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힐통령 017화
8장. 유통기한을 꼭 확인합시다.
붉은 노을 길드 삼인방은 패닉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저 녀석 사제 아니었어!?”
“이, 이럴 리가 없습니다!”
사제가 죽음의 기운을 품고 있는 언데드를 소환하다니!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우는 곧장 방패를 내세우며 뒤를 돌아봤다.
“괜찮아, 쫄 필요 없어! 그래 봤자 몬스터 열 마리……!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그럼 뒤쪽에서 지원할게!”
마법사와 궁수가 재빨리 주문을 외우고 시위를 당겼다.
아우는 가슴을 쭉 펴며 고함을 내질렀다.
“크허어어어엉!”
쩌렁쩌렁한 소리가 야산을 뒤흔들었다.
동시에 카이의 눈앞에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상태 이상 ‘도발’에 걸렸습니다.]
[공격 대상으로 플레이어 ‘아우’만을 지목할 수 있습니다.]
“흠. 햇살의 따스함.”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모든 상태 이상 효과를 제거합니다.]
[상태이상 ‘도발’이 해제됩니다.]
콰아아앙!
카이가 상태 이상을 제거하는 사이에 놀 스켈레톤들은 아우와 격돌했다.
“크으윽…… 괜찮아! 이 정도면 버틸 수 있어! 굳센 의지! 방패 강화! 방패 밀치기!”
아우는 온갖 스킬을 시전하며 생각보다 잘 버티는 중이었다.
게다가 뒤쪽에서는 계속해서 마법사와 궁수의 공격이 날아드니, 결국 두 마리의 놀 스켈레톤이 순식간에 삭제되었다.
‘도와줘야겠네.’
상황을 지켜보던 카이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는 곧장 스킬을 사용했다.
“태양의 축복, 태양의 축복, 매스 블레스.”
위이이잉!
본래 언데드는 신성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주받은 존재다.
하지만 소환수로 취급되는 지금은 달랐다.
번쩍!
놀 스켈레톤들이 들고 있던 단검과 그들의 뼈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 현상을 눈앞에서 목도한 아우가 가장 먼저 당황한 소리를 내뱉었다.
“이건 대체……?”
그 순간부터 놀 스켈레톤들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공격 속도가 빨라지고, 단검에 실리는 힘은 더욱 강해졌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 이 녀석들 방어력이 왜 이렇게 높아졌어!”
“크윽, 마법 데미지도 잘 안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태양의 갑옷을 두른 놀 스켈레톤들의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은 이전보다 훨씬 높아진 것이다.
그 증거로 생명력이 줄어드는 속도는 눈에 띌 정도로 느려졌다.
“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붉은 노을 길드는 항상 포식자였고, 상대방은 항상 피식자였다.
프리카의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그 단순한 룰에 균열이 생겼다.
‘애초에 여섯 명이었을 때 확실히 처리를 했어야 했습니다.’
마법사는 패색이 짙은 전장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방심을 후회했다.
하지만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태였다.
“크아아아악!”
혼자서 놀 스켈레톤을 열심히 막던 아우가 비명과 함께 사망했다.
이어서 여덟 마리의 놀 스켈레톤들은 마치 저승사자라도 된 것처럼 마법사에게 다가왔다.
사실상 전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
“위험했어.”
1대 6의 싸움을 승리로 끝낸 카이가 중얼거렸다.
아우와 아칸, 그리고 엑스트라 궁수의 연계는 상당히 좋았다.
잠깐이지만 자신이 밀리고 있다는 생각이 확연히 들 정도였으니까.
‘혼자 다니니까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전투가 끝나자 후련함이 느껴졌지만, 동시에 걱정도 되었다.
‘붉은 노을 길드라.’
카이도 프리카 마을에서 활동을 했으니 그 이름을 모르지는 않았다.
굉장히 귀찮은 녀석들과 엮였다.
