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6화 (26/441)

# 26

힐통령 026화

13장 여명의 검술관(2)

아무리 게임 안이라지만, 뇌가 느끼는 운동의 고통은 현실과 다를 바 없었다,

평소라면 이 놀라운 기술력에 박수를 쳤을 테지만, 지금은 개발자들에게 따지고 싶은 기분!

‘처음 100개까지는 정말 할 만했는데…….’

하지만 300개가 지나가자 입에서 노린내가 나왔고, 500개가 지나가자 팔에 감각이 사라졌다.

700개에 다다른 지금에서는 아예 몇 분에 하나꼴로 겨우 팔 굽혀 펴기를 하는 상황.

그 와중에 머리는 빙글빙글 돌면서 구토감이 치솟았다.

“쯧쯧…….”

후이는 지난 세 시간 동안 가르침이나 응원은커녕, 혀만 차며 카이를 조롱했다.

“내가 네 나이일 때는 하루에 3천 개씩 했다.”

“어떻게 남자 놈이 팔 굽혀 펴기 1,000개도 못 하느냐.”

“달려 있냐?”

무시와 조롱이 이어졌지만, 입을 앙다문 카이는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으드득…… 기필코 해낸다.’

예전부터 그랬다.

카이는 눈앞의 부당함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에 맞섰다.

누군가는 고집, 혹은 독기나 투기라고 부르는 것들.

카이에겐 어려서부터 그런 것이 있었다.

그 정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강렬하게 빛이 났다.

“팔…… 백…… 팔십…… 사…….”

만약 이것이 현실이었다면 정신력만으로 팔 굽혀 펴기를 이렇게 오래 할 수는 없었으리라.

근육이 찢어지고, 손상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고통이 아무리 현실 같아도 이것은 게임!

'아주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겠어.'

결국 의지의 한국인인 카이는 네 시간 만에 팔 굽혀 펴기 1,000개를 모두 끝마칠 수 있었다.

“끄, 끝났다…….”

카이는 금방이라도 풀릴 것 같은 눈빛으로 후이를 올려다봤다.

그의 반항적인 눈빛을 마주한 후이는 저도 모르게 웃으며 물었다.

“어디 눈을 그렇게 뜨느냐.”

쿵.

그 말을 채 듣지 못한 카이는 그대로 정신을 잃으며 쓰러졌다.

강제 로그아웃을 당한 카이를 쳐다보던 후이는 코끝을 씰룩였다.

“흐음, 근성은 그럭저럭…… 합격인가.”

그의 눈동자에 묘한 기대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

[심각한 기절 상태에 빠졌습니다. 8시간이 지나서 재접속해주십시오.]

“아, 튕겼네.”

아무래도 캡슐의 판단하에 뇌파가 불안정하다고 인식된 모양!

모든 것을 새하얗게 불태운 한정우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긴, 몸이 이 모양인데 게임을 계속할 수도 없지.”

손 하나도 까딱하기 싫은 게으른 기분이었다.

꼬르륵.

하지만 제 주인의 마음도 모르는 채 밥 달라고 아우성치는 배꼽!

결국 몸을 일으킨 한정우가 방을 나서자, 잡지를 보던 엄마가 그를 슬쩍 쳐다보더니 말했다.

“어머, 학교도 안 다니고 게임만 하는 백수 아드님이 왜 저리 피곤해 보인담?”

“으으…….”

안 그래도 피곤하던 차에 정신적인 공격까지 받자 한정우가 몸서리를 쳤다.

“안 그래도 지금 힘들어요.”

“왜?”

“오늘부터 뭐 좀 배운다고 바빠서.”

“……응?”

하지만 그 말에 귀를 쫑긋거린 김현정은 충격적인 소식이라도 들은 것마냥 달려왔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뜬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 아들. 다시 공부 시작하려고? 방에서 강의라도 듣는 거야?”

“강의?”

잠시 생각하던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오늘부터요.”

물론 검술 강의지만.

강의는 강의니까.

그 한마디에 김현정의 얼굴이 크게 밝아졌다.

그녀는 아들의 어깨 위에 묻은 먼지를 톡톡 털어주며 말했다.

“아유, 미리 말을 하지 그랬니. 그랬으면 엄마가 용돈도 주고, 맛있는 것도 해줬을 텐데.”

“에이, 이게 뭐 대수라고 말까지 해요.”

“호호. 얘도 참.”

김현정이 뿌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백수…… 아니, 아들을 바라봤다.

‘우리 정우가 드디어 방구석 폐인 짓을 그만두려나 보구나!’

그렇다면 엄마가 된 입장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녀가 곧장 소매를 걷어붙였다.

“아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엄마가 간만에 실력 발휘 좀 하게.”

“어머니 음식 못하시잖아요? 발휘할 실력이 없는데 무슨…….”

말을 잇던 한정우는 시퍼런 엄마의 눈빛을 마주하고는 꼬리를 말았다.

