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화
<빌리 형......>
[클립영상]
보통 지면 퇴물이다 뭐다 하는 소리 나올 법한데...
이번은 그냥...그냥 형도 괴물이었구나......
─ㅇㅈ.... 빌리도 걍 괴물이었던 거임
└실시간으로 슈화화화확 하는데;;
─켄이 봐주는 거 엄청 티나던데?
└그래서 봐주는 상태로 버틸 자신 있?
└아니.....
─이와중에 켄 회복시켜주는 애들 잡을 시간 주는 거 상냥해...
└(대충 자신과 같은 걸 본 게 맞는 거냔 채팅)
└상냥....? 매타작하는 게 상냥...?
└^^.....
은우는 커뮤니티 반응이 썩 나쁘지 않음을 확인한 후, 노트를 껐다. 슬슬 차가움보단 시원함에 가까워지는 바람이 뺨과 귀를 간지럽히고 사라졌다.
어째서 귀에 찬바람이 들어차는가 하면, 그건 그가 지금 강아지들과 함께 산책을 나온 상태라는 것으로 설명될 것이다.
산책 장소는 사회화 교육을 위해 종종 찾는, 사람과 반려견 출입이 잦은 공원이다. 당연하지만, 입마개는 하고 있다.
“나중엔 애견 카페도 가 보자.”
컹!
아직 다른 개들과 어울리지는 못하게 하고 있다. 종의 문제도 있고, 둘 다 정상적으로 사회화를 거치며 자란 게 아니어서다.
길 가다 마주치는 정도야 괜찮아 보이지만, 본격적으로 놀다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입마개를 하고 있다 해서 위험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지금은 저들의 존재에, 저들이 내는 소음에 익숙해지는 단계다.
다행히도 아직까진 둘 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가끔 길 가다 마주친 작은 개들한테 약하게 짖곤 했지만, 꼬리가 살랑대는 모습이나 크게 관심 두지 않는 모양새는 적대적인 의사로 보이지 않았다.
하여 은우는 걱정을 놓고, 리드 줄을 적당히 조절하며 공원을 돌아다녔다. 만약 뛰쳐나간다 해도 그들을 제압할 힘이 있으니 걱정은 한결 더 덜해진다.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나중엔 친구도 사귈 수 있겠지. 은우는 그런 기대도 했다. 그렇게 되면 은우도 생판 모르는 이들과 교류해야겠지만, 뭐 어떤가. 개들에게도, 은우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사회성이 필요한 건 개나 주인이나 똑같았다.
우엉-
그때 로건이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혀를 날름거렸다. 공원 한편에는 뛰놀기 좋은 공터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원반이 빙빙 날고 있던 탓이다.
“집에 가서 하자.”
안타깝게도 입마개 때문에 집이나 집 근처에서 종종 하던 놀이는 할 수 없다. 원반이나 공놀이 같은 것.
때문에 은우는 아이들을 살살 달래 줘야 했다.
사실 돌아가면 씻고 바로 쿡방을 준비해야 해서, 놀아 줄 시간 같은 건 없겠지만 말이다.
▣ 외전. 그 스트리머가 요리하고 먹는 법
“예, 안녕하세요.”
뿔난 민식이와 로건이가 양쪽에서 그를 꾹꾹 눌러 댄 상태로 은우는 방송을 시작했다. 헬멧을 안 쓰니까 확실히 편하긴 하다.
─켄님 왜 공격당하고 있어요
─민식아아아아아 로건아아아아아
─켄님...?
─이 와중에 평온한 거 너무 웃기다...
─저 큰 개들이 양쪽에서 눌러대는데 흔들리지를 않네
─마치 사몬소......
“입마개 때문에 원반던지기를 못 해서 그렇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ㅠㅠㅠㅠ
─아 그렇게
─민식이 맹견이라서 입마개 필수였지?
─놀 때 힘들겠다ㅠ
“자, 나가자, 나가자.”
