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힐통령 009화
4장. 놀의 무덤(1)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생전 처음해보는 솔플에 맛이 들려 정신없이 사냥을 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떨어지는 중이었다.
‘솔플, 가능하겠어.’
사냥의 결과는 당연히 긍정적이었다.
사냥 속도도 빠르고, 무엇보다 스스로 ‘회복’을 할 수 있으니 마을에 돌아갈 필요도 없었으니까.
결론을 내린 카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몬스터가 강화될 시간인가. 마을로 돌아가자.’
해가 지면 모든 몬스터들의 능력치가 30% 증가하는 대신, 드랍률과 경험치가 20% 증가한다.
그렇기에 장비와 컨트롤에 자신이 있지 않다면 야간 사냥은 삼가는 것이 상식이었다.
사아아아악.
“응?”
숲을 빠져나가는 카이의 눈에 기묘한 현상이 목격되었다.
태양이 지고 달이 떠오르자, 처치한 붉은 놀들, 그러니까 놈들의 폴리곤 조각들에서 희미한 연기가 흘러나와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기라고?
게다가 하나가 아니다.
붉은 놀이 죽은 모든 장소에서 연기가 빠져나왔고, 그것들은 같은 장소로 이동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들어본 기억은 없는데.’
사실 없는게 당연했다.
미드 온라인의 유저가 아무리 많다고해도, 시작하는 왕국과 마을은 모두 다르다.
심지어 대부분의 유저는 편의성이 뛰어난 도시에서 시작을 하기 때문에 이런 시골 마을에서 시작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밤 중에 이렇게 깊은 숲까지 들어오는 유저가 없다.
‘그렇다면 저런 현상을 발견한게 내가 처음일 확률이 높다?’
게임에서 처음, 최초라는 말은 곧 이익과 연결된다.
눈을 빛낸 카이는 마을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연기를 뒤쫓기 시작했다.
사아아아악.
사아아악.
연기를 쫓아가자, 그것들이 모두 같은 장소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머리 위로는 수많은 연기가 모여, 마치 연기의 바다가 흘러가는 것 같은 장엄한 광경이 펼쳐졌다.
연기들을 숲의 바닥에 위치한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흐음……?”
그 앞에 멈춰선 카이는 늪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끈적해보이는 늪의 밑바닥은 보이지 않았지만, 무언가가 있는 것은 확실했다.
‘이걸 들어가? 말아.’
미간을 찌푸린 카이가 잠시 고민했다.
‘운이 나쁘면 단순한 함정이고. 아니라면 히든 퀘스트나 던전이겠지.’
함정이라면 자신은 죽을 것이다.
하지만 카이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았다.
‘과연 개발자들이 유저 몇 명 죽이자고 이렇게 공들여서 함정을 만들어놨을까?’
그럴 리가.
만약 이것이 함정이라면,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속아주는 것이 예의일 정도!
‘이건 못 먹어도 고다.’
카이는 태양의 갑옷을 시전한 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늪 속으로 뛰어들었다.
***
‘우읍!‘
늪에 빠진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단 하나였다.
‘아, 괜히 들어왔다.’
끈적한 액체가 온몸을 적시는 기분은 빈말로도 유쾌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2초가 흐른 뒤, 그 생각은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늪에서라면 절대 들이쉴 수 없는 공기가 코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 속에서 숨이 쉬어진다고?’
카이가 의아함을 느끼는 순간, 그의 몸은 추락했다.
쿠우웅!
“크윽!”
인상을 찡그리며 엉덩이를 문지르던 카이는 천장을 쳐다봤다.
천장은 매끈한 흑색 돌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자신의 머리 위에만 늪이 꿀렁이고 있었다.
“늪이…… 안 떨어지고 있어.”
마치 보이지 않는 막이라도 있는 것처럼, 늪은 천장에 고인 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던전-놀의 무덤을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게임시간으로 9일 동안 경험치 획득률과 아이템 드랍률이 30% 증가합니다.]
[경험치를 1,250 획득하셨습니다.]
[명성을 520 획득하셨습니다.]
