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힐통령 030화
15장. 지하도박장(2)
“별 정신 나간 녀석을 다 보겠네.”
투덜거리며 화장실을 나온 한스에게, 그의 선임이 헐레벌떡 다가왔다.
“야, 인마! 여기서 뭐 해!”
“네? 지금 VIP룸에 올릴 안주 준비가 다 끝나서…….”
“지금 안주가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 당장 VIP손님들부터 대피시켜!”
“예? 그게 무슨…….”
한스가 어벙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하자, 선임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덜떨어진 놈아! 언데드가 출몰했다! 나는 손님들 통제하고 돈 챙겨야되니까 우선 VIP 손님들이랑 사장님부터 챙겨!”
“예에에!? 아, 알겠습니다!”
화들짝 놀란 한스는 VIP들을 모시기 위해 우선 2층으로 올라갔다.
“히, 히이익……!”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본 장면은 그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어, 언데드다! 진짜 언데드야!’
여덟 마리의 언데드가 도박장의 물건을 닥치는 대로 부수는 중이었다.
“대, 대체 언데드가 왜 이곳에!”
“막아라! 절대 위층으로 올라가게 둬선 안 돼!”
도박장을 지키는 건달들이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하지만 그들도 언데드를 맞상대하기는 무서웠는지, 함부로 달려들지는 못했다.
‘갑자기 언데드가 왜 이런 곳에?’
한스는 불똥이 자신에게 튀기 전에 VIP룸의 문을 열었다.
“사장님! 지금 당장 대피하셔야 합니다!”
“뭐? 지금 한창 중요한 순간인데 뭔 개소리야? 그리고 밖은 또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던 밀튼이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며 화를 냈다.
“언데드가 나타났습니다! 지금 당장 도망치셔야 합니다!”
“……뭐가 나타나?”
밀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파란 신입이 이런 미친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텐데…….’
그는 VIP 손님들의 눈치를 스윽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흠. 잠시만 기다려주시길.”
한스를 끌고 방을 나선 밀튼은, 1층의 언데드들을 보고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런 미친! 진짜잖아!”
온몸에 소름이 돋은 그는 당장 자신의 돈 가방만 챙긴 채 VIP 고객들에게 돌아갔다.
그들은 하얗게 질린 밀튼의 안색과 더불어, 언데드가 나타났다는 한스의 설명에 껄껄 웃었다.
“언데드?”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껄껄, 이거 우리 사장님이 패가 말렸나 봅니다. 이상한 잔꾀를…….”
하지만 그들도 1층에서 계속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비명이 들려오자 안색을 굳혔다.
“정말입니까?”
“못 믿겠으면 여기 남아서 확인하시오. 난 나갈 테니까. 스네이크 형제! 날 보호해라.”
“예, 사장님.”
흑색, 백색의 양복을 입은 건장한 체구의 사내들이 밀튼을 밀착 호위했다.
그 사이 밀튼은 방에 위치한 문을 통해 비밀 출입구로 들어갔다.
“언데드다! 진짜 언데드야!”
“젠장! 돈부터 챙겨!”
1층의 상황을 확인한 VIP들은 자신의 돈을 허겁지겁 챙긴 채 밀튼의 뒤를 따라나섰다.
뒷문으로 연결된 통로는 어두웠고, 쿰쿰한 냄새가 났으며 무엇보다 길었다.
10분가량 달린 VIP들이 숨을 헐떡거리며 물었다.
“허억, 허억! 이거 대체 어디까지 이어지는 거요?”
“곧 끝납니다.”
그들의 질문에 꼬박꼬박 대꾸를 해주던 밀튼이 속으로 화를 삼켰다.
‘젠장! 대체 어떤 미친놈이 도박장에 언데드를 풀어놓은 거지?’
탈출하는 데 성공만 한다면, 얼마를 들여서라도 범인을 꼭 족치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이 문만 지나면 안전하다!’
밀튼이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굳게 닫힌 문을 거칠게 열었다.
열린 문틈으로 밤의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고, 한 남자가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왔어? 생각보다 조금 늦었네.”
온몸을 감싼 칠흑의 경갑, 허리춤에 달린 허름한 철검 한 자루.
그는 바로 카이였다.
***
‘나 판 한번 제대로 짰네. 아주 칭찬해.’
뿌듯한 마음에 카이의 어깨와 콧대가 높이 높이 올라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사단은 모두 카이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도박장의 특성상 경비대는 언제든지 들이닥칠 수 있어. 당연히 몰래 몸을 빼내는 길이 하나쯤은 있겠지.’
어떻게 밀튼을 만날 수 있을 지 고민을 하던 카이는, 발상을 전환했다.
‘내가 들어갈 수 없다면, 저 녀석을 나오게 하면 되잖아?’
하지만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그와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 터!
그래서 생각한 것이 소란을 피워서 밀튼을 비상 출입구로 도망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작전명 너구리 굴 태우기.’
