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화
“뒤풀이해요!”
네뷸라 워 합방을 진행했다. 어쩌다 보니 채널 대 채널의 형태가 된 합방이었다.
“뒤풀이합시다!”
참가 인원은 다음과 같다.
다이아박스 소속인 레리, 레드바, 슬리퍼, 김대롱. 다른 한쪽은 리틀컴퍼니 소속의 검은양과 자낳괴조심, 세모도, 세븐 브레드.
“뒤풀이!”
빌리랑 은우도 납치됐지만, 치트키란 이유로 심판을 맡게 됐다.
심판은 또 처음이었던지라 은우는 나름 재밌게 임했다. 비록 그의 촌철살인에 의해 상처 받은 피해자들이 속출하게 되더라도.
“뒤풀이!”
“아, 시끄러워!”
그리고, 어떤 애벌레의 찡찡거림에 의해 뒤풀이 회식이 열렸다.
▣ 외전. 그 스트리머가 뒤풀이 회식 하는 법
그들은 가장 만만한 돼지갈비를 해치우기로 했다. 회식비는 내기에서 패배한 채널 쪽 인사가 내기로 했다.
“와! 회식이다, 회식!”
“너무 좋아요.”
“아, 돈 없는데!”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이 똘추야!”
안타깝지만 패배한 쪽은 다이아박스다.
다이아박스 쪽 팀원에 세계 대회까지 나가 우승한 사람이 둘이나 있었으나, 그 외 조건이 안 좋았다. 리틀컴퍼니 팀은 대회 우승자가 껴 있는데 어떻게 이기냐며 징징댔고, 그로 인해 페널티를 적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켄 님, 진짜 너무하셨어요.”
“어…….”
“아니에요, 켄 님. 너무 잘하셨어요. 진짜 짱짱.”
“맞슴다!”
“완전 최고였어여.”
엄밀히 따졌을 때, 다이아박스 팀이 페널티를 먹었다기보단 리틀컴퍼니 쪽이 특혜를 받은 쪽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상대가 너무 강하다 항의한 끝에, 그들은 은우에게 실시간으로 코치받을 권리를 받았으므로.
“죄송합니다……?”
은우는 그냥 툭툭 던져 줬을 따름이다. 그걸 소화한 건 리틀컴퍼니 쪽 실력이다. 물론 그가 너무 날카롭게 약점만 쏙쏙 뽑아 준 탓도 있겠지만.
“대신 저도 낼게요.”
은우가 눈치 보며 말하자 스트리머들이 와하핫 웃었다.
“아이고, 괜찮습니다. 저희가 못한 것도 있는데요.”
“차라리 빌리 님께 맡길 걸 그랬어.”
“아, 그러네요. 제가 했으면 좀 괜찮았을 텐데.”
“엥, 그건 아니다. 빌리 님이 레리랑 내 습관 다 아니까 빌리 님이 했어도 비슷했을 듯?”
“근데 솔직히 켄 님이 던져 준 조언, 별거 없었어요. 걍 레드바가 약하니까 레드바 쪽 찌르세요, 김대롱 님은 스킬 쿨 돌면 뒤로 빠지는 경향이 있으니까 파고드세요, 이런 거?”
“완전 별건데? 짱 별건데?”
어몽 시티즌 때도 느꼈지만, 열 명이나 되니 참 와글와글하다. 방송이 아니니 오디오를 채울 필요가 없는데도 귀가 쉬지를 못하는 것이다.
“하, 제가 피지컬이 너무 달려서…….”
“괜찮아요, 대롱 님. 레드바는 피지컬도 달리는데 지능도 안 돼요.”
“아니, 갑자기 나는 왜.”
“인간적으로 레드바 오빠, 너무 약했슴다.”
“맞아여. 켄 님두 레드바 님 약점을 제일 많이 말해 주신 듯.”
“어쩐지 나만 죽는다 했더니! 행님!”
레드바가 배신감 어린 채 외쳤다. 이젠 너무 익숙해져서, 은우는 대답 대신 구운 고기를 그 입에 넣어 줬다.
