 아직 바닥까지 꼬꾸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검은기사를 해 보시고 세계 기록과 비교해 보시면 체감이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기교만 마스터한 상태로 기본기 게임을 하는 셈이니 초반엔 꽤 죽을 거다. 그러나 저 인간의 재능이라면 금방 교정할 거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버릇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겠지만, 게임 정돈 클리어할 수 있겠지.

“제가 간섭할 영역은 아닌 것 같으니 말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은우는 시계를 보았다. 9시. 방송 끝난 시점으로부터 벌써 한 시간 반이 지난 상태다.

왜인진 모르겠으나 운 빌리의 얼굴이 울기 전보다 후련해 보이고, 레드바가 부탁한 말 전달까지 해치웠다. 이 정도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저녁밥보다 디저트를 먼저 해치웠지만, 그렇다고 저녁을 안 먹는 건 싫다. 은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빌리가 살짝 당황한 얼굴로 따라 일어났다.

“그, 켄 님.”

“네.”

은우는 그보다 반 뼘은 작은 빌리를 슬쩍 보았다.

“제가… 정말로 재능이 있다 생각하십니까……?”

그는 그 물음에 고민하지 않았다.

“절 보고 막연히 안 된다 생각한 게 아니라, 명확히 격차를 인지하고 절대 안 되겠다 느끼신 거 아닙니까?”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 당연한 게 보통은 아니라더군요.”

이제 할 말은 정말 끝이다. 그는 그 인사에 몸을 마저 틀었다.

“그! 오늘 일은……!”

뒤쪽에서 불현듯 외침이 터져 나왔다.

“감사했습니다!”

그가 받을 이유 없는 말이었다.

“별거 아니었습니다.”

희수처럼 기운 북돋아 주는 말을 한 것도, 형처럼 다독여 준 것도 아니다. 그저 이야기 들은 게 다였으니, 감사까진 받을 이유 없다고 본다. 전부 빌리가 알아서 떠들고 알아서 판단했을 뿐이다.

시간을 내준 건 나름 불순한 의도와 그간 몰래 훔쳐 배운 것에 대한 신세 갚기로 칠까. 마냥 빌리를 위해 나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때문에 마지못해 오지랖을 발휘한 것이기도 하고.

어찌 됐건 정말 별거 아니었다. 은우는 카페를 유유히 떠났다.

▣ 201. Go

『빌리 님> 대회, 나가기로 했습니다. 민폐는 아닌가 걱정이 되지만요. 켄 님께 너무 지지 않도록 노력할 겁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그런 문자를 받았다.

은우는 그 문자를 떨떠름하게 받아들였다. 왜 이걸 그에게 말하는 걸까. 대체 그가 뭘 해 줬다고

절친이 한 명, 예비 친구가 한 명인 아싸는 잠시 문자가 가진 의미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했다. 그가 친구를 사귀는 법에 대해 배우려면 아직도 날이 많이 남은 듯하다.

컹!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내기도 전에 강아지 두 마리가 깡충거리며 문제를 해치워 버린 것도 문제라면 문제지만.

은우는 그에게 마운팅을 시도하는 민식이를 보며 무릎을 세우듯 살짝 몸의 중심으로 앞으로 옮겼다. 그것에 민식이가 조금 밀려나며 마운팅에 실패했다.

“안 돼.”

은우는 차분히 민식이를 을렀다. 교정을 위해서였다.

기실 팔이나 다리를 붙잡고 몸을 마구 흔드는 마운팅이야 그에겐 별반 문제가 없었다. 다리에 힘을 주면 얼마든 버틸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진 않다. 특히 닉네임처럼 순두부 같은 형이라면 못 버티고 넘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은우는 가끔 마운팅을 하는 두 강아지를 보며 훈련사가 가르쳐 준 대로 했다.

훈련소에서도, 집에서도 자주 이렇게 조련을 해서 그런가, 마운팅 빈도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단순히 거부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놀이도 병행하다 보니 마운팅 욕구를 덜 느끼는 것도 한몫할 것이다. 배운 대로라면, 아마도.

“공놀이할까?”

월!