“아, 안 그래도 요즘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이 먹고 싶었는데. 어깨가 쑤시고 목이 잘 안 돌아갈 때는 뭐가 좋죠?”

“그럼 보양식이지. 삼계탕? 아니면 장어덮밥?”

“으으음…… 잠깐 고민 좀.”

“얼마든지 하렴.”

요리 준비를 하던 김현정은 다시 생각해도 아들이 기특한지 호호 웃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뭘 배운다는 거야? 자격증 시험? 아니면 토익?”

그녀의 질문에 한정우가 생각 없이 말을 내뱉었다.

“여명의 검술관이라고 있는데, 거기서 검술 스킬 좀 배우게요.”

“…….”

막 칼을 꺼내던 김현정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여명…… 뭐?”

“여명의 검술관.”

“서울에 있는 학원 맞니?”

“라시온 왕국 글렌데일에 있죠.”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꾸하던 한정우가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장어덮밥 먹고 싶어.”

“……장어덮밥?”

그 목소리에 살기가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달은 한정우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마치 고양이 앞의 생쥐처럼 무기력한 모습!

“나원…….”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어머니는 다시 거실로 돌아가버렸다.

꼬르륵.

그 와중에 배는 아우성.

결국 라면을 끓여먹은 정우는, 가자미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어머니를 뒤로한 채 방으로 돌아갔다.

‘꼭 효도시켜 드릴게요.’

그녀가 알 리 없는 마음을 품은 채.

“흐음.”

방에 돌아온 정우는 곧장 컴퓨터를 켰다.

‘여명의 검술관. 여기서 검술을 배운 사람이 있기는 한가?’

그것을 조사해볼 요량이었다.

“오오, 생각보다 게시글이 많은데? 41개나 있어.”

다행히 아무도 다니지 않은 이상한 검술관은 아닌 모양.

걱정을 한시름 덜어낸 한정우는 게시글들의 제목을 천천히 훑었다.

[여명의 검술관? 듣도 보도 못한 잡 검술관인데 관장 자존심은 하늘을 찌름.]

[글렌데일의 여명의 검술관. 절대 가지 마세요.]

[여명의 검술관이 아니라 염병의 검술관임.]

[여명의 검술관에서 일주일 수련 솔직 후기.]

“…….”

겨우 덜어낸 걱정이 다시 몰려오는 기분!

한정우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움직였다.

딸깍.

[제목 : 여명의 검술관에서 일주일 수련 솔직 후기]

[내용 : 응, 쓰레기 검술관. 5골드 내고 기본 검술 배움 수고링.]

충격적인 내용 밑에는 댓글들까지 달려 있었다.

-실화?

ㄴ100% 실화. 겁나 허름해서 무슨 히든 검술이라도 가르쳐 주는 곳인 줄ㅋ 다시 한번 말하지만 쓰레기.

-어라, 저도 여기 다녀봤는데…… 일주일 버티신 게 용하네요. 전 사흘 만에 탈주.

-NPC들도 여기 가려고 하면 엄청 뜯어말리던데요? 그러게 가지 말라는 데 왜 가요.

-요약. 돈 많고, 시간은 더 많은 사람만 다니셈.

“아…….”

제대로 망했구나.

고개를 푹 숙인 한정우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

“나약한 놈이군. 고작 팔 굽혀펴기 몇 번 했다고 기절을 하다니.”

다음 날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잔소리가 쏟아졌다.

후이는 뚱한 표정의 카이에게 목검 한 자루를 던졌다.

“받아라.”

“뭡니까?”

그가 던진 목검을 겨우 낚아챈 카이에게 후이가 짤막하게 명했다.

“오늘부터 수평 베기 1만 번, 수직 베기 1만 번을 한다.”

“……!”

느닷없는 지옥 훈련에 카이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영감, 저 마음에 안 들죠?’

그 표정을 보고 인상을 찡그린 후이가 호통을 쳤다.

“2만 번을 채우려면 그러고 있을 시간도 없을 텐데?”

“지, 진짜로 2만 번이나 휘두르라고요?”

“오늘 안에 못 끝내면 내일은 오늘 못한 횟수만큼 더 해야 한다.”

“…….”

카이는 속으로 분을 삭였다.

검술관에 와본 건 처음이었지만, 이 수련 방법이 비정상적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이미 돈은 지불했고 물릴 수도 없다.

‘……아니, 정말 물릴 수 없나?’

카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혹시 여기 환불…….”

“놉. 안 된다.”

“…….”

아예 못을 박아버리듯 떠오르는 퀘스트창!

[기본이 중요하다Ⅰ]

난이도 : E-

여명의 검술관의 관장인 후이는 검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기본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모든 검술의 기본이 되는 수평 베기와 수직 베기를 각각 1만 번씩 휘두르세요.

퀘스트 보상 : 힘 +1, 체력 +1, 민첩 +1.

