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209화 (209/233)

209화

콰앙!

추락한 간수는 시작부터 강 공격을 시도했다. 기괴하게 커다란 팔 위로 뿌리가 한 번 덧씌워지며 크기를 부풀리더니, 그대로 땅을 향해 찍은 것이다.

은우는 발을 비튼 후 빠르게 굴렀다. 발목이 비틀어진 쪽으로 유유히 구르면 약간의 간격을 두고 간수의 팔이 내려쳐진다. 혹시라도 풍압이 있을까 넉넉히 피한 것이었는데, 다행히 녀석에겐 풍압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 확인하며 검을 휘둘렀다.

“거리 조절은 더……!”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간수의 몸에 타격이 들어갔다. 피 대신 튀기는 건 노란 체액이다. 사람의 가래를 보는 것처럼 탁하고 끈적였다.

“…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구에에에엑

─아 이런 것까지 촉감 구현하지 말라고

─1인칭 떡-락

─상처는 아직도 구현 안하네

사람들은 끔찍해했지만, 은우는 눈가에 튄 것만 닦아 내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적을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어 적이 손을 횡으로 휘둘렀다. 은우는 거리를 재 가며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녀석의 팔에 맞춰 검을 움직이면 손가락 부분을 또 한 번 벨 수 있다.

적의 피통이 살짝 줄어들었다.

─이야,,,이걸,,,,

─진짜 이분은 사람이 맞나 싶다

─구울이라니까?

팔을 회수한 적은 팔에 둘렀던 뿌리를 거둬들였다. 아마 내려치기, 횡 휘두르기 패턴에만 뿌리를 넣는 게 분명하다.

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접근 안해요?

─더 안 때림?

─때리려면 안으로 들어가야할듯

─튜토 보스 수준 실화냐..?

“애초에 검이 짧아서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만 더 확인하고 바로 근접 들어가겠습니다.”

─근접이면 가래 또 튀기는 거 아니냐

─아니 상처 이펙트 안 넣을 거면 피도 튀기지 말든가;;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고객님

─피 좀 덜 튀기게 해주세요ㅠ

“체액 뒤집어쓰는 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만…….”

신체 능력이 월등했다면 튀어 오는 체액마저 요리조리 잘 피했겠지만, 이 게임은 딱 깰 수 있을 정도의 능력만 준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최대한 안 묻도록 해 보겠습니다.”

은우는 녀석이 팔을 바닥에 박는 걸 보며 슬금슬금 옆걸음을 행했다. 1, 2, 3, 4. 3초도 아니고 5초도 아닌 4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그의 발밑이다.

옆으로 이동해도 진동이 따라온다.

그는 진동이 가장 세졌을 때, 반 호흡 삼키며 옆으로 굴렀다. 범위가 얼마나 될지 몰라 한 번 더 구르고자 하면 아슬아슬한 차로 뿌리가 솟아난다.

진동을 느끼고 피하고자 마음먹었던 자리가 아니라, 한 번 굴러 피했다 여긴 자리였다.

“음. 이거, 피할 때 좀 조심하셔야겠습니다. 피한 곳에서 뿌리가 솟네요. 거기에 엇박이라, 반 박자 빨리 구르고 한 번 더 구르는 식으로 피해야겠습니다.”

─ㅅㅂ 미쳣냐고;;

─ㅋㅋㅋㅋㅋㅋ튜토에 엇박 보스를 넣은 거임?

─이게 레게노다

─카롬 진짜 플레이어들 울화병 내려 작정햇나본데

─속보.... 튜토보스에 다 좌절해,,,,환불러시 예상

─아 모르겠고 알아서 잡으라 이말이야~!

다행히 위로 솟는 속도나 범위는 작은 편이다. 은우가 아슬아슬하게 피해 없이 피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검 자루를 손에서 굴리며 천천히 옆 걸음을 했다. 바닥에서 팔을 뽑아내기까지 4초. 다음엔 피한 직후 달려가서 공격 몇 대쯤은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콰드드득!