은우는 에어컨을 잠시 멈추고 말랑말랑한 공을 마당으로 던졌다. 그러자 민식이나 로건이 둘 다 우다다 달렸다. 사이가 좋아서 그런지 누군가 먼저 집으면 싸우지 않고 같이 돌아온다. 귀엽다.

그는 씰룩거리는 입술을 굳이 막지 않은 채 강아지들을 다시 반겼다.

마당이 그렇게 넓지 않아서 엄청 뛴다는 느낌은 못 내도, 기분 전환으론 좋다. 거실에 개 발자국이 나는 거야 귀여우니까 봐줄 수 있고.

“잘했어.”

그는 그 후로 몇 번이나 공을 던져 줬다. 두 강아지는 번갈아 가며─실제로 순번을 정한 건 아니었기에 엎치락뒤치락 하긴 했다─공을 물어 왔는데, 이번에는 로건이었다.

은우는 공을 물고 온 로건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단이를 하지 않은 넙적한 귀가 손등에 닿을 적이면 마치 붓으로 살살 간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그는 그대로 로건이의 이마에 입을 대었다. 로건이도 그의 목에 얼굴을 비볐다. 민식이는 옆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꼬리를 살랑거리는 중이다.

“좋아?”

그는 로건의 이마에 입을 두어 번 맞춘 후 시선을 마주했다. 까만 눈망울이 그를 반질반질 담았다. 그가 먼저 저버리지 않는 한, 어쩌면 그가 버린다 해도 절대 그를 배신하지 않을 눈이었다. 맹세해도 좋았다.

“나도 좋아.”

두 강아지를 들인 후 정말 많은 준비를 하고 많은 절차를 거쳤지만, 선택 자체는 약간 충동적인 감이 없잖아 있다.

그러나 은우는 그 선택을 후회하게 될 것 같지 않았다. 반려동물이 괜히 ‘반려’동물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더워?”

로건이가 금세 그의 품에서 탈주했다. 평소보다 공놀이를 금방 포기한 것도 그렇고, 혀가 길게 나온 것도 그렇고, 더운가 보다.

하긴, 에어컨 잠깐 끄고 문 좀 열었다고 그도 땀이 난 상태다. 은우는 수건을 가져와 목 주변을 닦았다. 안 되겠다. 에어컨이 필요하다.

에어컨을 가동한다 해서 공기가 금방 시원해지진 않으므로, 은우는 얼린 페트병을 굴려 주었다. 두 강아지가 하나씩 가지고 놀더니 금세 목에 걸쳤다. 진짜 시원해 보였다.

그는 그걸 보며 또 다른 수건으로 아이들 발바닥을 닦았다. 잔디를 깔아서 좀 덜하긴 해도, 흙먼지가 아예 안 끼어 있진 않다.

이어 바닥에 남은 흔적마저 치우니 그럭저럭 공기 온도가 내려갔다. 은우는 벽에 표기되는 집 온도를 보며 티셔츠 가슴 부분을 잡고 펄럭였다.

움직이느라 땀이 덜 식었는지, 근육으로 인해 갈라진 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마저 하나하나 다 느껴진다.

마르는 걸 기다리느니 차라리 물 한번 뿌리고 닦는 게 나을 테다.

“너희 편하게 해 주려면 돈 많이 벌어야겠네.”

은우는 그 점에서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그의 꿈은 고사하고 우리 민식이랑 로건이 사계절 내내 편안하게 지내려면 돈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그 역시 이왕 산다면 불편한 것보단 편한 삶이 좋기도 하고.

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땀내 나는 티셔츠를 벗었다. 그것을 돌돌 말아 세탁 바구니에 던져 넣으면 어김없이 바구니에 들어간다.

근데 그걸 또 놀이로 알았는지 기운 차린 강아지 두 마리가 도도도 달렸다. 웃기고 귀여워서 뭐라 말하기도 그렇다.

그는 옷가지를 물고 온 두 강아지를 보며 설핏 웃었다.

“오늘 방송도 열심히 할게.”

감히 단언하건대, 빌리만큼의 진지함은 역시 갖지 못하겠다. 누군가를 실망시키기 싫어서, 장인 정신이 극도로 발휘되어 하락세 따윈 용납할 경지라서, 그런 이유를 대고 방송을 그만둘 수 있는 사람은 못 될 것 같단 얘기다.

