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힐통령 006화
2장. 선행 스탯의 힘(2)
띠링!
[신의 대리자는 태양신의 거룩한 뜻을 지상에서 대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은 자입니다. 숭고한 일을 대리하는 자는 항상 바른 몸, 바른 생각, 바른 마음가짐을 지녀야 합니다.]
[선행 스탯은 총 1입니다.]
[모든 스탯이 +1만큼 증가합니다.]
“스, 스탯창! 스탯창을 보자!”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46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9,200
신성력 : 17,700
능력치
힘 : 22 체력 : 92
지능 : 22 민첩 : 22
신성 : 177 선행 : 1
“…진짜 적용됐어.”
선행 스탯의 수치만큼 추가 증가된 능력치들을 보던 카이의 두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곤경에 빠진 NPC를 도와주면 선행 스탯 하나가 오른다.’
즉, 퀘스트 하나당 모든 스탯이 하나씩 오른다는 소리였다.
카이는 잔뜩 흥분된 머리를 차갑게 식히며 계산을 시작했다.
“현재 내 레벨은 46이지만 스탯의 합만 따지고 보면…….”
무려 56레벨의 캐릭터와 필적하는 능력치를 지니고 있다.
물론 저 계산은 단순히 모든 스탯을 합산한 수치만 봤을 때의 이야기다.
만약 자신이 정말로 56레벨까지 캐릭터를 육성했다면, 힘이나 민첩, 지능 등에는 스탯을 투자하지 않고 몽땅 체력과 신성만 올렸을 터. 하지만 그렇다고 손해는 아니었다.
힘과 민첩, 지능도 그 몫을 톡톡히 해내는 스탯이기 때문이다.
‘이거 혹시 나중에 선행 스탯이 200, 300을 넘어가면….’
그야말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만능 캐릭터의 탄생!
‘기대되는데.’
입 꼬리를 말아올린 카이가 몸을 돌렸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그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듯 퀘스트 게시판으로 달려갔다.
누군가 먼저 채가기 전에, 퀘스트를 몽땅 독차지할 생각이었다.
***
‘호구는 무슨.’
퀘스트를 완료한 카이는 자신을 비웃고 떠나간 유저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들에게 자신의 스탯창을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46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10,300
신성력 : 18,800
능력치
힘 : 33 체력 : 103
지능 : 33 민첩 : 33
신성 : 188 선행 : 12
게임 시간으로 지난 이틀 동안 NPC들을 도와주고 다닌 결과, 선행 스탯은 12가 되어 있었다.
스탯창만 봐도 배가 부른 기분!
‘너무 열심히 뛰어다녔나. 좀 피곤하네.’
생각해 보니 벌써 현실 시간으로 17시간.
현실과 3배의 시차를 지닌 게임에서는 벌써 51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피로를 느낀 카이는 광장의 분수대에 걸터앉아 게임을 종료했다.
헤드기어를 벗고, 캡슐에서 빠져나온 카이는 시계를 쳐다봤다.
시간은 오후 6시.
‘자기 전에 간단하게 뭐라도 먹자.’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자, 부모님은 아직 퇴근하지 않으셨는지 집 안이 휑했다.
회사를 다니는 누나도 한창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고 들었기에 집에는 그 뿐이었다.
“쩝….”
머리를 긁적이며 라면 하나를 끓여 먹은 한정우는 곧장 침대에 누웠다.
‘잠이 안 와.’
잠에 들면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질까 봐, 안개처럼 흩어질까 두려웠다.
당장에라도 게임에 접속해서 자신의 직업과 칭호가 그대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정우는 피식 웃으며 눈을 감았다.
‘나도 참, 이런 생각을 하면 게임 폐인이라도 된 것 같잖아.’
게임 폐인 맞다.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 게임만 하는데 그게 폐인이 아니면 대체 뭔지!
한참이나 뒤척이던 한정우를 깊은 수마가 끌어당겼다.
그 날은 근 몇 년 동안 가장 편안하게 잠이 든 날이었다.
***
눈을 뜬 한정우는 즉시 화장실로 달려갔다.
어푸어푸!
치카치카!
“역시 아침은 이렇게 상쾌하게 시작해야 제맛이지.”
올바른 게이머는 항상 아침을 깨끗하게 맞이해야 한다는 것은 평소 한정우의 지론이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슬쩍 쳐다본 시계는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창밖의 밝은 달은 자신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이게 진정한 얼리 버드지.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더 많이 잡아먹는 법!’
오늘도 행복회로를 무사히 돌린 한정우는 가볍게 시리얼을 먹고 설거지를 했다.
평소에는 하기 싫던 설거지였지만, 오늘은 그마저도 즐거웠다.
“역시 사람은 직업이 중요해. 의사, 변호사, 검사가 된 이들도 이런 기분이겠지?”
“꼭두새벽에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뒤쪽에서 누나인 한지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누나 지금 일어난 거야?”
“내가 너냐? 이 시간에 일어나게.”
자세히 살펴보니 냉수를 들이키는 그녀의 안색이 조금 안 좋아 보였다.
“아… 혹시 오늘 그 날인가? 달마다 찾아온다는 마법의… 커억!”
짧게 끊어 친 한지혜의 주먹이 정우의 갈비뼈를 두드렸다.
그녀를 태권도 학원에 보냈던 어머니가 봤다면 손뼉을 치면서 감탄했을 정도의 깔끔한 주먹!