간수의 팔이 또 한 번 뿌리에 뒤덮였다. 다만 이번엔 두꺼워지는 형식이 아니라, 채찍처럼 길게 늘어지는 형식이다.

은우는 그 순간 앞으로 뛰었다. 녀석의 팔이 곡선을 그리더니 그대로 바닥을 내려쳤다. 그는 그것을 점프해서 가볍게 회피했다.

바닥에 닿은 발은 대지를 박차고, 이어 내려앉은 손은 땅을 짚는 척하며 다시 한번 밀어냈다.

추락한 간수가 채찍으로 변한 팔을 서너 번 더 휘둘렀으나, 은우를 맞춘 건 역시 하나도 없었다. 그사이 은우의 몸은 간수의 앞에 다다라 그 허벅지를 가르는 중이다.

촤악!

몬스터를 거대하게 만드는 건 카롬의 특징이나 다름없으니. 이번엔 머리 두 개 정도 큰 괴물은 그 발과 발 사이의 거리가 꽤 널찍하게 벌어져 있다.

심지어 간수가 은우를 내려찍으려는 듯 발까지 들었기에 공간은 더욱 넉넉하다.

은우는 상체를 굽혀 벌어진 가랑이 사이를 통과한 후 등을 베었다.

쾅!

추락한 간수가 발을 내려찍자 땅이 뒤흔들렸지만, 은우의 균형은 무너지지 않는다. 은우는 등을 두 번 베고 옆으로 발을 옮겨 디뎠다.

뒤로 돌려던 간수의 팔이 은우의 굽힌 허리 위로 스쳐 지나갔다.

“근접하면 가는 팔도 쓰나 봅니다.”

─쓰블 놈들,,,,,

─어케 피했냐 진짜

─일인칭으로 보는데 몸이 너무 빠르게 움직임;;

─호기롭게 해봤다가 잡몹에게 털려서 껐는데 이분 나랑 같은 게임 하는 거 맞나?

─고갱님 소프트웨어가 다릅니다

휙!

검은기사 1 때와 달리 가볍게 해설도 곁들이며, 은우는 간수의 가는 팔을 피했다. 그의 멱살을 잡을 수 있는 건 그가 인정하는 몇 사람뿐이지 저런 괴물이 아니다.

“제 멱살이 좀 비싸서, 악수로 바꿔 주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아 우리도 악수해줘잉

─켄 멱살은 못 참지

─혀어엉 악수해줘어어어

은우는 그를 낚아채지 못한 손을 역으로 잡았다. 팔을 회수하고자 간수는 본인 쪽으로 팔을 당기던 차였으므로, 힘의 차이에 따라 은우 역시 끌려가듯 당겨졌다.

그러나 이 또한 의도했던 바. 은우는 대지를 박차 간수의 굽은 허벅지를 밟고 위로 점프했다.

자유로운 그의 손은 부러진 검을 역수로 쥐고 있다.

“이건 덤.”

푸욱!

살벌한 파육음과 함께 추락한 간수의 안면에 칼이 틀어박혔다.

은우는 그 상태에서 녀석이 팔을 휘두르기 전에 빠르게 발에 힘을 주었다. 허벅지를 넘어 명치나 가슴팍 사이를 밟고 있던 발이 발사하듯 그의 몸을 튕겨 냈다.

─덤 2번 받으면 죽을 듯;;;

─아 이건 좀

─마 이게 한국인의 정이다

─두 번 먹어, 세 번 먹어, 죽어!!!

“뭐, 상관없잖습니까.”

은우는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다시 한번 굴렀다. 슬슬 호흡이 가빠 오던 차─스태미나─기에, 뒤로 물러나 호흡을 고를 필요성이 있던 것이다.

“어차피 죽여야 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그렇지

─어차피 죽여야하긴 하지ㅋ

키아아아아──!

