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힐통령 031화
14장. 지하도박장(3)
“커, 커르륵!”
갈라진 성대에서 핏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카이는 피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고집 하나만큼은 둘째가라 하면 서럽겠구나!
무려 후이 관장조차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카이의 고집!
카이는 뒤로 물러나는 블랙 스네이크의 가슴에 고집스럽게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꺼허억…… 허으윽!”
녀석은 한 차례 부들부들 떨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직 HP가 남아 있긴 했지만, 출혈 때문인지 HP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잠시 그의 모습을 내려다보던 카이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검을 뽑은 이상, 망설이면 안 돼.’
자신은 약하기에 절대 누구를 봐줄 입장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상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놓을 때까지, 목덜미를 물고 놓아줘서는 안 되었다.
“커허, 꺼억…….”
블랙 스네이크의 입에서 까맣게 죽은 피들이 역류했다.
“이 녀석은 이제 끝났어.”
카이는 고개를 돌려 화이트 스네이크를 쳐다봤다.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도망을 치는 중이었다.
“허, 제 형이 죽어가는 데도 도망칠 생각뿐이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카이는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홀리 익스플로전.”
콰아아앙!
빛의 폭사와 함께 비상 출입구 벽이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돌덩이에 깔린 화이트 스네이크가 무사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전투의 끝을 알리는 소리가 찾아왔다.
[흉악한 범죄자, 블랙 스네이크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가 15,000 상승하셨습니다.]
[명성이 70 상승하셨습니다.]
[범죄자를 처치했습니다. 선행 스탯이 1 상승하셨습니다.]
[흉악한 범죄자, 화이트 스네이크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가 14,500 상승하셨습니다.]
[명성이 65 상승하셨습니다.]
[범죄자를 처치했습니다. 선행 스탯이 1 상승하셨습니다.]
카이가 검을 들고 치른 첫 번째 전투였다.
빈말로도 깔끔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승리했다.
[신성력이 부족하여 신성 폭발 스킬이 취소되었습니다.]
[신성력이 모두 고갈되었습니다. 30% 이상이 될 때까지 모든 능력치가 10% 하락합니다.]
‘이런 페널티도 있구나.’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신성 폭발은 양날의 검이었다.
그야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
주는 것이 많은 만큼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았다.
“그래도 효과는 끝내주니까 뭐…….”
신성 폭발이 없었다면 스네이크 형제들을 이토록 쉽게 처리할 수는 없었을 터!
카이는 메시지창을 슬쩍 확인했다.
‘범죄자를 처치해도 선행 스탯이 오르는구나.’
선행 스탯을 올릴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발견된 것이었다.
이것으로 카이는 알고 있는 선행 스탯을 올리는 방법이 총 세 가지가 되었다.
‘하나는 곤경에 빠진 NPC들의 퀘스트를 완료하는 것, 다른 하나는 NPC들의 마음의 병을 치료해 주는 것. 그리고 마지막이 범죄자들을 처치하는 것. 이렇게 세 개야.’
이 밖에도 더 많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사실이 카이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아주 좋은 밤이야.”
카이는 밀튼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오, 오지 마라……!”
밀튼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뒷걸음질을 치면서 말해봐야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으아아악!”
“미, 미안하네. 밀튼 사장!”
한스와 VIP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를 버리고 도망쳤지만, 카이는 그들을 추격하지 않았다.
스윽.
밀튼의 목덜미에 피가 뚝뚝 흐르는 철검을 가져다 대자, 밀튼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자, 우리 사장님. 제 발로 걸어가는 방법이 있고, 제 발로 못 걸어가는 방법이 있는데, 어떻게 하시려나?”
“으으으…….”
선택지는 두 개였지만, 밀튼이 고를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
“오오.”
밀틀의 전신을 꽁꽁 포박해 아르센 남작에게 끌고 가자,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겠지만…… 솔직히 사제의 몸으로 일을 이렇게 깔끔하게 처리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네.”
“운이 좋았죠.”
“운 또한 실력이네. 특히 자네처럼 여러 장소를 떠돌아다니는 모험가라면, 운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든든한 힘이 되는 법이지.”
아르센 남작은 기사들에게 밀튼을 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한 뒤, 그의 재산을 영지로 귀속시켰다.
“자,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선언하겠네. 자네는 내가 내린 시험을 완벽하게 통과했어.”
띠링!
[글렌데일의 범죄 소탕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험치가 75,000 상승하셨습니다.]
[명성이 700 상승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탯 포인트를 5개 획득하셨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을 확인하던 카이에게 아르센 남작이 물었다.
“그럼 약속했던 보상을 줄 차례로군. 던전에 대한 정보를 말해줄 수도 있고, 자네가 원하던 것처럼 내 개인적인 부탁을 의뢰할 수도 있네. 한 번 골라보게.”
“음…….”
이 부분은 카이도 많은 고민을 했었다.
던전에 대한 정보를 선택하면, 자신이 그 던전을 클리어한 뒤 정보를 판매함으로써 일거양득의 효과를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던전은 운이 좋으면 스스로 찾을 수도 있는 반면, 남작이 직접 내려주는 히든 퀘스트는 다른 경로로는 절대로 구할 수가 없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답은 나온 셈이었다.
