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힐통령 010화
4장. 놀의 무덤(2)
카이는 놀 스켈레톤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체력창을 쳐다봤다.
‘회복을 하고 있어? 대체 어떻게?’
처음 녀석들과 만나자마자 홀리 익스플로전을 사용해 체력을 많이 깎아놓았다.
그런데 지금보니 녀석들의 생명력은 거의 모두 회복된 상태!
심지어 지금도 빠른 속도로 생명력이 회복되고 있었다.
‘이 녀석들, 뭔가 있다.’
이들은 단순히 레벨만 높은 녀석들이 아니었다.
개처럼 두드려 맞던 카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재빨리 녀석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놀 스켈레톤 LV.55]
상태 : 회복 중.
던전의 주인인 놀 언데드 치프의 축복을 받은 상태입니다. 회복 스킬의 효과가 대폭 증가하며, 자연 치유력도 대폭 상승한 상태입니다.
‘놀 언데드 치프에게 회복을 받고 있다고?’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었구나!
눈을 반짝인 카이는 다음 순간 신성한 빛 스킬을 사용했다.
번쩍!
딱딱딱!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밝기에 놀 스켈레톤들의 공격이 느슨해진 틈을 타 카이는 가까스로 포위망을 벗어났다.
‘홀리 익스플로전을 사용해서 녀석들을 잡는 건 무리야.’
저 악랄하고 졸렬한 뼈다귀들은 스킬이 캐스팅되는 것을 절대 기다려주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캐스팅 시간이 없는 스킬을 써야 되는데…….’
현재 카이는 시전 시간이 없는 스킬을 두 개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사제 시절에 배운 힐이고, 다른 하나는 햇살의 따스함이었다.
“둘 다 공격 스킬이 아니잖아.”
가볍게 혀를 찬 카이는 돌연 눈을 몇 차례나 깜빡였다.
‘잠깐만, 내가 왜 공격 스킬을 찾고 있는 거지?’
언데드와 악마족에게는 사제의 신성력 자체가 공격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고레벨의 사제들은 공동묘지나 폐허에 가서 힐 스킬을 이용해 스켈레톤을 사냥하는 것을 즐겨 했다.
‘항상 후방 지원만 하다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어.’
게다가 현재 놀 스켈레톤들은 치유 스킬의 효과가 대폭 증가한 상태.
카이의 입꼬리가 천천히 말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미소에서 불길한 기운을 느낀 놀 스켈레톤들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어디 가? 바빠?”
두 손 가득 새하얀 신성력을 머금은 카이가 그들에게 손짓했다.
“잠깐 와 봐.”
***
미드 온라인에는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소문난 이들은 바로 레벨에 비해 높은 체력 수치를 지닌 언데드 몬스터였다.
제대로 숨통을 끊어놓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는 끈질긴 녀석들!
하지만 다행히도 이들과 상극이라 말할 수 있는 기운이 존재했으니, 그것이 바로 신성력이었다.
단순한 치료 스킬조차 그들에게는 공격으로 들어갔기에, 성기사와 사제가 언데드 사냥 파티에서 각광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치료 스킬의 데미지는 공격 스킬에 비할 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말이지.’
하지만 대부분의 힐 스킬에는 캐스팅 시간이 없다는 것과 쿨타임이 매우 짧다는 장점이 있다.
이것은 육성법이 어려운 사제를 아무도 플레이하려고 하지 않자, 페가수스사에서 지속적으로 상향을 해줬기에 생긴 결과였다.
‘게다가 공격과 회복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지.’
“햇살의 따스함!”
카이의 손이 황금색 빛무리에 휘감겼다.
그 손은 본래 아군을 치료하기 위한 손.
하지만 카이는 그 주먹을 꽉 쥐며 놀 스켈레톤들을 두드렸다.
동시에 그들의 생명력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띠링!
[대상의 회복 스킬 효과가 대폭 증가된 상태입니다. 757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대상의 회복 스킬 효과가 대폭 증가된 상태입니다. 704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
아마 놀 언데드 치프는 물론 개발자들조차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신성력이 떨어지기전에, 더 빨리.’
