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화 (3/441)

# 3

힐통령 003화

1장. 착한 사람을 위한 엔딩(3)

‘웜 리자드. 최소 레벨 65가 넘는 필드보스 몬스터… 그딴 게 왜 여기 있어?’

자신이 활동하던 프리카 마을은 보통 40에서 50레벨 사이의 모험가가 활동하는 지역.

51레벨의 붉은 놀 치프가 가장 강한 몬스터로 알려진 장소에서 뜬금없이 웜 리자드라니?

‘끄응. 설마 헬릭의 시험에 입장하면서 아예 별개의 장소로 이동된 건가?’

지끈지끈.

오늘따라 유난히 자주 아픈 머리를 꾹꾹 지압한 카이가 입을 열었다.

“출구는. 그럼 출구는 없습니까?”

“그게…… 있긴 한데…….”

에이미가 말끝을 흐렸다.

“그럼 됐네요. 저랑 같이 나갑시다. 그쪽이 길을 안내해주면 제가 신성 마법으로 지켜드리죠.”

카이는 스킬 레벨이 상당히 높은 성스러운 방어막 스킬을 믿었다.

웜 리자드의 공격을 영원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두세 번 정도 막아내는 건 충분할 터.

“죄송한데, 저는 다리가 이래서…… 혼자 가셔야 할 거예요.”

에이미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다리를 가리켰다.

이제보니 그녀는 자신의 한 쪽 다리에 붕대를 감아놓은 상태였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이가 물었다.

“혹시 방해될까봐서요?”

“저는 혼자서 못 걸어요. 짐이 될 수는… 없잖아요.”

“…….”

잠시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던 카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소매를 걷더니 그녀를 들어 자신의 등에 얹었다.

“읏차.”

“꺄악! 자, 잠깐…!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뭐하긴요. 그쪽 업고 있잖아요. 버둥거리지 말고 얌전히 등에 타요. 무거우니까.”

“무, 무겁지 않아요!”

“무겁구만.”

카이는 태연한 표정으로 냄새나는 그녀를 등에 업었다.

딱히 자신조차 모르던 영웅심이 폭발한 것은 아니었다.

‘괜히 두고 가서 밤잠 설칠 수는 없지.’

지금 여기서 그녀를 버리고 가는 건 제 손에 피를 안 묻힐 뿐, 죽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다리가 부러진 상태로 웜 리자드를 따돌리고 동굴을 빠져나갈 가능성은 한없이 0%에 수렴하니까.

“저는 길을 안내해줄 사람이 필요하고, 그쪽은 다리가 필요합니다. 이런게 상부상조, 윈윈 아니겠어요?”

“대체 왜 이렇게까지…… 미, 미리 말해두지만 저는 돈 없으니까요?”

에이미가 지레 겁을 집어먹자 카이가 피식 웃었다.

“거지한테 돈 달라는 사람도 있습니까?”

“으으…….”

카이는 인벤토리에서 낡은 모포를 한 장 꺼내 뒤로 내밀었다.

“이거나 두르고 있어요. 아까 보니까 몸을 덜덜 떨고 계시던데. 춥잖아요.”

“그, 그럼. 염치 불구하고…….”

에이미는 얌전히 모포를 받아 제 몸에 둘렀다.

그녀는 몸이 한결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길 안내를 시작했다.

“저 앞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으시고….”

에이미가 길을 가르치면, 카이는 묵묵히 걸어나갔다.

10분쯤 걸어 나가자 모닥불이 켜져 있는 장소가 나왔다.

누군가가 모닥불의 근처 바닥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응? 아니, 네가 여길 어떻게…….”

깐깐하게 생긴 노인이었다.

그는 에이미를 발견하더니, 화들짝 놀라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의 차림새도 에이미와 마찬가지로 꼬질꼬질했지만, 의복 자체는 고급스러운 원단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는 카이를 쳐다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남자? 못 보던 얼굴인데!?”

노인이 눈을 빛냈다. 그는 카이를 향해 손짓했다.

“일단 잘 되었군. 이보게. 나가는 길이라면 이리 와서 나도 같이 데려가게.”