그와 시청자의 대화에 분노하기라도 하듯─실제론 그렇지 않겠지만─간수는 뿌리가 돋은 팔을 휘둘렀다.

본래도 거대한 팔은 물러나는 은우와의 거리를 단숨에 따라잡을 수준이나, 크기를 부풀린 뿌리까지 더해지자 폭조차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피하지 못할 것도 없다.

은우는 그림자를 통해 공격을 가늠하며 몸을 최대한 길게 던졌다. 느리고 긴 구르기 점프는 정말 아슬아슬하게 그를 공격 범위 바깥으로 밀어낸다.

쪼그리고 앉는 듯한 자세에서 엉덩이를 떼고 손으로 땅을 받힌 자세가 될 때쯤, 뒤에서 쿵 소리가 나고 땅이 살짝 울렸다.

은우는 그 상태에서 앞 대신 뒤에 무게를 실었다. 툭, 하고 등에 간수의 팔이 닿았으나, 공격으로 인한 게 아니므로 대미지는 없다.

푸욱!

그는 동시에 역수로 잡은 검을 팔에 박고 몸을 일으켰다. 마음 같아선 호흡을 삼킨 채 저 팔에 올라타, 또 한 번 저 몸체까지 달려가고 싶건만, 게임상의 육체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스태미나가 없으니 이번은 넘어가겠습니다.”

─뭘,,,뭘 넘어가

─대체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야 형

“별거 아닙니다. 그냥, 레드카펫이 놓여 있기에.”

─레드카펫...?

─설마 팔?

─ㅋㅋㅋㅋㅋㅋ저건 블랙카펫 아니냐고ㅋㅋㅋ

─팔 밟고 올라가서 찌를 생각이셧,,,?

이제 척하면 척이다.

“잘 아시면서 왜 물으십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청자란 무릇, 스트리머─가 생각하는 방식─를 닮는 법이었다. 좋든 싫든 간에 말이다.

▣ 209. 나름 기뻐하고는 있다

검은기사에 나오는 몬스터의 패턴은 무한에 가깝다.

그러나 그게 공격기 자체가 무한대로 있다는 걸 뜻하진 않는다. 단지 활용하는 방식이 사람처럼 다양할 뿐이지, 공격기 자체는 정해진 것 몇 개를 돌아가면서 쓴단 소리다.

“예전보다 패턴이 단순해졌네요.”

그런 점에서 검은기사 2의 첫 보스는 검은기사 1 때보다 더 간단해진 감이 없잖아 있다.

이유라면 글쎄. 상당수의 장비를 갖춘 후에 만날 수 있던 그때와 달리, 거의 시작과 동시에 만난 셈이라서? 아니면 신규 유저의 유입을 늘리기 위해?

AI 지능은 여전히 자유롭고 연계가 자연스럽지만, 간간이 나오는 공격 자체가 시원시원할 정도로 커서 틈을 노리기가 쉽다. 역시 단순하다.

─이게 어딜봐서 단순해진 거임...

─너무 악랄해서 도저히 깰 자신이 없다

─이걸 어케 깨라는 거임

“패턴은 줄었잖습니까.”

─패턴‘만’ 준거겠지

─저저 봐라 피하는 거

─몹 능지 더 상승한 거 실화냐...?

은우는 시청자들의 말을 무시했다. 그의 머리는 다소 아쉬움을 곱씹고 있다.

하지만 이건 튜토리얼 보스니까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다. 이게 어려우면 환불 러시가 이어질 거 아닌가. 게임사의 입장을 이해한다.

어쨌거나 원체 실전에 익숙한 은우로선 공략 따위 우스웠다. 정형화된 공격이 있으니 당연하다.

은우는 부러진 검을 가볍게 던졌다. 그리곤 몸을 옆으로 틀어 녀석의 넝쿨─맛조개처럼 뽁 내밀어졌다가 뽁 돌아가는 형식의─을 피한 후, 떨어지는 검을 붙잡았다.

