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힐통령 028화
13. 여명의 검술관(4)
“아, 깜빡할 뻔했군. 이거 받아라.”
카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후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낡은 책자 하나를 던졌다.
“이게 뭡니까?”
카이는 곧장 책을 들어 감정했다.
[여명의 검법]
등급 : 노말
여명의 검술관 관주에게 인정을 받은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검법입니다.
하지만 실용적인 가치는 낮습니다.
카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똥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겨우 노말 등급? 게다가 실용적인 가치가 낮아?’
아무리 히든 퀘스트를 주는 검술관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쓰레기 검술을 가르쳐 주다니!
‘뭐, 어차피 내 주력은 검술이 아니니까. 보조용으로 쓰기에는 노말 등급도 괜찮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카이는 가벼운 마음으로 스킬 북을 열었다.
띠링!
[스킬 북 - 여명의 검법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동의하시면 스킬이 생성되는 대신, 스킬 북이 영구히 소멸됩니다.]
“사용.”
[스킬 - 여명의 검법을 획득하셨습니다.]
카이는 곧장 스킬의 정보를 확인했다.
[여명의 검법 LV.1. Passive.]
검으로 공격할 시 적에게 공격력의 110% 데미지를 준다.
“윽…….”
초라하고 볼품없는 스킬 설명!
10레벨의 검사가 전사의 탑에서 배우는 검술 스킬도 1레벨 데미지가 110%였다.
그러니 여명의 검법이 대단한 검법인 것은 절대 아니었다.
‘뭐, 커뮤니티에서 기본 검술 얻었다고 할 때부터 예상은 했으니까.’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
카이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지자, 후이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표정 풀어라. 주고 싶은 것도 주기 싫게 만드는 재주가 있군.”
“주고 싶은 거요?”
아직 더 받을 게 남아 있다는 소리인가?
카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처럼 변했다.
“……놀라운 태세전환이구나. 처세술만큼은 인정해주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후이가 한 권의 책자를 더 꺼냈다.
“자, 이 책자도 여명의 검술관을 완료한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
“그런데 이 책은 색깔이…….”
카이의 눈동자가 크게 뜨여졌다.
낡은 회색의 책자였던 여명의 검법과는 달랐다.
붉은색으로 빛나는 책은 그 존재만으로도 강렬한 아우라를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었다.
카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아, 아이템 감정.”
[스킬 북 - 신성 폭발]
등급 : 유니크
체내의 신성력을 폭발시켜 사용자의 능력치를 끌어올립니다.
사용 제한 : 사제, 여명의 검술관에서 인정을 받은 자.
‘유, 유, 유니크 등급 스킬 북이다!’
츄릅, 카이의 입가에 고여있던 침 한 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만큼 유니크 등급의 스킬 북은 가치가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아이템이면 공증인을 내세우고 거래해야 할 정도야…… 가치는 최소 수 천 만원이다!’
침을 꿀꺽 삼킨 카이는 함부로 스킬 북을 잡지도 못한 채 되물었다.
“이, 이거 진짜 제가 익혀도 됩니까?”
“응? 무슨 소리냐. 어차피 너 아니면 배울 수도 없을 텐데.”
“예?”
후이의 심드렁한 목소리에 카이는 다시 한번 정보를 확인했다.
“아…….”
카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신성 폭발은 여명의 검술관에서 인정을 받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 북!
한 마디로 카이가 아니라면 배울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럼 어차피 팔지도 못하겠네.’
카이의 어깨가 축 늘어졌지만, 울적한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니지, 어차피 내가 이걸 팔 이유는 없어.’
돈이야 많으면 좋지만, 딱히 돈에 미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지금 그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근접 전투 능력!
신성 폭발을 배우게 된다면 그 단점이 크게 극복될 것이 분명했다.
“그, 그럼 진짜 사용합니다?”
“하라고.”
“넵.”
침을 꿀꺽 삼킨 카이는 후이 관장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재빨리 스킬 북을 펼쳤다.
동시에 영롱한 빛과 함께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다.
카이는 재빨리 스킬의 정보를 확인했다.
“스킬창.”
[신성 폭발. LV.1]
초마다 1,000의 신성력을 소모하여 모든 스탯을 30만큼 상승시킵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 5분.
숙련도 0/100
“오오……!”
과연 유니크 등급의 스킬!
생각보다 훨씬 놀라운 능력의 스킬이었지만, 리스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초마다 신성력 소비가 1,000이라…… 애매한걸.’
현재 카이의 신성력은 22,600이었다.
자신에게 기본적인 버프들을 걸고 나면 남는 것은 대략 2만.
