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5화 (5/441)

# 5

힐통령 005화

2장. 선행의 힘(1)

공기, 혹은 분위기라고 불리는 것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그 미묘한 느낌에 광장의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주위가 엄청 조용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러게. 무슨 일이지? 딱히 사고가 터진 것 같지도 않은데.”

“가끔 학교에서도 이런 거 있지?”

뒤바뀐 공기를 읽지 못한 눈치 없는 플레이어 몇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바뀐 공기의 원인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 플레이어의 말처럼,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 보면 마치 모두가 짠 것처럼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다. 지금의 광장이 그런 경우와 흡사했다.

‘확실히 뭔가 이상한데…….’

눈치 빠른 카이도 뭔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심지어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이거…… 나 때문인 것 같은데?’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하나같이 자신을 향해 애틋한 눈빛을 마구마구 보내는 NPC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서서히 거리를 좁혀왔다.

“카이 군, 일전에는 자네의 능력이 부족하여 부탁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 내 생각이 짧았네. 자네라면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 게 분명해.”

레벨이 부족하여 퇴짜를 맞았던 퀘스트가 갑자기 굴러들어왔고.

“카이 님, 오늘 아침에 갓 구운 빵입니다. 밀가루만 30년을 만져온 제가 오늘 만든 빵 중에서 품질이 가장 좋은 녀석이니 꼭 드셔 보세유!”

개당 3실버나 하는 빵을 몇 개나 공짜로 얻었으며.

“흐으응, 카이 씨? 오늘따라 조금 멋있어 보이시네요. 함께 호숫가에 산책이나 가실래요?”

평소에는 자신에게 관심도 없던 미녀 NPC가 눈웃음을 지으며 데이트 신청을 해왔다.

‘…뭐야 이 상황은.’

미간을 찌푸린 카이는 본능적으로 이들이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친근한 형제 스킬 때문이구나.’

그 예상이 맞다면 효과는 그야말로 발군이었다.

미드 온라인에서 호감도를 올리는 방법은 현실과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해지고 싶은 NPC에게 잘 보이고,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면 조금씩 호감도가 상승한다.

‘그런데 나는 그 과정을 생략하고 친근감을 느끼게 할 수 있지.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유용한 스킬이라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심지어 태양교는 대륙에 막강한 교세를 자랑하는 세력.

그들을 믿는 NPC의 수는 셀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 쓸모도 많아보인다.

“뭐야. 저 유저가 누군데?”

“몰라? 혹시 유명한 플레이어인가? 랭커라거나.”

“에이, 내가 웬만한 랭커 얼굴은 다 알고 있는데…… 전혀 못 보던 얼굴이야.”

‘이런.’

카이는 재빨리 사제복의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는 친근한 형제 스킬을 비활성화로 바꾸었다.

동시에 꽉 조여 있던 매듭이 풀리듯, 광장의 분위기가 느슨해졌다.

“크, 크흠. 잠시 내가 착각을 한 것 같네. 부탁은 없던 것으로 하지. 실력을 더 키워서 오게나.”

“산책은 저 혼자 갈게요. 아까는 예의상 해본 말이었어요. 무슨 뜻인지 알죠?”

“내 빵 내놓으슈.”

“…….”

친근한 형제를 비활성화 하자마자 손바닥 뒤집듯 태세를 전환하는 NPC들!

카이는 사회라는 혹독한 밀림에 내버려진 청춘들의 아픔을 느끼며 크게 한탄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유저들의 관심도 금방 식었다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뭐야, 별거 아니었잖아?”

“아차차. 파티원 구해야 되는데!”

“45제 레어 검 팝니다, 선 제시, 장사꾼 사절!”

광장은 언제 조용했냐는 듯 다시 시끄러워졌다.

카이는 광장을 돌아다니는 무수한 인파 속에서 자신의 손바닥을 쳐다봤다.

‘칭호의 힘…… 이건 진짜다.’

그렇다면 선행 스탯과 관련된 능력 역시 진짜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심장 박동이 거세지고 손바닥은 땀으로 축축해졌다.

동시에 밀려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희열! 두 주먹이 절로 꽉 쥐어졌다.

22년을 살면서 이룬 것 하나 없는 그였다.

장점이라고는 남을 잘 도와준다는 것뿐.

실제 스펙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시답지 않은 능력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달라질….”

“거, 내 빵 안 주슈?”