‘던전!’
카이의 입가로 승리자의 미소가 깃들었다.
무언가 숨겨진 요소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설마 던전이었을 줄이야.
‘놀의 무덤이라. 이름 한 번 살벌하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던전의 복도가 보였고, 그 위를 숲에서 봤던 연기가 가로질러가고 있었다.
‘저 연기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나.’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 카이는 다시 연기를 쫓기 시작했다.
‘단거리 달리기라면 자신이 있지.’
무려 초등학생 때 단거리 육상 선수로 체육대회에서 4등을 했을 정도!
“허억, 허억. 숨차다.”
참고로 초등학생의 단거리 육상 거리는 50미터다.
순식간에 폐까지 들어찬 숨을 내뱉은 카이는 복도 끝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것은 또 다른 복도.
게다가 바닥에는 뼈 무더기들이 놓여 있었다.
‘뼈들이라, 무슨 의미지?’
보통 뼈처럼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백화점의 고급 매장에 잘 개어져 있는 셔츠처럼 차곡차곡 예쁘게 쌓여 있었다.
추적하던 연기는 뼈 무더기를 바라보는 사이 또 복도 끝의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놓쳤네.”
하지만 카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차피 길은 하나인 것 같으니 가다 보면 찾을 수 있겠지.’
카이가 앞으로 걸어가려던 찰나, 바닥에서 끼리릭 거리는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음? 끼리릭?’
끼리릭!
예쁘게 쌓여 있던 뼈들이 하나둘 일어나며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것은 해골 모양의 놀이 되었다.
[놀 스켈레톤 LV.51]
“5, 51레벨!?”
이 지역에서 가장 레벨이 높다고 알려진 붉은 놀 치프와 동급!
깜짝 놀란 카이는 서둘러 스킬을 캐스팅했다.
“태양의 축복, 태양의 갑옷, 성스러운 방어막…….”
순서대로 사용한 스킬들이 모두 완성되었다.
동시에 조립(?)이 끝난 놀 스켈레톤들이 뼈 단검을 쥔 채 달려들었다.
“홀리 익스플로전!”
콰아아앙!
일직선의 복도를 그대로 메워버리는 빛의 광선!
광선에 직격당한 놀 스켈레톤들은 장난감마냥 맥없이 부서져 버렸다.
“스켈레톤 주제에 감히 사제에게 덤비다니. 간덩이가 부었네. 아, 해골이라 간이 없구나.”
자신이 내뱉은 농담에 피식 웃음을 터뜨린 카이는 여유로워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사제의 신성력은 언데드와 악마형 몬스터에게 1.5배의 추가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아군을 치료하는 힐마저도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공격!
‘한 마디로 이쪽이 상성상 훨씬 유리하다는 소리지.’
카이는 콩나물처럼 쭉쭉 늘어나는 경험치 바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완전 폭업 사냥터네. 사냥할 맛 좀 나겠어.”
요 며칠 동안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22년 동안의 고생이 마일리지까지 계산되어 한 번에 보상받는 기분!
“게다가 타격감도 붉은 놀보다 이쪽이 훨씬 더 좋아.”
주먹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하던 카이가 중얼거렸다.
공중에서 산산조각나는 뼈들을 볼 때 느껴지던 짜릿한 쾌감!
“그럼 우선 루팅을 해볼까.”
카이는 전리품을 줍기 시작했다.
[놀 스켈레톤의 뼈]
등급 : 매직.
놀 스켈레톤의 뼈이다. 놀의 원한이 가득 찬 곳에서만 생성되는 놀 스켈레톤을 잡았을 때 얻을 수 있는 희귀한 제작 재료.
“뭐야, 잡템 주제에 매직 등급이라고?”
한 마디로 이 재료로 장비를 만들면 최소 매직 등급의 아이템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
“요즘 매직 아이템 시세가 나쁘지 않지.”
비록 레어 아이템보다는 가격이 싸지만, 매직 아이템도 3~40만원 정도 가격에 거래된다.
“그럼 이게 다 돈이네.”
