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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221화 (221/233)

221화

은우가 침묵하는 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 이 자리까지 온 자들이 밝혀낸 결과, 추모자는 특별한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마법이나 성법, 그 흔한 근접 스킬조차도.

마치 플레이어─근접 전투를 택한─처럼 무기를 이용한 싸움만을 하는 것이다. 전작의 배신자처럼 손이 4개가 된다든가, 머리카락을 이용해 추가타를 넣는다든가 하는 괴랄한 공격 모션조차 없었다.

하면 추모자는 약할까? 절대 아니었다.

광역기도, 화려한 공격 모션도, 스킬도 없이 기본과 기교로 상대하는 그것은, 그렇기에 가장 어려웠다.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 221. 모든 것은 부질없음을

은우는 입술을 비틀어트린 채 사고했다.

모든 조건이 같았던 어느 때와는 다르다. 근력, 속도, 체력, 장비, 무기. 모든 것이 열등한 상태이므로.

하면 어떻게 승리해야 할까. 모든 것이 우월한 상대를 죽이는 법은 뭘까?

일단 추모자가 있는 공간은 그렇게 넓지 않다. 면적 자체는 꽤 되었으나, 벽이 무너지며 쌓인 돌 더미, 이곳저곳에 놓여 있는 시신, 하다못해 바닥에 박혀있는 수십 개의 무기까지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 많았다.

그는 그것의 위치들을 눈에 박아 넣으며, 그것의 형태와 종류까지 파악했다. 그 순간 날카롭게 치고 들어오는 건 창이다.

추모자는 스스럼없이 대낫을 내려놓고, 그 주변에 꽂혀 있던 창을 집어 던졌던 것이다.

은우는 가장 먼저 검으로 창과 맞섰다. 얇은 도신은 그것이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그 위로 창을 미끄러트렸다. 어찌 보면 창과 검이 평행하게 있어, 교차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창이 도신의 가장 단단하고 두터운 지점에 이르렀을 때, 은우는 검을 강하게 휘둘러 창을 떨쳐 냈다. 물 흐르듯 완벽한 튕겨 내기. 허공을 쪼갠 금속에 수많은 색이 입혀졌다.

그러나 그 찰나의 빛에 시선을 빼앗긴다면 기다리는 건 죽음뿐일 테니. 거창을 튕겨 내면 직후 정면에 보이는 것은 빈틈을 노리고 달려드는 추모자다. 철을 그 몸에 둘렀으나, 그것은 강건함 대신 핏물과 죽음을 짙게 머금고 있다.

검을 튕겨 내는 데 쓰이지 않은 검이 그런 죽음을 위해 고개를 들었다.

휘익!

추모자의 양손은 대낫을 붙잡아 길게 휘둘렀다. 굴러 피할 수도 있겠으나, 은우는 그보다 더 좋아하는 게 있었다. 은우의 몸이 한 보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 사이에는 속도 차이가 제법 존재하나, 느린 쪽이 먼저 움직인다면 그 간극은 쉽게 메워진다. 은우의 발이 대낫의 자루를 밟았다.

그 순간, 추모자가 그것을 놓았다. 발아래의 균형이 비틀어진다.

댕그랑!

은우의 발에 짓밟히며 대낫은 추락했다. 은둔한 추모자는 빠르게 백스텝을 밟아 후퇴하는 중이다.

그 반걸음은 은우의 검 사거리를 정확히 벗어나는 행위이자, 뒤편에 있던 무기를 잡게 해 주는 묘수이니.

검 궤적이 호수에 떠오른 반월의 잔상을 그렸다. 마찬가지로 잔흔이 남을 만큼 재빠르게 몸을 뺀 적은 뒤편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절삭음 대신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까드득-

추모자가 시체의 머리를 으깨고 있던 망치를 들어 올렸다. 체액이 끈적하게 묻어났다가 금방 끊겨 나간다.

퇴색된 백금색 머리카락은 망치의 긴 손잡이에 얽혀 마치 비단 끈처럼 흔들린다.

은우는 호흡조차 삼킨 채 그런 추모자를 노렸다. 칼날이 직선으로 뻗으며 공기 중을 떠도는 눈송이를 갈라냈다.

그그극-

추모자의 단검이 은우의 장검을 파훼하려 했으나, 은우는 그 사이를 비껴 찔러 넣었다. 푸욱! 파육음이 났지만, 그것은 살을 내주고 뼈를 깎는 전략이었다.