은우는 한숨을 내쉬며 슬슬 애들을 내쫓았다. 아직 추우니까 바깥에 방치하긴 좀 그렇고, 거실이 최선이다.
다행스럽게도 저번 쿡방을 토대로 마련한 펜스가 거실과 주방을 갈랐다.
─우ㅠㅠㅠㅠ
─기여워ㅠㅠㅠㅠㅠ
─대형견이 귀엽기 있기 없기?
─멈머ㅠㅠㅠㅠㅠ
펜스 앞에 엎드린 강아지 둘을 드론 카메라가 비추자 시청자들이 제대로 자지러진다. 하긴, 두 강아지가 귀엽긴 귀엽다.
“이거 먹고 기다리기. 얌전히 기다리면 하나 더 줄게.”
그는 직접 만든 건조 간식을 흔들며 강아지들을 꼬드겼다. 당연하지만, 주인 닮아서 대식가인 둘은 간식에 홀라당 넘어갔다. 챱챱 씹는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은우는 저번과 비슷한 복장으로, 대신 검은 셔츠를 입은 채 요리에 임했다. 아무렴 김치를 다룰 거라서 하얀색은 곤란했다.
“아시겠지만, 오늘은 쿡방&먹방입니다.”
─와! 쿡방!
─너무 좋아요호홍
─드디어 쿡방!
─것봐 얼공하니까 좋잖아ㅎㅎ
─되게 각잡은 거 보니까 이번에도...?
“제가 먹을 거라서 많이는 안 할 겁니다. 간단하게 할 거예요.”
은우는 미리 준비해 둔 재료들을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대충 볶음밥 몇 개랑 김치찌개, 토마토 달걀볶음, 채소 조금. 시금치가 있길래 시금치까지 볶아 먹을까 합니다.”
─왜 다 볶음요리임
─찌개 빼고 다 볶음이네
─시금치 볶음...? 구에에엑
─토달... 이 스트리머 좀 먹을 줄 아는데?
─토마토를 어케 먹음?
“그러게요……?”
딱히 의도한 건 아니다. 단지 쿡방과 먹방이 이어지다 보니 쿡방이 너무 길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대충 해서도 안 되니, 빠르되 다양할 수 있게 고른 것들이 이것일 뿐이었다.
─토마토 진짜 개극혐
─시금치는 왜 먹는 거임
─시금치를...볶아먹는다고..?
─채소 좋아한다는 게 빈말은 아니엇구나
“토마토랑 시금치, 맛있는데.”
파릇파릇한 과일과 채소가 얼마나 맛있는데 그걸 모른다. 은우는 어깨를 살짝 뒤로 빼곤 슬슬 요리를 준비했다.
─켄넴 볶음밥 좋아하심?
─왜 볶음밥 ‘몇 개’가 걸리냐....
─시금치는 먹어도 토마토 쌉에바
─볶음밥 맛있지
“네, 볶음밥 좋아합니다. 간편한데 맛있으니까요. 재료 들어가는 거에 따라 맛이 확확 바뀌기도 하고.”
은우는 가장 먼저 냄비에 김치를 넣었다. 그가 직접 담근 김치다. 따뜻한 방에 놔둬서 익긴 익었다. 엄청나게 시진 않으나, 이 정도면 김치찌개에 써도 그럭저럭 맛이 난다.
“익은 오이소박이랑, 총각김치, 배추김치 넣을 겁니다.”
─???
─ㅖ?
─오이소박이??
─? 김치찌개에 뭘 넣는다고?
─나 지금 이상한 소릴 들은 듯
─오이소박이요? 네?
─총각김치...?
“총각김치는 무 씹으려고 넣습니다. 배추김치는 기본이고. 아, 오이소박이는 국물 시원해져서 넣습니다. 누가 오이소박이 넣으면 더 맛있다고 해서 넣어 본 건데, 제 입맛엔 확실히 그게 더 낫더라고요.”
─?? 오이소박이가???
─그저 충격과 공포...
─김치 개많다 진짜
─대체 누가 그런 망언을 지껄인거임
─어디서 산 거임?