시나리오를 짠 카이에게 필요했던 건 비밀 출입구에 대한 정보뿐이었다.
그 정보가 메뉴얼에 적혀 있을 것이라는 카이의 예상은 멋지게 들어맞았고, 카이는 놀 언데드들을 소환해 도박장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한편, 본인은 유유히 도박장을 나와 비밀 통로의 출구에서 밀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네놈이 내 영업장에 언데드를 풀어놓은 놈이냐?”
밀튼이 도끼눈을 뜨며 카이를 노려봤다.
딱히 그 사실을 부정할 생각이 없는 카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음에 드나 모르겠네. 보다 보면 제법 귀여운데. 춤도 잘 추고.”
“정신 나간 새끼가! 이곳의 하룻밤 수익이 얼마인 줄 알고!”
머리끝까지 화가 차오른 밀튼은 발로 땅을 쿵쿵 찍어댔다.
그 모습에 카이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신 나간건 너고. 지금 하룻밤 수익 따위를 걱정할 때가 아닐텐데….”
“시끄럽다! 어이! 저 새끼 내 앞에 끌고 와!”
밀튼의 명령을 받은 스네이크 형제들이 목을 돌리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동생인 화이트 스네이크는 짧은 단도 두 개를 사용했고, 형인 블랙 스네이크는 장도 한 자루를 즐겨 사용했다.
스르릉.
그들이 살심을 품고 다가오자, 카이는 경매장에 구매한 노말 등급의 철검을 뽑았다.
깨달은 자의 롱소드는 레벨 제한 때문에 아직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그의 철검은 고작 20실버짜리라서 빈말로도 상태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 검술 배운지 얼마 안 돼서 봐주거나 그런 거는 못해.”
“해치워!”
밀튼의 고함 소리와 동시에 사내들이 달려들었다.
카이는 침착하게 자세를 낮추며 후이 관장의 가르침을 되새김질했다.
-자세를 낮추고 시야를 넓혀라.
-숨을 크게 쉬어라. 산소를 끊임없이 뇌에 공급해라. 전투가 벌어지기까지는 가슴으로,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는 머리로 행동해라.
-적의 무기를 보지 말고, 팔과 다리. 손목과 발목의 움직임을 주시해라. 적이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힌트가 그곳에 있다.
-검을 뽑은 이상 망설이지 마라.
-넌 허접이다. 검을 들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허약한 사제이기 때문이지. 그들과의 차이에 절망을 하기보다, 너만의 장점을 내세워라.
불과 일주일밖에 안 되는 짧은 가르침이었지만, 후이는 능력 있고 좋은 관장이었다.
그가 지시했던 기본 훈련은 카이의 신체 스탯을 10 정도씩 증가시켜줬고, 그것은 검술의 기본기를 이뤄주는 뼈대가 되었다.
‘저들과 나의 차이.’
카이는 전사들처럼 힘 스탯이 높지도 않았고, 궁수나 도적들처럼 민첩이 높은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그들과 검을 맞대며 싸운다 해도,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나의 본질은 사제!”
그렇다면 자신만의 방법으로 싸움에 임해야 한다.
누군가의 뒤를 따라가서는 평생이 가도 그들을 추월할 수가 없다.
“태양의 축복, 태양의 갑옷, 블레스, 빛의 방어막, 원기 회복의 샘!”
카이는 자신에게 버프를 거는 한편, 자신의 등 뒤에 샘을 설치했다.
그사이 두 자루의 단도를 사용하는 화이스 스네이크가 카이의 품을 파고들었다.
‘끝났다.’
그 모습을 목격한 밀튼과 블랙 스네이크가 긴장감을 탁 놓았다.
여태껏 그들이 수도 없이 봐왔던 모습이었고, 여기서 이어지는 상황 역시 항상 똑같았다.
“죽어라!”
단도가 카이의 심장과 명치를 노리며 쏘아졌다.
푸욱, 푹!
[급소를 공격당했습니다. 2,71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급소를 공격당했습니다. 2,805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늪 거미의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초마다 생명력이 150만큼 줄어듭니다.]
“큭, 이제 눈치챘나 보군. 이 단검에는 치명적인 독이 발라져 있다.”
화이트 스네이크는 곧 비명을 지를 카이의 모습을 기대하며 혀로 입술을 훑었다.
하지만 카이는 그 와중에도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나만의 전투 방법.’
압도적으로 강하지도, 압도적으로 빠르지도 못하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 있는 것은 있다.
‘신성력과 체력.’
사제가 집중적으로 올리는 기본 스탯이었다.
그랬기에 현재 카이는 탱커 클래스 다음으로 체력이 높았다.
게다가 그의 무기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햇살의 따스함.”
[5,515의 체력을 회복했습니다.]
[상태이상 ‘중독’ 효과가 해제되었습니다.]