망치가 은우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까앙!

대저, 망치를 상대로 날붙이를 드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날붙이의 예기가 사라지는 것을 넘어서, 그것이 부러지는 것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게임은 다르다. 칼날이 무뎌지는 경우가 없다.

무뎌지는 경우만, 없다.

파삭!

튕겨 내기에는 성공했으나, 대신 들고 있는 검 중 하나가 격렬히 알림 창을 토해 냈다.

『숏 소드에 금이 간 것 같다』

2편에서 추가된, 내구도 관련 알림이다. 50% 이상 깎이면 ‘금이 간 것 같다’, 70% 이상 깎이면 ‘금이 갔다’, 90% 이상 깎이면 ‘부러질 것 같다’ 정도로 경고 창이 떠오른다.

이 덕에 무기 날려 먹는 일은 줄었지만, 그렇다고 형편이 나아진 건 아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번 한 번의 맞부딪침으로 내구도가 50% 이하가 됐다는 소리니까.

─아니 시발,,, 상도덕 어디감;;

─이 새낀 잡으라고 만든 게 아니라니까

─가오잡으려다가 비웃음 거리 되겠네ㅋㅋㅋㅋㅋ

─저거 부딪치면 안 되요ㅠㅠ

─쟨 패링도 잘 안 먹어서 ㅅㅂ

내구도는 내구도고, 딜 타이밍은 딜 타이밍이다. 은우는 두 개의 검을 내리그었다. 녀석이 특유의 재빠른 직선형 움직임으로 몸을 뺐지만, 긁히는 건 막지 못했다.

인간형 보스답게 피가 제법 까였다.

─? 피 ㅈㄴ 까엿는데?

─머임

─ㅈ가튼 대신 쟤 피통 작음

─가능성 있는 거 아냐?

─어?

대략 1/25가량. 보통 1/30에서 1/40 사이만큼 깎이는 걸 생각하면 이건 피통 자체가 작다고 봐야 한다. 최후반부 보스인 데다가, 방금 제대로 맞은 것도 아님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탁.

은우와 추모자가 서로 거리를 벌렸다.

은우는 녀석을 경계하며, 내구도 문제를 빠르게 고민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상대한 적들이 있으니 내구도가 꽉 차 있진 않았을 터. 무기를 다양하게 돌려 가며 썼으니 대략 80%~90% 정도까지 떨어졌을 거라 본다.

굳이 100%를 채우지 않은 건, 그것으로 충분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무렴, 무기 하나로 지역과 보스를 전부 제패하는 수준이 아닌 이상 내구도가 0에 치닫는 경우는 없었다. 그때 이후로 집요하게 관리하고 있으니 잘 알고 있다.

“일단 50%가 이번 공격으로 날아갔다 치겠습니다.”

그럼에도 내구도가 떨어졌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단 건…….

“이 녀석, 내구도 깎아 먹는 스킬이라도.”

아니, 아니다. 내구도가 떨어지는 시스템은 모른다 하나, 부딪칠 때마다 내구도가 깎이는 시스템이라면 그건 의미가 없지 않은가.

무기를 부숴 먹으며 싸워야 하는, 그런 재미없는 싸움을 카롬이 유도할 거라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내구도가 떨어지는 조건은 뭘까? 저것이 그라는 존재를 기반으로 탄생한 것임을 생각하면 답은 금방 나온다. 그는 말을 고쳤다.

“무기 약점을 정확히 노리고 타격하면 무기가 부서지게 시스템 설정이 되어 있나 봅니다.”

그는 습관적으로 무기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공격을 흘리는 편이었다. 상대가 은우만큼이나 무기의 약점을 노릴 줄 알아서, 결과적으로 평범한 이들끼리 맞댄 수준이 된 게 문제지.

하물며 사용한 무기는 상극이었다. 내구도가 50% 날아가도 이상할 게 없다.

“안 부서지게 조심해야겠네요.”

생각은 길었으나 결과는 간단하다. 녀석이 약점을 타격해 내구도를 깎아 버린다면, 그는 약점을 맞지 않도록 하면 된다. 쉬운 논리였다.

─아니 그게 안 된다니까...

─(금지된 채팅입니다)

─조심해서 되면 진즉에 잡았죠

─새퀴들ㅋㅋㅋ켄 왜 의심함?