─국에 넣어서 따끈따끈해진 오이라니....상상도 안감...
“김치, 산 거 아닙니다. 직접 담근 겁니다.”
그는 자숙하는 동안 담갔다는 말은 삼갔다. 혹시 문제 될까 싶어서다. 아무렴, 세상엔 불행하고 괴로워하지 않았다고 태클 거는 이들도 있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저 얼굴과 저 덩치로 김치를 담가...?
─진짜 충격과 공포밖에 없다
─언제부터 쿡방이 호러물이 됐죠
─ㅋㅋㅋ와 이번 방송도 거를 타선이 없다..;;
─왕잌ㅋㅋㅋ김치를ㅋㅋㅋ
“혼자 담근 건데… 문제 됩니까?”
왜 이렇게 사람들이 충격받는지 모르겠다.
은우는 김치들을 적당히 자르고 쪼개서 냄비에 볶았다. 들기름을 살짝 두르고 김칫국물까지 넣어서 볶으면 김치가 타지 않은 채 사근사근 익는다.
─돼지고기는 안 볶음?
─고기 먼저 볶아야죠!
─고기 안 넣는가 보지
─김치찌개에 고기는 생명 아님?
“보통은 그렇게들 하시는데… 제가 돼지고기 물러지는 걸 싫어해서, 그냥 나중에 넣고 있습니다. 그럼 식감이 살더라고요.”
─진짜...사람마다 다 다르게 끓이는 김치찌개...
─오이소박이 넣는 시점부터 차원이 달라짐
─안이 왜..;; 우리 켄 기 죽이지 마욧!
─왕이 넣으라면 넣는 거임
─맛이 정말 상상도 안 가기 시작함
은우는 그것을 적당히 볶은 후, 물 붓고 고춧가루와 설탕, 다시다를 적당량 투하했다. 이대로 10분에서 15분 정도 끓인 후 돼지고기를 넣으면 된다.
그는 그다음으로 가지를 들었다. 싱싱한 가지는 제법 굵직굵직하다.
“가지밥을 먼저 하겠습니다. 취사하는 데 좀 걸려서.”
─오 그나마 정상적인게
─가지를 밥에 왜 넣음????
─밥에 가지를 넣는게 왜 정상적이야
─가지 구에에에에엑
─볶음밥 하신다지 않았음?
“볶음밥도 하고 가지밥도 할 겁니다. 하나만 먹으면 여러분이 질리실 것 같아서.”
─...? 질릴 정도로 먹는 거야?
─대-식
─내가 아는 쿡방의 개념이 사라짐
─머...머지?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은우는 가지의 꼭지를 따 버린 후 반 가르고, 대충 나박나박 썰었다. 통통통 하고 칼이 움직일 때마다 도마가 살짝 울었다.
그는 그런 다음 새로운 팬에 송송 썬 대파 중 일부를 집어넣었다. 오늘 파를 쓸 일이 많아서 미리 엄청나게 썰어 놨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기함했다.
─파 엄청나...
─파가 뭐 이리 많누
─ㅋㅋㅋ진짜 충공깽
─이게 왕의 쿡방이다
“밥하다 보면 파를 이곳저곳에 쓰게 돼서.”
은우는 송송 썬 대파 위에 기름을 두르고 그대로 볶았다. 파기름을 내기 위해서다.
곧 파가 노릇노릇 탔을 때, 그는 굴소스를 추가하고 그것이 너무 타기 전에 가지를 추가했다. 파 향과 굴소스 향이 주방에 진동을 했다. 입매가 가늘어지고 입안에선 침이 고이도록 하는 냄새다.
“냄새 좋네요.”
손목 스냅에 따라 팬 위로 가지가 출렁출렁 파도를 쳤다. 녹빛을 살짝 머금고 있던 하얀 속살은 숨이 죽으면 죽을수록, 소스가 섞이면 섞일수록 맛깔나는 갈빛이 돌기 시작한다.