‘그럼 신성 폭발을 운용할 수 있는 건 최대 20초…… 아니, 23초구나.’
신성 폭발을 사용하면 신성 스탯이 30이나 증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필살기, 비장의 한 수라는 느낌!
‘하지만 이것 하나만으로도 선택지가 넓어졌다는 건 사실이야.’
진한 미소를 짓고 있는 카이에게 후이가 충고를 해줬다.
“그리고 너, 힘이 너무 약하더군. 그 부분을 조금 더 키워야겠어.”
“힘이요?”
“그래. 아시다시피 힘이란 공격력을 포함해 신체를 이용한 모든 속도와도 관계가 있다”
“그야… 알고 있죠.”
그 부분을 알고 있던 카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모르겠으나, 검을 배운 이유가 있겠지?”
“혼자 사냥을 하고 싶어서요.”
카이가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후이가 손바닥으로 무릎을 쳤다.
“아주 좋아! 바로 그 기세다. 이곳에서 검을 사사 받은 녀석이라면 그 정도 기개는 있어야지!”
“…검을 사사 받다니, 고작 스킬 북 하나 던져줬으면서.”
“시끄러워! 괜히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지금 네 녀석의 힘은 오크 한 마리를 못 잡을 정도로 비루하다.”
“…….”
“무려 유구한 전통의 여명의 검술관을 졸업한 전사인데도 말이지.”
“저 사제예요.”
“어흐흠!”
후이가 심기 불편하다는 눈빛으로 쏘아보자, 카이가 입을 꾹 다물었다.
확실히 후이의 충고는 그가 몇 번이고 걱정했던 것과 상당히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태양의 사제로서 어떤 스탯을 올리는 게 정답일까.’
다른 사제들과 마찬가지로 신성, 체력 스탯을 올려서 힐러로서 이름을 떨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카이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건가?’
여태까지 카이는 자신의 직업이 힐러라는 것을 후회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목검을 휘두르며, 자신이 검을 휘두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또한 자각했다.
‘힐러도 좋아하지만, 다른 전사들처럼 검도 휘두르고 싶어.’
어쩌면 후이가 건네준 충고야말로 그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올힘 사제라…….’
아직 누구도 가보지 않았고, 구태여 가보려고 하지도 않는 길!
물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수도 있지만, 신대륙은 도전하는 자에게만 그 문을 드러내는 법이다.
카이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충고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그건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한 번 투자한 스탯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캐릭터를 삭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카이는 선택을 할 때마다 신중해야 했다.
“그리고 신성 폭발과 여명의 검법을 전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흐음. 그 뭐냐, 네놈이 일주일간 잘 버텨준 덕분이다. 잊지 말아라. 이건 내가 선의를 베푼 것이 아니라 네가 고생을 해서 쟁취한 보상이라는 걸.”
“명심하겠습니다!”
나무 위의 열매를 얻고 싶다면, 밑에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몇 번이나 미끄러지고, 추락을 하면서도 아득바득 나무의 꼭대기까지 도달한 자만이 모든 열매를 독식할 수 있는 법.
'여명의 검술관, 훈련은 더럽게 힘들었지만 얻은 건 많네.'
카이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후이가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흘린 침은 닦고 가라.”
“…….”
***
무려 일주일 간의 지옥 수련!
그것을 모두 마치고 검술관을 나오는 카이를 반겨준 건 따사로운 햇살이었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구나.”
왜냐하면 오늘은 인벤토리가 빵빵해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솔리드에게 의뢰해 놓은 장비들과 웜 리자드의 가죽옷, 그리고 레드너스 마탑의 포션들까지.
카이는 부푼 마음을 껴안은 채 대장간으로 향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와는 대조적으로, 대장간에는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이런.”
생각보다 훨씬 긴 줄에 카이는 낭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카이에게 대장간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다가왔다.
“이쪽의 번호표를 받아 주시구요. 방문 목적이 어떻게 되시나요?”
“의뢰해놓은 장비가 있습니다.”
“어떤 장비들인가요?”
“웜 리자드의 비늘로 만든…….”
카이가 장비에 대해 설명을 마치자, 종업원이 메모를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준비해 놓을게요.”
짤막한 인사를 마친 종업원은 그대로 대장간으로 돌아갔다.
‘최소 몇십 분은 기다려야 될 것 같네.’
막막한 눈으로 줄을 서 있는 앞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돌연 대장간의 문이 벌컥 열렸다.
“오오오! 저기 있구만!”
문을 열고 등장한 사람은 카이도 익히 알고 있는 이였다.
“솔리드 님?”
“이 사람아!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반가운 표정으로 한달음에 달려온 솔리드는 두꺼운 손으로 카이의 손을 붙잡았다.