─쿨한 척 ㅇㅈㄹㅋㅋㅋ

─그냥 관둬라

은우는 시청자들의 말을 뒤로했다. 문득 떠오른 건 그가 버릇처럼, 혹은 습관적으로 시청자들과 대화하듯 말했단 사실이다.

참 우습지 않은가? 그는 이 일을 마무리 지은 후에 사람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고자 했는데, 정작 그리 생각하고 결정한 그가 말을 걸고 있다는 게.

방송은 이미 그의 삶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사람들을 외면하고자 해도 그가 먼저 입을 열고 만다. 버릇이었다, 이것도.

그는 그것에 작게 실소하며 앞으로 슬슬 걸었다. 망치를 붕붕 돌리던 녀석이 짧은 쪽 검을 그대로 위로 던졌다. 이후 그것이 뽑아 던지는 건 실제로도 존재하는 무기, 소비용 나이프다.

은우의 검이 부드럽게 그것들을 쳐 냈다. 팅, 팅, 팅. 정확히 한 박자 반을 소비한 그는 앞으로 달렸다. 한 손에 들려 있던 검이 집어넣어지고, 새로 소환되는 건 단창이다.

채앵!

아래로 떨어지던 단검은 추모자의 손에 들어와 은우의 검과 맞닿으니. 불똥이 튀었다. 추모자의 몸은 단검이 휘두른 방향에 맞춰 빙글 돌아간다.

은우는 직후 뛸지, 혹은 빠질지, 상체를 낮출지 고민했다. 이성은 찰나간에 판단을 마치고 몸을 움직인다.

두 걸음. 은우가 물러난 자리에 추모자의 망치가 휘저어졌다. 콰앙! 바닥에 박힌 망치는 미련 없이 떠나는 손에 의해 그대로 방치된다.

은우의 손에 들린 단창이 앞을 찔렀다. 손등만을 얄팍하게 스친 그것은 적이 뽑은 것을 확인한 순간 빠르게 물러났다.

장창. 추모자가 단검을 바닥에 내려찍듯 버리며 그것을 양손으로 붙잡고 그대로 돌렸다. 대각선으로 내려쳐지는 장창은 가히 2.5m에 달해 그 사거리를 벗어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그것이 공격하기 전, 미지의 힘에 당겨지듯 훅 다가와 버리면 더더욱 거리 잡기가 어려워진다.

은우의 몸이 뒤로, 뒤로 밀렸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단창이 바닥에 꽂히며 그의 몸을 덜컥 위로 올린다. 은우의 발아래로 장창이 내려꽂힌다.

─딜타이밍??

─아니 이걸 게임이라고

─몬가,,,,몬가 벌어지고 있음

─진짜 오졋다....

─이쯤 되야 5대1도 하는 거구나...

단창을 쥐지 않은 손은 장검을 역수로 쥐고 있으니. 은우는 그대로 추모자에게 내려꽂히고자 했다. 그의 동체가 다른 점을 발견한 건 그다음이었다.

장창을 잡고 있는 손과 손 사이. 장식이라고 하기엔 묘하게 두꺼운 철제 조각. 저건 정말 장식일까?

그리고 추모자 자체. 평소 같았다면 뒤로 훅 물러날 텐데, 왜 물러나지 않을까?

탁.

은우는 추모자를 공격하길 포기했다. 대신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그는 마치 몸을 낮춘 맹수처럼 납작 엎드렸다.

달칵. 무언가가 분리되는 소리를 낸 건 그때였다.

휘익!

허공을 가른 것은 반으로 쪼개져, 추모자의 왼손에 역수로 들리게 된 창대 부분이었다.

은우는 몸을 최대한 옆으로 기울였다. 그의 투구를 창날이 얇게 훑고 지나갔다. 각도상 아래서 위로 올려 치듯밖에 할 수 없던 탓이다. 그것만으로도 피가 쭈욱 깎였다.

이후 은우는 접었던 무릎을 펴며 검을 내질렀다.

푸욱!

그의 검이 추모자의 목덜미를 기어코 찔러 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추모자는 아무런 문제 없다는 듯 오른손의 창 반쪽을 휘두른다.

흘러드는 빛이 창을 밟으며 광채를 사방에 흩뿌린다.