“동생아, 누나는 우리 동생이 오래 살았으면 좋겠거든. 협조 좀 해주라?”
한정우는 자신을 살벌하게 내려다보는 누나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네, 협조해 드리겠습니다!”
“바람직한 선택이야. 다시는 그러지 마렴.”
신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한정우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제 옆구리를 문질렀다.
“그런데 안색은 왜 그렇게 안 좋아? 무슨 일 있어?”
“일은 무슨 일. 어제 회식이라서 밤새 달렸더니 속이 안 좋은 것뿐이야.”
“아하. 그럼 냉수 먹고 속 차리길. 나는 이만.”
그대로 누나를 지나치려 했지만, 그녀의 손이 한정우의 셔츠 뒤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우리 동생님, 또 게임 하러 가니?”
“어? 으응.”
“후우…….”
등 뒤에서 누나의 묵직한 한숨이 들렸고, 셔츠를 붙잡고 있던 손아귀의 힘이 빠져나갔다.
“너 휴학 2년째야. 알지?”
“…벌써 그렇게 됐나?”
“…….”
짜게 식은 눈으로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던 한지혜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동생이 어쩌다가 이렇게 노답이 됐지? 어렸을 땐 안 이랬는데…….”
“누나. 조금만 기다려 봐. 지금 내 인생에서 최고의 기회가 온 것 같거든.”
“……내가 알기로 그 대사는 주로 마카오나 라스베이거스, 강원랜드에서 나오는 대사인데?”
“아, 그런 게 아니라니까.”
한지혜는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짓는 동생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NPC 슈델에게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선행 스탯이 1 증가합니다.]
[모든 스탯이 1만큼 증가합니다.]
[태양교의 이로운 가르침을 행하셨습니다. 공헌도가 증가합니다.]
“후 이걸로 선행 스탯도 18개.”
동시에 프리카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곤경해 처한 NPC들은 모두 도와줬다.
몇 시간 동안 퀘스트 게시판을 기웃거렸지만, 더 이상 수행할만한 퀘스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좀 더 고레벨 지역으로 떠나야 하나?’
하지만 레벨이 참 애매했다.
능력치만 보면 50대 후반의 플레이어와도 맞먹지만, 레벨은 여전히 46였으니까.
‘아마 고레벨 지역에 가도 파티에 끼워주지 않겠지.’
물론 자신이 전직한 신화 등급의 직업을 공개하면 모든 고민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직업을 공개를 함으로써 얻게 되는 득보다는 실이 많아 보였다.
‘그럼 결국 또 놀 사냥이네.’
카이는 39레벨부터 46레벨까지 놀만 사냥했다.
‘이제 놀 그림자만 봐도 질리지만… 어쩔 수 없지.’
카이는 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항상 파티를 구하는 사람들로 넘쳐났기에, 마음에 드는 파티를 찾는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45레벨 이상. 붉은 놀의 초원으로 사냥 가실 분! 사제만 구하면 바로 출발합니다.”
겨우 마음에 드는 파티를 찾은 카이는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키가 카이의 가슴 높이 밖에 안 되는, 새하얀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었다.
“카이, 잠깐 대화할 수 있겠나.”
“분터 촌장님? 무슨 일이세요?”
“집에 가서 긴히 할 이야기가 있네.”
“…좋습니다.”
사냥에 대한 미련을 버린 카이가 냉큼 대답했다.
분터의 말에서는 강렬한 퀘스트의 향기가 났으니까.
“그럼 따라오게나.”
촌장은 곧장 카이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이동했다.
아늑한 시골 분위기가 느껴지는 벽돌집이었다.
그는 직접 차를 내오더니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요즘 곤경에 처한 마을 주민들을 많이 도와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분터가 흐뭇하게 웃으며 카이의 손을 잡았다.
주름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쭈글쭈글한 손이었지만, 따듯했다.
“지금 이 마을에는 자네보다 강력한 모험가들도 있지만, 자네만큼 신뢰가 가는 모험가는 없네. 마을 주민들을 그렇게 위해준다는 건 그만큼 마음씨가 착하다는 소리일 테니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의 행실이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으니 좋게 볼 수 밖에 없지.”
훈훈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오고갔다.
“그래서 저를 부르신 이유는 뭔가요?”
“험험.”
본론으로 들어가자, 분터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사실 지금 이 마을은 아주 큰 위기에 봉착해있네. 나는 이를 해결해 줄 모험가를 여태까지 기다리고 있었지….”
“위기요?”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프리카는 위기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시골이었으니까.
“그렇네, 위기. 자네는 이 마을 인근에서 가장 강한 몬스터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야 당연히 붉은 놀 치프지요. 항상 부하들을 이끌고 다니는 필드보스 몬스터니까요.”
“많은 모험가가 그렇게 생각을 하더군.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일세.”
탄식이 섞인 한숨을 뱉어낸 분터는 수염을 바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인근을 지배하는 몬스터는 놀 따위가 아닐세. 산맥을 지배하며 왕 노릇을 하는 아주 고약한 녀석이 하나 있지.”
“그런 녀석이 있습니까?”
커뮤니티에서도 본 적이 없는 정보다.
카이가 침을 꿀꺽 삼키며 귀를 기울이자, 분터가 더 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 산맥의 진정한 주인은, 다름 아닌 웜 리자드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