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힐통령 016화
7장. 붉은 노을 길드(2)
아우는 카이의 장비가 바뀐 것을 보았을 때 의문을 가졌다.
‘저런 장비는 또 언제 구한거야?’
처음에는 현질을 좀 했나 싶었는데, 보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잠깐, 저런 외형을 지닌 장비가 있었던가……?’
도저히 사제의 장비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경갑 방어구.
심지어 외형은 굉장히 멋있었다.
본인이 갖고 싶어질 정도로.
그래서 그런지 아우의 눈동자에는 탐욕이 넘실거렸다.
지르칸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투구를 드랍한 아우는 현재 투구가 절실했다.
‘어차피 척살령도 떨어졌겠다. 저 장비들을 모두 떨어뜨릴 때까지 몇 번이고 죽여주지.’
카이가 입고 있는 장비가 벌써부터 자신의 것처럼 느껴졌다.
‘어지간히 욕심이 나나보네.’
산기슭은 환한 달빛이 모든 플레이어를 비추고 있었지만, 단 한 사람만큼은 비추지 못했다.
바로 카이였다.
어둠과 동화라도 한 듯한 그는 제대로 집중을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았다.
칠흑의 원한 세트가 빛을 반사하지 않는 무광 흑색이었기 때문이다.
“얌전히 죽어라! 네 장비는 내가 잘 써주지! 방패 돌진!”
아우가 큰 소리로 스킬을 사용했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이 마치 오토바이처럼 빠르게 산기슭을 타고 돌진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카이는 타이밍에 맞춰 메이스를 휘둘렀다.
콰아앙!
거대한 폭음이 울려 터졌고, 폭탄이라도 터진 듯 흙더미가 하늘로 치솟았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붉은 노을 길드원들이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뭐, 뭐야!?”
“지원형 사제라며!”
“저, 전투 사제인 것 같은데?”
“무슨 개소리야? 아무리 전투 사제라도 공격력이 저렇게 높을 리가 없잖아!”
그들은 뒤이어 아우의 멍청함을 탓했다.
“저 멍청한 녀석! 지원형 사제라고 몇 번이나 말하더니!”
“애초에 우리한테 신호도 안 보내고 혼자 들어가면 어떻게 하냐고!”
하지만 지금 가장 당황한 것은 돌진을 행한 장본인인 아우였다.
그는 방패를 들고 있는 손이 저릿저릿한 것을 느끼고는 눈을 번쩍 떴다.
‘헉!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을 뻔했다!’
하마터면 로그아웃을 당할 정도의 엄청난 공격력!
아우는 곧장 흙더미에 처박혀 있는 몸을 빼낸 뒤 HP창부터 확인했다.
‘이, 일격에 피가 30%나 날아갔다고!? 난 탱커고, 저 녀석은 사제인데?’
그는 곧장 고개를 들어 카이를 올려다봤다.
“그, 그건 대체 무슨 아이템이냐…… 얼마를 주고 사면 이런 성능을!”
“알 필요 없고.”
이번에는 카이가 먼저 움직였다.
태양의 축복을 통해 모든 스탯이 증가된 그는 일반적인 사제와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현란하게 휘둘러지는 메이스.
방패로 이를 막는 아우의 신형이 연신 뒤로 밀려났다.
‘여기서 페이크.’
눈을 빛낸 카이는 메이스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척을 하더니, 돌연 녀석의 복부를 걷어찼다.
“커억!”
순간적으로 숨이 막힌 아우의 방패가 살짝 내려왔고, 카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콰드드득!
아우의 관자놀이를 그대로 강타하는 메이스!
띠링!
[강타 스킬이 발동되었습니다.]
심지어 어둠의 두개골 분쇄기에 내장되어 있는 특수 스킬.
강타의 효과가 발동되었다.
“크아아악!”
비명을 내지른 아우의 신형은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몇 겹이나 부러트리며 빠르게 멀어졌다.
‘이거 좋은데?’
카이의 시선이 메이스로 향했다.
‘원래대로라면 고작 메이스를 휘두른다고 이런 공격력이 나올 리는 없어.’
일정 확률로 세 배의 피해를 입히는 강타 스킬의 진가였다.
아우가 반 강제적으로 전장에서 이탈되자 붉은 노을 길드원들이 저마다 무기를 뽑아 들며 소리쳤다.
“가, 강하다!”
“방심하지 말고 천천히 둘러싸서 죽여!”
“만약 녀석이 진짜 전투 사제라면 원거리 공격에 취약할 거야. 도적들도 단검 대신 표창이나 단검 투척으로 상대하도록 해! 마법사와 궁수는 계속해서 틈을 노리고!”
저들 중에서는 사제가 제일 노련한 유저였는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하고는 명령을 내렸다.