그러나 그만큼 진지하지 못해도, 이 일에 목숨 걸진 못해도. 그래도 열심히 할 수는 있다. 그는 이제 홀몸이 아니니까.

지키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있으니까.

그는 민식이에게서 옷가지를 받으며 그 이마에 본인의 이마를 비볐다.

* * *

쿡방이 제법 먹힌다는 걸 깨달았지만, 기본적으로 은우는 얼굴 공개를 막고자 헬멧을 쓰고 진행하는 사람이다.

결국 은우로선 쿡방이나 먹방 같은,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고집할 수는 없었다. 대신 그는 스플랫처럼 그가 평소에 시도해 본 적 없는 장르의 게임들을 하나둘 들고 오기 시작했다.

리듬 월드.

은우가 고른… 아니, 박 팀장님이 고르고 은우가 한숨과 함께 승인한 게임이다. 리듬을 이용한 미니 게임이 50종 존재하며 특별한 스토리 같은 건 없다.

그게 은우에겐 참 고역이었다.

그럼에도 거절하지 않은 건, 글쎄. 일종의 프로 의식일까.

민식이와 로건이라는 식구가 들어온 이상 그는 생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고, 그것은 초반의 간절함만은 못해도 방송을 이어 나갈 확실한 이유가 됐으니.

좋게 말하면 직업 의식, 나쁘게 말하면 자본주의에 찌든 사고방식을 얻은 셈이다. 이 게임을 거절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기도 하다.

─ㅋㅎ

─안녕하세요!

─ㅎㅇㅎㅇ

“네, 안녕하세요.”

은우는 들어오는 시청자들을 보며 준비했던 게임의 이름을 떠올렸다가, 잠시 헬멧 위를 짚었다.

VR 게임이라 대기실까진 미리 들어왔는데, 차마 게임 구매 창은 띄우지 못하겠다. 은우는 여전히 노래로 길 만들던 그날의 고통을 기억했다.

─오겜무?

─안녕하세여~

─ㅇㄱㅁ?

─오늘은 머함?

“…오늘 할 게임이요.”

사람들이 알면 바로 하자 그러겠지. 은우는 망설이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에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오늘은 조금 떠들다 시작할 예정입니다.”

─?

─오 잡담

─헐

─??

“고칠 점이 있나 예전 영상들을 돌아보는데, 여러분과 길게 잡담한 적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예전에 공포 게임 할 때 잡담 시간 가지고 싶다 하신 것도 있고.”

이건 순전히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가지는 토크 타임일 뿐이다. 절대 리듬 게임이 두려워서 이러는 게 아니다.

은우는 눈을 데굴 굴렸다.

…변명이고, 두려워서가 맞지만, 합리적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헐 대박

─켄 님 애인 있으세요?

─형님이랑 합방 또 안 함?

─질답시간이다~!!

다행히 사람들은 거의 처음으로 가지는, 제대로 된 Q&A 시간에 시선을 빼앗겼다. 앞다투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제게 궁금한 게 이렇게나 많으셨습니까?”

─ㅖ

─ㅖ

─솔직히 흔한 기회는 아니지

─이번이 처음이잖어,,,,

─ㅖ

「‘popopopi’ 님이 ‘1,000원’ 투척!

리얼 바퀴벌레 드셔봄?」

“리얼 바퀴벌레 드셔봄……. 음, 사실 좀 애매합니다. 제가 먹은 게 바퀴벌레였는지 아닌지 확실하지가 않아서. 근데 곤충은 맞았습니다.”

은우는 며칠 전의 기억을 되살려 슬쩍 발을 뺐다.

“생긴 게 바퀴벌레랑 비슷해서 지금까지 바퀴벌레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으아아악!!

─B얘기 누가 꺼냈어!

─구에에에엑

─형 퉤해 퉤 그건 지지야

“근데 중국엔 식용 바퀴도 있지 않습니까……?”

─아니,,,,그건 그거고....

─새우랑 비슷한 맛이라던데

─우리 기여운 새우에 뭘 비빔

진짜 맛있다는 걸 알아서 억울하다. 은우는 항변했지만, 역시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저 ‘바퀴벌레도 먹는 구울(new!)’이라는 호칭만 새로 얻었을 뿐이다.

