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힐통령 014화
6장.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카이는 불과 며칠 만에 프리카 마을의 명물이 되었다.
선행 스탯도 지난 이틀 동안 2개를 더 올려 무려 33.
그 뒤로 몇 시간이나 주민들을 치료해주고 있는데 선행 스탯이 오르지 않는 것으로 보니, 이런 방법으로 선행 스탯을 무한정 쌓는 것은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얼굴이 너무 팔렸어.’
이제는 NPC는 물론이고 프리카 마을을 거점으로 삼은 유저들까지 카이의 얼굴을 안다.
주민들의 칭찬에 궁금해진 플레이어들이 그를 구경하러 왔기 때문이다.
“후우, 아무튼 드디어 끝났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장사(?)를 마친 카이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거리를 거닐었다.
막심이 약속했던 일주일째 되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기에 대장간을 방문하려는 것이었다.
카이가 길을 걷자 사방에서 NPC들의 친근한 목소리가 건네졌다.
“카이! 사과 남겨놓을 테니 나중에 가져가!”
“사냥이 끝나면 주점에 들리라고! 차가운 맥주 한잔 쏠 테니까! 으하하!”
그들 모두가 카이에게 치료를 받은 이들.
호감도가 부쩍 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하, 어깨는 좀 풀리셨어요?”
“발목 삔 건 좀 어떠세요?”
“소화불량은 힐로도 완벽하게 치료할 수가 없으니 당분간은 스프처럼 소화가 잘되는 음식들 위주로 드세요.”
카이는 NPC들을 무시하지 않고 하나하나 인사를 받아주었다.
‘이 세상의 모든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나와 같다면 세상이 조금은 나아질 텐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세계의 평화를 걱정한 카이는 대장간에 도착했다.
‘후우. 왜 이렇게 떨리는지.’
완성된 세트 아이템과 무기에 많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
투구, 어깨방어구, 상의, 하의, 신발.
보통은 이렇게 5개의 장비가 세트 아이템으로 분류가 되었고, 몇몇 세트에는 특별한 부위가 추가되기도 한다.
‘어제 경매장을 둘러본 결과, 가장 최근에 거래된 붉은 놀 세트는 다섯 부위에 95골드였어.’
현금으로 1,000만 원에 육박하는 변태 같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붉은 놀 세트는 매물이 없어서 구매를 못 하는 상황이다.
“하느님, 부처님, 헬릭님, 엄마, 누나, 그리고… 한 명 빠졌는데? 고3 때 담임 선생님인가?”
카이는 눈을 꼭 감고 그들에게 기도를 올렸다.
‘대박 터지게 해주세요.’
동시에 눈을 번뜩인 그는 대장간 문을 힘차게 두드렸다.
“들어 와라.”
내부로 들어서자 저번과 같은 열기가 다시 한번 얼굴을 덮쳤다.
하지만 지금은 긴장감 때문인지 그렇게 뜨겁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일주일 뒤에 오라고 하셔서요.”
“물건은 모두 완성이 됐네.”
막심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더니 묵직한 상자를 두 개나 들고 나타났다.
쿵, 쿵.
작업대 위에 상자들을 올려놓은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열어 보게.”
침을 꿀꺽 삼킨 카이는 떨리는 심정으로 커다란 상자를 살짝 건드렸다.
[칠흑의 놀 방어구 상자를 개봉하시겠습니까?]
세트 아이템의 유일한 단점은 하나 뿐이었다.
바로 상자를 개봉하면 교환 불가 상태가 된다는 것.
‘하지만 괜찮아. 지금 당장은 웜 리자드를 잡는게 우선이니까 스펙 업이 필요해.’
게다가 교환 불가가 된 세트 아이템은, 마녀의 숨결이라는 아이템을 통해 다시 거래 상태로 만들 수도 있었다.
물론 그것도 전부 돈이었지만.
짧게 숨을 고른 카이가 입을 열었다.
“아이템 개봉.”
띠링!
[칠흑의 놀 투구를 획득했습니다.]
[칠흑의 놀 어깨방어구를 획득했습니다.]
[칠흑의 놀 갑주를 획득했습니다.]