“내구도가 널널해서 다행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내구도ㅋㅋㅋㅋㅋㅋ

─다른 거 다 이겨도 내구도는 못 이기죠?

─이제 부서지면 레전드ㅋㅋㅋㅋ

그는 1의 악몽을 떠올렸다가 진저리를 치며 녀석의 심장에 검을 박았다. 그가 의도한 대로 그 공격이 마지막 일격이 되었다.

『HEIR OF ERA DESTROYED』

추락한 간수가 빛 가루로 화하며 사라졌다. 퇴색된 누런 가루는 나선으로 승천하면 할수록 점차 빛을 되찾아 가며 끝끝내 금빛으로 화한다. 검은기사의 악랄함이 순간적으로 잊힐 만큼 몽환적인 광경이었다.

─와 최초킬ㄷㄷ

─지렸다....

─하 켄이면 쌉가능일 줄 알았다

─예상은 했는데 그래도 지린다...

─세계최초킬 실화냐,,,?

─ㅊㅊㅊㅊ

─다들 왤케 담담하냐고ㅋㅋㅋ

외국 채팅과 한국 채팅을 따로 분류해 띄웠음에도 채팅 창 갱신의 속도는 어마어마하다. 심지어 제한도 여럿 걸어 놨음에도 그렇다.

물론 그 속도야말로 그의 인기를 증명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소통을 해야 하는 스트리머 입장으로선 긍정적인 면과는 별개로 불편한 것도 사실이니.

은우는 일반 채팅에 반응하길 포기했다. 후원도 까마득히 밀려서 반응해 봤자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쪽은 외국 쪽이랑도 겹쳐서 일반 채팅만큼 대응할 엄두가 안 나기도 하고 말이다.

『뿌리 1』

『휘파람 호각 1』

“뿌리와… 호각이 나왔군요. 어디다 쓰는 걸까요.”

뿌리는 새로운 세계수가 되어 달라, 거목을 불태워 달라, 풀에 뒤덮인 적의 외형까지 포함해 적당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열쇠도 아니고 호각은 대체 무엇인지.

일단 호각이니까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낸다는 건 알겠는데, 어디서 쓰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은우는 그것을 짤랑거리다가 아이템 설명을 보았다. 오픈 베타에서도 이런 아이템은 없었는지 채팅 창은 정보에 관해선 잠잠하다.

『뿌리

세계수를 지탱하는 뿌리

뿌리가 없는 나무는 끝내 말라 죽기 마련이니, 잔가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들은 뿌리를 내려야 할 것이다

죽기 전까지 뿌리를 뻗어 대지로부터 지속적으로 HP를 흡수하고 최대 HP를 상승시킨다

단, 뿌리를 내린 자는 다른 세계수와 얽힐 수 있다』

『휘파람 호각

오래되어 녹이 슨 호각

특정 장소에서 분다면 녹슨 호각의 휘파람 소리에 이끌려 찾아오는 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뿌리는… 일종의 도핑제 같습니다. 죽기 전까지라고 하는 걸 보면, 한 번 쓰고 사망하지만 않으면 효과가 계속 유효한가 본데.”

─카롬이 이렇게,,,친절한 템을 준다고?

─지속적 HP회복 개사기 아니냐

─어떤 지옥을 들고온 거냐,,,,킷사마,,,,,

─씁, 하, 씁, 하

─아아..... 저것은 '희망'이란 것이다.....

─ㄹㅇ 개조은데? 씹사기 템인데?

“회복시켜 준다 했지 많이 회복시켜 준다고는 안 했잖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그래....

─심지어 >죽기 전까지<임

─우린 있어봤자일듯

─광탈 각

은우가 아는 카롬이라면 지속적 HP 회복은 없는 셈 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없는 것보단 낫지만, 있다고 보긴 어려운 수준이라고 할까.

