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힐통령 025화
13장 여명의 검술관(1)
“사흘 정도 후에 오시면 포션이 모두 완성되어 있을 겁니다.”
“예, 그럼 그때 오겠습니다.”
재봉사에게 웜 리자드의 가죽을 맡기고, 마탑에 들러 포션의 제작까지 의뢰한 카이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그럼 이제 적당한 검술관을 찾으면 되겠지.”
조만간 솔리드가 만들어줄 검을 위해서라도 검술의 필요성이 절실한 참이었다.
사제인 그가 전사의 탑에서 스킬을 배울 수는 없는 법이니, 그가 할 수 있는 건 검술관을 알아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카이는 곧장 글렌데일에서 운영 중인 검술관 목록을 조사했다.
“헤르센 검술관, 알포드 검술관, 그리고…… 여명의 검술관?”
검술관이란 말 그대로 돈을 내고 검을 배우는 곳을 의미했다.
보통은 10레벨 이전에 검을 배우러 많이 다니는 곳이었는데, 사제인 카이와는 여태 인연이 없던 곳이었다.
‘후, 50레벨도 넘은 내가 검술관에서 검을 배우게 될 줄이야.’
하지만 앞으로를 위한 투자다.
게다가 공격 스킬이 홀리 익스플로전 밖에 없어서 불안하기도 하고.
붉은 노을 길드와의 PVP 때만 해도 놀 언데드가 10마리나 소환되지 않았다면 제법 위험했을 것이다.
그런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본신의 무력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일단 입관비를 비교해 보고 어디서 배울지 정하자.’
아무 생각 없이 주변 검술관의 가격을 찾아보던 카이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헤르센 검술관 - 입관비 15골드.]
[알포드 검술관 - 입관비 12골드.]
[여명의 검술관 - 입관비 5골드 이하. 자세한 가격은 상담 후 결정.]
“뭐, 뭐가 이렇게 비싸?”
생각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놀란 카이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검술 스킬을 배우는 데 이렇게 돈이 많이 들었나?’
물론 검술관마다 가르쳐 주는 스킬이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마 헤르센 검술관에서 가르쳐주는 검술이 가장 등급이 높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보조용으로 쓸 무기술에 10골드 이상은 너무 사치야.’
카이의 눈이 결국 하나 남은 선택지로 향했다.
다른 검술관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
솔직히 말해서 별다른 기대감조차 들지 않았다.
‘싼 게 비지떡이니까.’
천원슈퍼에서 구매한 이어폰을 두 시간 만에 고장 내고 땅을 치면서 후회했던 카이.
그때 그는 물건의 가격이 품질을 따라간다는 것을 배웠다.
‘끄응, 그래도 가격 상담 정도는 한 번 해봐야겠어.’
한숨을 푹 내쉰 카이가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
카이는 뚱한 표정으로 눈앞의 건물을 쳐다봤다.
“아니, 아니지…… 이건 건물이 아니지.”
건물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들어 살거나, 일을 하거나, 혹은 물건이라도 넣어두는 장소를 이르는 말이다.
‘이런 곳에는 사람이 살 수도 없고, 일을 할 수도 없어. 하다못해 물건의 안전도 보장 못 하게 생겼는데……?’
다 쓰러져 가는 폐가.
그곳의 상단에는 ‘여명의 검술관’이라는 간판 하나만이 멀쩡하게 붙어 있었다.
삐그덕.
“아.”
정정한다.
유일하게 멀쩡하던 간판조차 나사가 풀렸는지 기울어졌다.
이쯤되자 카이는 심각하게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진짜 여기서 배워야되나?’
돌아가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던 와중에, 폐가의 문이 벌컥 열렸다.
“에잉, 이건 또 왜 떨어져?”
문을 열고 나온 것은 꼬장꼬장하게 생긴 노인이었다.
“응?”
검술관 앞에 서 있는 카이를 발견한 노인은 귀찮은 눈빛으로 카이의 전신을 훑었다.
“잠깐, 이 기운은……?”
안색이 뒤바뀐 노인이 순식간에 다가와 카이의 손을 붙잡았다.
“왜, 왜 이러세요.”
“가만히 있어봐.”
손가락으로 카이의 손목에 위치한 동맥을 짚던 노인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드디어 기다리던 인재가 왔구나!”
“예?”
“들어오게. 검술을 가르쳐주지.”
“아니요. 검을 배우는 건 잠시 생각을 좀 해보고…….”
“뭐? 생각을 왜 해!”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에 카이가 찔끔한 표정을 짓자, 노인은 자신의 실수를 알아채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카이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허허, 미안하군. 하지만 자네가 뭘 몰라서 그러나 본데, 이곳은 광휘의 패트릭 님께서 자신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세우신 유서 깊은 검술관이야. 만약 자네가 패트릭 님의 시험을 통과할 수만 있다면, 그분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겠지.”
“광휘의 패트릭이요? 그 사람은 분명…….”
카이는 분터 촌장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태양교의 전설적인 성기사라고 회자되었던 인물!
카이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 노인의 말이 사실일까? 그럼 이건 대박 중에서도 대박인데…… 그런데 왜 아직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지?’
글렌데일은 제법 큰 도시이다.
주변의 몬스터들도 레벨이 다양하여 이곳에서 시작을 하는 유저들도 제법 많은 편이었다.
‘뭔가 좀 수상…….’
카이가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자, 지나가는 아낙네들이 길 건너편에서 소리쳤다.
“어머, 저 영감님 또 사기 치시네. 그게 벌써 수백 년 전이잖아.”