단창을 휘둘러 창의 방향을 꺾은 뒤, 뒤로 굴러 몸을 피한 은우는 녀석의 무기를 다시금 확인했다.

가운데가 분리될 수 있어, 짧은 순간에 1.25m 어림의 자루 두 개가 될 수 있는 장창.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 중엔 없다. 그래서 예상하지 못했다.

“탐나는데.”

─안이...;;

─따라갈 수가 없어...

─무기?? 상태가??

─진짜 깨는 거 아님?

─피가 너무 다는데....

그는 추모자의 손안에서 순식간에 결합된 장창의 찌르기를 피하며 생각했다.

그의 욕망과 별개로 그는 저걸 가질 수 없을 거다. 보스 전용 무기가 지금껏 없던 것도 아닐뿐더러, 추모자에겐 저런 무기가 한두 개로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은우는 검을 집어넣고 단창만을 제대로 쥐었다. 그리곤 마저 찔러 들어오는 장창을 위로 쳐 냈다. 길이가 긴 만큼 낭창낭창하게 휘어지는 장창은 쉽게 쳐 내진다.

그는 그 빈자리를 노려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추모자가 뒤로 한 번 물러났다. 그러곤 쳐 내지며 뱅글 돌았던 장창을 그대로 쏘아 보냈다.

은우가 그것을 피해 한 걸음 움직이면, 바닥에 박혀 있던 한 손 도끼를 든 적이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다. 은우의 손가락이 장비 소환을 해낸 것도 그때였다. 단창을 들지 않은 손에 메이스가 들렸다.

파각!

추모자의 도끼가 메이스를 횡으로 내려찍었다. 힘겨루기 구도가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당연하지만 저쪽이 더 우세하다. 은우의 메이스가 바깥을 향해 살짝 밀렸다. 하필이면 도끼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휘둘러진 채라서다.

이 와중에 추모자의 다른 손은 은우에게로 찔러 넣어졌다.

은우는 빠르게 단창으로 그것을 막았다. 추모자의 손이 그 단창을 붙잡아, 그대로 당겼다. 판단이 빠르다.

은우는 당겨지지 않기 위해 창을 놓아 그것을 스쳐 보냈다. 그러자 추모자도 덩달아 창대를 놓아 버리며 그대로 손을 뾰족하게 접었다. 그것의 손에는 손톱이 씌워져 있으니. 끝을 날카롭게 벼려 낸 손가락 갑옷이 은우의 목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렇게 목이 찔리기 직전. 은우는 메이스를 이용해 몸을 뒤로 눕혔다. 힘겨루기에서 밀리던 메이스를, 차라리 추모자의 도끼에 의해 밀려나도록 한 것이다.

외려 그는 그 힘과 손아귀에 쥔 힘을 조절해 메이스가 돌아가도록 했다.

때문에 안쪽을 점했던 추모자의 창은 바깥으로, 반 바퀴 돌아서 역수로 잡힌 메이스는 땅을 짚었다. 은우의 몸을 지탱하기 딱 좋은 순간이었다.

콱!

박힌 메이스를 이용해 몸을 뒤로 눕히며 다리를 들어 올리면 추모자의 가랑이 사이를 정확히 때릴 수 있다.

─으헉

─안이 님아....

─이건 좀 아니다

─거기는 좀

─??: 내가 고자라니?!

─이건 좀....

─이 일은 켄 인성에 대해 좀 토의해볼 필요가

─없음

고환을 가진 존재들이 채팅 창에서 비명을 지르는 동안, 추모자가 엎어진 그를 밟고자 다리를 들었다.

은우는 둘 다 놓아 버리는 바람에 바닥으로 떨어진 단창을 붙잡고 빠르게 굴렀다. 짓이겨지는 걸 간신히 피했다 싶으면 곧바로 도끼가 그를 향해 던져진다.

옆구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그것은, 약간이지만 그의 피를 깎아 낸다. 추모자가 도끼 다음으로 던져 버린 나이프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뺨을 긁으며 지나갔다.

은우는 처음으로 암브로시아를 섭취하며 몸을 일으켰다.

“괜찮네요. 괜찮은데…….”

─?

─괜찮은데?

─의심충들 입 다문 것 보소

─괜찮은데 뭐

─ㄹㅇ 잡는 거 아니냐

은우는 메이스의 내구도를 빠르게 확인해 보았다. 역시 무기의 약점을 때려야 내구도가 깎이는 구조인지, 눈에 띄게 깎이지 않았다. 메이스와 도끼가 부딪치면 대개 도끼의 날이 나가는 편인 것도 한몫할 것이다.