─가지는 진짜...왜 먹는 거임?
─가지 맛있어요?
─가지가 얼마나 맛있는데
─맛 알못들 개많네
─취좆 좀 그만해주세요
“가지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게, 맛있지 않습니까?”
─아닌데요
─난 가지 느물느물해서 싫어..
─보라색 뭔가가 흐물텅하면 좀....비주얼이 좀.
─가지 맛있거든!
─켄 님 ㄹㅇ 맛잘알
“…여러분께 맛있는 채소가 있긴 합니까?”
토마토도 싫어, 시금치도 싫어, 오이도 싫어, 가지도 싫어. 그럼 좋아하는 채소가 있긴 한 걸까. 은우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불을 슬슬 껐다.
볶기 시작했을 땐 팬이 가득 찰 정도로 부피가 컸던 가지들이건만, 그것들은 이제 바닥에 납작 깔릴 정도로 적어 보인다.
“쌀은 미리 불려 놨습니다.”
은우는 불린 쌀을 밥솥에 먼저 깔고, 볶은 가지를 그대로 투하했다. 숫제 밥보다 가지가 더 많은 꼴이었다.
그 상태로 압력밥솥이 인덕션 위로 올라갔다.
“전기밥솥은 안 씁니다, 너무 느려서.”
─ㅋㅋㅋㅋㅋㅋㅋ
─아...느려서 안 쓰시는 거임?
─개웃겨ㅋㅋㅋㅋ
─밥 미리 해두면 되지 않나?
“예… 뭐.”
하루에 한 번 압력밥솥으로 밥하는 남자는 잠시 침묵했다. 소량씩 하는 탓도 있긴 하지만, 뭐 어쨌든. 그것까진 말 안 해도 될 것이다.
“반찬이 있으니까 양념장은 안 만들겠습니다.”
─양념장?
─가지밥이란 것도 오늘 처음 봐서 뭐...
─양념장 없으면 뭔 맛이냐
─가지밥 진짜 별로일 것 같아...
“가지, 맛있다니까요.”
그는 소시지를 집어 들었다. 이것까지만 썰고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를 넣을 생각이다. 고기가 익는 동안에는 볶음밥을 만들 거고.
“볶음밥에 넣을 건데… 소시지를 얼마만큼 넣을까요. 보통은 두 개 정도 넣는 편인데.”
그는 그 손가락 길이만 한 소시지를 집고 손에서 굴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반응을 보였다.
─두개나 넣음?
─두개밖에 안 넣음?
전자는 대체로 해 본 사람이고, 후자는 안 해 봤거나 소시지를 풍족하게 넣는 육식 사랑꾼이 분명하다.
“…가지밥도 있으니까 2개로 하겠습니다.”
어차피 만들 볶음밥 종류도 3개뿐이다. 달걀볶음밥, 마늘볶음밥, 김치볶음밥. 그러니까 소시지 2개면 충분할 거다.
은우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사고방식으로 생각을 마무리했다. 시청자들이 알면, 아니 곧 알게 되며 까무러칠 판단이었다.
* * *
우여곡절 끝에 요리가 완성됐다. 은우는 먹방에 최적화된 각도를 조정한 후, 음식들을 차례차례 날랐다.
냄비째로 들고 온 김치찌개, 4등분으로 각기 다른 밥이 담겨 있는 커다란 접시, 반찬용 접시에 담긴 토마토 달걀볶음, 시금치볶음. 간단하지만 한 상 가득이었다.
“밥 먹자.”
은우는 의자에 앉자마자 냄새 맡고 덤벼드는 강아지들을 달래고자 사료를 꺼내 들었다. 원래 이 시간에 밥 먹는지라 위로라고 할 것도 없다.
─으아악 너무 귀여어ㅠㅠㅠ
─이거 먹으면 아야해ㅠㅠ
─우ㅠㅠㅠㅠ 멈머ㅠㅠㅠ
─대형견 3마리....너무 좋다....