‘퀘스트가 끝나는 즉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겠어.’
태양의 사제는 확실히 밸런스를 씹어먹는 사기성 직업이 맞다.
하지만 이 직업은 선행 스탯을 충분히 쌓을 시간이 주어졌을 때 비로소 완벽해지는 직업.
즉, 대기만성형 직업이었다.
‘지금 붉은 노을 길드와 정면에서 붙는 건 무리야.’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이런 걸 시기상조라고 하지.”
지금은 힘을 기를 때였다.
물론 자신을 척살하려고 한 그들의 행위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성장하는 동안에 게임을 실컷 즐겨라.’
그 이후로는 게임을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그럼 정산이나 좀 해볼까.”
카이는 폴리곤 덩어리로 변해 있는 플레이어들 주변을 뒤적거리며 드랍 된 아이템을 주웠다.
“마법사랑 궁수는…… 꽝인가.”
미드 온라인에서는 죽임을 당할 시, 착용하고 있던 아이템 중 하나가 떨어질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것이 전문적인 PK범을 양산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수많은 유저들이 페가수스사에 항의를 했으나, 그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뭐, 애초에 게임 슬로건 자체가 자유로운 삶이니 어쩔 수 없나.”
카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른 아이템들을 감정했다.
“도적 두 사람이 각각 노말 아이템이랑 매직 아이템 하나. 그리고 사제가 노말 아이템 하나…….”
경매장에 처분을 하면 그래도 몇 십 만원은 넘게 받을 수 있다.
그러던 찰나, 카이의 눈에 번쩍번쩍 빛나는 방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 설마?”
카이는 황급히 방패를 들어 올렸다.
[강철 방패]
등급 : 레어
방어력 424
마법 방어력 411
착용 제한 : 레벨 45이상. 힘 100이상.
내구도 47/100
“레, 레어 방패!”
아우 녀석이 쓰던 방패였다.
‘대박이다!’
방패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그리 없는 물건 중 하나였다.
‘100만 원은 넘겠지? 잘하면 120까지 가려나?’
예상치 못한 수익에 웃음을 지은 카이는 방패를 냉큼 인벤토리에 넣었다.
“열 좀 받겠어.”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는 자신과 엮여 레어 아이템을 두 개나 드랍한 것이다.
“꼴좋다.”
카이가 배를 잡으며 웃었다.
***
“후우, 후우. 엄청 높네.”
그 뒤로 한 시간을 더 걸어 올라가자 봉우리의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방이 탁 트여있는 산의 정상에는 제단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이런 데 왜 제단이…….”
제단은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티가 났다.
알아보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군데군데 녹슬어 있는 기둥과 제사 도구 등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으니까.
“흐음.”
주변을 둘러보며 제단의 중앙에 다가간 카이는 거대한 종을 하나 발견했다.
‘이걸 울려야 하나?’
카이는 메이스로 종을 두드렸다.
우우우웅! 우우우우웅!
종소리는 곧장 메아리가 되어 산맥을 뒤흔들었다.
마치 산이라는 거대한 악기를 연주하는 듯한 장엄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때였다.
드드드드드득.
‘진동……!’
산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뭔가 온다!’
카이가 뒤로 몇 발자국이나 물러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땅에서 무언가가 솟구쳤다.
“캬아아아아아아악!”
비산하는 흙더미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웜 리자드였다.
그 크기는 2층짜리 건물과 비교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띠링!
[프리카 산맥의 지배자, 웜 리자드가 출현했습니다.]
“웜 리자드가 원래 저렇게 컸나?”
다짜고짜 열 살배기 꼬맹이 앞에 헤비급 복싱 챔피언이 나타난 꼴!
하지만 불평을 토해낼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웜 리자드는 이빨이 빼곡하게 박혀있는 제 입을 앞세운 채 제단을 둘러봤다.
그리고 이내 제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분노했다.
“캬아아악!”