카이는 그야말로 신의 대리자라도 된 것처럼 자신을 두들겨 패던 해골들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너, 아까 두개골 모양 기억해 뒀어. 내 옆구리 때린 놈 맞지?”
도리도리!
“부정해봤자 소용없어.”
바사삭!
힐을 뿜어내는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놀 스켈레톤이 부서진다.
그야말로 가장 간단하면서 효율적인 공격!
“후우.”
카이는 순식간에 끝난 전투의 현장을 돌아보며 뼈들을 줍기 시작했다.
[놀 스켈레톤의 뼈 3개를 획득하셨습니다.]
[놀 스켈레톤의 뼈 1개를 획득하셨습니다.]
[놀 스켈레톤의 뼈 2개를 획득하셨습니다.]
…….
인벤토리에는 매직 등급의 재료 아이템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이거 기분 좋은데?’
홀리 익스플로전으로 적들을 쓸어버릴 때와는 또 다르다.
손끝을 통해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짜릿한 쾌감!
‘경험치도 짭짤하네. 잘하면 마의 구간도 여기서 넘길 수 있겠어.’
유저는 10레벨을 간격으로 클래스 타워에서 새로운 스킬을 배울 수 있다.
특히 미드 온라인에서의 레벨 50은 일종의 전환점이었다.
몬스터들의 난이도가 껑충 높아지는 것이 50레벨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50레벨을 찍고, 마을에서 새로운 스킬들을 배우자.”
태양의 사제는 과연 어떤 스킬들을 배울 수 있을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탯 포인트를 5개 획득하셨습니다.]
카이는 곧장 스탯창을 불러 스탯을 분배했다.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51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10,900
신성력 : 19,400
능력치
힘 : 39 체력 : 109
지능 : 39 민첩 : 39
신성 : 194 선행 : 18
남은 스탯 : 25
“마의 구간치고는 쉽게 넘겼네.”
다른 사제들에게는 지옥이라고 불리는 극악의 50레벨!
그 구간을 쉽게 넘겨버린 카이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생각을 해보자.’
카이는 지성인답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스탯은 어떻게 분배해야 되지?’
여태까지는 사제의 정석처럼 레벨 업을 할 때마다 체력과 신성 스탯을 적당히 찍어줬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난 더 이상 일반적인 사제가 아니니까.’
태양의 사제는 솔플마저 가능한 직업.
당연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식으로 스탯을 찍어야 할 필요가 느껴졌다.
‘내가 가려는 길이 솔플이니까, 언젠가 민첩을 찍어야 할 수도 있어.’
미드 온라인에서는 민첩을 올리면 공격 속도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운동신경이 상승되었다.
한 마디로 민첩을 올리면 회피율과 적중률, 치명타 확률이 상승한다는 뜻.
‘일단 모든 경우의 수만 열어두고…… 조금 더 생각해 볼까.’
카이는 결정을 뒤로 미뤘다.
아직까지는 어떤 스탯을 올릴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스탯 포인트는 모아둔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 부족한 스탯이 있다면 사용하겠지만, 그렇지 않았으니 내릴 수 있는 판단이었다.
“그럼 스탯은 모아 두는 걸로 마무리하고…… 몸이 좀 무겁네.”
카이는 던전에 들어온 뒤로 3시간씩만 자고 게임을 하며 폐인이 무엇인지를 몸소 증명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레벨을 이만큼이나 올릴 수 있었지.’
누적된 피로 때문에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지만, 후회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고생도 이제는 끝.’
던전의 최초 발견 버프가 이제 겨우 3시간 남았다.
남은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은, 던전의 존재 이유라라고도 불리는 보스를 처치하는 것.
‘후우, 이건 조금 떨리는데.’
카이는 던전 경험이라고는 인던(인스턴트 던전)이라 불리는 약식 던전밖에 가본 적이 없었다.
놀의 무덤과 같이 숨겨진 곳을 던전이라고 부르는 반면, 인던은 항상 플레이어에게 오픈되어 있기에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장소였다.
