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힐통령 015화
7장. 붉은 노을 길드(1)
붉은 노을 길드는 프리카 마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길드였다.
길드원 수 30명.
모든 길드원은 40레벨 이상!
심지어 길드 마스터인 토반은 무려 55레벨의 유저였다.
그런 이들이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지 않고 이곳에서 활동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붉은 놀 세트의 독점과 양산화!]
이 모든 일의 시작은 토반이 한 가지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나는 랭커가 되긴 글렀다.’
게임이 오픈되고, 초기에는 그도 나름 레벨이 높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랭커들과 격차가 벌어지면서 빠르게 깨달았다.
‘재능!’
그에게는 없고 랭커들에게는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재능이었다.
비슷한 수준의 아이템과 레벨, 직업의 플레이어가 자신을 못하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해냈을 때, 토반은 깨달았다.
‘난 절대 위로는 올라가지 못하겠구나.’
당시의 그는 무기력함과 허탈함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일찍이 랭커들의 재능을 목격해서 다행이야. 어차피 오르지 못할 나무였으니까.’
미드 온라인 이전에도 유행했던 게임들은 많았고, 토반도 타 게임에서 나름 랭커로 활동했다.
하지만 세계의 모든 천재와 프로들이 모이는 미드 온라인에서, 그의 실력은 통하지 않았다.
하늘 위의 하늘! 프로 중의 프로라 불리는 것이 바로 미드 온라인의 랭커들이었으니까.
토반이 일찍이 마주한 좌절은, 오히려 기회의 발판이 되었다.
“덕분에 먹고살 걱정은 없군.”
그 당시 그가 눈독을 들인 사업이 바로 프리카 마을에서만 생산되는 붉은 놀 장비 세트였다.
다섯 부위로 이루어진 이 세트는 옵션이 준수해서 많은 유저들이 찾는 아이템이었다.
‘붉은 놀은 프리카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몬스터지. 이건 경쟁력이 있다.’
그는 결심을 한 직후 붉은 노을 길드를 창설했고, 길드원들을 공장의 부품처럼 돌렸다.
그렇게 생산되는 붉은 놀 세트가 무려 한 달에 10세트!
‘우리 길드의 한 달 매출은 현실 기준으로 1억 정도.’
기업형 길드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토반은 그것을 직접 증명해냈다.
똑똑똑.
그가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누군가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라.”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자신의 동생이었다.
“형! 진짜 이대로 두고만 볼 거야!?”
전형적인 탱커의 아이템을 갖추고 있는 녀석이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인상을 쓰자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더 못생겨 보였다.
토반은 살짝 짜증이 난 표정으로 대꾸했다.
“무슨 일이냐, 그리고 게임에서는 길마라고 부르라고 했을 텐데.”
“아 진짜! 알겠어! 길마님! 좀 도와줘!”
동생은 답답한지 가슴을 쿵쿵 치며 창밖을 가리켰다.
“내가 장비 드랍하게 만든 사제 녀석. 지금 완전 마을의 영웅이 되어 있다니까?”
“흐음.”
“형이…… 아니, 길마님이 저번에 그랬잖아? 평판도가 가장 높아야만 받을 수 있는 퀘스트들이 있다고. 그러니까 괜히 나대지말고 나도 평소 행실을 조심하라며.”
“그랬지.”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기는 토반도 마찬가지였다.
‘카이라고 했었지.’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만 해도, 언제든지 손을 보면 된다고 생각하던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몇 주 전, 마을의 평판도 랭킹이 바뀌어버렸다.
원래는 평판도 1위가 자신이었는데, 녀석의 평판도 랭킹이 역주행을 시작하더니 결국 1위를 찍어버린 것이었다.
그렇다고 손을 쓸 수도 없었다.
녀석은 NPC들의 거주 지역에서 주민들만 주야장천 치료하고 있었으니까.
경비병들과 태양교의 신관들도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을 내에서 손을 대는건 불가능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야! 그 녀석, 마을 밖으로 나갔어!”
“……뭐?”
토반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 녀석이 마을 밖으로 나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PK(Player Killing)가 경비병이나 NPC에게 걸리면 감옥에 들어가지만, 걸리지 않으면 장땡이다.
‘카오틱 상태에 빠지기는 하겠지만…….’
평판도 랭킹 1위라는 정적을 없애는 일 치고는 대가가 싼 편이다.
잠시 고민을 하던 토반이 결론을 내린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사제 녀석, 레벨이 몇이라고 했지?”
“응? 아, 나랑 마지막으로 파티를 했을 때는 46인가 그랬어.”
“그 이후로 사냥은?”
“당연히 못 했지! 내가 그 녀석이랑 파티하면 아주 그냥 다 죽여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거든.”
동생은 아주 자랑이라도 하듯 신이 나서 말했다.
“분명 지원형 사제라고 했지.”
“맞아. 전투 사제 스킬은 하나도 안 찍어놨더라. 애초에 지원형 사제 스킬도 몇 개 없더라고. 물약 같은 놈이야.”
토반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46레벨의 지원형 사제, 그 정도라면 우리 길드 전력으로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다.’
심지어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카오틱 유저가 될 수는 없지.’
토반은 자신의 동생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애들을 붙여줄 테니, 네가 직접 그들을 끌고가서 녀석을 끝내라.”
“저, 정말? 진짜로?”
감투 쓰는 것을 좋아하는 동생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형은 평소에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중대한 일을 맡기지 않았으니까.
“그래. 대신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이 마을 잠시도 있기 싫을 정도로 만들어서, 아예 이곳을 떠나도록 만들어야 해.”
“맡겨만 줘!”
