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219화 (219/233)

219화

사건이 터진 지 이틀. 인터넷을 후끈하게 달군, 일명 ‘학폭 스캔들’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였다.

증거가 확실하다곤 하나, 한국은 피해자에게 박한 나라였고, 사건 자체도 모호한 감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체구가 작았다곤 하나, 폭력 수위가 워낙 강했다.

하여 사람들은 일분일초가 멀다 하고 싸워 댔다. 그 가운데는 단순히 관심을 끌고 싶어서, 혹은 시비가 걸고 싶어서, 질투심 때문에, 온갖 이유로 무장한 종자들도 있었다.

─어서 돌아와 형 나 기다리는 중이야

─폭력범 새끼 꺼져ㅡㅡ 이런 새끼 빨아주는 애들도 수준 알겠다

└응 너나 느그집으로 꺼져

└가해자들 편드는 새끼들 싹 다 조져야 함

└가해자 편드는 건 니들이고ㅋㅋ 아 모욕죄가 무서워서 참는다

─언론 새끼들이 도 잘못했지 제대로 조사도 안하고 사람 묻으려고 ㅡㅡ

└없던 일을 만든 것도 아니잖아? 솔직히 폭력범 맞구만 뭐

└‘대항’은 어디다 팔아먹음? 지보다 큰 인간들이 다섯이나 덤비는데 그럼 곱게 처맞아줘야함?

└그렇다고 사람 팔다리 부숴먹는 건 어느나라 대항법임? 그냥 도망쳤음 되는 거 아님?

└피해자가 자기방어를 위해 싸웠을 뿐인데 도망 ㅇㅈㄹㅋㅋㅋ

─중립 기어 올리는 척 2차 가해 하는 새끼들 극혐이네;; 다섯 명이서 쪼따만한 애 폭력하려던 거에 집중해야하는데 물타기 오지누

싸움은 치열해졌다.

<아동학대? 자유로운 양육과 방치의 차이는 무엇인가>

승자가 나올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알면서도.

▣ 219. 견주님! 맞으시죠!

성형은 성인부터 가능하니. 예쁘거나 잘생긴 어른은 찾기 쉬우나, 타고나길 아름다운 아이들은 여전히 드물다.

그런 점에서 은우의 외모는 사람들의 마음을 누그러트리는 구석이 있었다.

아무렴, 은우의 험악함은 본래 얼굴 자체보다 체구가 주는 위압감, 그리고 사람을 해쳐 본 이 특유의 포악함이 섞여서 드러나는 종류에 가깝다.

때문에 정적인 사진에선 무서움보단 훤칠함이 더 돋보였고, 체구가 작았을 적 시절을 담은 영상에선 그 여파가 더 컸다. 정작 본인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는 제법 사람들을 홀릴 만한 조건을 충족하고 있던 셈이다.

외모가 아닌 체구만 본다 해도 좋았다. 영상 속 체구 차이를 확인하거든, 상대가 언급한 ‘1인이라도 위협적인 대상’이라는 말은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화면 속 소년은 아무리 봐도 약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뿐인가? 박기철의 말마따나 대중은 ‘자신들을 기만한’ 상대에게 굉장히 냉정해졌다. ‘냉정하다’를 넘어 인색하고 비정해진 쪽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마지막 추가타로 나온 ‘불우한 가정사’는 사람들의 심금을 약간이나마 울릴 수 있었다.

대중의 마음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게 작금의 상황임을 고려했을 때, 거의 못을 박아 버리는 수준의 일격인 셈이다.

그러한 복합적 이유로 인해 여론이 결국 돌아섰다.

은우를 향하던 원색적인 비난은 가해자들에게로 대신 쏟아졌다. 본인들이 잘못해 놓고, 피해자가 잘나가는 걸 질투한 나머지 이 일을 벌인 점에서 비난의 강도는 더욱 강해졌다.