시청자들이 좋아 죽는 사이, 은우는 적정량의 사료와 강아지가 먹을 수 있는 채소들을 배급하고 돌아왔다. 그 잠깐 동안 식을 리 없는 음식은 여전히 김을 모락모락 뿜고 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아그작아그작까득우드득아득아득-
─악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귀여워ㅠㅠㅠㅠㅠ
─사료 먹는 소리 오진다 진짜
─ASMR해도 될 듯
─으악 너무 커엽ㅠ
이제 막 젓가락을 들려던 은우의 뒤로 사료 먹는 소리가 옅게 들려왔다. 사료도 간간이 떨어트리는지 사료 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보다 강아지 먹방을 더 좋아하시네요.”
은우는 손가락 등 부분으로 입술 언저리부터 뺨까지 쓱 쓸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서운한데.”
─아노 ㅏ그런 얼굴로
─아......캠 켜서 파괴력 더 세짐
─이건 사기다
─구에에에엑
─함만 더하자 함만 더하자
헬멧 썼을 때보다 반응이 좋다. 은우는 나름 만족스러워졌다. 반응이 더 좋은 건 상관없지만, 일단 먹히는 것 자체가 좋다. 그는 여전히 그의 맨얼굴을 두고 아주 약간의… 불안감 같은 게 있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은우는 가장 먼저 김치찌개에 손을 가져다 댔다. 김치찌개가 완성되기 몇 분 전, 슬쩍 집어넣은 떡이 그 대상이다. 긴 가래떡은 겉 부분이 익어서 살짝 투명해진 상태다.
─진짜 이 사람은 뭘 해먹고 사는 거임?
─요리를 잘하긴 하는데....잘하긴 하는데.....
─보통은 떡국떡 넣지 않나?
─왕의 클라스
─가래떡 넣으며 맛있다고ㅠ
“떡 추가해서 먹는 게 이상합니까……?”
─아무래도 그런 편이죠...
─아니 이상한 건 아닌데 가래떡은 좀
은우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곤 떡을 앞접시에 받쳐 입에 넣었다. 떡볶이에 보편적으로 들어가는 떡보다 훨씬 긴 떡이나, 그의 입에는 한입거리다.
김칫국물을 머금어 주홍빛으로 물든 떡이 은우의 입안에서 쩌억쩌억 씹혔다. 쫄깃하다 못해 찐득찐득하다.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환장하는 식감인 것이다.
“후.”
갓 끓인 찌개라 떡이 뜨겁다. 은우는 몇 번 씹다가 입을 살짝 벌려 더운 숨을 뿜어냈다. 방 기온을 적당히 시원한 정도로 유지해서 그런가, 하얀 김이 일순 피어올랐다.
“제가 떡을 좋아해서 그런진 몰라도, 꽤 맛있습니다.”
─진짜..?
─맛있음
─넣어먹는 사람이...있긴 해.....대중적이지 않을 뿐...
─아니 보통 떡국떡 넣는다니까
─진짜 레시피가 이상하다고ㅋㅋㅋㅋ
이에 엉긴 떡을 혀로 떨어트리며 은우는 본격적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가장 먼저 먹을 건 달걀볶음밥이다.
큰 재료 없이 달걀과 소시지, 파 정도만 넣었으나, 그것으로 충분하다. 고슬고슬하게 퍼진 밥알들은 기름이 살짝 코팅되어 있어 불투명한 느낌이 들고, 불에 태운 간장까지 가미되어 약간의 갈빛과 간장 특유의 향 그리고 불맛까지 감돈다.
“맨 처음 만들었던 거라 조금 식긴 했는데… 그래도 맛있네요.”
─본인이 만들어놓고 맛있다 말하기
─얜 그래도 맛있을 것 같음 레시피가 정석이라서
─달걀에 밥에 간장이 들어갔는데 뭐가 맛없겠음..
─소시지 뽀득뽀득!
─아 한 입만 더먹어줘
“맛없다고 할 순 없잖습니까. 그리고 볶음밥은 요리를 못해도 어지간하면 맛있습니다.”
