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힐통령 018화
9장. 스페셜 칭호
카이는 눈앞에 떠오른 황당한 메시지들을 쳐다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거, 게임 한 번 이상한데서 현실적이네!”
“뀨웅…….”
시름시름 앓으며 고개를 붕붕 젓는 웜 리자드.
‘상황이 웃기긴하지만, 기회다.’
카이는 망설이지 않고 손가락을 녀석에게 겨누었다.
“홀리 익스플로젼!”
콰아아앙!
“끼에에엥!”
머리를 얻어맞은 웜 리자드가 고통에 몸을 이리저리 돌렸다.
녀석의 거체가 꿈틀거릴 때마다 제단이 무너지고 산이 뒤흔들렸다.
‘데미지는 생각보다 잘 박히는데?’
공격 한 번에 녀석의 생명력은 10%가량 깎여 있었다.
‘덩치가 너무 커서 몇 시간은 전투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덩치가 산만 해도 어차피 데이터 덩어리라는 소리인가.’
빌딩만 한 크기의 슬라임이 있다고 해도, 레벨이 1이라면 10레벨의 초보자에게 사냥당할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그래. 애초에 게임이라는게 이런 세계였지.’
레벨과 아이템, 스킬 숙련도와 약간의 컨트롤.
그것만으로 체급 같은 건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버릴 수 있는 비합리적인 세계.
‘그렇게 생각하면 겁을 먹을 필요가 없어.’
물론 덩치가 크면 공격 범위가 넓으니 위협적이기는 했다.
하지만 처음 느꼈던 위압감이나 시각적 두려움은 크게 해소되었다.
“스탯 자체는 나와 비슷할 거야.”
심지어 웜 리자드는 손이나 발이 없는 지렁이.
거기에 더해 지금은 식중독 환자이기도 하다.
‘별 거 없잖아?’
자신감을 되찾은 카이는 메이스를 꼬나쥔 채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콰득!
그리곤 마치 암벽을 등반하듯, 웜 리자드의 비늘을 붙잡고 쭉쭉 올라가기 시작했다.
‘비늘이 박혀 있어서 올라가기 편해.’
마치 처음부터 이런 용도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편안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기도 했다.
우연히 얻어걸린 것이었지만, 현재 카이는 웜 리자드를 굉장히 효율적인 방법으로 공략하는 중이었다.
“뀨에에에엥!”
카이가 자신의 몸을 타고 올라오자 웜 리자드가 몸을 거칠게 흔들었다.
그때마다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이 들었지만, 카이는 비늘을 악착같이 붙잡으며 버텼다.
결국 카이는 웜 리자드의 머리 부분까지 올라갔다.
“허억, 허억.”
녀석의 머리 위로 올라서자 한 쌍의 더듬이가 보였다.
‘딱 봐도 저곳이 약점이네.’
단단한 비늘로 덮여진 몸체와는 달리, 길쭉한 더듬이는 방어에 취약해보였다.
카이는 망설이지 않고 더듬이를 공격했다.
[급소를 공격하여 1,15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급소를 공격하여 1,217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강타 발동! 3,519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하는 웜 리자드의 생명력!
카이는 물 만난 고기처럼 메이스를 휘둘러댔다.
“끼에에엥!”
웜 리자드는 카이를 떨어뜨리려고 무던히 몸을 뒤흔들었지만, 카이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놓는 순간 끝난다.’
다시 올라올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니 올라온 김에 끝낸다.’
카이의 악바리 같은 근성에 질린 웜 리자드가 선택한 것은 도주였다.
싸우다가 불리하다 싶으면 도망을 치는 것.
그것은 미드 온라인의 몬스터가 지닌 졸렬한 특징 중 하나였다.
“크윽……!”
웜 리자드는 자신이 올라온 구멍으로 다시 들어갔다.
‘떨어지면 끝난다!’
저도 모르게 붙잡을 것을 찾던 카이는 녀석의 더듬이를 꽈악 움켜쥐었다.
“끼에에엥!?”
자신의 급소를 붙잡힌 웜 리자드는 깜짝 놀라 더욱 빠른 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득!
“크으으윽!”
내려가는 길은 순조롭지 않았다.
벽면에 돌출되어 있는 돌멩이, 암석들과 충돌할 때마다 피가 줄었다.
띠링!
[돌부리에 걸려 5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암석에 부딪혀 12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뾰족한 돌멩이에 찔려 17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파상풍에 걸렸습니다. 초당 100의 피해를 입습니다.]
“…….”
카이가 파상풍에 걸려 죽은 최초의 플레이어가 되기 직전, 길었던 구멍이 끝났다.
쿠우우웅!
“크윽!”
웜 리자드가 떨어진 곳에는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쿨럭, 쿨럭!”
카이는 곧장 생명력을 확인했다.
웜 리자드를 쿠션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생명력은 고작 2%.
“햇살의 따스함! 햇살의 따스함!”
황급히 치료를 마친 카이는 웜 리자드를 경계했다.
“죽었나?”
카이는 메이스로 녀석의 비늘을 쿡쿡 찔러보았지만 그 어떤 미동도 없었다.
“후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카이는 경험치 바를 쳐다봤다.
‘……잠깐, 그대로잖아.’
순간 소름이 끼치며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웜 리자드가 죽었다면 경험치가 들어왔을 터.
‘이 녀석, 안 죽었다……!’
카이는 황급히 몸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홀리 익스플로전을 캐스팅했다.
“캬아아아아악!”
몸을 돌린 카이의 시야를 가득 채운 거대하게 벌려진 입과, 그 안을 빼곡하게 매운 이빨이었다.
웜 리자드가 카이를 한 입에 집어삼키기 직전, 캐스팅이 끝났다.
“홀리 익스플로전!”