“자, 바로 들어가세!”
“하지만 줄이…….”
“어허, 자네가 어떤 사람인데 여기서 서고 있는가! 내 가게인데 뭐 어떤가? 괜찮으니 어서 들어오게.”
사람은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대우를 받을 때 기분이 가장 좋아지는 법!
카이의 입꼬리가 절로 씰룩였다.
‘확실히 호감도를 한 번 올려놓으니 좋긴 좋아.’
예로부터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연, 학연, 혈연이라고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한 가지다.
‘인맥!’
지역을 통해 맺어진 인맥!
학교를 통해 이어진 인맥!
똑같은 피가 흐르는 인맥!
모든 것은 인맥에서 시작되고, 인맥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뭐야, 저 사람은 왜 줄도 안 서고 바로 들여보내 주는데?”
“우리는 뭐 시간이 남아돌아서 줄 서는 줄 아냐!”
“우우우!”
물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저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솔리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카이를 대장간으로 이끌었고, 종업원이 남아 그들을 다독였다.
“죄송합니다. 저분은 솔리드 님께서 각별히 모시라고 했던 분이신지라…… 양해 부탁드립니다.”
“각별히?”
“대체 뭐 하는 사람인데?”
그 말에 사람들의 고개가 단체로 기울어졌다.
“천화 길드의 간부들조차 저런 대우는 받지 못해.”
“그럼 NPC라도 된다는 거야?”
“NPC가 왜 대장간을 찾아와?”
“아, 몰랐나 보네. 여기 대장장이가 유명해서 기사나 귀족 가 NPC들도 자주 찾아오는 모양이던데?”
“헉…… 그럼 괜히 밉보인 건 아닌가 모르겠네.”
줄을 서 있던 유저들은 이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해 버렸다.
***
“와, 사람들 반응 무섭네요.”
유저들의 원성을 뒤로하고 대장간에 들어온 카이는 흘깃 뒤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솔리드는 호탕한 웃음소리로 그 걱정을 덜어줬다.
“껄껄껄! 남자가 뭐 그 정도 원성에 겁을 먹고 그러나?”
“그래도요.”
“내 가게이니 걱정하지 말게. 거, 주인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뭘!”
“하하…….”
그의 확고한 신념에 어설픈 웃음을 흘리던 카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제 장비는 모두 완성이 되었습니까?”
“자네. 날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아닌가?”
솔리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카이를 공방의 안쪽으로 이끌었다.
“나는 말일세. 40년간 망치를 두드리면서 단 한 번도 시간 약속을 어겨본 적 없는 남자야.”
“……!”
그 말에서는 30년 전통의 할머니 국밥집에서나 느낄 수 있는 깊은 신뢰감이 느껴졌다.
대번에 표정이 환해진 카이는 그가 내미는 장비들을 쳐다봤다.
“자, 이것이 자네의 새로운 무구들일세.”
솔리드는 한 자루의 검과, 투구, 상의, 하의로 이루어진 경갑 방어구를 내밀었다.
“와…….”
카이의 입에서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경탄이 흘러나왔다.
미드 온라인의 장비는 섬세하다.
그 말은 즉 장비의 느낌은 그 장비를 만든 재료를 따라간다는 뜻이었다.
‘이 검의 재질은…… 뼈.’
프리카 마을의 산맥을 지배하던, 필드 보스 몬스터인 웜 리자드의 뼈다.
그 단단함이 주는 안정감은 카이의 눈길과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르릉.
카이는 천천히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웜 리자드의 하얀 뼈, 백골(白骨)을 두드려 만든 검은 순백의 색을 지니고 있었다.
비록 철검 같은 차가움은 없었지만, 어떤 적이든 베어버릴 것 같은 날카로움이 엿보였다.
‘뼈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을 만큼 예리해.’
카이는 검의 날 부분에 살짝 손가락을 갖다 대보았다.
[1,854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웜 리자드의 분노 효과로 인해 185의 추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
여명의 검술관에서 수련을 마친 카이의 힘 스탯은 72였다.
아무리 잘 봐줘도 20레벨의 검사와 비슷한 수치!
하지만 저 공격력은 최소 35레벨의 전사가 힘껏 휘두른 일격과 동일했다.
‘힘은 물리 공격력과 직결되는 스탯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데미지가 나온다는 의미는…….’
무기 자체의 성능이 매우 뛰어날 경우뿐!
게다가 다양한 특수 효과까지 지니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쿵! 쿵! 심쿵!
심장은 아이템의 정보를 빨리 확인해 보라는 듯 거세게 뛰었다.
침을 꿀꺽 삼킨 카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템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