상처뿐인 승리였다. 이것마저 가지지 못했다면 더 비참했을 테지만, 그렇다고 씁쓸함이 가시진 않는다.

『박 팀장님> 그게, 가족분이 찾아와서 사정사정을 하시는 바람에…….』

『박 팀장님> 혹시 화나셨을까요?』

은우는 박기철의 물음에 잠시 침묵했다.

돌아선 여론은 오롯이 그의 편이되, ‘그의 편을 들어 주는 자신’을 위한 대중의 편이기 때문에 그가 바라는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하여 그의 가족… 형에 대한 비판, 비난 여론도 상당한 상태다. 은우가 가능하면 피하고자 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아뇨.”

그렇지만 그것을 두고 박기철에게 화를 내야 할까? 은우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나서기로 한 건 형일 테니까요.”

물론 박기철 쪽에서 먼저 접선했을 수도 있다. 형이 다이아박스 본사로 먼저 찾아갔다 해도 은우에게 연락하지 않고 일을 진행한 것은 결국 박기철이 맞고.

그러나 적어도 박기철이 앞서서 형이 나서기를 강요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선을 아는 사업가니까. 강요했을 때 은우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잘 아는.

하니 이건 오롯이 형의 결정이다. 상처 입기로 각오한 건, 그래도 나서기를 선택한 건 결국 형이다.

그러니까 화낼 이유가 없다. 그가 화낼 이유는 없었다.

“…변호사님이랑 연락하고 싶습니다.”

『박 팀장님> 어, 절 고소하실 건 아니죠?』

“저를 향한 악플이야 다박에서 대처해 주겠지만, 제 형은 아니잖습니까.”

단지… 가슴이 꽉 막혔을 뿐이다.

『박 팀장님> 그 부분은 제가 대신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저도 잘못이 있으니까요.』

은우는 그것에 짧은 감사를 표하고 대화를 종료했다. 그러자 짙은 한숨이 튀어나온다. 형에게 문자를 보내야겠지. 근데 뭐라 보내야 할까.

…형이라면 뭐라 보냈을까.

“왜 그랬어?”

다정한 말 같은 거, 역시 자아낼 수 없다. 은우는 형이 아니었다.

『형> 이게 너한테 도움 될 것 같아서.』

형이 아니어서…….

“그래.”

굳이 사람들의 눈총을 무릅쓰고 나선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다. 꽉 막힌 가슴이 송곳니를 드러내려다 말고 이성에 간신히 붙들려 이를 집어넣었다. 차마 토해 내지 못한 불덩이가 혀를 날름거린다.

그는 손짓으로 화면을 전환했다. 생각을 돌리고 싶거든 지금 사태를 직면하면 된다. 그럼 더 좋은 수를 찾아내기 위해 머리가 알아서 굴러가니까.

<스트리머 일동… “2차 가해는 옳지 않아.”>

그는 적당히 눈치 보며 재던 스트리머들이 슬금슬금 나서서 그를 비호하는 것을 보았다.

저걸 마무리 타격이라고 해야 할까, 다 된 밥에 숟가락 얹기라 해야 할까, 혹은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위안이라 봐야 할까.

어느 쪽이든 별 의미는 없었다. 동시에 의미가 컸다.

아무렴, 사건이 터진 후 그를 까던 이들은 대체로 이번 일에 탑승해 유명세를 얻고자 한 이들이었으니. 지금 움직인 자들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던 거물들이다. 대개, 빌리나 탄산 같은. 발언의 영향력 자체가 다르다.

일이 확실해지고 나서야 움직인 것에 불만을 가질 필요는 없다. 채널 쪽에서 제지한 걸로 아니까. 박기철이 찔러준 것이니 확실한 정보였다.

레드바나 빌리는 사건의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까지 그의 편을 들어 주려 했다. 레리도 그렇고.

다만… 이에 대해 궁금한 것은 있었다.

