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힐통령 002화
1장. 착한 사람을 위한 엔딩(2)
‘아무도 들어올 수 없고, 나갈 수도 없다고?’
당황한 카이는 자신이 들어왔던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텅!
“크윽!”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이 그를 막아섰다.
안간힘을 써봤지만 그 막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투명벽에 부딪쳐 시큰거리는 코를 주무르던 카이는 인벤토리에서 마법 스크롤 한 장을 꺼내들었다.
한 장에 무려 3골드나 하는 텔레포트 스크롤.
1실버의 현재 시세가 1,000원이었으니, 3골드(300실버)인 스크롤 한 장의 가격은 30만원이라는 소리.
‘하지만 이곳에 갇혀있는 것보다는 나아.’
카이는 망설임 없이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었다.
아니, 찢으려고 했다.
부욱! 부욱!
하지만 이 고급스러운 질감의 스크롤은 찢어지기는커녕, 질긴 소리만 토해냈다.
“아니, 이거 왜 안 찢어져?”
불안이 가득 담긴 의문에 답을 해준건 알림 창이었다.
[현재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용할 수 없는 장소에 있습니다.]
“…혹시 로그아웃도 안되나?”
마음이 불안해진 카이는 조심스럽게 로그아웃을 시도했다.
[로그아웃 하시겠습니까?]
[로그인 시 같은 장소에서 게임을 시작합니다.]
다행히 로그아웃은 가능한 모양.
하지만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로그아웃이 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
이내 무언가를 떠올린 그는 가상키보드를 소환했다.
타닥, 타다닥.
열심히 타자를 쳐서 작성한 것은 장문의 메일이었다.
메일은 곧장 게임의 개발사인 페가수스의 고객센터로 전송되었다.
띠링! 답변은 금새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페가수스 고객센터입니다. 보내주신 내용은 잘 받아 보았습니다. 게임 이용 중 불편이 있어 많이 답답하시겠습니다.
하지만 버그가 아닌 이상, 별다른 도움을 드릴 수 없는 점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혹시라도 캐릭터 삭제 요청을 하신다면, 그 부분에 있어선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미라클 드림 온라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른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다시 한 번 고객센터를 이용….]
“…….”
도와줄 생각이 없다는 말을 이렇게 장황하게 써서 보낼 줄이야.
‘이걸 어쩐다?’
카이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 취소다.
지르칸의 말처럼 깔끔하게 죽었다면 경험치나 좀 떨어지고 말았을 텐데.
“후우.”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식힌 카이는 답변 내용을 다시 읽어보았다.
‘버그가 아닌 이상 도와줄 수 없다… 이 문장이 신경쓰이는데? 그렇다면 페가수스는 이 상황을 버그가 아니라고 판단한 건가.’
유저가 NPC에게 사기를 당해 로그아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소에 갇혔다.
그런데도 버그가 아니다?
카이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렇다면 이 장소에서 나갈 방법도 있다는 뜻이겠지?’
카이의 시야로 방의 끝 쪽에 세워져있는 조각상이 들어왔다.
‘태양신의 조각상.’
이를 알아보는건 어렵지 않았다.
태양교는 현재 미드 온라인에서 어느 교단보다도 성세를 누리고있는 곳.
카이도 태양교의 사제였으니까.
“늘 보던 거랑 똑같이 생겼네.”
조각상은 위엄 넘치는 중년인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뭐야?”
카이의 시선이 그 옆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의 조각상 하나가 위치해있었다.
‘신전에 왜 이런 조각상이?’
카이는 소녀 조각상 앞으로 다가가 그것을 자세히 살폈다.
“얜 뭐지? 귀엽게 생겼는데 누군지는 모르겠네. 이곳 관리자의 딸이었나?”
짧은 호기심을 뒤로한 카이는 신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태양신님, 힘 좀 써봐요. 어린 양이 지금 위기에 빠졌다고요.”
당연한 말이지만 신상의 입을 여는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말을 꺼낸 카이도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놀라움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다.
띠링!
[태양신 헬릭은 자신의 존재가 언급되자 이에 관심을 가집니다.]
[헬릭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응?”
사람은 기대조차 않았던 일이 실현되었을 때, 어안이 벙벙해지는 법이니까.
‘태양신 헬릭이 날 주시한다고?’
혹시나싶어 다시 한 번 메시지 로그를 확인했지만 틀림없었다.
‘신이 나를 왜…?’
카이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건 46레벨의 흔하디 흔한 사제에게 찾아온 말도 안 되는 기연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물론 미드 온라인을 잘 알지 못하는 존재가 이 상황을 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어차피 게임 상의 신 아니냐고.
데이터 덩어리일 뿐이지 않냐고.
그건 미드 온라인이라는 게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만이 뱉어낼 수 있는 말이었다.
지금만해도 수억 명의 유저들은 데이터 덩어리인 귀족에게조차 고개를 못 드는 판국 아닌가.
‘…태양신이 갑자기 나를 주시하는 이유가 뭐지?’
어지롭게 돌아가는 카이의 시야로 조각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헬릭의 신상이었다.
‘설마 이것 때문에? 내가 이 신상을 보고 기도를 해서?’