“냠.”
애벌레가 바로 입 다물었다.
“와. 켄 님, 고기 되게 잘 구우신다.”
“대박.”
“별거 아닙니다.”
“야, 탔잖아!”
“슬리퍼, 뒈질래?”
은우가 있는 테이블은 그가 구운 고기에 감탄하고, 다른 쪽 테이블은 슬리퍼가 두들겨─약하게─맞고 있다. 참고로 테이블이 나뉜 기준은 술을 마시는가, 안 마시는가다.
“드셔도 됩니다.”
은우는 고기가 타지 않게 가장자리로 몰았다. 그러곤 새 고기를 바로 올렸는데,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옅은 연기가 올라왔다.
“켄 님도 드세요.”
“네.”
은우는 집게로 고기를 쏙쏙 집어 먹었다. 가끔 입이 느끼하다 싶으면 간장에 절인 양파채를 먹기도 했다.
“마늘!”
김대롱은 신중하게 마늘을 구웠다. 참기름 넣은 종지에 담긴 마늘은 보글보글 끓고 있다.
“버섯도 올릴까요?”
“엑.”
육식파 레드바는 질색했으나, 같은 테이블에 앉은 김대롱, 세모도, 은우가 채소를 좋아했으므로 버섯도 얌전히 올라갔다.
“애호박도 통째로 구우면 맛있는데.”
“맞아요, 맞아요.”
“여긴 버섯을 슬라이스로 주네. 통으로 구워야 즙이 안 빠지는데.”
잡식파들은 쿵짝이 잘 맞았다. 그것에 떨떠름한 얼굴을 한 건 레드바였다. 고기만 주워 먹는 애벌레는 채소 먹는 이들을 영 이해 못 한다는 얼굴이다.
“전 고기만 주세영.”
레드바가 흐흐 웃으며 발랄하게 말했다. 마침 각자의 앞접시에 고기를 몇 점씩 옮겨 주던─고기 구울 자리가 부족했다─은우의 입이 열렸다.
“편식하면 안 됩니다.”
“…어?”
“으핳핳핳핳핳!”
순간 편식쟁이 애 취급 받은 레드바의 얼굴이 묘해졌다. 레드바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슬리퍼는 이쪽 테이블 대화를 엿듣고 있었는지 갑자기 빵 터졌다.
“고기 그렇게 구울 거면 집게 내놔!”
레리가 한 소리 한 건 덤이다.
* * *
회식 자리가 무르익고, 레드바가 물잔을 엎지르는 바람에 앉은 테이블의 세 사람이 화장실로 잠깐 떠났다. 김대롱은 열이 달라서 젖지 않았지만, 그냥 볼일이 있어서 따라갔다.
“어휴, 레드바 진짜.”
취기가 올라와 볼이 발그레해진 레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편 은우는 목이 말라 잔을 들었다가, 잔이 비워져 있음을 확인했다. 그의 몫으로 시킨 음료도 다 떨어진 상태다. 하물며 물은 레드바가 엎질러서 없다.
“슬리퍼 님.”
“넹?”
은우는 옆 테이블의 슬리퍼에게 말을 걸었다. 그쪽 테이블엔 벌써 술병이 다섯 병이나 굴러다녔는데, 용케도 슬리퍼는 멀쩡해 보였다. 주량이 세거나 덜 마신 모양이다.
“물 좀 주시겠습니까?”
“앗, 넵넵.”
슬리퍼가 물통을 찾아 물잔에 따르는 동안, 은우는 고기를 마저 구웠다.
그리고 슬리퍼가 물잔을 건네줬을 때, 그는 스스럼없이 그것을 입에 담았다.
“…큽.”
이거, 술 같은데? 은우는 올라오는 알코올 향에 반사적으로 미간을 좁혔다. 멋모르고 삼킨 액체가 지나간 자리는 화끈화끈하다.
“슬리퍼 님, 술 주신 것 같은데.”
“엥, 아닌데요. 물인데.”