[칠흑의 놀 하의를 획득했습니다.]
[칠흑의 놀 벨트를 획득했습니다.]
[칠흑의 놀 부츠를 획득했습니다.]
카이는 천천히 아이템의 설명을 읽기 시작했다.
[칠흑의 놀 투구]
등급 : 매직(세트)
방어력 206
마법 방어력 178
착용 제한 : 레벨 50 이상
내구도 100/100
[칠흑의 놀 어깨방어구]
등급 : 매직(세트)
방어력 175
마법 방어력 158
착용 제한 : 레벨 50 이상
내구도 100/100
[칠흑의 놀 갑주]
등급 : 매직(세트)
방어력 275
마법 방어력 248
착용 제한 : 레벨 50 이상
내구도 100/100
[칠흑의 놀 하의.]
등급 : 매직(세트)
방어력 245
마법 방어력 227
착용 제한 : 레벨 50 이상
내구도 100/100
[칠흑의 놀 벨트.]
등급 : 매직(세트)
방어력 105
마법 방어력 78
착용 제한 : 레벨 50 이상
내구도 100/100
[칠흑의 놀 부츠.]
등급 : 매직(세트)
방어력 147
마법 방어력 139
착용 제한 : 레벨 50 이상
내구도 100/100
‘여기까지는 좋아. 무난해.’
하지만 세트 아이템의 가치는 그것들을 모았을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나느냐로 결정된다.
매직 등급에 불과한 붉은 놀 세트가 웬만한 레어 아이템보다 비싼 이유이기도 했다.
카이는 세트 아이템의 효과를 확인했다.
[세트 : 칠흑의 원한]
칠흑의 놀 방어구 한 개를 장착할 때마다 모든 스탯 +1만큼 증가.
칠흑의 놀 방어구 한 개를 장착할 때마다 캐스팅 시간 5%씩 감소.
칠흑의 놀 방어구 한 개를 장착할 때마다 스킬 쿨타임 1.5% 감소.
칠흑의 놀 방어구 한 개를 장착할 때마다 받는 피해 0.5% 감소.
“이, 이건……!”
카이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터, 터졌다!’
로또, 혹은 잭팟(JackPot)이라 불리는 것이.
‘미쳤다. 옵션이 미쳤어.’
모든 스탯만 달려 있어도 대박이라고 칭해질 만한 효과에 캐스팅 시간 감소와 쿨타임 감소 같은 꿀 옵션까지 달려 있다니! 그리고 받는 피해 감소는 애를 쓰고 찾으려고 해도 찾기가 힘든 옵션이었다.
‘게다가 칠흑의 원한 세트는 무려 6개의 부위가 한 세트.’
구하기 힘들기로 소문난 벨트까지 세트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카이는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옵션도 좋고, 이건 붉은 놀 세트 같은 양산품이 아니야. 게다가 외형도 고급스러워서 비싼 장비만 전문적으로 모으는 콜렉터들이라면 탐을 낼 만한데?’
결론은 시원하게 나왔다.
‘나중에 팔게된다면, 못 받아도 100골드 이상은 받을 수 있어. 현금으로 1,000만원 짜리 아이템!‘
쭈욱 늘어난 카이의 입꼬리는 날개라도 달린 듯, 내려올 줄을 몰랐다.
카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상자를 건드렸다.
[어둠의 두개골 분쇄기 상자를 개봉하시겠습니까?]
“개봉.”
열린 상자에는 고급스러운 묵색 빛이 감도는 메이스가 다소곳하게 놓여 있었다.
카이는 무엇에 홀린 것처럼 메이스를 집어 들었다.
[어둠의 두개골 분쇄기]
등급 : 레어
공격력 72~80
주문력 68~75
힘 +5
체력 +3
공격력 10% 상승.
일정 확률로 3배의 피해를 입히는 ‘강타’ 발동.
죽음의 기운이 깃들어 있는 놀 언데드 치프의 뼈로 제작된 무기입니다. 강력한 죽음의 향기는 때때로 적을 죽음의 강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착용 제한 : 레벨 53 이상.
내구도 100/100
허탈할 정도로 간단한 설명이다.
하지만 터틀넥을 즐겨 입던 누군가가 그랬다.