“호각은 특정 장소에 분다는 말과 이끌려 오는 이가 있다는 걸로 보아 이벤트 템 같습니다. 대충 감은 잡았네요.”

사용할 때가 되면 더 자세히 알게 될 것이다. 은우는 두 아이템을 넣고 다시 나아가고자 발걸음을 옮겼다.

─맥

─회복 안 함

─맥지팡이 찍고 가죠

─형 지팡이

“딱히 피 닳은 것도 없고, 보스는 한 번 깨면 끝이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맞지ㅋㅋㅋㅋㅋ

─안 찍어도 되긴 할듯

─뿌리는?

─형 뿌리 안 써봄?

“뿌리는 안 써도 아직까진 괜찮을 것 같아서.”

─아ㅋㅋㅋㅋㅋ

─도핑 어림도 없지

─한국인 특: 아끼똥함

─아 함만 써보자

─이분 한 번 쓰면 겜 끝날 때까지 효과 볼 듯

시청자들이 뿌리 사용에 대해 뭐라 하든 말든, 은우는 간수가 가로막고 있었던 문으로 향했다. 간수를 잡고 나서야 드르륵 하고 올라간 철창은 그의 길을 더 이상 막지 않는다.

─켄님 사인!

─사인!

─사인 함 남기자

그때,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이 드물게 한 의견으로 모였다. 은우는 그것을 보고 눈썹을 들었다.

“사인은 뭡니까.”

─온라인 켜셧으니까 사인 남기실 수 잇으실 텐데

─이번에 새로 추가된 거요

─바닥이나 벽에 남기는 거

─온라인 메모장?

“아, 이번에 새로 추가된 겁니까?”

─ㅇㅇ

─이거 기능 개꿀임

─기념으로 한 방 남기자

─아 메모는 못참지ㅋㅋ

오픈 베타를 해 보거나 시청한 이들이 많은 모양이다. 은우는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어떻게 적습니까?”

─기본적으로 주어짐

─저쪽 복도에 적져

“네.”

그는 시청자들의 말에 따라 다음 복도로 나갔다. 그가 사인을 남기기로 택한 자리는 추락한 간수를 잡은 후, 문을 딱 열면 시선이 닿을 바닥이었다.

자리를 정한 후엔 아이템을 뒤져 보았다. 과연, 사인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은 아이템이 하나 나왔다. 골무같이 생긴 것이었는데, ‘기록의 유산’이라는 이름이었다.

─손가락에 끼면 글자 적을 수 있어요

─욕설도 되나?

─욕설은 필터링됨

─악필이면 어카려고ㅋㅋ

─손글씨 인식이라 ㄱㅊ

그는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인지라, 시청자들이 물어봤자 대답을 해 줄 수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시청자들은 저들끼리 묻고 답하며 설명할 필요를 없애 주었다. 은우로선 참 고마운 일이었다.

“뭐라고 적을까요.”

─즐겜?

─아 후원으로 치고 싶은데 후원 아직도 밀린 거 ㄹㅇ 실화냐?

─ㅋ먼저 간다

─살았다!

─외국애들 지금 빵빵 쏘는 것 봐...

보통은 첫 후원의 문장을 고르겠으나, 후원은 아직도 밀린 상태다.

“으음.”

은우는 결국 아무런 단어나 쓱쓱 입력했다. 룬 펜에 빛이 맺히며 바닥에 글자를 적어 주는 구조라, 크게 신경 쓸 건 없다. 그의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날림 필기체가 게임에 의해 정식 폰트로 변환되어 기록으로 남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

영어권에는 ‘Not finished yet. Move next step.’으로 번역되어, 장차 검은기사 2의 비공식 구호로 이름 날리게 될 문장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 아직 안 끝났어~^^

─ㅋㅋㅋㅋ진짜 개 얄밉다ㅋㅋㅋ

─이상 첫트장인의 한마디였습니다

물론 그건 미래의 일이지 지금의 일은 아니다.