“…….”

카이는 눈물을 머금고 부드러운 빵을 돌려주었다.

***

삐이이이익!

미드 온라인을 개발한 다국적 기업 페가수스사의 한국 지부에서 시끄러운 비프음이 울렸다.

“시끄럽군. 우선 저 소리부터 끄게.”

“예, 지부장님!”

페가수스사의 한국 지부장을 맡고 있는 강민구는 사무실의 거대한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알람이 울린 걸 보니 뭔가가 또 언락(Unlock) 된 건가? 요인이 뭔지 파악해 봐.”

“예!”

직원들이 분주히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속속들이 보고가 올라왔다.

“새로운 히든 클래스가 잠금 해제되었습니다!”

“코드명은 M-015E34로 파악됩니다.”

“끄응…….”

강민구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또 히든 클래스인가? 우리나라에서만 대체 몇 번째지?”

“네 번째…… 입니다.”

“본사에서 또 한소리 하겠군. 누가 게임 폐인 국가 아니랄까 봐…….”

안 그래도 본사에서 몇 주 전에 밸런스 문제에 대해 거론하며 잔소리를 했다.

히든 클래스로 전직한 한국의 유저 수가 무려 중국과 비슷할 정도로 많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나저나 저 코드면 또 무슨 직업이지? 이번엔 좀 쓰레기 같은 직업이라도 걸렸어야 잔소리를 덜 들을 텐데 말이야.”

한숨을 내쉬며 부하 직원에게 다가가던 강민구는 명석한 두뇌로 저 코드가 의미하는 바를 파악했다.

‘일단 앞자리가 M이군. 다행히 H가 아니야. 별 듣도보도 못…… 잠깐, M?’

Hero의 H가 아니라 M?

단번에 사색이 된 강민구는 부하 직원의 자리를 빼앗고는 키보드를 두드렸다.

타다다다다닥, 타다다다다닥!

엔터를 눌렀을 때 화면이 출력해낸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코드 - M-015E34

직업 – 태양의 사제

등급 – 신화

“뭐, 뭐……? 이, 이게 왜 지금?”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제 머리를 쥐어뜯던 강민구가 비명을 질렀다.

“대체 왜! 우리나라에서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건데!”

지금이라도 당장 본사에서 전화가 걸려올 것 같았다.

그때였다.

띠리리리리링!

“예, 전화 받았습… Yes, yes, sir.”

전화를 받은 직원 하나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강민구를 쳐다봤다.

“저, 지부장님. 지금 본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만.”

“…후우, 곧 간다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전해.”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강민구는, 부하 직원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누군지 찾을 수 있지?”

“그, 그게…… 아무리 저희가 운영자여도 모든 유저들의 위치나 상황을 파악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도 찾아. 무조건 찾아.”

“차, 찾아서 어떻게 할까요?”

부하의 물음에 강민구가 인상을 팍 썼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찾는 즉시…!”

그 다음에 뱉어낼 말을 찾던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켜보는 거지 뭐… 게임 어떻게 하는지 구경해. 감시해. 운영권도 없는 우리가 뭘 하겠어.”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부장님. 이런 코드는 처음 보는데, 대체 무슨 직업을 뜻하는 겁니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전화기를 향해 걸어가던 강민구가, 다 죽은 사람처럼 조용히 입을 열었다.

“M은…… Myth(신화)등급의 약자다.”

게임이 오픈된 지 4개월이 된 이 시점에서는, 절대 해제되어선 안 될 직업이기도 했다.

***

“어디 보자…….”

강민구가 본사의 높으신 분들에게 깨지고 있는 시각, 카이는 마을 광장에 있는 퀘스트 게시판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퀘스트 게시판이란 NPC들이 의뢰 내용을 적어놓은 종이를 붙이는 장소로, 플레이어는 이곳에서 퀘스트를 간편히 받을 수 있었다.

옛날 게임처럼 맵을 돌아다니며 힘들게 NPC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획기적인 시스템인 것이다.

“이게 제일 오래된 건가?”

카이는 게시판의 구석 자리에 위치한, 그것도 다른 종이들에 가려져 있는 퀘스트 종이를 떼어냈다.

[딸의 겨울옷]

난이도 : E-

잡화상점 주인 톰은 딸아이의 생일 선물로 겨울 코트를 선물하기 위해 놀의 꼬리를 구매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놀의 꼬리 50개를 가져다주십시오.