믿기지 않지만,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할건….’
태양신 헬릭을 설득하는 일이다.
카이는 즉시 무릎을 꿇었다.
“태양신님, 이렇게 간청합니다. 제 딱한 사정을 좀 들어주시고 제발 여기서 내보내주십시오.”
부드럽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카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자신이 테루를 만났을 때부터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띠링!
[이야기를 경청한 헬릭이 당신을 불쌍히 여깁니다.]
[헬릭은 당신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
[시험에 승낙하시겠습니까?]
‘시험이라?’
카이가 잠시 머뭇거렸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태양신이시여.”
[헬릭의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시험의 시작과 동시에 그의 눈앞으로 포탈이 하나 생성되었다.
‘왜 바로 내보내주지 않고 이런 시험을 받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기회를 준 것 만이라도 감사해야겠지.’
카이는 포탈 속으로 들어갔다.
파앗!
“음….”
어두운 장소였다.
때문에 카이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암순응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그는 자신이 서있는 곳이 사람 대여섯 명은 편히 누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차가운 돌바닥과 돌벽을 보면 동굴인건가? 딱히 다른 건 없어 보이… 음?’
꾸우욱.
걸음을 옮기던 카이는 발치에서 기분 나쁜 감촉이 느껴졌다.
마치 살아있는 무언가를 밟았을 때 느껴지는 듯한….
‘몬스터?’
카이는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바닥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사람 하나가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설마 나 때문에? 아니, 아니지.’
당장 치료를 하기 위해 달려가려는 카이가 몸을 멈췄다.
지르칸을 구했을 때의 기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아까는 내가 너무 성급했어.’
카이는 지난 22년간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었다.
만약 노벨 선행상이라는 것이 생긴다면, 그 상은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도와봤지만, 결말이 항상 훈훈하지는 않았다.
개중에는 평범하게 좋은 사람들도 있었고, 진상도 있었으며, 개 진상도 있었으니까.
구해줬더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고 소리치는 인간들이 바로 개 진상에 속했다.
참고로, 이번에 지르칸은 개 진상을 너머 헬 진상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는 업적을 세웠다.
‘어디 보자…….’
카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신성한 빛.”
파앗!
카이의 검지 끝에 미약한 빛이 생성되며 주변을 은은하게 비춰주었다.
‘넝마를 입고 있네. 제대로 된 옷조차 아니야. 거지야, 뭐야?’
심지어 머리는 기름기로 떡이 져있었고, 오랫동안 씻지도 못했는지 꼬질꼬질한 피부가 눈에 확 들어왔다.
“킁킁.”
냄새도 좀 많이 난다.
‘오케이. 일단 겉모습은 합격.’
사람들은 거지들을 한 번 도와주면 구질구질하게 달라붙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거지들도 몇 번 도와줘 본 카이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차라리 거지들이 쿨해. 솔직하게 감사할 줄도 알고.’
거지 중에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거지들은 타인의 호의에 순수하게 감사할 줄 알았고, 괜히 자신으로 인해 상대가 피해를 볼까 봐 사람들과 가까이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들도 자신들을 향한 세간의 인식이 어떤 것인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좋아, 도와줘볼까.’
견적을 기가 막히게 뽑은 카이가 거지의 몸을 흔들었다.
“이봐요. 일어나 봐요. 죽었어요? 죽었으면 죽었다고 말이나 해줘요.”
“끄으응…….”
몸을 몇 차례나 흔들자 신음 소리를 내며 천천히 일어나는 거지.
너무 더러워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도무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린 거지가 카이를 쳐다보며 놀란 두 눈을 크게 떴다.
“누, 누구…… 여긴 대체 어떻게……?”
목소리가 가늘고 높은 것을 보니 여자다. 카이는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일단 진정하세요. 그리고 본인이 누구고 여기가 어디인지부터 말해주세요.”
“제, 제 이름은 에이미예요. 그리고 여기는…… 흐윽!”
본인을 에이미라고 소개한 여자가 돌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동굴이 한 차례 진동했다.
드르르르르!
“꺄악! 오나봐요! 저희는 다 잡아먹힐 거예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일단 좀 진정해봐요! 큐어! 힐!”
에이미에게 버프를 걸자, 그녀의 가빴던 숨이 점차 차분해졌다.
“하아, 하아… 고마워요. 좀 진정 됐어요.”
“별말씀을. 그런데 아까도 물었지만 여기 대체 뭡니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세요?”
“모르니까 묻겠죠?”
“불쌍한 사람….”
에이미는 카이를 굉장히 가엾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곳은 웜 리자드의 둥지예요.”
“…방금 잘못 들은 거 같은데, 뭐라고요?”
“웜 리자드요.”
“다시 한번만.”
“웜 리자드요!”
“…….”
기쁘게도 귀는 정상이었지만, 카이의 똥 씹은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그야 이곳이 웜 리자드의 둥지였으니까.
‘웜 리자드라면 분명….’
파충류의 단단한 껍질이 빼곡히 박혀있는 것이 특징인 거대한 지렁이다.
하지만 그런 외관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녀석의 레벨이 최소 65가 넘는다는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