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힐통령 024화
12장 울지 않는 화덕(2)
[강인한 의지의 롱소드]
등급 : 유니크
공격력 154~173
힘 + 15
민첩 + 10
*강인한 의지 효과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이 무기는 파괴되지 않습니다.
무기로써의 성능을 극한까지 올려놓은 검입니다. 하지만 이 검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괴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착용 제한 : 레벨 80 이상. 힘 500 이상.
내구도 ∞
“……!”
카이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검을 떨어뜨릴 뻔했다.
‘유, 유니크 등급!’
이처럼 대단한 무기를 본 적은 처음이었다.
경매장에서조차 볼 수 없는 대단한 장비가 자신의 손에 들려있다는 사실에 손이 벌벌 떨렸다.
“대단하지 않은가?”
“이, 이건…….”
대결 상대의 검에는 솔리드의 검과 같은 세련미가 없었다.
고급스러운 기품 또한 깃들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검의 성능이 더 뛰어나냐고 묻는다면, 손에 들고 있는 이 검이라고 생각했다.
‘검 본연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어.’
카이는 장비 제작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모르지만, 이 검이 얼마나 대단하냐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솔리드의 기분, 이해가 돼.’
적이라고 생각조차 안 했던 이가 이런 검을 눈앞에서 뚝딱 하고 만들어버린다면, 평생 망치를 휘두른 노인의 자존심은 산산조각이 나서 부서져 버릴 것이 분명했다.
솔리드는 다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결이 끝나고 그 건방진 꼬맹이가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하더군, 무리한 요구에 응해줘서 고맙다고. 그 검은…… 사죄의 의미이니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이, 이 검을 그냥 줬다고요?”
카이는 입을 쩌억 벌렸다.
유니크 등급의 검이니 경매장에 판매한다면 최소 수천 골드는 받을 것이 분명했다.
플레이어이니 이 검의 가치를 모르지도 않을 터.
그런 검을 아무런 미련 없이 상대방에게 선물한다니.
카이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처음에는 스스로 변명을 했네. 녀석이 차고 다니던 그 아름답던 검. 그것을 모방하다가 나도 모르게 검을 지나치게 세련되게 꾸며서 졌다고 말이야.”
“아…… 확실히 솔리드 님의 검은 엄청 화려하네요.”
카이는 손잡이부터 시작해 검신까지 화려하기 짝이 없는 검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솔리드는 더욱 자조적인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
“……예?”
“자기 합리화를 하고자 지금까지 만들었던 검들을 모두 꺼내봤네. 그리고는 깨달았지. 저것이 내가 항상 만들어왔던 검이라는 것을.”
솔리드는 깊은 회한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게 검을 주문하는 이들은 대부분 기사들, 그게 아니면 귀족가의 자제들일세. 모두가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작자들이지.”
“그 말씀은……?”
“그들의 요구에 맞춰 수십 년간 검을 만들었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화려한 검들을 만드는 법이 손에 베어버린 모양이야.”
“…….”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여태까지 무엇을 했나 싶어 더 이상 망치를 잡을 수가 없었네.”
큼지막한 두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문지른 솔리드는 그렇게 말을 끝냈다.
카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한 가지 일에 평생을 바쳤는데, 뒤늦게 그것이 잘못된 길임을 깨닫는다면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충격이 크겠지.’
그것은 솔리드 또한 마찬가지일 터다.
장인으로서의 자존심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찰.
그 두 가지가 지금의 솔리드를 꾸준히 괴롭히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정말 그의 인생이 뿌리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두 검을 비교해서 하나가 뛰어나다고 해서, 다른 이가 틀린 걸까?
카이는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난 솔리드의 검이 더 좋아.’
그것은 단순히 그가 불쌍해서 던져주는 동정표가 아니었다.
카이는 상대방의 검이 더 뛰어나다고는 생각했지만, 두 가지 중 하나만 사용하라고 하면 솔리드의 검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말했다.
“하지만 전 영감님의 검이 더 좋은데요.”
“흥, 아까 말하지 않았나? 입에 발린 소리는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고.”
카이는 솔직한 심정을 말했을 뿐이지만, 솔리드는 그가 자신을 동정한다고 생각했는지 화를 냈다.
이에 카이는 웃음기를 싹 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아뇨. 진심입니다.”
“…정말인가?”
카이의 진지한 눈빛과 표정을 읽어낸 솔리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유를 말해봐라. 적당한 이유를 그럴싸하게 붙인 거라면 각오해야 할 거다.”
깐깐하기는.
카이는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두 개의 검 중 어떤 무구가 더 강하냐고 물어보신다면, 죄송하지만 대결 상대의 검이 더 강할 겁니다.”
“…….”
솔리드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으나, 부정은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아마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 검이 더 좋다니, 혹시 화려한 검을 좋아하나?”
“아뇨. 영감님의 검은… 좀 더 사용자의 편의를 생각했다고 할까요.”
“사용자의 편의?”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훌륭하고 강력한 검이라고 해도, 사용할 수가 없다면 무용지물 아니겠습니까.”
상대방의 검은 분명 강력하고 뛰어난 능력도 붙어 있었지만, 착용 제한 레벨에 비해 필요한 힘 스탯이 너무 높았다.
‘체력과 민첩에 스탯을 분배하는 걸 포기하고, 모조리 힘에 투자해도 80레벨에 500스탯은 찍을 수 없어.’
한 마디로 저 검은, 빛 좋은 개살구라는 뜻이다.
겉은 그럴듯하나 실속이 없었다.
착용 제한 레벨은 80밖에 되지 않지만, 저 검을 사용하려면 못해도 100레벨은 넘겨야 할 테니까.