“…….”

이에 카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노인을 살폈다.

‘뭐지, 저 노인?’

카이는 에이미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녀가 몸을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으나, 그녀는 자신을 내려놓는 카이를 붙잡지 않았다.

“오오, 어서오게.”

카이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노인이 누런 금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과연 죽으라는 법은 없군. 설마 이 굴에서 건실한 청년을 만날 줄이야.”

“됐고요. 잠시 확인할게 좀 있습니다.”

덥석. 노인의 두툼한 외투를 잡은 카이는 그것을 강제로 벗겨냈다.

“이, 이보게! 지금 대체 뭐하는….”

후두두둑.

외투를 뒤집어 휙휙 털자, 주머니 곳곳에 숨겨져 있던 식량과 보석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모포가 몇 겹이나 깔려 있었다.

이를 목격한 카이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식량도 많고, 모포도 넘치시네요. 그런데 왜 에이미에게는 나눠주지 않았습니까?”

“무, 무슨 소리인가. 나눠줬네. 시, 식량은… 이미 저 아이가 다 먹은 거겠지!”

“그럴 리가요.”

카이가 이를 단호히 부정했다.

조용한 동굴에서 사람을 등에 업으면,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는 천둥처럼 크게 들리는 법이니까.

카이의 눈빛이 한층 더 차가워지자, 노인이 다급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그래! 나는 그녀가 이미 죽은 줄 알았어!”

“아까와는 말이 다르네요.”

“그건… 나이가 드니 어쩔 수 없네.”

카이는 노인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에이미를 쳐다봤다.

“진실은요?”

“…제가 다리를 다치자 저 사람이 모포 세 장을 뺏어갔어요.”

이를 듣고있던 노인이 침을 튀기며 항변했다.

“자, 자네 지금 혹시 저 다리병신의 말을 믿는 건가? 이보게. 나는 마일로 상단의 부단주인 데이록일세. 저런 천한 년과는 사회적 지위부터가 다르다는 소리야! 아, 그렇지! 내가 동굴을 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면 돈을 지불하지. 얼마를 원하나? 50…… 아니지. 100골드를 주겠네!”

“100골드라…….”

현금으로 1,000만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제시한 것이다.

“확실히 큰돈이야.”

“물론일세! 나는 마일로 상단의 부 단주…….”

“하지만 내 자존심을 사기엔 턱없이 모자란 액수지.”

카이가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멈추었다.

“게다가 뭔가 큰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나는 딱히 돈이 궁한 사람이 아니거든.”

“그게 무슨…… 돈은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겠나!”

“맞는 말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을 팔아치우면서까지 얻을 필요는 없지.”

“이, 이만한 재화를 거부하다니… 제정신인가?”

“제정신이니까 이런 선택을 하지. 돈에 미쳐서 그릇된 판단을 하는걸 제정신이라 부르지는 않거든.”

그 말에 데이록이 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이의 생각은 한결 같았다.

‘도와줄 가치가 없는 이는 돕지 않아.’

카이가 남을 도와주게 된 계기는 유치원 때 받은 사탕 때문이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그 순간이 좋았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은 그에게 살아 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미드 온라인을 접하고 나서는…… 더더욱.’

NPC들은 항상 부탁을 한다.

게다가 그 부탁을 들어주면 경험치나 아이템이라는 형태로 보상을 해준다.

‘완벽하게 내가 바라던 세상이지.’

퀘스트.

이것이 존재하는한, 미드 온라인은 카이에게 천국 같은 장소였다.

고오오오오!

“히, 히익!”

동굴의 통로 저편에서, 공룡의 울음소리 같은 굉장한 울음이 들려왔다.

곧바로 안색이 새하얘지는 에이미와 데이록.

공포에 이성이 마비된 데이록은 주머니에서 금화를 닥치는 대로 꺼내며 소리쳤다.

“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한다면 우리는 물론이고 자네까지 죽네! 개구멍을 알고 있어! 나를 보호해준다면 그곳까지 안내해주겠네. 우리 두 사람은,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돈이라면 얼마든지 지불할 용의가 있어. 150…… 아니, 200골드를 주지!”