당장의 사람들은 겨우겨우 1 보스를 깨고 온 전 세계인들이 이 메시지를 처음 접할 거란 점에서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제가 그렇게 못 할 말을 했습니까?”

─그건 아닌데ㅋㅋㅋㅋㅋ

─???: 응, 다음 단계~

─이제 시작이다 이거야

─수고했다라고 적을 줄 알았는데ㅋㅋ

은우는 ‘기록의 유산’을 집어넣고 마저 걸음을 옮겼다.

“이제 1 보스니까 남은 게 많을 거 아닙니까. 전작을 고려하면 보스가 20마리 좀 안 되게 남았을 텐데.”

─님은 너무 현실적임

─ㅋㅋㅋㅋ칭찬 정돈 해줘요

─너무 당연해서 하나도 안 기뻐하시는듯

─이게 승리자다,,,,

─냉혈한....

“…사람을 냉혈한으로 만드시면 곤란합니다. 저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첫 단추를 잘 꿰었다는 것에 그도 기뻐하고 있다.

아직까진 1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마는, ‘계속 똑같진 않겠지’라는 불안감을 품은 상태이긴 하다마는.

그래도 나름 기뻐하고는 있다. 방심해서 풀어지지 않을, 딱 그 정도만큼.

“그보다… 밖입니다.”

간수를 잡고 나온 복도는 이 수용소의 입·출구로 예상되는 홀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입·출구는 무너져서 나갈 방도가 없었다.

대신 위층으로 가는 길은 멀쩡했고, 그 위층은 성벽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성벽 위로 올라가면 깃털 몇 개가 굴러다니는 걸 확인할 수 있고 말이다.

중간중간 넥타르가 눈에 목격될 정도로 뭉쳐진 형태의 ‘넥타르석’도 나왔다. 1과 시스템이 같다면 이걸 부술 경우, 추가 넥타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아이템 형태로 먼저 주어지는 이유는 죽을 경우, 소지한 화폐─아이템은 제외다─를 전부 잃는 검은기사 특성 때문일 것이다. 아이템 형태로 존재할 땐 화폐로 사용할 수 없는 대신, 죽었을 때도 상실하지 않으니까.

자주 죽는 플레이어에겐 무척이나 유용하다. 은우에겐 거기서 거기일지라도.

“나가는 길이 어디일까요.”

은우는 그곳을 서성였다. 그렇지만 역시나 나가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문득 은우의 시선이 바닥에 너저분히 떨어져 있는 깃털에 닿았다.

희미하게 길 자국도 만들어 두는 변태 제작사가 이 깃털을 의미 없이 뒀을 리 없다.

하물며 은우에겐 방금 전 얻은 용도 불명의 ‘누군가를 불러오는’ 아이템이 있지 않던가.

“호각을 여기다 쓰는 건가 봅니다.”

─그런듯

─호각이 먼데?

─호루라기 멍청아

─뭐 올까?

눈치 빠른 시청자들이 동의 표를 던졌다. 곧, 호각이 은우의 입에 물렸다.

휘이이이이익!

그 순간, 은우는 그의 자유를 빼앗겼다. 그런 동시에 멀리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그건, 정말 거대한 새였다. 사람조차 그것들의 먹잇감으로 인식되기 충분할 것 같은 크기의 새.

─설마 2보스 아니죠?

─카롬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겟음?

─이 게임은 당최 믿을 수가 없어

‘혹시 두 번째 보스인가?’ 하는 의문은 새가 다가옴에 따라 짙어졌다가, 그다음 순간에서 온전히 날아갔다. 새가 그의 어깨를 움켜쥐고 날아오른 까닭이다.

은우는 그걸 3자의 입장에서 전부 지켜보았다. 자유를 빼앗긴 만큼 시점 또한 달라진 상태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동컷신이네

─ㅇㅎ

─다음 지역으로 ㄱㄱ

─드디어 튜토 끝!

시청자의 말대로 이건 이동 컷신이었다.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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