슬리퍼가 너무 당당하게 말했던 터라, 은우는 그런가? 하며 코를 킁킁거렸다.
꽃냄새… 아니, 과일 냄새가 났다. 그것도 자몽. 아, 음료수인가?
그는 긴가민가하며 한 모금 더 마셔 보았다. 술도 아니고 물도 아니면 음료수인가 했더니, 어김없이 쓰다. ‘독하다’란 단어가 더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음료수가 이런 맛을 낼 리는 없고, 역시 술 같다.
“대체 뭘 드린 거야. 켄 님, 저 줘 보세요.”
은우의 반응을 지켜보던 레리가 무릎걸음으로 다가가더니 잔을 받아 갔다. 은우는 냉큼 건네주었다. 입안이 아직도 쓰고, 목구멍이 따가울 정도로 화끈거렸다.
은우는 서늘한 손으로 목을 붙잡았다. 목 겉가죽만 시원해지고, 목구멍은 여전히 뜨겁다.
“아, 미친 인간아! 술을 주면 어떡해! 심지어 이거, 독주잖아!”
그사이 코를 킁킁거리던 레리가 곧바로 외쳤다.
“엥? 아닌데? 나, 물 드렸는데!”
“근데 우리, 독주 안 시켰는데?”
“우리, 소주만 시켰잖아. 독주가 왜 있어.”
“레리가 착각한 거 아니야?”
“직접 맡아 봐요!”
그쪽 테이블 사람들이 잔을 건네받고 킁킁대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내려진 판단은 술이었다. 그것도 40도가 넘는 술.
그들은 서둘러 슬리퍼를 취조하기 시작했다.
“슬리퍼 님, 뭐 따르셨어요.”
“이거! 물통!”
슬리퍼는 억울하다는 듯 물이 얼마 남지 않은 물통을 들어 보였다. 진짜 물통이었다.
드르륵-
그때 마침 미닫이문이 열리며, 화장실 갔던 인사들이 들어왔다. 바람 잠깐 쐬겠다며 아까 나갔던 세븐브레드도 껴 있다.
“물통 들고 뭐 하세요?”
“엥, 분위기 왜 이럼.”
“아니, 내가 물 따라 드렸는데 그게 술이었다잖아!”
“어?”
스물셋 이상 형들 사이에 빼꼼 껴 있던 스무 살, 세븐브레드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그거, 드셨어여?”
“…칠빵이 어서 이실직고합니다.”
검은양은 눈치가 빨랐다. 사람들의 눈치에 세븐브레드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게, 어.”
그는 한참 우물쭈물하다가 비싼 거 시키면 욕먹을까 봐 몰래 시켰다고 고백했다. 45도짜리 소주였다.
“그래도 양심적으로 따로 주문했는뎅.”
“야, 그걸 왜 물통에 담아 놔!”
“아무도 물 안 마시길래 안 들키려고, 아, 아, 아파엿!”
검은양이 세븐브레드의 귀를 쭉 잡아당겼다. 괘씸죄였다.
“그냥 대놓고 먹어.”
“힝. 알겠어여.”
“켄 님께 사과하고.”
“켄 님, 죄송합니다…….”
“아, 괜찮습니다.”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되려는 순간, 은우는 물을 받고 서둘러 마셨다. 그리곤 열 오른 뺨을 손등으로 문댔다. 시원한데 아직도 목구멍이 화끈거리는 기분이다.
“…어, 저기, 켄 님?”
“네.”
“취하신 거 아니죠?”
은우는 레드바의 물음에 눈을 껌뻑였다. 취했나? 아닌 것 같은데? 나 한 모금 먹었는데? 아닌가. 세 모금인가? 절반이었나?
“안 취했습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사람들은 안도하며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은우가 있는 테이블도 마찬가지였다.
“켄 님, 음료수 더 시킬까요?”
“아, 네.”
“뭐 시켜 드릴까요.”
“제가 직접 시키겠습니다.”