“이 검은 언뜻 보기에는 검 본연의 성질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검의 정석처럼 보이지만, 검을 사용할 사람에 대한 배려는 전혀 보이지 않아요.”
카이는 검을 내려놓고, 솔리드의 검을 집었다.
“반면 영감님은 말씀하신 것처럼 수십 년 동안 타인을 위해 검을 만들었지요. 사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대개 비슷비슷합니다.”
티잉!
카이의 손가락이 검신을 튕겼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으면서 강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검. 이 검은 그 밸런스가 잘 잡혀있죠. 보물을 수집하는 부자라면 저쪽 검을 더 선호하겠지만,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라면 과연 어떤 검을 더 원하실 거라 생각하십니까?”
“……!”
이에 솔리드는 무언가를 크게 깨달은 표정을 짓더니 눈을 감았다.
골몰히 무언가를 생각하던 솔리드는, 한참 후에야 닫혀있던 눈과 입을 열었다.
“…우선 사과를 해야겠군.”
“예?”
“자네의 진심을, 어줍지도 않은 동정이라고 생각한 점. 진심으로 사과하네.”
“아니, 뭐 그렇게까지야…….”
더 이상 술주정뱅이의 카랑카랑하고 노한 목소리는 없었다.
한 가지 일의 달인에게 걸맞은 묵직하고도 단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감사를 표하네.”
솔리드의 눈이 정오의 바다처럼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네의 말이 맞아. 실의에 빠진 나는 대장장이의 일이 무엇인지조차 망각하고 있었네.”
솔리드는 자신이 만든 검을 들어 올렸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최고의 장비를 만들어 자기만족을 하는 것이 아니야.”
그의 투박한 손이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을 부드럽게 쓸었다.
수십 년 동안 망치를 잡았던 손이기에 군살이 박히지 않은 곳은 없었다.
“……내 장비를 사용할 사람이 아무런 불만 없이, 오래도록 잘 사용할 수 있는 무구를 만드는 것. 그것이 대장장이로서 내가 걸어 가야 할 길이네.”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형형하게 빛나는 솔리드의 눈빛!
그의 눈을 마주한 카이의 눈앞으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띠링!
[당신의 충고로 인해 솔리드의 대장장이 스킬이 한 단계 더 발전했습니다.]
[대장장이 솔리드가 상급 대장장이가 되었습니다.]
[자괴감에 빠져있는 NPC에게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선행 스탯이 +3만큼 증가합니다.]
[솔리드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그는 당신을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 무슨…….”
언뜻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을 정도의 메시지들!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근차근 읽어본 카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선행은 단순한 친절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구나!’
선행이라는 개념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NPC를 물리적으로 도와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지금처럼 마음의 병을 치료해 주거나 상담을 해주는 것으로도 선행 스탯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덥석!
솔리드가 솥뚜껑처럼 커다란 두 손으로 돌연 카이의 연약한 손을 붙잡았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큰 벽을 하나 넘은 기분이야. 정말 고마워!”
“아하하…….”
카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웃음을 흘리자, 솔리드의 진지했던 얼굴에 진한 미소가 깃들었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카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으하하하하! 우울한 기분이 사라지니 손이 근질거리는군! 그러고 보니 자네, 일을 맡기려고 온 것 아니었나? 나에게 맡기게!”
솔리드는 당장에라도 망치를 휘두르고 싶다는 듯, 자신의 어깨와 목을 돌리며 소리쳤다.
자괴감과 술독에 빠져 날카롭고 예민해져 있던 성격이, 평소처럼 긍정적이고 호탕하게 변했다.
카이가 눈을 빛내며 인벤토리의 재료들을 차곡차곡 꺼냈다.
“사실 장비 제작을 의뢰하려고 왔거든요. 재료는 이것들이고요.”
“오오오! 웜 리자드의 비늘과 이빨이로군! 자네, 생각보다 강력한 모험가였나? 생긴 건 영 비실해 보이는데 말이지. 으하하하!”
껄껄 웃은 솔리드는 맡겨만 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원하는 무구가 따로 있나?”
“음…… 사실 제가 새로운 무기술을 하나 배우고 싶은데,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무기술이라? 흠. 잠깐 좀 보지.”
솔리드는 카이의 팔이나 다리, 몸의 비율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는 검을 추천하네.”
“검이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자네는 팔과 다리가 늘씬하고 길이 또한 길어. 검사에게 가장 중요한 사정거리가 늘어난다는 뜻이지.”
“그럼 창을 들면 더 좋은 거 아녜요?”
“물론 창을 원한다면 만들어 줄 수는 있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가장 중요한 건…?”
카이가 몹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목을 앞으로 쭉 빼며 물었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솔리드가 다시 한 번 껄껄 웃었다.
“내가 창보다는 검을 더 잘 만들거든. 으하하하!”
“……그, 그렇군요.”
설득력 무엇.
단번에 이해가 된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검을 의뢰해야 가장 좋은 품질의 무기를 얻을 수 있겠네.’
어차피 창술을 배우든 검술을 배우든, 솔플을 할 때 약간의 도움이 될 정도면 된다.
지금 당장 어떤 스킬을 배우던 큰 위력은 발휘하지 못할 터.
그렇다면 더 성능이 좋은 무기를 써야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럼 검 쪽으로 만들어 주세요. 비늘은 대충 갑옷으로 만들어 주시고요.”
“탁월한 선택이네. 내가 필생의 역작을 한 번 만들어보도록 하지. 일주일만 시간을 주게.”
“예, 그럼 가보겠습니다.”
재료를 받아든 솔리드는 빠르게 작업 준비를 마쳤다.
곧이어 죽어 있던 화덕이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불꽃을 뿜어댔다.
동시에 고요하던 일대에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땅! 땅! 땅!
대장간을 나와 생기가 가득해진 건물을 바라보는 카이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