“길드원 다섯을 붙여주지. 바로 출발해라.”
“알았어, 기대해도 좋아.”
만족스러운 답을 들은 동생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고민거리가 하나 줄어 들었나,’
척살령, 미드 온라인에서는 절대 가벼운 단어가 아니었다.
필드로 나올 때마다 대상을 죽여서, 아예 게임을 접게 만들거나 다른 지역으로 쫓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척살령의 정체였다.
“조만간 평판도 1위는 다시 내 차지가 되겠군.“
토반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카이가 새로운 장비들을 착용하고 웜 리자드를 찾으러 가고 있을 때, 한 무리가 그를 뒤쫓고 있었다.
“허억, 허억. 저 녀석은 대체 어디까지 기어 들어가는 거야?”
붉은 노을 길드의 탱커이자, 카이를 싫어하는 사내.
그의 닉네임은 아우였다.
길드원들을 대동한 그가 바로 카이의 뒤를 쫓고있는 자의 정체였다.
“그냥 저 녀석 덮치면 되는 것 아니야? 귀찮게 이게 뭐하는 짓이야?”
짜증이 나는 건 그 혼자만이 아니었는지, 길드원들의 불만이 속속들이 터져 나왔다.
“맞아. 고작 사제 하나잖아? 왜 이렇게 뜸 들이는데?”
“이쪽은 다섯 명이라고.”
“애초에 저 녀석은 레벨이 46이랬어. 이 중에서 그 정도 레벨 안 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아우는 길드원들의 성화에 자신도 버럭 성질을 냈다.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형이 확실하게 처리하라고 했으니까 이러지!”
“우리가 놈을 죽이는 건 100% 확실한 일이야. 그리고 이 정도면 충분히 조용한 곳이잖아?”
“그래도…… 몬스터와 전투를 하고 있을 때 뒤를 덮치는 편이 확실하지.”
“아오! 덩치는 곰 같은데 왜 이렇게 소심해?”
길드원들의 반발에 아우는 결국 한숨을 쉬며 백기를 들었다.
“젠장. 알았어. 알았다고. 그럼 여기서 하자고, 그럼 됐지?”
그는 곧장 길드원에게 명령했다.
비록 레벨은 그들이 더 높았지만, 아우는 길마인 형에게 지휘권을 건네받은 상태였기에 길드원들도 그의 명령을 따랐다.
“일단 도적 두 명은 은신을 쓰고, 백스텝부터 갈겨. 전투 상태부터 만들자고.”
“오케이.”
“그렇게 나와야지.”
전투 상태가 되면 로그아웃을 할 수 없게 된다.
그의 말을 알아들은 도적 두 명은 재빨리 은신 스킬을 사용하여 사라졌다.
아우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숨어 있던 수풀에서 일어났다.
“자, 척살을 시작하자.”
***
카이는 자신의 등 뒤에서 위험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지도를 살피는 중이었다.
“한 20분만 더 걸어가면 되려나.”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 창을 지우는 찰나, 그의 화면이 붉게 물들었다.
[백스텝 공격을 받았습니다.]
[치명타 발동! 1,047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오염된 칼날에 의해 공격을 받았습니다.]
[372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중독 상태에 빠졌습니다. 3분간 초당 12의 피해를 추가적으로 입습니다.]
[12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12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뭐, 뭐야!”
깜짝 놀란 카이가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어두운 산기슭만이 눈에 들어올 뿐, 자신을 공격한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다.
재빨리 전투태세를 갖춘 카이는 스킬을 사용해 중독을 치료했다.
‘몬스터가 아니다.’
이 부근에서는 은신을 할 수 있는 몬스터가 없었다.
‘그렇다는 말은?’
단 하나의 가능성 밖에 없었다.
‘PK구나.’
지나가는 소문으로 몇 번 듣기는 했다.
혼자서 필드 밖을 배회하는 유저들을 전문적으로 공격하는 PK범들이 있다고.
‘쯧.’
가볍게 혀를 찬 카이는 어둠의 두개골 분쇄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주변을 천천히 경계하며 조용히 버프를 걸었다.
“태양의 축복, 태양의 갑옷, 블레스, 성스러운 방어막.”
[공격력과 마법 공격력, 신성 공격력이 증가합니다.]
[물리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이 증가합니다.]
[모든 스탯이 +5 증가합니다.]
[성스러운 방어막이 당신을 보호합니다.]
기습을 받아서 살짝 놀라기는 했지만, 딱히 겁이 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 근처에서 PK를 하는 녀석들이라면 수준이 높아 봤자 레벨 50 정도겠지.’
현재 자신의 능력치는 지덕체와 여러 버프 스킬들로 인해 60레벨을 가볍게 상회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사제라면 그 정도 능력치로도 불안할 수 있겠으나, 자신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공격 능력도 빵빵한 태양의 사제가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후후후. 너무 겁먹지는 말라고.”
수풀 속에서 세 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중 한 명은 카이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지금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피식 웃은 아우가 방패와 무기를 꺼내 들었다.
“척살이다.”
“척살?”
“그래. 너 같은 허접한 유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척살.”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아우의 모습에 카이는 눈동자는 차갑게 식었다.
‘척살이라, 아주 작정을 하고 왔구나.’
이쪽에서도 두 손 놓고 당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너, 혹시 6.25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
아우의 질문에 카이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대꾸해줄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화악!
“바로 방심했기 때문이지!”
방패를 앞으로 내세운 아우가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그래? 그럼 넌 지금 좀 위험하겠네.”
차가운 미소를 지은 카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방심을 하고 있으니까.”
그것도, 신화 등급의 직업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