은우는 메뉴판을 두드려 음료를 확인했다. 가장 대중적인 음료, 콜라, 사이다, 환타가 보이고 그다음으론 탄산음료 몇 종이 더 있다.
목이 따가워서 탄산 먹고 싶진 않은데. 은우는 고민하다가 페이지를 더 넘겨 보았다. 투명한 캔에 담긴 음료가 몇 개 더 나왔다.
처음 보는 음료였다.
으음. 은우는 그것들을 짐짓 노려보았다. 기분 탓인지 시야가 조금 부옇다. 글자가 잘 안 보였다.
그래도 캔이니까 음료겠지? 음료일 거야. 그는 그것들을 톡톡 두드려 주문했다. 한 캔 시켜 봐야 금방 먹으므로 세 캔 시켰다. 형이 감시하지 않는 지금이 음료 먹을 타이밍이었다.
새로운 음료수 먹는다. 은우는 기분이 좋아졌다. 아까부터 야금야금 몇 인분이나 해치운 고기 덕에 배도 적당히 찬 느낌이라 덩달아 좋았다.
“요즘 할 게임이 없어서 큰일이에요.”
“아, 맞아요. 진짜 요즘 할 게임 너무 없어.”
사람들 모이는 데 따라갈 정도로 성장은 했으나, 여전히 말주변 없는 이는 가만히 대화를 경청했다.
세모도나 김대롱이나 레드바나 굳이 말하기를 요구하는 타입이 아니었으므로 괜찮았다. 그들은 듣기만 해도 소외되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배려할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었다.
“켄 님은 더 없으시겠어요.”
가끔 자연스럽게 끼어들 기회를 주는 것도 그렇다.
배워야 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대단해. 멋지다. 형만큼은 아니지만 멋지다.
“멋있어요.”
“네?”
“세모도 님이랑, 대롱 님이랑, 레드바 님이랑.”
“어…….”
“엑.”
난데없는 칭찬에 세 남자가 들썩이는 동안, 은우는 진솔히 고백했다. 떠오르는 감상 그대로 내뱉는 것이었기에 정말 날것 그 자체로 봐도 무방했다.
“으악!”
맨날 까이기만 하던 레드바가 가장 먼저 점프하고, 김대롱과 세모도는 멋쩍은지 머리들만 긁적였다. 레드바만큼 만남이 깊진 않았던지라, 레드바 쪽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 탓도 있을 거다.
“으핰. 켄 님, 저는요? 저는요?”
슬리퍼가 은근슬쩍 끼었다. 은우는 그에 대한 솔직한 감상도 해 주었다. 슬리퍼도 멋진 사람이었다. 웃음소리가 너무 시끄럽긴 하지만.
“봐 봐, 시끄럽다잖아!”
“아잇, 줄여야겠네. 으하핳.”
“저도! 저도!”
그들이 뜬금없는 칭찬에 다소 쑥스러움을 느낄지언정 나름의 뿌듯함과 기쁨을 적립할 즈음, 종업원이 방에 찾아왔다.
“주문하신 거 왔습니다.”
“와, 왔다.”
“거기 술꾼들, 술 받아 가쇼.”
은우는 생각을 드문드문 잇다가 레드바가 저쪽 테이블로 넘기려는 몇 개의 캔을 발견했다. 순간 시야가 핑글 돌았지만, 그는 눈 껌뻑임으로 외면했다.
“그거, 제 건데.”
그거 내 건데. 저쪽 거 아닌데. 은우는 긴 팔을 뻗어 캔들을 솜씨 좋게 낚아챘다.
“엥, 켄 님이 시키신 거예요?”
“네.”
새로운 음료수. 새로운 거. 콜라보다 맛있을까? 아니야. 콜라보다 맛있는 건 없다. 그치만 맛있었으면 좋겠다.
은우는 캔을 따 입에 흘려 넣었다. 달고, 상큼한 향이 나고, 조금 쓴가?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려다가 말았다. 신기한 맛.
“켄 님, 술 못 드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저 정돈 음료수 아니야?”