‘노련하네. 하지만 전제부터가 틀렸어.’
왜냐하면 자신은 전투 사제가 아니니까.
거리를 벌려주면 오히려 고마웠다.
“홀리 익스플로전.”
콰아앙!
카이가 조용히 중얼거리자 야산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크아악!”
“뭐, 뭐냐! 이 위력은!?”
단번에 체력의 40%가 증발한 사제가 입을 쩍 벌리며 경악했다.
그 자신도 사제였기에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저런 파괴력을 지닌 스킬은 사제에게 없다는 것을.
‘이, 이게 대체 무슨 기술이지?’
사제의 스킬 트리가 그의 머릿 속에 떠올랐지만, 이와 같은 스킬은 그 안에 없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히든 스킬!?”
사제가 내지른 비명에 카이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오해해주면 이 쪽이야 편하지.’
굳이 동의해줄 필요도 없었다.
입만 꾹 다물고 있자 사제는 의심이 아닌 확신을 했다.
“어, 어이! 지금 그게 급한게 아니야! 힐이나 달라고!”
“데미지를 입어서 은신이 풀렸어! 빨리 치료를……!”
사제의 근처에 있다가 함께 홀리 익스플로전에 휘말린 도적 두 명이 지원을 요청했다.
“아, 아차. 지금 당장…….”
카이의 스킬에 정신이 팔려 있던 사제가 황급히 힐 스킬을 시전했다.
‘그건 안 되지.’
사제가 본격적으로 회복을 시작하면 전투는 장기전으로 접어든다.
‘전투가 길어지면 내가 불리해.’
카이는 순식간에 사제에게 달려들어 메이스를 크게 휘둘렀다.
“서, 성스러운 방어막!”
와장창!
메이스 한 번에 조약한 방어막은 형편없이 깨져 버렸다.
그 뒤는 쉬웠다.
‘머리, 머리, 머리…….’
카이는 침착하게 메이스를 휘둘러 사제의 머리만 노렸다.
사제가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피하려했지만, 기본적으로 스탯이 밀리는 그가 카이의 공격을 피해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이, 이런…….”
“무, 무슨 사제의 공격력이…….”
순식간에 사제가 사망하자 도적들이 이빨을 깨물었다.
‘회복 수단이 사라졌다.’
‘물약이라도 마셔야 해.’
그들은 황급히 인벤토리에서 물약을 꺼내들었지만, 카이의 홀리 익스플로젼이 날아와 이를 방해했다.
“젠장!”
그 짜증 어린 목소리가 도적의 유언이 되었다.
‘남은 도적은 한 놈. 지금 끝낸다.’
카이는 한 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득달처럼 달려들었다.
“건방진…… 감히 사제 따위가!”
도적은 황급히 단검을 꺼내 카이와의 근접전을 준비했다.
방심을 해서 동료들이 당했다고는 하나, 자신의 직업은 도적.
‘사제와의 근접전에서 내가 밀릴 리는 없어.’
물론 크나큰 착각이었다.
텅! 텅!
“이, 이게 무슨……?”
확실히 도적의 움직임은 재빨랐다.
카이가 공격을 한 번 적중시킬 때, 도적은 무려 세 번이나 카이의 몸을 쑤셨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해를 보는 것은 도적이었다.
‘이 새끼 방어력이 왜 이래?’
마치 거대한 성벽과 싸우는 듯한 느낌이었다.
일반적으로 사제와 마법사는 방어력이 약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태양의 갑옷을 시전한 카이는 웬만한 탱커와 비견될 정도의 맷집을 자랑했다.
“크아아아악!”
결국 난타전의 승자는 카이였다.
도적과의 정면 승부에서 승리한 카이는 슬쩍 생명력을 확인했다.
‘32%…….’
낮은 생명력은 햇살의 따스함 두 번에 100%까지 차올랐다.
그야말로 좀비 같은 생명력!
한바탕 땀을 흘린 카이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주 작정을 하고 나왔구만.’
아우는 분명 자신을 척살하겠다고 선언했다.
만약 자신이 태양의 사제로 전직하지 못했다면?
필드로 나오는 족족 먹잇감이 되는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까 기분 더럽네.’
약육강식(弱肉强食).
약자는 죽고 강자가 모든 것을 취하는 자연의 법칙은 21세기 현대에서도 여전했다.
‘만약 저들이 노린 게 내가 아니라 다른 일반 플레이어였다면?’
캐릭터를 삭제하고 다시 키우거나, 비싼 돈을 들여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거나.
선택지는 그것뿐일 터. 동시에 카이의 머릿 속이 깨끗해졌다.
‘게임에서의 첫 PK라 약간 흥분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겠어.’
들떴던 마음은 냉수라도 끼얹은 것처럼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약자의 것을 강탈할 생각이 있었다면, 약자가 됐을 때의 각오도 해놨겠지.”
