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0화 (20/441)

# 20

힐통령 020화

10장. 프리카의 영웅(2)

많은 게임회사가 둥지를 틀고 있는 미국의 캘리포니아.

세계 굴지의 회사가 되어버린 페가수스사도 그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서부의 자유분방함과 세련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고층 빌딩의 회의실.

그곳의 분위기는 여느 때와 다르게 제법 묵직했다.

“알아보셨습니까?”

테이블의 상석에 앉아 있던 금발의 중년 백인이 질문을 던지자, 젊은 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를 올렸다.

“네. 플레이어는 한정우. 태양의 사제로 전직 당시의 레벨은 46이었습니다. 지금은 55레벨에 70% 경험치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간의 활동 기록은 스크린에 정리를 해두었습니다.”

삑.

여자가 리모콘을 누르자 스크린에는 보기 좋게 정리된 자료가 떠올랐다.

모두 카이가 게임 속에서 보인 선행과 퀘스트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흠…….”

페가수스사의 사장임과 동시에 세계 최고의 대부호로 손꼽히는 마르코 프레드릭은 스크린을 한참이나 지켜보더니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박사는 어떻게 생각하지?”

“…….”

마르코에게 질문을 받은 남자는 수염과 머리가 하얗게 새어 있는 노인이었다.

한참이나 스크린을 응시하던 노인의 입에서 독설이 흘러나왔다.

“직업이 아깝군요.”

“흠? 생각보다 평가가 박하군. 이유는?”

“요즘 시대 젊은이치고는 꽤나 선량하군요. 그러니 저 직업을 얻을 수도 있었겠지요.”

노인은 신경질적으로 안경을 벗으며 스크린을 노려봤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직업을 획득한 이후의 행보가 한심하군요.”

“하하하. 박사의 마음에 차는 유저는 몇 없지 않은가. 진정하게. 그래서 박사가 생각할 때 그의 성장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 보지?”

“성장 가능성?”

박사가 코웃음을 쳤다.

“글쎄요. 저 멍청이가 끝내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한다면, 헬릭의 심판이 떨어지겠지요. 태양의 사제는 끊임없이 선행을 베풀어야 하는 직업이니까.”

“그렇군.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예. 더군다나 정상적인 경로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서 직업의 위력도 본래의 반절 정도밖에 안 될 겁니다.”

그 말에 마르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화 등급 직업이 예상보다 한참이나 빠르게 해제되어 머리가 아프던 참이었다.

‘하지만 짐 박사가 저렇게까지 확신을 하니 신경을 꺼도 되겠군.’

눈앞의 노인은 짐 루이스.

미드 온라인의 총괄 디렉터이자 스스로 게임을 운영하고 있는 슈퍼A.I 라무스의 개발을 독자적으로 해낸 21세기의 천재 과학자였으니 믿음이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럼 이제 두 번째 보고를 듣도록 하지.”

카이의 활동 기록으로 채워져 있던 스크린이 바뀌었다.

이어서 나타난 것은 기사의 전유물이라 불리는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흑색으로 채워져 있기에 흑기사라는 단어가 누구보다 잘 어울렸다.

“이어지는 보고는 플레이어 유하린에 대한 보고입니다.”

여직원의 보고가 10분가량 이어졌고, 마르코와 짐 박사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마르코가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짐 박사, 저 여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지?”

“천재.”

짐 박사는 단호한 목소리로 확신했다.

“저는 물론이고, 라무스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의 천재입니다.”

“미스터 한과는 평과가 정반대로군. 물론 랭킹 1위이니 그 정도 재능은 있겠지만…….”

“아니요. 단순히 랭킹 1위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웬만한 운동선수를 뛰어넘는 운동신경, 현대인이 쉽게 가지기 힘든 전투 센스와 명석한 두뇌까지. 이 게임을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닌지 의심이 될 지경입니다.”

앞서 한정우에게 내린 독설에 비하면 엄청난 찬사였다.

게다가 칭찬을 쉽게 하지 않는 짐 박사의 입에서 나온 소리니, 신빙성이 더욱 높았다.