‘내가 진짜 던전을, 그것도 솔플로 공략하는 날이 올 줄이야.’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서 뿌듯함이 절로 밀려들었다.
카이는 슬쩍 몸을 돌려 자신이 지나온 복도를 쳐다봤다.
‘마을로 돌아갈 때는 귀환 주문서라도 사용해야겠어.’
놀의 무덤에는 길이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길이 어찌나 길었는지, 사흘이 지나서야 겨우 보스 방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귀환 주문서는 무려 30실버나 하는 비싼 아이템이었지만, 걸어서 돌아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럼 이제 집 주인 낯짝이나 한번 볼까.’
카이는 온갖 버프를 몸에 두른 뒤 석문을 만졌다.
띠링!
[경고합니다. 보스 방에 진입할 시 전투가 끝나기 전까지 로그아웃과 귀환의 사용이 금지됩니다. 그래도 진입하시겠습니까?]
“물론이지.”
그그그극.
낡은 석문이 칠판 긁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카이는 주저 없이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흐음.”
내부는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방이었다.
네 개의 커다란 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었고, 방의 끝에는 뼈로 이루어진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두개골?”
카이는 의자 위에 올려져 있는 놀의 두개골을 쳐다보며 주문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놀의 두개골을 처음 보는 건 아니었지만, 여태까지 봐왔던 것보다 족히 세 배는 커다란 크기!
‘저 대두가 놀 언데드 치프로군.’
카이는 조용히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트드드득.
보스 방 내부가 한 차례 작게 진동했다.
동시에 두개골의 눈구멍에서 붉은색 안광이 번쩍! 소리를 내며 피어올랐다.
[보스 몬스터, 놀 언데드 치프가…….]
“홀리 익스 플로젼!”
적이 변신을 마치기도 전에 날아가는 선공!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 났…….]
“홀리 익스플로젼!”
[……습니다.]
“홀리 익스플로젼!”
콰앙! 콰앙!
백색의 광선이 연신 놀 언데드 치프의 두개골을 강타했다.
순식간에 절반으로 떨어지는 놈의 체력.
딱딱딱!
두개골은 화가 난다는 듯 턱뼈를 움직이더니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러자 녀석을 받치고 있던 뼈 의자가 해체되며 녀석의 몸이 되었다.
‘크다.’
2미터 크기의 제법 무서운 존재가 되어버린 녀석은 이글거리는 안광으로 카이를 노려봤다.
카이는 곧장 녀석의 머리 위에 떠오른 정보를 쳐다봤다.
[놀 언데드 치프 LV.58]
무려 58레벨의 보스 몬스터!
일반적으로는 최소 55레벨 이상의 모험가 네 명이 파티를 짜고 상대할만한 수준의 녀석이었다.
딱딱딱!
녀석이 턱뼈를 사납게 주억거리며 오른손에 굳게 쥐고 있던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동시에 방의 바닥에서 수십 개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 연기는?”
그것은 카이가 사흘을 추격해도 끝내 잡지 못했던 연기였다.
[놀 언데드 치프가 놀의 영혼을 불러들입니다.]
[놀 스켈레톤이 소환됩니다.]
“이건…….”
쿵!
놀 언데드 치프가 스태프로 바닥을 강하게 찍었다.
그 소리에 맞춰 연기들이 하나, 둘, 놀 스켈레톤의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곧 죽어도 던전 보스라 이거냐.”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리는 카이를, 놀 언데드 치프는 마치 왕이라도 된 것처럼 내려다봤다.
‘나의 부하들을 뚫고 계단을 올라 나에게 와보아라!’
그럴 리는 없겠지만, 녀석이 그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녀석의 안광은 강렬했다.
방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
“…….”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침묵은, 천장의 고여 있던 물방울 하나로 인해 깨졌다.
똑!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이 일종의 신호탄이 되었다.
30마리의 놀 스켈레톤들이 일제히 카이를 향해 밀려들었다.
‘좋아, 덤벼라.’
그들을 맞이하는 카이의 양손은 황금빛으로 물든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