“키는 몇이신가요……. 197.6입니다.”

그가 공개한 정보들도 질문이 들어왔다. 수많은 방송, 긴 방송 시간에 가끔 가다 한 번 언급하는 수준이다 보니 잘 알려졌다고 생각한 정보도 모르는 사람이 꽤 된다.

“매운 것 좋아하세요……. 음, 그냥 전체적으로 잘 먹습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맛은… 따로 없고, 대신 디저트 종류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단 거 좋아해 형?

─헬창들은 근손실 때문에 단거 안 먹잖아

─켄은 헬창이 아니지 않음?

─단 거 좋아한데ㅠㅠㅠ

“꼭 단걸 고집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디저트 먹기를 즐길 뿐이다. 지난 삶에선 단맛이 귀했으니까.

사실 그렇게 치면 채소도 상당히 귀해서, 채소 요리도 굉장히 좋아한다. 양념한 고기도 마찬가지다. 이 나라는 항상 생각하지만 정말 ‘맛있는 것’에 진심이다.

“그럼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뭔가요……. 이것도 특별히 꼽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음식들이 워낙 맛있어서.”

─ㅋㅋㅋㅋㅋㅋㅋ

─잡식이다 이거야

─편식없는 거 대단하다

─좋아하는 요리 종류라든가?

“음, 특정 요리 하나만 고르진 못해도 종류는 정할 수 있습니다. 한식이 제일 좋습니다. 특히 한식의 채소 요리. 고기보다 채소를 좀 더 좋아하는 편이라.”

하루 소비 열량을 챙기다 보면 고기가 필수라 고기를 많이 먹을 뿐이다.

그는 극지에선 보지도 못했던 파릇파릇한 채소들이 조금 더 좋았다. 굽고 삶는 게 다였던 전생과 달리, 튀기고 찌고, 온갖 조리법이 있어서 고기도 좋아한다만, 그렇게 치면 채소가 더 다양하다.

─??

─고기보다 채소를 좋아한다고? 있을 수 없는일

─그 덩치에 채소 더 좋아하는 게 말이 됨??ㅋㅋ

“…채소 좋아하는 게 그렇게 이상합니까?”

─채소는 맛없잖어

─맞어

─쓰고 풀때기맛임...

─아 채소혐오를 그만둬주세요

참고로 은우는 절밥도 좋아했다. 간이 슴슴해서 마음에 들었더랬다.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팀장님이 절 잡으러 오셨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팀장님 사랑합니다

─어서 팀장님께 감사하라고~~!

“쿡방 계속하실 생각은 없나요……. 이건 좀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다만 저번에 그, 얼굴 드러날 뻔한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걸리는 게 많아서 생각만 해 두고 있습니다.”

─ㅇㄴ...

─얼공 좀 해줘유ㅠㅠ

─그놈의 헬멧 좀....

은우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조금 떨떠름해졌다.

“…다들 제 얼굴을 너무 궁금해하시는군요.”

─아 킹직히 궁금하잔어

─형 못생겼지?

─비수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거라 믿어

─헬멧 좀 벗어줘잉

헬멧을 벗는 걸 왜들 좋아하는 걸까. 은우는 반사적으로 그의 헬멧을 더듬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암암리에 알려져 있겠지.

“…언젠간 고려해 보겠습니다.”

─오!!

─헬멧 벗을 때까진 숨 참는다, 흡!

─너무 좋아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헬멧을 벗어도 상관은 없다. 처음엔 사람들이 그를 밀어낼 것을 두려워 썼을 뿐, 이젠 아니니까. 사람들이 밀어낸다 한들 그에겐 그 모든 것들을 이겨 낼 수 있는 지지대가 있다. 더는 헬멧 벗는 게 두렵지 않다.

“다른 질문은 없나요?”

그러나 두렵지 않다 해서 꼭 벗어야 할까?

공공연하게 그의 얼굴이 알려졌다 해도, 쓰든 안 쓰든 별 차이는 없다 해도. 그가 오랫동안 지켜 온 이미지 중 하나를 포기할 이유는 그에게 없다.

헬멧은 이미 그의 습관이고 그를 구성하는 의미 중 하나가 된 상태다.