동시에 빛줄기가 녀석의 내부를 그대로 관통했다.
드드드드!
잠시 몸을 떨던 녀석의 머리가 옆으로 기울더니, 곧 엄청난 흙먼지를 피우며 쓰러졌다.
“허억, 허억.”
카이는 방심하지 않고 녀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죽은 것이 맞는지, 알림창이 떠올랐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탯 포인트를 5개 획득했습니다.]
[산맥의 지배자인 ‘웜 리자드’를 단독으로 처치했습니다. 명성이 150 증가합니다.]
[스페셜 칭호, ‘웜 리자드 슬레이어’를 획득했습니다.]
“후우…….”
그제야 긴장이 풀린 카이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비록 톰의 크나큰 희생이 있기는 했지만, 레벨 65짜리 웜 리자드를 혼자서 해치웠다.
그 사실이 카이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웜 리자드 슬레이어라니, 처음 들어보는 칭호인데…….”
곧장 칭호 도감을 확인한 카이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웜 리자드 슬레이어]
등급 : 스페셜
내용 : 웜 리자드를 단신으로 처치한 55레벨 이하의 유저에게 주는 칭호.
효과 : 체력 +10(이 효과는 칭호를 착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스페셜 칭호라고?!”
카이가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는 칭호에 대한 설명을 읽고 또 읽었다.
‘스페셜 칭호는 랭커의 전유물이라고 불리는 칭호잖아. 이걸 내가 얻게 되다니?’
미드 온라인의 누적 가입자 수는 5억을 웃돈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은 점점 레벨을 올리고, 비슷한 아이템을 갖추며, 별 차이 없는 스킬을 익힌다.
여기서 개발사인 페가수스사는 고뇌했다.
‘결국 모두가 똑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면, 대체 게임에 무슨 재미가 있는가?’
그들은 미드 온라인이 항상 최고의 자리에 군림하기를 원했고, 결국 한 가지 독특한 시스템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스페셜 칭호 시스템.
말 그대로 특별한 업적을 달성한 이에게 제공되는, 특별한 칭호인 것이다.
이 스페셜 칭호의 종류는 무수히 많지만, 중복 획득은 불가능했다.
한 마디로 ‘웜 리자드 슬레이어’ 칭호는, 전 세계에서 카이만이 소유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카이의 눈이 밝게 빛났다.
그의 말처럼, 스페셜 칭호는 랭커만을 위한 시스템이라 불리었다.
최초, 그리고 최고.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얻을 수 있는 최상급 칭호였으니까.
‘쓸 만한 업적은 모두 랭커들이 쓸어갔다고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
랭커들은 항상 서로를 견제하고, 경쟁한다.
하루, 아니 몇 시간이라도 사냥을 못 하면 랭킹에서 주르륵 밀려나는 것이 바로 랭킹.
결국 랭커라는 존재들은 평생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자들이다.
‘그런 이들이라면 도박을 절대 안 하겠지.’
웜 리자드를 혼자 잡으면 스페셜 칭호를 준다는 걸 과연 그들이 확신했을까?
‘아니, 못해.’
그들은 확신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자칫하다가 죽기라도 하면 그 손해가 막심하니까.
랭커란 시간이 돈이고, 금보다 비싼 자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아직 기회는 있어.”
랭커들이 미처 회수하지 못하고 지나친 스페셜 칭호들.
그리고 아직 후발주자들의 능력으로는 획득하지 못하는 스페셜 칭호들. 자신은 그것들을 독점해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랭커들의 턱밑까지 바짝 추격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웜 리자드 슬레이어라…….”
랭커들이 스페셜 눈에 불을 켜고 스페셜 칭호를 얻으려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보통의 칭호는 한 번에 하나만 장착이 가능하다.
당연히 장착하지 못한 칭호의 효과는 받지 못하는 것이 기본 상식!
하지만 스페셜 칭호는 달랐다.
무려 장착을 하지 않아도 효과를 고스란히 캐릭터에 적용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체력이라서 아쉽긴 하지만, 10개나 올려주니 한 번 봐준다.”
카이는 곧장 스탯창을 확인했다.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55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14,300
신성력 : 21,500
능력치
힘 : 65 체력 : 143
지능 : 60 민첩 : 60
신성 : 215 선행 : 33
남은 스탯 : 45
캐스팅 시간 -30%
스킬 쿨타임 –9%
받는 피해 -3%
스페셜 칭호로 인해 체력 스탯이 10개나 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이걸 보고 사제의 스탯창이라고 생각하겠어?’
웬만한 30레벨 전사는 주먹으로 후드려 팰 수 있는 수준!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지.”
아직 웜 리자드가 남긴 전리품이 남아 있었다.
카이는 웜 리자드에게 다가가 무너진 폴리곤 덩어리를 가볍게 터치했다.
[웜 리자드의 비늘 50개를 획득했습니다.]
[웜 리자드의 가죽 45개를 획득했습니다.]
[웜 리자드의 이빨 75개를 획득했습니다.]
[웜 리자드의 응고된 혈액 87개를 획득했습니다.]
“몬스터는 곧 돈이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네.”
이 재료들을 가지고 새로운 장비와 포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장비들은 돈이 되어 자신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어 줄 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카이는 전리품을 회수한 뒤 고개를 돌렸다.
“자, 그럼…….”
슈우욱!
그의 손바닥 위에서 사제의 기본 스킬인 신성한 빛이 떠오르더니 어둡던 내부를 밝혔다.
웜 리자드의 둥지는 반원 형태의 커다란 돔 형식으로 이루어진 동굴이었다.
그곳에는 길이 하나 나 있었다.
‘과연 같은 장소일까.’
헬릭의 시험을 치뤘던 장소.
만약 그곳이 이곳과 같은 장소라면, 자신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