“저 할아버지는 검술관 기웃거리는 사람마다 붙잡고 기다리던 인재라 그러네! 웃겨 정말.”
“거기 총각! 차라리 동쪽 성벽 근처의 헤르센 검술관으로 가요! 우리 애도 거기서 배워!”
“그쪽 관장은 몸도 좋고 잘생겼거든. 호호호.”
“여명의 검술관에서 패트릭 님의 유산인지 뭔지를 얻은 사람은 수백 년 동안 한 명도 없어!”
“크험험!”
노인이 아낙네들을 쏘아보자, 그녀들은 후다닥 자리를 벗어났다.
“흠흠, 저런 근거 없는 모함들은 무시하고…… 입관하게. 좋은 가격에 가르쳐주지.”
“으으음…….”
미드 온라인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검술관들이 있었다.
당연히 각 검술관마다 추구하는 검은 달랐고, 가르쳐주는 검술 스킬 또한 달랐다.
한 마디로 어디서 무엇을 배우는 지는 오롯이 플레이어 본인의 선택!
‘수백 년 동안 유산을 이은 사람이 없다는 건…… 아직 뭔가가 숨겨져 있다는 소리이기는 한데.’
잠시 고민을 하던 카이가 결국 결심을 내렸다.
‘좋아, 어차피 이곳의 입관비가 가장 저렴했으니까, 속는 셈 치고 다녀보자.’
카이는 곧장 노인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니, 한 번 배워보겠습니다. 제가 특별히 배워드리는 겁니다.”
“그렇지! 잘 선택했네!”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한 미소를 지은 노인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자네의 성의를 봐서 많이 받지는 않겠네. 일주일 강습료로 4골드. 선불이야.”
“혹시 그 일주일이 7일로 이루어진 일주일 맞나요?”
“자네 고향에는 30일로 이루어진 일주일도 있나?
“…….”
있을 리가 있나.
카이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설마 5골드라고 적혀있던게 한 달이 아니라 일주일 치 비용이었을 줄이야.
“아, 아까 제 성의를 봐서 많이 받지 않으신다고…….”
“원래는 5골드일세. 할인해서 4골드에 해주는 게야.”
“…….”
결국 한숨을 푹 내쉰 카이는 인벤토리에서 골드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뭐, 그래도 다른 검술관보다는 훨씬 더 싸니까.’
돈을 챙긴 후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따라와라.”
“네…….”
카이는 기회가 되면 꼭 협상 스킬을 배우겠다고 다짐했다.
***
미드 온라인에서 제대로 된 스킬을 배우는 데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각 클래스 타워에서 기본 스킬들을 배우는 것이다.
‘배우는 스킬들의 위력은 평범하지만, 싼값에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지.’
게다가 10레벨 간격으로 상위 스킬도 해제되니, 대부분의 모험가들은 이렇게 스킬을 배운다.
다만 다른 직업을 지니고 있으면 클래스 타워를 이용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이 스킬 북을 이용해 스킬을 터득하는 방법.’
스킬 북은 던전의 보스나 레이드 몬스터를 처치할 경우 랜덤하게 드랍이 되는데,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배울 수 없는 희귀하고 강력한 스킬을 책만 펼치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없기에 가격이 비쌌다.
“후우…… 후우…… 그리고 마지막 방법이…….”
이를 꽉 깨문 카이가 겨우 중얼거렸다.
NPC에게 직접 스킬을 전수 받는 것.
그것이 바로 마지막 방법이었다.
‘이렇게 배우는 스킬의 위력은 일반적으로 클래스 타워에서 배우는 것들보다 좋고, 가격도 스킬 북에 비하면 무척 싼 터라 플레이어들이 자주 애용하는 방법…… 이라고 들었어.’
다만, 이 방법은 치명적인 단점 한 가지를 동반했다.
“아직 멀었다. 해 떨어지기 전에 끝내라.”
“끄으으윽…….”
잘 익은 홍시처럼 붉게 물든 카이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들거렸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후이가 한심하다는 어투로 그를 나무랐다.
“거, 사내놈이 팔 굽혀 펴기 1,000개를 못해서 그 모양이라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구나.”
바로 힘들다는 것.
그것이 유일한 단점이자, 수많은 플레이어가 이 방법을 기피하게 만든 이유였다.
‘크윽…… 다른 검술관들은 방법이 굉장히 체계적이라고 들었는데?’
하지만 이곳에 존재하는 체계는 딱 하나 뿐이었다.
바로 관주의 말이 법이라는 것.
‘끄응.’
사실 처음 검술관에 들어왔을 때는 깨끗하고 넓은 대청에 제법 만족하기도 했다.
‘여기서 한 번 제대로 배워보자.’
그렇게 마음을 먹으려던 찰나.
“우선 팔 굽혀 펴기 1,000번. 그것부터 해봐라.”
후이의 첫 번째 가르침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벌써 세 시간.
카이는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팔 굽혀 펴기만 하는 중이었다.
물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행 스탯 덕분에 힘 스탯도 제법 높고, 여차하면 태양의 사제 버프를 쓰면 되니까. 생각보다 쉽네.’
아주, 아주 커다란 착각이었다.
띠링!
[여명의 검술관에서 수련을 시작합니다.]
[수련을 하는 동안에는 모든 스탯이 10으로 고정됩니다.]
[수련을 하는 동안 모든 스킬의 사용이 금지됩니다.]
힘 10이면 현실에서 성인 남성이 지닌 평균적인 근력 수치다.
그 힘으로 팔 굽혀 펴기 천 번이라면?
‘……망했네.’
카이는 뭔가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