언젠가 이미지 변신을 위해서, 새로운 시도를 위해서 벗게 될 날이 오긴 하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닐 거다. 은우는 화제를 돌렸다.

「‘이름이 없습니다’ 님이 ‘1,000원’ 투척!

혈액형?」

“혈액형……. AO형입니다.”

「‘미르컨트뢀’ 님이 ‘1,000원’ 투척!

합방 계속 하실 거죠?」

─맞아 합방은 또 언제 하세요?

─레드바님이랑 합방 또 해줘

─형님은 더이상 안 나와요?

─순두부 형님 소환!

“합방…은 어제 했으니 쿨타임 좀 채우고 하겠습니다. 레드바 님에게 폐니까요.”

─속마음: 레드바 님이 폐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매운맛에 화들짝!

─레드바 사실 기생충 컨셉 아니냐

돌린 화제라고 해서 그에게 우호적이진 않았지만, 은우는 사람들의 억측을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 * *

대략 1시간의 Q&A 후, 기어코 게임을 할 시간이 도래했다. 은우는 흐린 눈을 하며 게임을 띄웠다.

─ㅇㄴ

─리듬월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오랜만이다

─둠칫둠칫

─절대 리듬해

“네……. 오늘 할 게임은 리듬 월드입니다.”

나온 지 꽤 된 게임이라, 고전미 낭낭한 이미지가 가정 먼저 떠올랐다. 사람들이 단번에 상황을 파악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 왕 좋아

─다들 볼륨 낮춰!

─최악의 음박치가 온다!

─리듬 조아

“…오늘은 제가 노래 부르는 게 아닙니다.”

단지 그가 박자에 맞춰 게임을 진행하면 될 뿐이다. 요컨대 음치 테스트가 아니라 박치 테스트인 셈이다. 음악과 워낙 거리가 멀게 살아온 이는 그것만으로도 불안했지만.

“박자는 그래도… 자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과연?

─귀관은 실망을 준비했다

─‘그 자신’

─아ㅋㅋㅋ개못해 예상합니다

「‘유노미’ 님이 ‘1,000원’ 투척!

평생 컨텐츠각」

“…….”

사실 은우로서도 확실하진 않다. 이상하게 그는 본인이 ‘음악’을 하고 있다, 라는 현실감이 들면 음을 분별하는 감각이 이상해졌다.

음이 뭔지는 아는데 그것에 맞는 음을 내려 하면 계속 틀린다고 해야 하나.

왜인지는 모른다. 톤은 자유자재로 낼 수 있으면서 노래는 왜 자유자재로 안 되는지 그 역시 궁금한 바였다.

단순히 음역대가 안 돼서? 그는 그가 낼 수 있는 음마저 노래할 때만 못 냈다. 정말 기이한 일이었다.

뭐, 애초에 설명이 됐다면 진즉에 음치를 탈출했을 것이리라. 노래 못 부른다고 죽는 건 아니다마는 놀림은 덜 들었을 테니.

“박치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ㅋㅋㅋㅋ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소망형

─ㅋㅋㅋㅋㅋㅋㅋ아 벌써부터 꿀잼 예악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모두 가볍게 끝나지 않을 수 있음을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는 음이 틀려서 박자를 놓친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하지만, 주변인은 박자도 못 맞추는 거라 했다.

적당한 인원이 그러는 거라면 그도 그러려니 하겠는데, 그의 노래를 들은 모든 이가 입을 모으니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은우조차 그가 박치인가? 하고 모호했다. 노래 부를 때 외엔 특별히 박자 감각을 시험받을 일도 없어 더더욱 진실을 밝힐 겨를이 없었다.

때문에 은우는 그가 박치도 아마 겸하고 있겠거니 했다. 음도 사실 그가 맞다고 생각하면서 내는데 남들 듣기엔 아닌 것 아닌가. 나중에 녹음해서 들어 보면 그가 듣기에도 참 아니긴 했지만, 어쨌든.

“…조금만 더 떠들다 갈까요?”

은우는 50개의 미니 게임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메뉴에서 슬쩍 발을 뺐다.

「‘똘똘판’ 님이 ‘1,000원’ 투척!

Go」

어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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