“이게 대체……?”
저 멀리 날아갔던 아우가 포션병을 입에 물고 나타났다.
그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산기슭에 퍼져 있는 폴리곤들을 쳐다보았다.
‘설마 당했다고? 그 짧은 시간에?’
도저히 믿을 수 없던 아우가 손을 들어올렸다.
동시에 피잉! 무언가가 허공을 갈랐다.
푹!
카이는 자신의 심장에 박힌 화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지원이 더 있었나?’
눈을 가늘게 뜨며 아우를 쳐다보자, 그의 뒷편에 있던 나무에서 두 명이 더 나왔다.
“너희도 있었구나.”
그들은 자신과 함께 파티를 했던 궁수와 마법사였다.
“아우님. 예상과는 많이 다릅니다.”
“젠장, 저 녀석 우리랑 파티할 때는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아우가 성을 내며 카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마법사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대로 한 수는 숨기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쿵.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친 마법사가 스킬을 캐스팅했다.
‘저걸 기다려줄 필요는 없지.’
카이가 마법사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순간, 다섯 발의 화살이 날아와 그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일반적인 사제였다면 뒤로 물러나며 화살을 피했을 터.
하지만 카이는 이것을 그냥 맞아주며 마법사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미친 놈!”
기겁한 아우가 방패를 올리며 마법사 앞을 막아섰다.
“두 번 당하지는 않는다! 굳센 의지!”
방패를 바닥에 고정시킨 아우의 몸에서 아우라가 흘러나왔다.
스킬이 발동되어 방어력이 크게 증가한 것이었다.
꽈아아아앙!
그의 방패를 두드린 카이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단단하다……!’
마치 강철을 두드리는 기분을 느낀 카이는 찌릿찌릿한 손목을 바라보더니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피잉! 핑! 핑!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그 자리에는 화살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이 녀석들, 하루 이틀 손발을 맞춰 본 것이 아니야.’
서로가 서로의 단점을 절묘하게 보완해주고 있었다.
그때, 길고 길었던 마법사의 주문이 완성되었다.
바닥에 그려진 여섯 개의 마법진이 환한 빛을 뿜어냈다.
“크르르.”
“컹컹!”
카이는 마법진 위로 소환된 네 마리의 소환수를 보며 중얼거렸다.
“놀이라고?”
“훗.”
마법사는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히든 클래스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저는 전직하기 까다롭다고 소문난 소환술사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제가 국내에도 몇백 명밖에 없는 소환술사 중 하나라는 소리지요.”
카이는 소환된 놀들을 자세히 살폈다.
‘그레이 놀 네 마리. 레벨은…… 겨우 41.’
동시에 카이의 입가로 진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웃음이 나오다니, 정신을 못 차렸군요.”
마법사가 손을 저으며 명령했다.
“저 사제를 죽이십시오!”
“컹컹!”
“크르르르!”
그레이 놀들이 침을 뚝뚝 흘리며 카이에게 달려들었다.
“당신이 한가락 한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압도적인 물량 앞에서는 소용 없는 법이지요.”
“압도적인 물량이라…… 재미있네.”
마법사의 중얼거림을 들은 카이의 두 눈 초승달처럼 곱게 휘었다.
동시에 입을 달싹였다.
“인벤토리 오픈. 놀 언데드 치프의 스태프 소환, 왼손에 장비.”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보라색의 스태프가 생성되었고, 카이는 왼손으로 그것을 낚아챘다.
그 모습을 지켜본 붉은 노을 길드 삼인방이 어깨를 들썩이며 비웃었다.
“멍청한 녀석. 고작 무기 하나 더 장착한다고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지적 수준이 의심되는군요.”
그들의 비웃음을 귓등으로 흘린 카이는 스태프로 바닥을 강하게 찍었다.
“돌려돌려, 돌림판!”
촤라라라라락!
동시에 눈앞에서 생성된 원판이 맹렬하게 돌아갔다.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뜬금없이 소환된 원판을 쳐다봤다.
촤라라라…… 라…… 라, 락…….
돌아가면서 서서히 감속하던 원판이 결국 정지했다.
원판의 화살표가 가리킨 숫자는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숫자 10이었다.
띠링!
[놀 스켈레톤 10마리가 소환됩니다.]
“빙고.”
카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사아아아아악!
바닥에서 열 개의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어둡고 고도가 높은 야산의 바람은 차가웠다.
삼인방이 저들의 뺨을 스치는 바람이 차갑다고 느낀 순간.
어느새 연기는 바람에 실려 날아가 있었다.
물론 연기가 있던 장소에는, 열 마리의 놀 스켈레톤들이 당당하게 자리한 상태였다.
번쩍!
그들의 두개골에서 붉은색 안광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