퀘스트 보상 : 30실버. 톰과의 친밀도 상승. 명성 5 상승.

“괜찮네.”

놀의 꼬리는 궁수나 도적 계열의 플레이어들이 선호하는 놀의 털 갑옷 세트를 제작하는 데 꼭 필요한 재료 아이템 중 하나였다.

그런 주제에 드랍 확률은 더럽게 낮아서 경매장에 팔면 개당 1실버는 받을 수 있는 재료 아이템이었다.

단순히 계산기만 두드려도 알 수 있는 엄청난 적자 퀘스트!

그것이 이 퀘스트가 유저들에게 버림을 받은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딱이지.’

카이는 미소를 지으며 종이를 품속에 넣고 잡화상점으로 향했다.

“아! 어서 오세요!”

15세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카이를 반갑게 맞아줬다.

“톰 아저씨는 안 계시니?”

“아빠는 뒤에 창고 정리하러 가셨어요. 불러드릴까요?”

“그래.”

잠시 후 딸의 손에 이끌린 톰이 카이 앞에 도착했다.

“오, 카이잖나. 나를 찾았다고?”

“네. 이걸 보고 찾아왔습니다.”

카이가 품속에서 퀘스트 전단지를 꺼내자, 톰이 사색이 된 얼굴로 딸의 눈을 가렸다.

“응? 아빠 뭐해?”

“너, 넌 보면 안 된다. 자네는 잠깐 날 따라오게.”

순식간에 카이의 손목을 붙잡은 톰은 창고로 들어갔다.

“후우, 후우. 들킬 뻔했군.”

“그러고 보니 딸을 위해 겨울옷을 만든다고 하셨죠?”

“맞네. 깜짝 선물을 주려고 했지. 하지만 그 의뢰 전단지를 붙인 지 두 달이 지나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서 슬슬 포기해야 되는가 싶었는데…….”

“후후, 짜잔!”

카이는 인벤토리에서 놀의 꼬리를 50개 꺼냈다. 200개를 모아 방한복을 만들려고 모아두고 있었지만, 지금은 퀘스트가 더 중요했으니 아낌없이 꺼낸 것이다.

“자, 자네!”

톰이 감격한 얼굴로 카이를 부둥켜안았다.

“고맙네! 사실 의뢰를 하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던 것이 사실이네만… 정말 고마워!”

“별 말씀을요.”

카이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아, 이럴 것이 아니지. 기다리게, 지금 당장 돈을 주겠네.”

“예? 아뇨, 괜찮습니다!”

카이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선행 스탯은 NPC에게 선행을 베풀었을 때 오른다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퀘스트를 수행하여 보상을 받는 것도 과연 시스템상 선행으로 인정이 되는 걸까?

그건 단순하게 의뢰를 수행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었다.

“아닐세. 정말 고마워서 자네를 빈손으로 보내면 안 될 것 같네.”

톰은 결국 우기듯이 카이의 손에 37실버를 쥐여줬다.

“저…… 7실버를 더 주셨습니다만.”

“너무 고마워서 조금 더 넣었네. 어른이 주면 그냥 받게나! 껄껄!”

껄껄 웃은 톰은 한 아름 들고 있는 놀의 꼬리를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저렇게나 기뻐하는구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이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 순간 알림창이 떠올랐다.

[NPC 톰에게 선행을 베푸셨습니다.]

[선행 스탯이 1 증가합니다.]

[태양교의 가르침을 행하셨습니다. 공헌도가 증가합니다.]

‘오, 올랐다!’

카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메시지창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아무리 퀘스트라고 해도 당사자가 고맙게 받아들이면 그게 선행으로 인정되는 건가?’

그렇다면 퀘스트를 수행하면 보상과 선행 스탯을 모두 받을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카이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아까 얼핏 뒤져봤을 때, 분명 아무도 받아가지 않은 퀘스트들이 제법 쌓여 있었어.’

그 퀘스트들은 모두 보상은 볼품없으면서도 노력만 죽도록 해야 하는 퀘스트들이었다.

믿고 거르는 퀘스트라 소문이 난 것들!

카이의 눈이 반짝였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톰에게 황급히 인사를 건넨 카이는 마을의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갔다.

“후우, 후우.”

긴장 때문인지 침이 꿀꺽 넘어갔다. 카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칭호 장착, 신의 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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