레드바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도우려 한 건 그래도 이해할 수 있지만, 빌리는 아니기 때문이다─사실 레드바도 이해가 되진 않았다. 단지 상대적으로 납득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가 진정 가해자였고, 다이아박스에서 지지를 막지 않았다면 빌리는 이번 일로 엄청나게 타격을 받았을 터.

그와 자신 사이에 친분이 없다고 생각하는 은우 입장에선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일은 다분히 ‘신세 갚기’라는 말로 해결될 게 아니었다.

그리고 빌리는 그걸 모를 정도로 멍청한 남자가 아니었다. 더 사건이 복잡해진다.

정말이지, 형이고 빌리고, 사람이란 이다지도 어렵다.

은우는 볼을 톡톡 치다가 그냥 한번 떠보기로 했다.

『빌리 님> 괜찮으시다면, 대기실에서 뵐 수 있을까요?』

그런데 상대가 뜬금없이 본격적인 판을 깔아 버렸다.

“죄송합니다. 문자로 드리긴 좀 애매한 말이라.”

“아뇨. 저도 이게 편합니다.”

“…….”

“…….”

은우는 캡슐을 통해 빌리의 대기실에 방문했다. 굳이 외부가 아닌 대기실을 쓴 건, 바깥에 깔린 기자들 때문에 외출이 지난해서다.

대신 설정을 살짝 바꾼 덕에 헬멧은 벗겨져 있고, 얼굴도 본래 얼굴이다. 그들 앞엔 장식용 찻잔이 놓여 있다.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은우는 그들 사이를 맴돌던 침묵을 오래지 않아 깼다. 이유를 모르는 건 모르는 거고, 고마운 건 고마운 거였기에.

“…아, 별거 아니었습니다.”

빌리가 반 박자 늦게 대답했다.

까만 눈동자가 빌리를 힐끗 보았다. 몇 달 전 그가 빌리에게 주었던 말을 도로 돌려받게 된 탓이다.

빌리도 그걸 어렵지 않게 기억한 듯 설핏 미소 지었다.

“켄 님이 그때 도와주셨던 것처럼요.”

“…전 정말 별것 아니었습니다만.”

“켄 님껜 그러셨겠지만, 그때의 제겐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제겐 이번 일이 별것 아니지만, 켄 님께선 달리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는 상대적 가치를 논했다. 은우는 그런 관념적인 것에 관해 토론할 자신이 없었으므로 적당히 넘겼다.

대신 그의 눈동자는 정말 그것뿐인지 빌리의 뜻을 짐작하고 있다. 속내가 어찌 됐든, 정말 그뿐이었다면 그를 여기까지 불러왔을 리 없으니까.

마침 빌리의 눈동자가 한쪽으로 향했다. 방송 전용 방과 비슷하게 생긴 대기실에는 벽면 일부가 장식장에 가려져 있다.

“그때 켄 님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저 트로피가 제게 있겠습니까.”

장식장에는 국제 대회에서 그의 팀이 따온 트로피가 있다. 교환, 판매, 이동이 불가한 계정 귀속 트로피 오브젝트다. 현실에서 받은 트로피 외에 캡슐 대기실에도 둘 수 있게, 우승자 팀에게만 오브젝트 코드를 준 걸로 안다.

“제가 아니었어도 따셨을 것 같은데요.”

“은퇴했다면 못 땄을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다. 은우로서는 여전히 빌리의 은퇴 번복과 그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정확히는, 예상이 안 가는 건 아닌데 ‘정말 이것 때문이라고?’란 쪽에 가깝겠다.

“어쩌면 이번 일로 빌리 님도 은퇴하게 되셨을 수도 있는데.”

“켄 님이 그럴 사람은 아닐 거라 믿었습니다. 실제로도 그랬으니 문제 될 게 없네요.”

음. 은우는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였다. 저리 나오면 은우로선 캐낼 수가 없다. 믿음을 의심하는 건 대게 적대적 행위의 효시니까. 결국 빌리가 말해 줄 것을 기대해야 할 성싶다.