녀석의 머리가 카이를 집어삼킬 것처럼 날아들었다.
지렁이같이 생긴 녀석의 몸에는 리자드의 비늘이 빼곡히 박혀 있어 물리 공격은 잘 통하지 않았고, 입 주변에는 빨판과 함께 날카로운 송곳니들이 셀 수도 없이 박혀 있어 한 번만 물려도 죽을 수가 있었다.
‘물리면 끝이다!’
카이는 이성보다는 본능이라고 칭할만한 무언가에 홀려 몸을 옆으로 던졌다.
그 행동이 목숨을 살렸다.
콰아앙! 와그작! 와그작!
웜 리자드는 나무와 바위를 가리지 않고 그대로 씹어 먹었다.
이를 본 카이의 안색이 굳어졌다.
‘와, 페가수스사 미친 거 아니야? 저딴 걸 어떻게 상대하라고?’
상상 이상으로 압도적인 위압감.
랭커들이 대체 녀석을 어떻게 죽였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일단 계획대로 움직이자.’
침을 꿀꺽 삼킨 카이는 곧장 스태프를 이용해 놀 스켈레톤들을 소환했다.
그가 유일하게 믿고 있는 것이 이것이었다.
‘소박하게 다섯 마리 정도만 나와줘도 할 만해.’
소환된 놀 스켈레톤에게 버프를 걸어주고 그들과 함께 웜 리자드를 사냥하는 것.
그것이 카이의 계획이었다.
촤라라락…….
맹렬하게 돌아가던 원판이 멈춰섰다.
띠링!
[놀 스켈레톤 1마리가 소환됩니다.]
“에이, 씨!”
안 될 때는 뭘 해도 안 되는 법!
카이는 신속히 놀 스켈레톤 한 마리에게 버프를 걸어줬다.
“태양의 축복! 태양의 갑옷! 빛의 방어막! 블레스!”
딱딱딱!
모든 버프를 두른 놀 스켈레톤은 제법 늠름해 보였다.
카이는 녀석의 빈약한 어깨뼈를 꽈악 움켜쥐고는 그의 텅 빈 눈가를 쳐다봤다.
그의 뜨거운 시선을 받은 놀 스켈레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부터 네 이름은 톰이다. 톰! 넌 할 수 있는 아이야, 그렇지?”
딱딱딱!
톰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이 생긴 놀 스켈레톤은 충성스럽게 턱뼈를 주억거렸다.
처음으로 갖게 된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녀석은 갈비뼈를 연신 흔들어댔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카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톰, 최대한 오래 버텨! 너만 믿는다.”
딱딱!
엄지를 척 하고 올린 톰이 위풍당당하게 돌진했다.
“캬아아아아악!”
웜 리자드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톰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딱딱딱!
“캬아악!”
톰은 웜 리자드에게 겁먹지 않고 용감하게 단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웜 리자드가 입을 쩍 벌렸다.
와그작!
[놀 스켈레톤이 1,24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놀 스켈레톤이 1,221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
[놀 스켈레톤이 소환 해제되었습니다.]
“토오오오오오오옴!”
카이는 절규 어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톰과 만난 지 무려 7초.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와의 전우애는 남달랐다.
‘풀 버프를 둘렀는데 10초도 못 버틴다고?’
카이는 등 뒤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침을 한 번 크게 삼켰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웜 리자드의 움직임이 뚝 하고 멈췄다.
녀석은 마치 발작이라도 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뀨우웅…….”
“응?”
상황을 파악하지 못 한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예상치 못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띠링!
[웜 리자드가 오래된 뼈를 먹었습니다.]
[웜 리자드가 식중독에 걸렸습니다.]
[웜 리자드의 식욕이 저하됩니다.]
[웜 리자드의 모든 능력치가 30% 저하됩니다.]
“어?”
할 말을 잃어버린 카이는 멍하니 메시지를 반복해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