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8화 (8/441)

# 8

힐통령 008화

3장. 혼자서도 잘해요(2)

콰아아아앙!

스킬이 시전되자 굉음과 함께 백색의 광선이 뿜어져나왔다.

“뭐, 뭐야.“

카이는 스킬이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파괴력을 선보이자 깜짝 놀랐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차렸지만, 그때는 이미 그레이 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도망쳤나?”

카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레의 놀을 찾고 있을 때,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경험치 420을 획득하셨습니다.]

“…….”

눈을 가늘게 뜬 카이가 메시지창을 다시 한번 읽었다.

“경험치가 갑자기 왜…… 설마?”

카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레이 놀이 있던 장소를 쳐다봤다.

그곳에는 놀의 가죽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카이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설마 원킬이 떴다고?’

원 킬(One Kill).

공격 한 번에 몬스터를 처치하는 행위로, 장비의 품질이나 스킬 숙련도가 매우 높은 유저만이 할 수 있는 행위였다.

‘하지만 홀리 익스플로젼은 숙련도가 아직 0이었는데…….’

이 상황이 믿겨지지 않은 카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누가 잡던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사제 주제에 이렇게 공격력이 강할 리는 없으니까!

그렇게 결론을 내린 카이는 다른 그레이 놀들을 상대로 스킬의 능력을 시험했다.

[경험치 427을 획득했습니다.]

[경험치 418을 획득했습니다.]

쏘는 족족 사망…… 아니, 아예 존재 자체가 삭제되는 그레이 놀들!

카이는 꼬박 열 마리의 놀들을 잡고 나서야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건 착오 따위가 아니야.’

그저 스킬의 계수가 말도 안 되게 높은 것 뿐이었다.

“잠깐, 이 스킬이 있으면…….”

굳이 그레이 놀을 잡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

“여기는 오늘도 사람이 많네.”

드넓은 초원에는 수많은 파티가 붉은 놀을 몰이사냥하고 있었다.

‘좀 후미진 곳으로 가야겠다.’

자신의 스킬을 다른 이들이 보면 화제가 될 것이 분명하니까.

괜한 소란에 엮이는 일은 질색이었기에 카이는 후미진 곳으로 이동했다.

‘누나 말처럼 인생은 가늘고 길게 가는 거지.’

구석으로, 구석으로.

초원의 구석으로 계속해서 걸어가자, 초원과 숲이 만나는 경계 부분에 도착했다.

“흠. 그런데 아직도 보인단 말이지.”

고개를 슬쩍 돌려보니 아직도 유저들이 보였다.

돌려 말하면 저들에게도 자신이 보인다는 뜻.

‘초원에서는 사냥을 못 하겠어.’

사방이 탁 트인 이곳에서는 아무리 구석진 장소라도 눈에 띄기 마련!

결국 카이는 숲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좋겠어.’

숲으로 들어와 유저들과 거리가 멀어지자 주변이 고요해졌다.

귓가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새의 지저귐과 이따금씩 흔들리는 수풀의 소리가 유일했다.

적막감이 감도는 이곳에서라면, 자신의 스킬을 마음껏 사용해도 괜찮을 것이다.

“자, 그럼 우선…….”

스킬창을 열어 설명을 읽어보던 카이는 곧장 스킬을 사용했다.

“태양의 갑옷, 태양의 축복.”

자신의 전신을 성스러운 기운이 감싸기 시작했고, 들고 있던 메이스가 하얗게 빛났다.

“겉보기에는 일반 사제의 스킬과 다를 게 없는데.”

색깔만 바뀌었다.

진짜로 색깔만 조금 더 멋있게 바뀐 것이 유일한 차이!

‘하지만 중요한 건 실질적인 성능이지.’

카이는 곧장 수풀에서 고개를 쏙 내밀어 그 너머를 바라봤다.

‘있다. 두 마리.’

붉은 놀 두 마리가 킁킁거리며 무언가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크르르륵!”

한 마리가 무슨 냄새를 맡은 듯 고개를 바닥에 처박은 채 카이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왔다.

‘온다.’

카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에는 홀리 익스 플로젼을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태양의 축복과 태양의 갑옷이 지닌 효과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가만히 얻어맞고 있겠다는 소리는 아니거든.’

예로부터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단 하나였다.

“그것이 바로 선수필승!”

순식간에 수풀에서 뛰쳐나간 카이의 메이스가 붉은 놀의 정수리를 그대로 내리찍었다.

“깨갱!”

단번에 20%나 줄어드는 붉은 놀의 체력!

카이의 힘 스탯이 고작 30대인걸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공격력이었다.

‘대체 태양의 축복은 공격력 증가가 얼마나 되는거야?’

기쁨의 미소를 지워내기도 전, 태양의 갑옷을 시험할 차례가 왔다.

“컹컹!”

“크엉! 크엉!”

분노한 붉은 놀들이 입가에서 침을 뚝뚝 흘려대면서 달려든 것이다.

물리면 그 즉시 광견병에 걸릴 것 같은 비쥬얼!

눈을 질끈 감은 카이는 양팔을 벌렸다.

“와라!”

콱, 푸욱, 콰악!

붉은 놀들의 날카로운 단검과 이빨이 연신 카이를 공격했다.

[51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502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521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

“크르륵?”

“크엉? 크엉!”

연약해보이던 인간의 몸이 상상이상으로 튼튼하자, 오히려 붉은 놀들이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으음?”

그 사이 슬며시 실눈을 뜬 카이가 자신의 생명력을 확인했다.

‘뭐, 뭐야.’

동공이 확 커졌다.

예로부터 마법사와 사제는 모든 게임을 통틀어 최악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클래스들!