“그녀는 싸움에서 무조건 이기는 법을 압니다.”

“그게 뭔가?”

마르코의 질문에 짐 박사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한 대도 맞지 않고, 자신의 공격은 모두 성공시키는 것이지요.”

“불가능한 일 아닌가?”

“그렇죠. 불가능한 일이었죠.”

박사의 시선이 스크린의 유하린을 향했다.

“설마…… 그녀는 가능하다는 말은 아니겠지?”

“미드 온라인이 출시된지 이제 네 달입니다. 유하린은 남들보다 한 달 늦게 시작했지만 랭킹 1위를 차지했지요. 한 달이라는 격차, 그렇게 쉽게 줄일 수 있는거 아닙니다.”

“끄응. 컨텐츠 소모 속도가 문제로군.”

한숨을 푹 내쉰 마르코는 골치 아픈 표정으로 미간을 꾹꾹 눌렀다.

“왜 저런 유저들이 유독 한국에서만 나오는 거지?”

그의 질문에 젊은 미녀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꾸했다.

“그야 한국에는 한국인들이 사니까요.”

“…….”

“…….”

마르코와 짐 박사는 그 말에 반박을 하지 못했다.

흔히 게임 강국, 폐인들의 나라라고까지 불리는 한국은 어느 게임에서건 1위를 놓쳐본 적이 없었으니까.

***

[프리카 마을의 영웅]

등급 : 스페셜

내용 : 프리카 마을에 닥친 위기를 해결한 이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모든 스탯 +3(이 효과는 칭호를 착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카이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스페셜 칭호를 연속으로 획득!

이건 커뮤니티에 대놓고 올려도 합성으로 치부될 정도의 사건이었다.

‘뭐, 어차피 말하지 않을거니 상관 없지만.’

칭호 북을 닫은 카이는 미니맵을 열었다.

“글렌데일이라. 제법 머네.”

물론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거나 마을 이동 주문서를 통해 쉽게 이동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카이와는 그리 큰 인연이 없었다.

‘너무 비싸.’

그는 한 번에 현금이 수십만 원씩 깨지는 텔레포트를 사용할 정도로 씀씀이가 헤프지 않았다.

카이는 미니맵을 확인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길을 걸으며 풍경을 즐기고, 몬스터가 나타나면 녀석들과 싸웠다.

모닥불을 피우며 쉬기도 하고.

심심할 때는 뮤직 박스를 이용해 음악을 들으며 여행을 즐겼다.

***

“아아, 보이세요? 보이나요?”

분홍색 머리를 묶은 귀여운 소녀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이내 잔뜩 호들갑을 떨며 인사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도 특종의 냄새를 맡고 다니는 아리스예요!”

온갖 깜찍한 표정을 차례대로 지어 보인 그녀는 흔히 말하는 인터넷 방송인이었다.

실시간으로 시청자와 소통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게 인터넷 방송의 묘미였다.

그녀는 귀여운 외모와 나름 깔끔한 진행으로 스트리머 중에서는 평판이 좋았다.

-언니, 오늘도 예뻐요!

-ㅎㅇ.

-근데 거기 어디임?

-귀여운 척 오짐ㅋㅋ.

ㄴ근데 귀여운 게 함정.

-저기 프리카 마을 아님? 얼마 전에 가봐서 아는데 맞는 것 같음.

시청자들과 인사를 나누던 그녀가 눈을 반짝였다.

“어라?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계시네요! 맞습니다. 이곳은 바로 라시온 왕국의 프리카 마을! 오늘은 아리스가 흥미로운 소문을 듣고 직접 취재하러 왔습니다. 쨔잔!”

어디서 만들었는지 모를 마이크가 그녀의 인벤토리에서 튀어나왔다.

시청자들이 한바탕 웃음을 쏟아냈다.

-ㅋㅋㅋ 그런 건 또 언제 만들었음?

-마이크는 대장간 같은 데서 만들어주나?

-저, 콜트에게 의뢰해 주십쇼. 제작 기술은 중급 3레벨입니다. 싸게 모십니다.

-흥미로운 소문이 뭔데.