은우는 포슬포슬한 달걀과 큼직하게 썰어 뽀득뽀득 씹히는 소시지를 한 입 더 넣었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김치찌개 국물을 떠 후룩 삼켰다.
고춧가루가 섞였지만, 텁텁하지는 않다. 그런 상태에서 김치 특유의 신맛과 약간 더해진 설탕의 단맛, 칼칼한 매콤함이 합쳐지면 한국인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맛이 나온다.
“하.”
─우우ㅠㅠㅠㅠ
─진짜 큼직큼직하게 먹는다
─우리 엄마가 옆에서 보다가 되게 복스럽게 먹는데ㅋㅋ
─먹방하는 사람들 다 복스럽게 먹지 않음?
─얼굴이 되잖아
─아놔
표정이 크게 변하지 않더라도 때론 눈 감는 것, 숨 내쉬는 것부터 느껴지는 맛이 있다. 사람들이 안달을 했다.
은우는 그런 그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젓가락으로 김치찌개에서 넓적한 김치를 꺼내 들었다. 부러 쪼개지 않은 커다란 김치다.
“귀찮아서 보통은 가위로 잘게 찢어 두는 편인데, 가끔 이렇게 큼지막하게 끓여서 잘라 먹는 것도 맛있는 것 같습니다.”
은우는 앞접시에 붉은 잎사귀를 깔고, 젓가락으로 쭉 찢었다. 그런 다음 달걀볶음밥을 한 스푼 크게 뜬 후, 쪼갰음에도 여전히 큰 김치를 얹어 그대로 입에 넣었다.
입을 최대한 벌리지 않은 채 씹었음에도 우물거리는 소리가 사정없이 퍼졌다. 한 숟갈 더 뜨여진 국물이 은우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김치가 너무 시지 않아서 좀 걱정했는데, 괜찮네요.”
─신김치로 끓여야 맛있지
─아ㅠ 김치찌개 맛있겠다
─밥 먹고 있는데 왜 배가 고프냐....
─오늘 저녁은 김치찌개다
─형 돼지고기도 건져 먹어줘ㅠㅠ
“네네. 돼지고기도 건져 먹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전에 새로운 볶음밥부터 먹을 것이다.
은우는 이번엔 마늘과 파, 맛소금, 밥, 버터만 넣어 만든 마늘볶음밥을 한 입 넣고 우물거렸다.
마늘 향이 가장 먼저 퍼지고, 매끄러운 밥알과 으깨진 마늘이 같이 씹혔다. 소시지도, 무엇도 넣지 않았지만, 오래 기름에 볶아진 마늘 특유의 향과 언뜻 밤이 떠오르는 단맛은 그 자체로 은근한 매력이 있다. 버터와 기름이 들어가 마냥 담백한 맛도 아니었다.
고소하게 기름지고, 기름지되 느끼하진 않다.
「‘qorhvkdy’ 님이 ‘1,000원’ 투척!
형 버터먹으면 근손실 나지 않아?」
“…글쎄요.”
은우는 한 스푼 더 떠, 젓가락으로 김치와 돼지고기를 얹었다.
“근 손실이 무슨 상관인진 모르겠지만, 맛있으면 된 거 아닐까요.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아 쓰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딱히 뭐 대단한 거 하려고 운동하는 게 아니어서 괜찮습니다.”
그냥 습관적으로 몸 관리를 하는 거다. 말라비틀어진 채로 있는 건 아무래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은가. 거기에 근육이 있어야 뭘 해도 오래 할 수 있다. 건강에도 이 편이 훨씬 좋고.
“무엇보다, 이거 먹는다고 근육이 빠질 정도면 그건 운동을 덜한 거겠죠.”
─미쳐ㅋㅋㅋㅋㅋㅋㅋ
─헬창이다!
─이건 혼모노다!
─아 운동 덜한 거 티내지 말라고~!