실제로 붉은 놀의 단검을 열 번 정도 맞으면 카이는 죽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태양의 갑옷 덕분인지, 체력은 무려 40%나 남아 있었다.

‘데미지 감소, 끝내준다.’

심지어 태양의 갑옷은 방어막을 생성하는 스킬이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상의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을 높여주는 버프 스킬!

그 말은 성스러운 방어막과 중첩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스킬들이 하나같이 사기적이야.’

카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붉은 놀들이 바닥을 박차고 쇄도했다.

“크러렁!”

“크라랑!”

“이제 그만 좀 짖어. 홀리 익스플로전!”

1초, 2초, 3초. 콰아앙!

그레이 놀도 한 방,

붉은 놀도 한 방.

그야말로 죽창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스킬!

‘기분 끝내주는데?’

마치 최고의 대장장이가 한계까지 제련한 아이템이라도 끼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만약 이 상태에서 매직, 레어 아이템을 착용하게 된다면?

아니, 이 직업이라면 유니크 아이템을 풀 세트로 두르는 것도 먼 미래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거, 정말 사제로 솔로 플레이가 되는 건가?’

경험치! 아이템! 정보!

그 모든 것을 독식하는 솔로 플레이야말로 게이머의 로망이다.

‘누구나 원하지만, 누구나 할 수는 없는 것이지.’

이유는 역시 미드 온라인이 자랑하는 인공지능 때문이었다.

몬스터들은 멍청하기는커녕, 영악하고 똑똑했으니까.

그런 이들을 혼자서 상대한다는 건, 매 순간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위태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라.’

아직 햇살의 따스함이라는 스킬은 확인해 보지 못했지만, 굳이 그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믿음이 간다.

‘이것이 신뢰로구나!’

식약청에서 1등급 판정을 받은 음식을 눈앞에 둔 것 같은 압도적인 신뢰감!

‘솔플의 가능성. 오늘 사냥에서는 그것을 확인해보자.’

카이의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도 밝게 빛났다.

***

“홀리 익스플로전!”

쾅!

“……플로젼!”

콰아앙!

“……젼!”

콰아아아앙!

카이가 숲에 들어온 지 네 시간.

숲은 굴착기라도 지나간 것처럼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후우.”

쑥대밭이 되어 있는 숲에 주저앉은 카이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냈다.

얼굴을 쓰다듬는 산들바람과 흔들리며 정겨운 소리를 내는 숲의 나뭇잎까지.

오감이 호강을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카이는 주변을 바라보며 크게 한탄했다.

“이것이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자연의 풍경이지.”

틀렸다. 단순한 학살의 현장이다.

실제로 바닥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폴리곤 조각들이 떨어져 있었다.

그들 모두가 한때는 붉은 놀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

카이는 덧없이 사라진 그들의 잔재를 쳐다보며 슬픈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경험치 엄청 짜게 주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살의 효과는 대단했다.

카이는 불과 두 시간 만에 경험치를 37%나 올릴 수 있었고, 결국 47레벨을 찍었다.

“사냥이 이렇게 쉬웠나?”

지그시 눈을 감은 카이는 며칠 전까지 하던 파티사냥을 회상했다.

근래에 자신과 함께 사냥을 했던 소중한 파티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힐러님! 힐! 힐 좀 줘요! 저 이러다 죽어요!”

“와, 이게 맞네? 힐러님. 방어막 스킬 좀 빨리!”

“중독! 저 중독 됐어요! 빨리 해독 좀!”

“앗, 어그로 풀렸다. 다들 도망치세요!”

주르륵.

카이의 뺨 위로 통한의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새삼스럽지만, 사제란 역시 쉬운 직업이 아니야.’

그렇다.

미드 온라인에서의 사제란, 사냥하는 내내 파티원 뒷바라지만 해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

그런 주제에 레벨 올리기는 더럽게 힘들었다.

이유는 파티 사냥을 하면 기여도에 따라 경험치가 분배되기 때문이다,

‘탱커나 딜러가 우수할수록 사제가 할 일은 사라지지.’

레벨을 빠르게 올리고 싶다면 좋은 파티에 참가하여 몬스터를 빠르게, 그리고 많이 잡아야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좋은 파티에 참가하면 사제가 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숙련된 탱커들은 피해를 입지 않고, 딜러들은 빠르게 몬스터를 녹여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사제의 기여도는 다른 이들보다 적을 수밖에 없고, 이는 레벨 업 속도의 저하로 이어진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거 사제한테는 완전 쓰레기 게임 아니야?“

물론 남들보다 성장이 느리고 힘든 만큼 보상도 있다.

50레벨.

그 때를 기준으로 몬스터들의 공격력은 대폭 강화되니까.

과장 조금 보태면, 일반적인 유저들은 사제 없이는 사냥이 아예 불가능할 정도였다.

‘사제가 물약 취급에서 벗어나 귀족의 대우를 받게되는 순간이지.’

마의 고비라 불리는 이 구간을 넘었냐, 못 넘었느냐로 사제의 위상은 달라진다.

“이것 때문에 사제 플레이어 수가 항상 꼴찌인 거 아니야.”

다른 직업에는 없는 이 고비 때문에 사제로 전직하는 유저의 수는 터무니없이 적었다.

그 어떤 게임보다 사제의 비율이 낮고, 고레벨이 될수록 사제를 보는 건 더더욱 힘들어진다.

‘하지만 그 구간만 뚫으면…….’

인력 시장에서 없어서 못 모셔가는 고레벨 사제가 된다!

그렇다면 일반 사제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태양의 사제는?

“누구도 나를 대체 할 수는 없어.”

그야말로 유일무이(唯一無二)!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다른 사제들과의 격차는 더욱 뚜렷해질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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