“갑자기 술 드시고 싶으셨나.”
“아니, 근데 왜 원샷을.”
사방에서 온갖 소리가 빙글빙글 들려왔다. 시끄럽다. 그치만 듣기 나쁘지 않나? 않나? 모르겠다.
은우는 새 캔을 땄다. 쓰고 묘한 향이 나서 싫은데, 그걸 과일 향이 덮어서 좀 먹을 만하다. 하필 레몬인 건 좀 싫지만.
아, 맞아. 사과 향도 있다, 사과 향.
“잠깐. 켄 님, 2연속 원샷은 좀.”
“켄 님?”
“네.”
그는 손등으로 얼굴을 한 번 더 문댔다. 으응. 뺨이 차갑다. 아니, 뜨겁나? 몰라. 음료수 더 먹을래. 콜라만큼 달진 않지만, 그래도 달다. 그러니까 사과 향. 사과.
“켄 님? 켄 님?”
“어?”
“네. 듣고 있습니다.”
왜 부르는 거야. 은우는 껌뻑거리며 그를 부르는 이들을 보았다. 빨간 애벌레가 하나, 둘, 어. 작은 포메라니안이 하나, 둘……. 근데 포메라니안이 아니라 레리 님 아닌가. 레리 님, 사실 포메라니안이엇나?
“레리 림.”
“네?”
‘포메라니안이세요?’라고 물어보려던 은우는 잠깐 자신이 내뱉은 말을 고민해 보았다. 이게… 이 발음이 아닌데.
“레리 님, 레리 림, 레리 림.”
“……?”
님, 님, 임, 림? 은우는 꼬이는 혓바닥에 눈살을 좁혔다. 이게, 이게 아닌데. 발음이 이상한데. 왜 이상해졌지? 이러면 안 되는데.
“레리 누나.”
“……!”
“어……?”
이건 좀 더 편하다. 레리가 나이 더 많으니까 괜찮겠지. 은우는 드디어 괜찮은 발음이 나오자 작게 웃었다. 좋다.
“켄 님.”
“네?”
그때, 손이 잡혔다. 음료를 든 손이 아닌 다른 빈손이었다. 은우는 그의 손을 꼬옥 잡은 레리를 보았다.
“앙코르.”
“앙코르……?”
“미친 인간아!”
“으핳핳핳핳핳핳핳핳!”
“부럽다!”
“켄 님, 술 취하셨어?”
“핳핳흫핳핳하핳핳핳하!”
시끄럽다. 은우는 귓가에 사정없이 박히는 웃음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가, 방금 들은 단어를 좀 더 곱씹었다. 앙코르, 앙코르?
“레리 누나.”
“크으으읏! 나이 먹길 잘했다……!”
“술 취한 사람한테 뭐 하는 거야흫핳!”
“뭐야, 뭐야! 레리 말고 저도 불러 주세요!”
“흐핳핳핳핳하핳핳!”
“어, 전 형이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미친 인간들이?”
레드바 쪽 테이블이 머리를 붙잡고, 술이 살짝 들어간 테이블은 사심 채우느라 바쁘다. 은우는 그 속에서 쥐고 있던 캔이나 따려 했다.
“그, 드시면 안 될 것 같은데!”
김대롱이 황급히 말렸다. 왜? 왜 먹으면 안 되지? 은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사과 향인데. 단데. 왜 안 되지. 설마 독 들어 있나? 아닌데. 사관데.
“술부터 뺏어, 야.”
이거 내 건데. 내가 먹을 건데. 왜 다들 뺏으려 그러지. 먹고 싶으면 시키면 되는데. 그리고 술 아닌데.
“이거 술 아닌데요. 음료순데.”
“술인데요!”
“아닌데……. 음료수였는데.”
은우는 그의 사과를 뺏으려는 손을 피해 몸을 뒤로 살짝 젖혔다. 옆자리 김대롱의 손이 허망하게 허공을 지나쳤다.
“아니, 켄 님!”
“저걸 또 피하시넿.”