원하던 반응이 나오자 아리스가 마이크를 흔들었다.

“흥미로운 소문이 뭐냐면…… 바로 프리카 마을에 새로운 영웅이 나타났다는 소문이예요!”

시청자들의 반응이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채팅이 순식간에 주르륵 올라갔기에 능숙한 방송인인 그녀조차 진땀을 흘려야 할 정도였다.

“과연 어떤 유저가 프리카의 영웅이 되었는지! 저 아리스가 NPC들을 한 번 취재해볼게요.”

그녀는 프리카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NPC들에게 마을의 영웅에 대해 캐묻고 다녔다.

“음? 아아, 카이를 말하는 건가? 그는 뭐랄까, 인성이 참 훌륭한 사람이었지.”

“그렇고말고! 훌륭하기까지 한 게 아니라, 강하기까지 했지.”

“무려 마을의 골칫거리였던 웜 리자드를 혼자서 잡았으니까! 아마 이 부근에서 그보다 강한 모험가를 찾는 건 쉽지 않을걸?”

아리스가 발을 동동 구르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우오오! 여러분 들으셨어요? 인성이 훌륭한데 강하기까지 하다는군요! 웜 리자드를 혼자서 잡을 정도라니, 잘생기기만 하면 완벽하네요! 대체 그는 직업이 뭘까요?”

그녀는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했는지, 인벤토리에서 통계표를 꺼냈다.

“자! 여길 보시면 여태까지 마을의 영웅 칭호를 획득한 직업군의 비율이 정리가 되어 있어요. 보시다시피 전사와 기사, 마법사가 압도적인 비율을 자랑하고 있고, 궁수나 도적 같은 경우는 손에 꼽힐 정도지요? 프리카의 영웅이라는 카이 님의 직업은 대체 무엇인지! 제가 직접 마을의 클래스 타워를 직접! 돌아다녀 보겠습니다!”

취재를 하다 보니 스스로도 흥이 오른 걸까, 그녀는 잔뜩 신나서 마을의 클래스 타워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마탑이나 전사 길드, 도적들의 클래스 타워를 모두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카이에 대한 정보를 모을 수는 없었다.

“어라? 분명히 대부분 다 확인한 것 맞죠? 궁수랑 전사, 마법사랑 기사…… 도적, 음유시인이랑 생산 직업 길드까지 전부 돌았는데…….”

아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시청자 한 명이 후원금을 날리며 외쳤다.

[우주영웅 님께서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우주영웅 : 아직 신전은 안 들러봤잖아. 맞지? 내 말 맞지?]

“5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그런데 신전이요?”

아리스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반문하자, 시청자들의 비웃음이 작렬했다.

-신전이면 사제? 상식적으로 사제가 마을의 영웅이 될 수 있겠냐ㅋㅋ

ㄴ성기사일 수도 있잖아.

ㄴ응, 둘 다 못해~

-NPC들 반응보면 카이라는 유저는 인성도 좋고 무력도 강하다고 했는데, 사제는 무리수임.

-전투 사제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윗 분 말대로 성기사일 수도.

ㄴ사제는 절대 아니고, 방어력 특화인 성기사일 확률도 낮을듯.

-파티에 전투 사제 받을 바에야 마법사 받는 게 100배는 이득이지

-내가 사제랑 전투 사제 둘 다 키우다가 접어봐서 잘 아는데, 사제는 네임드 길드에서 밀어주는 거 아니면 육성 힘들다.

-눈 감아 봐. 어둡지? 그게 사제 미래야.

결국 채팅창을 읽던 아리스는 물론, 시청자들도 모두 의구심을 품었다.

“그럼 속는 셈 치고 신전에라도 한 번 가볼…… 아앗! 지금 또 새로운 속보가 들어왔어요! 요즘 가장 핫한 사냥터인 거미 숲에서 연이은 실종 사고가…….”

그날 방송을 본 시청자 중 일부가 프리카의 영웅에 대해 커뮤니티에서 떠들어댔으나, 유명한 랭커들의 소식과 각종 공략 팁에 묻혀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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