“…이번 일로, 은퇴하실 겁니까?”

은우는 장식용임을 알면서도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갑자기 귀에 박힌 뜬금없는 문장에는 흔들림 없이 시선만 주었다.

빌리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탄산만은 못할지언정, 그도 최상위 스트리머로서의 기본은 갖추고 있다. 표정 읽기가 어렵다.

빌리는 은우의 은퇴로 얻을 반사이익을 기대 중인 걸까, 혹은 그 이상의 그림이 있는 걸까.

은우는 혀로 볼을 톡톡 치다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글쎄요.”

은퇴는, 은우로서도 이번 사건이 터진 이래 줄곧 생각해 오던 문제였다.

「너라면, 뭐든 잘할 거야.」

형은 그렇게 말했지만… 역시 잘 모르겠다.

상황이 넘어왔다곤 하나, 그래도 소문은 퍼질 대로 퍼진 상태다.

사건이 완벽히 마무리된 후에도 사람들이 그를 봐 줄까? 기사나 댓글이 그를 호응해 준다 한들,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쏟아질 반응마저 긍정적일까?

모른다. 아직 겪어 본 적 없는 일이므로.

그렇다고 스트리머 은퇴를 하고 다른 직업을 찾는다? 그건 더 가능성이 낮았다.

한때 ‘이래도 되나?’라고 생각은 했지만, 냉정하게 따져서 은우는 스트리머 외 직업들을 이룰 자신이 없었다. 무술 쪽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물론 그쪽으로 나간다면 오현 관장이 얼씨구절씨구 하며 버선발로 달려올 것 같긴 하다. 지금도 가끔 만나면 좋아라 하는 양반인데, 그쪽으로 진로를 잡으면 아주 주야장천 만날 것 아닌가.

애당초 제자들에게 이번 사건에 대해서 들었는지, 이런 쪽엔 눈이 어두운 사람이 문자도 보내왔다. 힘내라는 간단한 문자였지만, 그 이상은 은우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고 보니 참 문자 많이 왔지. 은우는 그의 넓어진 교류 상태를 떠올리며 새삼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예전보다 많이 나아진 건지도 모르겠다. 이번 사건에 의해 다소 글러 먹어진 상태라 해도.

그래도 최소한 레드바는 계속 연락할 테고, 그 외에도 남는 것들이, 그가 배운 것들이 많다. 여기서 그만둔다 해도 손해뿐은 아니리라.

“잘 모르겠습니다.”

은우의 솔직한 답에 빌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얕게 끄덕였다.

“제가 간섭할 문제는 아니지만, 될 수 있다면 그러지 마세요.”

제법, 의외의 말이었다.

“제가 은퇴하면 빌리 님께 좋지 않을까요.”

“하하, 그것도 나쁘진 않겠죠.”

제법 뼈 있는 말을 건네 보았으나, 빌리는 구태여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하기엔 그럴 경우의 결과물을 둘 다 잘 알았다.

“실력을 우선시하는 분들이 꽤 오시겠죠? 국내에선 그래도 제가 켄 님 다음으로 피지컬이 나은 편이니까……. 물론 저 말고도 훌륭한 분이 많지만요.”

멘탈이 쪼개지지 않은 빌리는 역시 이렇게 매끄럽다. 은우는 그 앞에서 울던 남자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가 이 바닥에 남는다면 상대해야 할 건 지금 이 모습일 것이므로.

“그렇지만 그게 정말 제게 좋은 일일까요?”

은우는 찻잔을 톡톡 치던 손가락을 멈췄다. 빌리의 미소가 좀 더 짙어졌다.

“켄 님이 은퇴한다 해서 켄 님이 이 바닥에 남긴 영향력이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강력해지겠죠. 켄 님은 유일한 사람이니까.”

대체할 수 있는 인재라면, 이 바닥을 떠나든 말든 상관없다. 매일 새로운 사람이 유입되는 업계에서 그들의 존재감은 금방 메워질 테니까.