“으핳핳핳핳! 켄 님, 진짜 술 못 드시는구낳핳핳!”
“사과 향 나는 건데…….”
왜 뺏어. 사과 맛있는데. 나, 사과 먹을 거야. 사과. 내 사과. 사과.
“제 사관데요.”
“네? 사과요?”
“으핳핳핳핳핳핳!”
“술 취한 켄 님, 귀여워!”
“책상 부서지겠슴다.”
사과. 사과한다 할 때 사과가 아니라 먹는 사과. 아삭아삭 달달한 사과.
“사과 맛있어요.”
“네엨?”
“완전 술 취하셨잖앟핳하.”
“켄 님, 갑자기 왜 취하신 거예여?”
“…아무리 봐도 아까 드신 술 때문인 것 같은데.”
“칠빵이, 머리 박아.”
“으악!”
으음. 근데 덥다. 너무 덥다. 은우는 손등으로 뺨을 계속 문댔다. 그치만 손도 별로 시원하지 않았다. 더운데. 더운데…….
맞다. 사과주스. 이거 먹으면 시원하겠지. 맞아, 주스니까 시원할 거다.
“아니, 그거 드시면 안 된다니까요!”
“켄 님, 취하신 것 같은데 술은 나중에…….”
“술 말고 음료수 드십쇼, 음료수.”
김대롱과 세모도, 빌리가 나서서 그걸 막으려 했다. 그렇지만 순순히 빼앗길 순 없다. 빼앗기는 건 한 번으로 족하다.
“대롱 림, 님, 림. 형, 형?”
“엇.”
좋다. 형. 이것도 발음하긴 쉽다. 은우는 형들을 째려보며 잽싸게 옆으로 굴렀다. 뒤늦게 정신 차린 이들이 쫓았지만, 은우의 반사 신경은 술 먹었다고 미국 가진 않았다.
“켄 님 잡아!”
“아니, 미친읗핳!”
“악! 내 손!”
“아, 미안!”
“으핳핳핳핳하핳하!”
“칠빵아, 도와!”
“에, 예?”
“완전 난장판 됐슴다…….”
다들 방 안이라서 차마 뛰진 못하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했다. 그게 반 바퀴였다.
은우는 그의 사과주스를 빼앗으려는 나쁜 이들을 피해 앉아 있는 슬리퍼─사실 드러눕다시피 하며 굴러다니고 있었다─와 검은양 뒤로 숨었다.
검은양이 키가 큰 편이긴 하나, 은우를 가리기엔 턱도 없었으므로, 별로 숨었단 느낌은 아니었다.
“이거, 내 건데.”
“흐핳핳핳핳핳핳핳핳!”
“크흡. 그거, 켄 님 거예요?”
“네. 제 건데, 뺏으려 해요. 형이 내 거 뺏어요.”
은우는 검은양 뒤에서 나쁜 것들의 치사한 행위를 고발했다. 검은양이나 슬리퍼, 자낳괴만 그를 잡으러 안 나섰으므로 같은 편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것에 슬리퍼가 더 대소하고, 검은양이 부들부들 떨었지만─역시나 웃음으로─은우에겐 별로 보이지 않았다.
“제가 퇴치해 줄까요?”
“네.”
시야가 뱅글뱅글 돌아서 도망치는 건 어찌저찌 하겠는데, 해치우는 건 못 하겠다. 은우는 고개를 주억였다.
근데 검은양이 세던가? 자신 있으니까 나선 거겠지? 몰라. 어지럽다.
은우는 기어 다니느라 흔들린 골 때문에 슬슬 머리가 아팠다. 토 나올 것 같다.
“으악! 귀여워!”
그때, 이유는 모르겠는데 검은양이 바닥에 엎어졌다.
은우의 얼굴에 순간 당황이 어렸다. 뭐, 뭐지. 왜 쓰러졌지.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거믄.”
음.
“거믄냥, 거믄, 검.”
왜 발음이 안 되지. 어쨌든 쓰러지면 안 되는데. 독에 당했나? 안 되는데. 그러면 위험한데. 나도 지금 어지럽고 그런데.