전리품을 모두 챙긴 카이는 두둑해진 인벤토리를 쳐다보며 해맑게 웃었다.
‘보기만해도 배부르네. 그럼 다시 가볼까.’
던전의 시작이 나쁘지 않다.
게다가 최초 발견 보너스는 앞으로 9일이나 남은 상황.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을까?
카이는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복도를 걸어 나갔다.
***
“으음…….”
던전 공략은 나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진 복도를 걸어갈 때마다, 놀 스켈레톤의 개체 수는 더 많아졌고 레벨도 점점 더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홀리 익스플로전!”
콰앙!
이번에도 카이의 손끝에서 시전 된 홀리 익스플로전은 밝은 빛을 내뿜으며 복도를 새하얗게 물들였다.
하지만 먼지구름이 내려앉았을 때, 부서져 있는 놀 스켈레톤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모두가 두개골 사이에서 붉은 안광을 빛내며 카이에게 다가올 뿐.
‘젠장…….’
그들의 레벨이 무려 55레벨이었기 때문이다.
“홀리…….”
2초의 캐스팅 시간이 2분처럼 길게 느껴진다.
‘2초가 이렇게 길었던가?’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수십 자루의 단검이 쇄도했다.
“익스…… 크윽!”
[캐스팅이 취소되었습니다.]
카이는 즉시 뒤로 몸을 날렸다. 이어서 생명력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까맣게 죽었다.
‘체력이 40%밖에 안 남았다고? 태양의 갑옷이랑 성스러운 방어막까지 두르고 있었는데……!’
과연 55레벨의 몬스터!
절대 만만하게 볼 수가 없다.
딱딱딱!
끼기긱!
놀 스켈레톤 수십 마리가 턱뼈를 딱딱거리며 천천히 다가왔다.
마치 한 편의 호러 영화를 보는 기분!
기겁을 한 카이는 재빨리 스킬을 사용했다.
“햇살의 따스함! 햇살의 따스함!”
나른한 오후, 볕 좋은 곳에 누워 낮잠을 청하는 것 같은 평화로운 기분이 느껴졌다.
물론 체력도 쑥쑥 차올랐다.
‘역시 효과가 좋아. 두 번만 써도 체력이 60% 넘게 오르니까.’
그 와중에도 놀 스켈레톤 무리는 꾸준히 다가왔다.
이에 카이는 소매를 걷어 올렸다.
“좋아. 그럼 어디 누가 먼저 지치나 해보자고.”
“홀리 익스플로…….”
[캐스팅이 취소되었습니다.]
“홀리 익…….”
[캐스팅이 취소되었습니다.]
“홀…….”
[캐스팅이 취소되었습니다.]
미드 온라인의 몬스터는 영악하다.
학습 효과가 뛰어난 그들은 절대 카이가 홀리 익스플로전을 완성하도록 두지 않았다.
홀리 익스플로전을 맞으면 더럽게 아프다는 것을 그들도 경험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이, 이런!”
놀 스켈레톤들은 결국 카이를 밀어 넘어뜨리고 둥글게 둘러쌌다.
이어지는 구타!
“자, 잠깐! 나 뼈 맞았어……!”
뼈를 맞았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구타를 멈추지않는 잔악한 무리!
카이는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린 채 신나게 두들겨 맞았다.
그 와중에도 그는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머리를 보호, 데미지를 경감시키면서 주문을 외웠다.
“햇살의 따스함! 햇살의 따스함! 햇살의 따스함!”
[생명력이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생명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생명력이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생명력이 회복되었습니다.]
……
버그라도 걸린 것처럼 급격히 줄어들었다가 늘어나기를 반복하는 생명력!
‘이러다가는 진짜 죽는다!’
흘깃 쳐다본 신성력은 벌써 30%까지 떨어져 있었다.
평생 힐을 하면서 버틸 수는 없다.
이에 정신이 번쩍 든 카이는 그들의 공세를 뚫을 수 있는 약점을 찾기 시작했다.
“어……?”
잠시 후, 뭔가를 발견한 카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