단순한 것이야말로 최고라고.
그 말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레, 레어 아이템!’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오히려 다양한 능력이 자잘하게 붙어 있는 아이템보다는, 이렇게 기본적인 능력치의 효과를 극대화시킨 아이템이 나았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카이는 저도 모르게 막심의 두꺼운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정말 마음에 듭니다. 어떻게 저런 아이템들을 이렇게 고운… 늠름한 손으로 만드셨는지!”
“으하하하.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사실 나도 저 장비들을 만들면서 즐거웠네. 처음 보는 재료였던 지라 오랜만에 도전정신이 제대로 발휘되었어.”
막심은 카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며 씩 웃었다.
“얼마 전에 허리가 안 좋은 우리 집사람이 자네에게 치료를 받았다고 들었네. 그래서 특별히 더 신경을 써서 만들었지.”
“아아…!”
선행 스탯을 올리고자 행했던 일이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이야!
카이는 감격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에 또 부탁드리겠습니다.”
“언제든지 맡겨만 주게.”
막심이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
마을을 나온 카이는 곧장 인적이 없는 산기슭의 바위에 걸터앉아 인벤토리를 쳐다봤다.
“후우, 이게 뭐라고 떨리는지.”
칠흑의 원한 세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인벤토리 오픈.”
카이는 장비들을 하나씩 꺼내 착용하기 시작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입어보는 세트 아이템이다.
설레이는 기분으로 여섯 개의 방어구를 모두 착용하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칠흑의 원한 장비를 모두 착용했습니다.]
[세트 옵션이 발동됩니다.]
[모든 스탯이 +6만큼 증가합니다.]
[캐스팅 시간이 30% 감소합니다.]
[스킬 쿨타임이 9% 감소합니다.]
[받는 피해가 3% 감소합니다.]
“확실히 비싼 게 좋긴 좋네.”
카이는 사람들이 왜 좋은 아이템에 환장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고작 장비를 바꿨을 뿐인데, 몸이 가벼워지고 전신에는 힘이 넘쳐흐른다.
카이는 곧장 어둠의 두개골 분쇄기까지 장착한 뒤, 스탯창을 확인했다.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54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13,300
신성력 : 21,500
능력치
힘 : 65 체력 : 133
지능 : 60 민첩 : 60
신성 : 215 선행 : 33
남은 스탯 : 40
캐스팅 시간 -30%
스킬 쿨타임 –9%
받는 피해 -3%
“이게 세트 아이템의 힘…….”
카이가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신이 아이템을 입은 것이 아니라, 아이템이 자신을 착용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이런 사치를 부리는게 얼마만인지.’
카이의 집은 가난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모님은 각각의 회사를 하나씩 운영하고 계시는 사장 부부였으니까.
하지만 두 분은 자식들의 자립심을 키워준다는 명목으로 고등학생 이후로 용돈을 끊어버렸다.
심지어 누나인 한지혜도 부모님의 회사가 아닌, 전혀 상관없는 회사에 자력으로 취업해서 일을 배우는 중이었다.
‘금수저들은 몇 억짜리 시계를 차고, 몇 천 만원짜리 정장을 입고 다닌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지.’
따지고보면 카이도 금수저에 해당되었으나, 부모님의 확고한 교육 방침으로 인해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자라왔으니까.
‘심지어 능력치도 많이 올라갔어.’
어둠의 두개골 분쇄기와 칠흑의 원한 세트를 착용하자 상승한 스탯들!
확실히 미드 온라인의 장비는 돈값을 톡톡히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황이었다.
“보기 모드.”
명령어를 내뱉자 자신에게만 보이는 거울이 주변에 나타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음. 멋있긴 멋있는데…….’
중요한 건 아무리 봐도 사제처럼 보이지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제는커녕 전사라고 말해야 겨우 믿을만한 모습!
애초에 칠흑의 원한 세트는 로브가 아니라, 뼈로 이루어진 경갑이었기 때문이다.
“뭐, 상관없나.”
어차피 카이는 실용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아이템의 외관보다는 성능만 좋다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이 정도 스펙이라면… 가능해.”
웜 리자드, 녀석의 사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