전사와 기사들이 눈앞의 적을 모두 쓸어버리는 최강의 창이라면, 카이는 아무리 맞아도 죽지 않는 최강의 방패였다.
덥석!
벼락처럼 움직인 카이의 손이 화이트 스네이크의 손목을 잡았다.
중독을 당한 카이가 자신의 손목을 우악스럽게 쥐자, 화이트 스네이크가 크게 당황했다.
‘뭐, 뭐지? 어떻게 중독을 당한 몸으로 이런 움직임…… 가만! 이 녀석, 안색이 멀쩡하다!’
그 말은 중독되지 않았다는 소리!
또옥!
미지에 대한 공포 한 방울이 호수처럼 평온하던 화이트 스네이크의 마음에 떨어졌다.
그 자그마한 공포가 화이트 스네이크의 몸을 잠깐이나마 굼뜨게 만들었다.
카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대편 손으로 철검을 휘둘렀다.
“크윽!”
철검이 화이트 스네이크의 심장을 찌르기 직전, 카이의 손목을 뿌리친 그가 뒤로 크게 물러났다. 카이는 가만히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실수를 인정했다.
‘저 녀석들의 힘 스탯이 더 높아. 공격력과 속도로는 저들을 능가할 수 없어.’
그것이 중요한 순간에서의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막막한 감정을 느끼며 한숨만 내쉬었을 터!
‘하지만 지금은 방법이 있지.’
카이는 곧장 인터페이스창을 켜 타이머를 설정했다.
“18초로 설정.”
[타이머가 18초로 설정되었습니다.]
[18, 17…….]
타이머가 흘러가기 시작한 순간, 카이가 자신의 첫 번째 유니크 스킬을 활성화했다.
“신성 폭발.”
시전과 동시에 그의 몸이 마치 찜질방에라도 온 것처럼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모든 스탯이 30 상승하셨습니다,]
온몸에선 힘이 넘쳐흘렀다.
“후우, 여름에는 사용 못 하겠는데?”
피식 웃은 카이는 그 힘을 여유롭게 만끽하기보다, 적들의 상태부터 살폈다.
‘내가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길어야 15초야. 1초도 허투루 사용할 순 없어!’
철검을 단단히 쥔 카이의 신형이 그대로 앞으로 쏘아졌다.
“어엇? 이, 이 녀석 갑자기 움직임이……!”
카이의 검을 피해 뒤로 크게 물러나 있던 화이트 스네이크가 경악했다.
조금 전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카이의 모습에 깜짝 놀란 것이다.
아까의 속도가 화살 같았다면, 지금은 마치 총알 같았다.
푸욱! 푸욱!
이번에야말로 화이트 스네이크의 심장을 꿰뚫어버린 카이의 공격!
“크아아악!”
그의 체력이 순식간에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보다 못한 블랙 스네이크가 앞으로 뛰쳐나왔다.
“이 미친 새끼가 감히 내 동생을!”
한 자루의 장도가 달빛을 머금으며 그대로 카이의 목덜미를 노렸다.
그 검을 똑바로 쳐다보던 카이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어차피 한 번, 두 번 피한다고 끝날 싸움이 아니야. 그렇다면…….’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카이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검이 자신의 목을 찌르는 것을 똑똑히 지켜봤다.
푸욱!
[급소를 공격당했습니다. 3.518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고통은 심하지 않았다.
뭉툭한 볼펜 끝으로 살짝 누르는 정도의 감촉 정도.
어차피 게임이니까.
‘뭐, 뭐야. 이 공격을 안 피한다고……?’
오히려 공격을 성공시킨 블랙 스네이크가 크게 당황했다.
그들 형제는 뒷골목에서 살아남기 위해 잔혹하고 독해져야만 했다.
그것은 그들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었고, 결국 뱀처럼 독하다고 하여 스네이크 형제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였다.
‘그런 우리보다 정신 나간 녀석이 있었을 줄이야!’
자신의 목에 검이 박히는 데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독종!
그건 자신이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확신이 있는 플레이어조차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사물이 다가올 때 눈을 감는 것은,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이니까.
“자, 이제 내 차례지?”
카이는 붙잡고 있던 화이트 스네이크의 손목을 놓아버렸다.
심장을 여러 차례 찔린 그는 비틀거리며 쓰러졌고, 카이는 자신의 목에 박힌 블랙 스네이크의 장도를 콱 움켜쥐었다.
“크윽!”
자신의 장도가 카이의 목과 손바닥에 붙잡혀 빠지질 않자, 블랙 스네이크가 검을 놓고 뒤로 빠졌다.
“어딜!”
번뜩!
카이의 철검이 벼락처럼 좌에서 우로 그어졌다.
“수평 베기!”
카이가 지난 일주일 동안 무려 8만 번씩 휘두른 노력의 산물!
어떠한 기교도 없지만 깨끗하고 담백한 검격은 녀석의 목울대를 번개처럼 베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