“지금보다 더욱 비교하고, 그리워하겠죠. 제가 켄 님 다음으로 유명하고, 실력이 좋으니까 아마 더 그럴 겁니다.”

그렇지만 대체할 수 없는 인재는 다르다. 그들은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동 세대 인물들을 영원히 괴롭힌다.

80년 전 해체된 밴드가, 60년 전 사망한 록스타가, 반세기 못 미치기 전에 사망한 팝의 황제가 그렇듯.

“거기에, 켄 님은 따지고 보면 음해에 휘말려 은퇴한 거니까요.”

은우의 무죄를 믿는 이들은 더욱 그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가 은퇴하지 않기를 바라십니까?”

그렇지만 은우는 그 말을 그다지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분명 그것은 타당성 있는 근거이고 논리적인 설득이었으나, 그것 앞에 한 문장이 붙으면 모든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아뇨.”

빌리는 타인이 비교해도 무너지지 않을 거다. 더 이상은.

“방금 들려 드린 건, 그냥 켄 님이 납득하실 만한 근거고… 제가 직접적으로 켄 님이 은퇴하지 않길 바라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빌리는 머쓱하게 웃었다.

“그냥, 팬이니까요.”

굉장히, 멋쩍은 웃음이었다.

“…팬?”

“그렇게 이상한가요?”

“아뇨…….”

은우는 눈을 껌뻑였다. 이상하다기보단, 생각지도 못했다.

“원망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서.”

그가 물었을 때 당황했던 탄산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은우는 빌리가 그를 안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그때 투덜거린 것도 있고, 여러모로 겹치는 게 많으니까.

“그건… 그땐 그냥 여유가 없던 겁니다. 원래는 켄 님 방송, 되게 좋아합니다. 배울 점도 많고, 인간인가 싶기도 하고…….”

빌리는 험담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곤 시선을 다시 마주했다.

“검은기사 찾아보는데, 멋있더라고요.”

어색한 듯 쑥스러운 듯 웃는 건 여전하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은퇴하지 마세요. 이번 사건이 꽤 충격이 컸을 건 알지만, 스트리머 일 하면 은근히 자주 벌어지는 일입니다. 당장 저도 몇 번 겪어 본 적 있고, 과거사도… 비일비재합니다. 아무렴, 법망을 교묘히 피해 현재 진행형으로 사생활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게 기자들인데요.”

“…그렇습니까.”

그건 몰랐다. 은우는 빌리에게서 많은 걸 배웠지만, 그 사람을 치밀하게 조사할 정도로 관심이 많진 않았다. 인터넷으로 조사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도 이유에 한몫하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퇴를 숙고했던 제가 하면 설득력이 좀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그러지 마세요. 여기서 멈추기엔 아직 많은 게 남았잖습니까. 고작 그런 음해에서 스러지기엔 켄 님이 누릴 수 있는 것들도 많고.”

은우는 빌리의 말을 경청했다.

많이 남았다라. 하기야 그의 이십 대는 아직 1년밖에 지나지 않았고, 이번 문제가 아니면 그의 과거 중에서 문제 될 건 그다지 많지 않다. 계속한다면 적어도 지금 누리던 걸 계속 누릴 수 있겠지. 아마도.

“전 켄 님이 떠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좋은 사람이신 걸 제가 직접 겪어 보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래서 나섰고, 그래서 이 자리를 만든 겁니다. 제가 간섭할 문제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고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사실, 결정은 이미 내렸다. 단지 시간이 남았기에 그것이 최선인가 몇 번 더 재고할 뿐이다.

이미 실행한 이후라면 모를까, 실행 전이라면 정말 이것이 최선인지, 더 나은 길은 없는지 고민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나.

그러므로 빌리의 의견 또한 의미는 있으나, 영향력은 끼치지 못하는 무언가로 끝났다. 애초에 빌리에게 은퇴에 대해 의견 구하러 온 자리도 아니었으니 당연하다.