“…….”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돈이 궁하지는 않아도 2천만 원은 큰 돈이니까.

하지만 그에게는 22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켜온 신념이 있었다.

“도와줄 가치가 있는 사람만 돕는다. 그렇게 정했어.”

협상이나 지름길이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것 같은, 고집스러우면서도 올곧은 눈빛.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데이록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카이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그의 얼굴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결국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건가? 멍청한 녀석! 지옥에나 떨어져라!”

자신에게 악독한 저주가 퍼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카이는 방긋 웃었다.

“어차피 게임인데 한 번 가보지 뭐. 거긴 마족이 나오려나?”

가치가 없는 존재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만큼 허무한 것은 없다. 그들은 호의를 받으면 그것이 권리일 줄 착각하니까.

카이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리고 그 짜증 나는 경험을 다시 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딴 녀석들을 돕는다고 소비하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다.

“카, 카이 님…… 전 괜찮으니까…… 가셔도 돼요.”

같은 장소에 이렇게 극과 극인 사람이 공존할 수가 있는 걸까?

한 명은 돈을 줄 테니 살려달라고 하고, 한 명은 자신은 괜찮으니 떠나라고 한다.

물론 카이는 두 사람의 부탁을 모두 거절했다.

“됐어요. 어차피 그쪽 두고 혼자 가면, 잠자리가 뒤숭숭할 겁니다.”

카이가 마지막 쐐기를 박아 넣는 순간, 포효 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헬릭의 시험이고 뭐고, 시작하기도전에 죽게 생겼네.’

다음 순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동굴이 크게 흔들리더니,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자신의 선택에 후회를 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십니까?]

“…뭐야 이건.”

이 순간만큼은 카이조차 당황했다.

게임을 시작한 이후로 이런 식의 메시지가 떠오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내 선택을 후회를 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답은 쉽게 나왔다.

애초에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이 세워놓은 기준.

그 기준선을 따르는 한, 결과가 어떻게 나온다 한들 후회하지는 않을 테니까.

“안 해.”

카이의 단호한 대답과 동시에,

시야가 뒤바뀌었다.

***

‘이건 또 뭐야?’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칙칙한 동굴의 행방은 묘연해지고, 밝고 활기찬 정원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백금으로 천사가 조각되어 있는 분수대에서는 물 대신 무지개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고개를 돌리니 구름으로 만들어진 계단이 놓여 있다.

말 그대로 낙원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한 장소.

“……멋있네.”

오직 게임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카이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띠링!

[전직 퀘스트, 헬릭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셨습니다.]

[연계 퀘스트, 자격의 증명으로 연계됩니다.]

[자격의 증명]

난이도 : S

태양의 신 헬릭의 성세는 대륙에서 단연 최고로 꼽힙니다. 하지만 곧 대륙을 덮칠 어둠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대합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와 같은 미래를 예견한 헬릭은 지상에서 자신의 뜻을 대변해 줄 대리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의 대리자가 되어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하고 강대한 악에 맞서 싸우십시오.

퀘스트 발생 조건 : 헬릭의 시험을 통과한 자.

퀘스트 보상 : 태양의 사제(신화 등급) 전직.

“…뭐?”

카이는 제 눈을 의심했다.

‘무슨 등급?’

여태까지 공개된 히든 클래스의 등급은 단 하나 뿐이었다.

바로 영웅 등급.

그 직업으로 전직을 하게 되면, 대륙의 역사에 기록된 영웅의 진전을 이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영웅이 아니잖아.’

무려 신화 등급이다.

그것도 단일 세력으로는 대륙 최강을 자랑하는, 태양교의 히든 클래스.

‘신화 등급이라면… 누가봐도 영웅 등급보다는 상위 클래스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카이는 주저없이 입을 열었다.

“수락한다.”

[전직을 위해서는 특정한 장소로 이동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그래.”

[검증의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다음 순간, 카이는 아무것도 없는 순백의 공간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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