실패 페널티 : 여명의 검술관 추방

‘보상은 생각보다 좋은데?’

의외로 괜찮은 보상에 카이는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봤다.

‘1분에 50번씩 휘두르면…… 10분에 500번, 1시간 40분이면 5,000번?’

이론상으로는 3시간 20분이면 1만 번을 휘두를 수 있다.

‘생각보다 쉬운 걸지도?’

두 다리를 어깨넓이로 벌린 카이가 목검을 꽉 쥐었다.

‘검 휘두르는 거야 뭐, 쉽지.’

별 고민 없이 휘둘러지는 목검!

휘우웅!

[자세가 올바르지 못합니다.]

[수평 베기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합니다.]

[수평 베기에 실패하셨습니다. 남은 횟수 0/10,000.]

“응?”

카이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눈만 깜빡거렸다.

수평 베기는 3살짜리 동네 꼬맹이들도 할 줄 아는 기초 중의 기초!

“그런데 이게 실패할 수가 있나?”

“있다.”

혀를 쯧쯧 차올린 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가왔다.

“우선 너는 자세부터가 쓰레기다.”

그는 들고 있던 단봉으로 카이의 몸을 툭툭 치면서 자세를 교정했다.

“같은 행위라고 해도 일류 요리사가 사과를 깎는 것과, 어린아이가 깎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지. 수평 베기 또한 마찬가지다.”

“그건 그렇죠.”

“기본에 충실해라. 농부조차 씨앗을 뿌리기 전에 밭을 가는 법이다. 검을 잡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상위 검술을 배우기 전에 수직, 수평, 대각선 베기와 찌르기 정도는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한다.”

“……!”

카이가 그의 깊은 속뜻을 알아차리자, 후이가 가볍게 턱짓을 했다.

“그럼 이제 다시 휘둘러봐라.”

“네!”

카이는 심호흡을 한 번 하며 목검을 단단히 쥐었다.

‘한 번 휘두를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으로!’

어차피 1만 번씩 휘둘러야 하는 것이라면, 대충 휘둘러서 실패가 뜨는 것보다 집중을 해서 빠르게 끝내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부웅!

잡념을 지워낸 목검은 이전보다 깔끔한 소리를 냈다.

[수평 베기에 성공하셨습니다. 남은 횟수 1/10,000.]

“서, 성공이다!”

“음. 수평 베기는 그런 식으로 9,999번만 더 하면 된다.”

“…….”

입을 꾹 다문 카이는 기계처럼 목검만 휘둘렀다.

단순해 보이는 동작이었지만, 한 번을 휘두를 때조차 심력의 소모가 엄청났다.

[수평 베기에 성공하셨습니다. 남은 횟수 2/10,000.]

[수평 베기에 실패하셨습니다. 남은 횟수 2/10,000.]

[수평 베기에 성공하셨습니다. 남은 횟수 3/10,000.]

……

“하압! 하압!”

항상 침묵이 내려앉아 있던 검술관이, 카이의 기합 소리로 인해 오랜만에 시끄러워졌다.

***

[수직 베기에 성공하셨습니다. 남은 횟수 9,999/10,000.]

“허억, 허억…….”

카이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비단 몸뿐만이 아니라, 그가 서 있던 바닥도 땀에 젖은 상태였다.

‘아직 한 번 남았다.’

수평 베기를 모두 끝내고, 수직 베기도 9,999번이나 성공한 카이.

무려 9시간이나 걸린 훈련이었지만, 카이는 결국 이것을 해내고 말았다.

“하앗!”

부웅!

목검이 공기를 절삭하며 깔끔하게 떨어졌다.

그리고 카이가 기대하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수직 베기에 성공하셨습니다. 남은 횟수 10,000/10,000.]

[기본이 중요하다Ⅰ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힘 1이 상승하셨습니다.]

[체력 1이 상승하셨습니다.]

[민첩 1이 상승하셨습니다.]

“아자!”

드디어 해냈다.

고된 시간을 견디고 산의 정상에 다다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시원함!

엄청난 성취감과 보람찬 기분이 카이의 전신을 휘감았다.

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이에게 후이가 다가왔다.

“끝났냐?”

“네! 수직 베기와 수평 베기 각 1만 번씩 모두 마쳤습니다.”

“잘했다. 그럼 지금 당장 복도 끝 방으로 가서 잠을 자라.”

“……네?”

“휴식을 취해줘야 내일 또 고된 훈련을 버틸 수 있다.”

후이에게 등을 떠밀린 카이가 복도 끝 방으로 이동되었다.

그 흔한 책상 하나 없이, 딱딱한 침상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어 삭막해 보이는 방이다.

곧장 침대에 누운 카이는 천장을 쳐다보며 투덜거렸다.

“자고 싶다고 바로 잠이 오면 그게 곰이지 사람이야?”

잠시 후, 피곤에 찌든 카이의 고른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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