다만…….

“조금 실망인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다라면, 조금 아쉽다. 복제에 누군가의 손길이 더해져 제법 변형되었다지만, 그래도 기반은 그 자신이 아니던가. 움직임이 뻔히 보였다. 신체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뿐.

그러나 그렇다고 못 할 것까진 아니다. 할 수 있다. 공격 속도 차이로 인해 앞으론 정확히 빈틈이 날 때만 때려야 할 것 같긴 하나, 그런 거라면 앞서 몇 번이고 해 본 일이다.

이미 수도 없이 겪어 보아서 질리는 패턴이란 말이다.

그것에 단지 무기를 자연스럽게 바꿀 수 있고, 정확히 흘려보내지 못하면 무기가 부서질 수 있는 게 추가된 정도라면, 그의 기대는 부서질 것이다.

은우는 이것이 발매되기까지 기다려온 시간을. 그리고 발매됐음에도 하지 못한 채 침묵하던 시간을 떠올렸다.

얄팍한 자들이 모여 만든 복제 데이터에게 무학을 기대할 수는 없음을 알아. 그렇지만, 그래도 기대했는데.

역시, 그의 인내는 보답받지 못하는 걸까? 그의 희망은 진즉 버렸어야 했던 걸까. 이럴 거면 왜 그는 이 이후로 대화를 미뤘던 걸까.

왜 그는… 그는…….

푸욱!

침착하게, 차분하게. 언제나 그래 왔듯이 적의 심장을 은우의 검이 꿰뚫었다. 온갖 박투와 무투를 거쳐 은둔한 추모자의 피는 바닥을 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은우의 검이 인내를 머금은 채 추모자의 목을 다시 한번 뚫었을 때, 시야가 흔들렸다.

─깨자 깨자ㅏㅏㅏ!!

─진짜 켄은 전설이다...

─미쳤나봐ㅠㅠㅠ

─ㄹㅇ 깨는 거임??

─인간이냐고

─오이오이 형씨 믿었다고~!!

─제발, 제발 제발....!

─?

─??

─어?

빠르게 상승하던 채팅 창이 잠시 멈칫한 것도 그때였다.

흔들리되 제한된 시야 사이로, 무릎 꿇은 추모자가 손을 움직였다. 그것이 주워 든 것은 싸움의 여파로 떨어진 듯한 목각 인형이다.

설마, 컷신? 은우는 처음 겪는 사건에 눈꺼풀을 가늘게 좁히려 했다. 비록 신체가 제한된 상태라 해도.

“하아…….”

그사이, 짙은 숨소리와 함께 목각인형을 든 손이 그것을 가볍게 쥐었다가, 그대로 바스러트렸다.

그 순간, 그것이 빛 가루가 되어 바닥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후 추모자의 등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빛의 가루들은 마치 불꽃을 형상화한 듯하다.

세계수. 마침 채팅 창이 속삭였다. 소비 아이템인 뿌리를 사용하면 플레이어는 일시적으로 세계수와 비슷한 존재가 되는데, 그 사용 이펙트가 저것과 동일한 모양이었다.

단지 추모자의 것은 좀 더 붉고, 좀 더 타오를 뿐이었다.

“…가로되 죽은 자여, 쇠망이 필연이라면 인간과 인간이 아니었던 것의 발악은 무슨 가치를 가지는가.”

그때, 처음으로 케네스가 목소리를 내었다. 그의 말은 두 개, 혹은 세 개의 목소리가 겹쳐진 채로 흘러나왔으니, 무어가 본래 목소린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목소리였는지도 모르고.

“어떠한 발악을 위해 이 자리에 섰는가.”

그가 쥔 검에도 금빛 가루가 스며들었다. 마치 균열이 간 것처럼 검의 표면에서 빛을 발하는 금빛은 꼭 검 내부에 용암이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은 부질없음을…….”

그리고 그에게서 뻗어 나온 빛줄기 하나가 은우의 손목에 얽혔을 때, 은우가 깎아 냈던 상단의 체력 바가 다시 차올랐다.

<잊혀진 시대의 추모자 케네스>

2페이즈의 시작이었다. 채팅 창이 불난 주유소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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