“참고하겠습니다.”

은우의 답에 빌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더 이상 떠들어 봤자 의미 없음을 아는 직감한 탓이리라.

“한데…….”

“……?”

“근거와 이유를 따로 나눈 것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보통은 이유만 대지 않을까. 그로선 근거가 있는 편이 좋지만.

은우의 물음에 빌리가 살짝 난처한 얼굴을 했다.

“그… 탄산 님이 일러 주신 게 있기도 하고, 제가 판단한 것도 있고…….”

“탄산 님……?”

빌리는 뺨을 손톱으로 긁더니 조심스럽게 일러 주었다.

“켄 님은 감성적인 것에 납득할 성격이 아닌 것 같다고…….”

항상 생각하지만, 탄산 그 양반은 구렁이 백 마리는 삶아 먹었을 거다.

은우는 불쾌함을 얻는 대신 어처구니를 잃었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그, 나중에 일이 좀 사그라들면 합방이라도?”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네.”

차후 친하다고 말하게 될, 그렇지만 아직 친하다고 말 못 하는 사람이 하나 더 생겼다.

* * *

헥헥헥.

주말, 집 밖에 득시글거리는 기자들로 인해 불가피하게 형과의 여행이 무산됐다.

사실 기자들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의 문자 창은 ‘그래’ 이후로 ‘여행은 못 갈 것 같네’와 ‘그러게’만 이어져 있는 상태였다.

대화가 끊겼다.

그에 아쉬웠나, 불안했나.

잘 모르겠다.

은우는 답답한 속을 뚫어 내고자 민식이와 로건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겨울바람에 추위 느끼지 말라고 기모 후드 티도 입혀 준 상태다.

“거기, 거기!”

“사람이, 좀!”

한편, 그를 쫓아 달리는 기자들의 목소리는 점차 멀어진다. 대신하듯 귀에 박히는 건, 그들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보도 블럭을 밟을 때 나는 타닥타닥 소리다.

탁! 탁! 탁!

은우는 강아지들을 잡은 리드 줄을 적당히 풀어 준 채 도보를 내달렸다.

그가 달리니 강아지들도 신나서 마구 네 발을 움직이는 게, 지금 시속을 재면 40km는 나오는 거 아닌가 의심된다. 속은 시원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몰린다.

어찌 됐건, 이른 아침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 얼마 없는 사람들마저 거구의 사내가 대형견 두 마리와 맹렬한 달리기를 하니 눈을 둥그렇게 떴지만.

아마 카메라를 지고 달리다가 하나둘 낙오하는 기자들 덕도 있을 거다.

은우는 그들을 피해 30분을 넘게 달렸고, 그 결과 훌륭히 그들을 따돌렸다. 정말이지 끈질긴 족속들이었다.

저 새끼들만 아니었어도 오늘 형이랑 부산으로 놀러 가서 회도 먹고 해운대 구경도 하고, 하여튼 여행을 즐겼을 텐데.

사진도 못 찍으면서─은우는 여전히 얼굴 공개를 허락하지 않은 상태였다─그놈의 인터뷰 좀 따겠다고 쫓아오는 것들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취소했다. 그뿐이면 몰라도, 형까지 휘말리게 할 순 없었다.

“후.”

그는 기자가 다 떨어나갔을 즈음, 적당한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저들이 먼저 와 있는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매번 들어가는 카페는 달라지고 있다.

“강아지 출입 가능합니까?”

반려견 출입 가능한 카페가 많은 편이 아니라서 문제긴 하지만.

“그, 네…….”

은우는 반려견 금지, 가능 표시가 없는 카페에 슬쩍 고개를 들이밀었다. 개인 카페였는데, 다행히 주인장은 허락해 주었다.

다소 당황한 얼굴이긴 해도.