헬창 소리를 듣건 말건, 은우는 야무지게 밥을 입에 넣었다. 뜨거워서 잠깐 입을 벌리고 숨을 뱉으면, 더운 숨이 후욱 풍겨 온다.
“흐.”
그는 숨을 한 번 더 내쉰 후, 입을 다물고 그것들을 씹었다.
야들야들하게 익은 돼지고기가 이에 착 감기듯 엉기고, 한 번 더 씹으면 쫀득쫀득한 비곗살과 으깨지는 고깃덩어리가 육즙을 쭈욱 뿜어낸다. 김칫국물에 감칠맛을 더하는 일등 공신이다.
거기에 고소한 마늘 향과 짓이겨지며 품었던 국물을 뿜어내는 배춧잎까지 합해지면 이런 맛이 또 따로 없다.
「‘dyrjxmajrrhTma’ 님이 ‘1,000원’ 투척!
한국은 마늘만을 밥을 볶아먹습니까??」
─마 한국인 처음보나
─외국인들이 버터 넣는 거랑 우리가 마늘 넣는 거랑 비슷할듯
─마늘은 못 참지;;
─저거보다 마늘 더 넣어도 맛있다 이 말이야
“맛있습니다.”
마늘이 향신료에 들어가긴 하지만, 향신료는 무슨. 향신료 이상으로 써먹는 민족은 충격받은 외국인에게 엄지를 추켜세웠다.
“반찬들을 까먹고 있었네요.”
은우는 토마토 계란볶음을 한 숟갈 크게 펐다. 토마토에서 흘러나온 국물과 뭉개져 버린 과육 때문에 볶음임에도 다소 질척질척한 감이 있다.
─토한 거 같이 생겼음...
─토달토달 맛있거든요?
─너무한다 진짜....
─아 근데 진짜 생긴건 좀 별로긴 해
“토라니, 평가가 너무 박하십니다.”
다소 게워 낸 무언가처럼 보이긴 하는 건 사실이나, 맛은 다르다. 은우는 그것을 입 근처에 가져다 댔다.
참기름을 뿌려 고소한 향이 나는 그것은, 입에 들어가는 순간 토마토의 새콤달콤함과 계란의 부드러움, 간장의 짭조름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밥이랑 이것만 해서 먹는 것도 좋아합니다.”
은우는 달걀볶음밥에 얹어서 크게 퍼먹었다. 볼 한쪽이 불룩해질 정도의 양이었다.
그렇지만 워낙 입이 커, 씹기에 어려움은 없다.
그는 가볍게 음미했다. 간신히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과육이 씹힐 때마다 산뜻한 맛이 혀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고, 그 위에 새롭게 버터 칠된 마늘 향이 더해진다. 몽글몽글한 계란은 말할 것도 없다.
“다음은 가지밥.”
하지만 그 이전에, 김치찌개에 넣은 떡을 좀 먹어야겠다. 불면 맛이 좀 덜해지니까.
은우는 찐득찐득한 떡을 볼 안 가득 넣고 우물거렸다. 그러곤 맛이 약해질 즈음 김치찌개에 넣은 유부를 건졌다.
─유부....
─진짜 김치찌개에 뭘 넣은 거야
─이쯤되면 걍 햄없는 부대찌개 아님?
─유부는 그래도 맛있지 않나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두부도 좋지만, 유부도 만만치 않게 매력 있다. 일단 입에 넣고 씹는 순간 국물이 쭉 배어 나오거니와, 특유의 폭신폭신하지만 살짝 질긴 것 같기도 한 식감은 그 자체로도 재밌으니까.
─유부는 ㅇㅈ이지
─보통은....김치국에.....
─역시 구울이란 것인가?
“것 보세요. 유부 넣어 먹으면 맛있습니다.”
대체로 반대하는 인간이 더 많았지만, 은우는 뻔뻔했다.
그는 떡을 하나 더 씹은 후, 가지밥을 다음으로 펐다. 아직 밥은 잔뜩 남아 있다. 은우의 얼굴에 기분 좋은 나른함이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