너무 어지러운데… 어…….
“악! 켄 님!”
“아이고!”
은우는 세상이 반을 쪼개지는 것과 그의 시야가 옆으로 기우는 걸 느꼈다.
* * *
“켄 님.”
“네.”
2시간 후. 술자리가 파하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일어난 은우는 귀를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고개를 숙였다.
“다음부터 저희가 조심할게요.”
“죄송합니다…….”
“아뇨. 이번에 취하신 게 켄 님이 원해서 취하신 것도 아닌데요.”
“으핳. 맞아요. 다 칠빵 놈 잘못이지.”
“허엉… 죄송해여…….”
“으이구.”
사실 술이 완전히 깬 건 아니었으나, 적어도 아까처럼 맛 간 상태는 아니었으니.
은우는 마른세수를 하며 그가 필름 끊기기 전까지 했던 행동들을 돌려 보았다. 이걸 민폐라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일단 누구 다친 사람 안 나와서 다행이긴 한데, 그렇다고 잘한 것도 아니다. 그냥 사과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근데 켄 님.”
“네.”
“저도 누나라 불러 주시면 안 돼요?”
“아직도 포기 안 했던 거냐고홓!”
“헉, 저도.”
“크흠……. 저도 형이라 불러도 됩니다, 켄 님.”
은우는 메슥거리는 속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눈을 껌벅였다.
“…그래도 됩니까?”
그렇게 불러도 되나. 누나랑 형이라고 불러도 되나. 좀 더, 거리감이 좁아지는 단어를 써도 되나.
은우의 되물음에 막 결제를 마친 스트리머들이 눈을 번뜩였다.
“네!”
“꼭 형이라고 해 주세요.”
“어, 어?”
이제 와서 역전하기도 뭐한 레드바의 눈만 풍랑을 맞이할 때. 은우는 손가락을 까닥이다가 입을 슬쩍 열었다.
“음. 레리 누나, 검은양 누나. 그, 슬리퍼 형? 대롱 형?”
“으아아악! 켄 님!”
“너무 좋아!”
불린 이들이 기쁨의 괴성을 질렀다.
톡톡.
그때, 은우는 팔 한쪽을 건드리는 손길을 느꼈다. 차마 말론 부탁하지 못하고, 눈빛으로 강렬히 요청을 쏘아 보내는 이들이 있었다.
은우는 묘한 기분에 뺨을 손등으로 쓸고 눈동자를 옆으로 살짝 굴렸다.
“빌리 형, 세모도 형.”
둘 다 묘하게 콧등을 찡그리거나 입술을 실룩이는 게, 기분 좋아 보인다. 왜인지는 몰라도.
“하, 켄 님한테 누나 소리를 듣게 되다니. 행복하다.”
“음…….”
은우는 잠시 고민했다. 세븐브레드는 동갑이고, 자낳괴조심은 딱히 욕망을 보이지 않으니 굳이 안 불러도 될 것이다. 사실 은우도 그녀를 누나라 부르기엔 아직 거리감이 컸다.
마지막으로 레드바는…….
“…….”
반짝거리는 눈이 기대를 한가득 담았다. 그러나 은우는 슬쩍 무시했다.
“아, 저도 껴 줘요!”
“그, 편히 부르셔도 됩니다. 켄 님 말고.”
“앗, 그래도 될까요?”
“네, 괜찮습니다.”
“앗싸!”
그들이 허락해 주었으니 그도 허락해 주는 게 맞겠지. 은우는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들어서 목덜미를 긁적였다.
다들 그 호칭이 뭐라고 그렇게들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치면 오묘한 기분이 드는 그도 이상한 거겠지만.
은우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마지막으로 한곳에 고정했다.
“레드바 형도, 편히 부르세요.”
“엇?”
축 늘어졌던 빨간 애벌레가 고개를 휙 들었다. 은우는 두 번 방송해 주지 않았다.
다섯 명의 형과 두 명의 누나가 새로 생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