은우는 고개를 꾸벅 숙인 후 핫초코를 휘핑 올려 주문했다. 마시멜로 추가도 가능하다기에 냉큼 추가했다.

“둘 다 몸 좀 녹여.”

은우는 문가에서 떨어진 안쪽 자리에 앉아 아이들을 테이블 아래로 숨겼다. 바깥에서 못 보도록 유도한 것도 있고, 커다란 개 두 마리가 카페 안을 휘젓지 않도록 예방하고자 하는 것도 있다.

다행히 요 사고뭉치들은 집에서만 사고를 칠 뿐, 밖에서는 그래도 말을 잘 들었다.

은우는 그들의 목을 살살 긁어 주었다. 둘 다 얼굴에는 입마개를 끼고 있는데, 법률상 어쩔 수 없다. 불편할 법한데도 빼려 들지 않고 얌전한 게 대견할 뿐이다.

“따뜻해? 기분 좋아?”

카페 내부의 온화한 공기에 두 강아지가 축 늘어졌다. 기모 후드 입고 그러니까 정말 귀엽다.

“…저.”

그때, 누군가가 그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핫초코를 든 카페 주인이었다.

가판대 너머에 있을 때도 느꼈지만, 솜털처럼 보송하게 날아갈 것같이 작은 사람이다. 일어서면 명치께쯤 올 것 같은 게, 희수랑 거의 키가 비슷해 보인다.

“……?”

은우는 얼떨결에 일어서서 쟁반과 쟁반 위 핫초코를 받았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그…….”

카페 주인이 소동물 같은 몸을 미세하게 떨며 눈동자를 굴렸다. 쟁반을 넘겨주며 드러난 손에는 해당 카페에서 파는 쿠키 꾸러미가 꼭 쥐어져 있다.

“그으으……!”

그녀의 눈이 뱅글뱅글 돌아가다가, 눈을 꾹 감고 입술을 달싹였다. 입 모양을 대충 읽어 내니, ‘저 얼굴로 하바나브라운 춘 사람이다… 하바나브라운 춘 사람이다…….’ 정도 되는 문장이 나왔다.

“민식이랑 로건이 견주님! 맞으시죠!”

곧 눈을 뜬 카페 주인이 우렁차게 물었다. 은우는 순간 당황해서 고개를 주억였다.

켄이냐고 물었으면 차라리 침착하게 반응했을 것을, 하필 강아지 두 마리 이름이 튀어나와서 반응이 말랑해졌다.

어쨌거나, 그의 긍정에 카페 주인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건 서비스입니다!”

그녀는 쪽지가 매달려 있는 쿠키 꾸러미를 훅 내밀었다. 엉겁결에 받으면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꽥 외치며 후다닥 가판대 안쪽, 주방으로 도망간다.

하나같이 처음 보는 반응이라 빠르게 대처할 수가 없다. 은우는 그렇게 쿠키를 쥔 채 덩그러니 방치됐다.

그의 손 사이를 빠져나간 쪽지가 팔랑팔랑 아래로 추락을 시작했다.

월!

어쩌다 이름이 불려서 냉큼 일어섰던 두 강아지가 쪽지를 물기도 전에, 은우는 반사적으로 그 편지를 낚아챘다. 달리 편지지가 없었는지 수첩 종이에 휘갈기듯 글씨가 적혀 있다.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이번 일 때문에 많이 힘드실 텐데, 힘내세요ㅠ!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켄 님, 파이팅! >▽

강아지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의 다리를 툭툭 치는 것도 잠시.

은우는 무의식적으로 종이에 적힌 글을 읽어 내렸다가, 뒤늦게 그 뜻을 이해했다. 동글동글한 글씨체가 그림이 아닌 언어로 뇌에 박혀 들어온 것이다.

지인이 아닌, 불특정 다수 중에 숨어 있는 팬에게 받은 첫─사건이 터지고─응원 편지였다.

의미도 있고, 영향력도 어쩌면 끼칠 수 있는 변수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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