“저에게 남작님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카이가 당당하게 자신의 보상을 요구하자, 아르센 남작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자네처럼 맡은 바 일에 책임을 다하고, 실력이 좋은 모험가에게는 걱정 없이 의뢰를 맡길 수 있겠지.”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운을 띄웠다.
“사실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요즘 큰 걱정이 하나 있다네.”
“경청하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아르센 남작이 흘리는 문장의 단어 하나, 토씨 하나라도 흘려들어선 안 되었다.
그 모든 것이 퀘스트의 힌트가 되고 정보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카이가 두 귀를 쫑긋 세웠다.
“조만간 기사들과 병사들, 모험가들까지 포함한 토벌대를 하나 꾸릴 예정이네.”
“토벌대요?”
카이는 머릿속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읽고 있는 게임의 기사 내용들이 떠올랐다.
‘글렌데일의 토벌대라. 주변에 토벌대를 결성할 정도의 적은…… 없는데?’
하지만 아르센 남작이 아무런 이유 없이 토벌대를 만들지는 않을 터!
카이의 목소리가 더없이 진중해졌다.
“상대가 누구든 맡겨만 주십시오.”
“껄껄, 믿음직스럽군. 혹시 오크 족의 주술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오크 주술사요……?”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크란 본디 뇌까지 근육으로 똘똘 뭉친 전사 타입의 몬스터!
그런 녀석들이 마법을 쓰는 모습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커뮤니티에서도 오크 주술사에 대한 정보는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어.’
카이가 고개를 흔들자, 아르센 남작이 설명을 덧붙였다.
“아주 오래전에 학회에 발표된 적이 있는 희귀 개체일세. 한데 이번에 글렌데일의 오크 부락 깊숙한 곳에서 녀석이 발견되었다네. 주변에 그런 녀석이 나타났으니 영주 된 입장에서는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지.”
“강한가 보죠?”
“끄응. 그걸 모르니 더욱 골치가 아픈 걸세.”
아르센 남작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겠다니요? 그들을 목격한 이들이 있을 것 아닙니까.”
“오크 부락의 중심에 위치한 녀석을 처리하고자 병사들을 몇 번 보내봤지만, 먼발치에서 녀석의 얼굴만 겨우 본 채 모두 도망쳐왔더군. 오크 워리어와 히어로들이 첩첩산중으로 녀석을 지키고 있네. 게다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녀석은 희귀 개체인지라 관련 논문들을 뒤져봐도 기록이 별로 없더군.”
“그런…….”
글렌데일 정도의 도시라면 병사라고 할지라도 레벨이 80은 넘는다.
그런 이들조차 쉽게 뚫지 못하는 오크들의 벽이라니!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놈의 등장에 카이가 식은땀을 흘렸다.
“자네에게 정식으로 의뢰하도록 하겠네. 토벌대와 함께 오크 부락의 중심에 당도해, 오크 주술사를 처치해주게.”
띠링!
[오크 주술사 퇴치]
난이도 : B-
아르센 남작은 최근 나타난 오크 주술사 때문에 마음이 편할 날이 없습니다. 오크 주술사를 처치하여 아르센 남작의 근심을 없애고, 글렌데일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주십시오.
퀘스트 보상 : 유망주 칭호 획득, 아르센 남작의 호감도 상승, 특별한 선물 획득.
실패 페널티 : 아르센 남작의 호감도 하락.
얻을 수 있는 보상에 비해 페널티는 없는 수준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특별한 선물? 저건 또 뭐야?’
가끔 이렇게 정체불명의 보상을 추가적으로 주는 퀘스트가 있었다.
‘이건 받기 전에는 모르지.’
그래도 무려 남작이 주는 선물이니 가치가 낮지는 않을 것이다.
카이는 짧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네만 믿겠네. 아, 그리고 추가적으로 제안을 할 것이 있는데…… 혹시 토벌대에 참여할 모험가들을 이끌어주지 않겠는가?”
아르센 남작의 뜬금없는 제안에 카이가 눈만 깜빡거렸다.
나쁜 제안은 아니었지만, 통솔하는 것이 유저들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혹시 토벌대에 모험가를 몇 명 정도 참여시킬 생각이신지 알 수 있나요?”
“흠.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300명 정도가 될 것 같군.”
“3, 300명이요!?”
카이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토벌대 규모가 엄청 큰데?’
하긴, 조그마한 사냥터도 아닌 오크 부락 지역을 토벌하는 것이니 규모가 클 법도 하다.
만약 카이가 모험가들을 이끌고 오크 주술사를 성공적으로 처치한다면, 그의 명성이 대폭 상승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꼬이는 벌레들도 많아지겠지.’
오크 부락의 중심은 카이가 실력을 감추면서 여유롭게 사냥할 수 있는 곳이 절대 아니었다.
명성과 보상이 탐나긴 하지만, 지금 유저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도 없었다.
정보란 숨기면 숨길수록, 손에 틀어쥔 채 풀지 않을수록 그 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토벌대에 속해서 사냥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직업 기술을 써야 할 때가 올 수도 있어. 그렇게 된다면 다른 유저들이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겠지.‘
카이의 입장에서는 절대 반길 수 없는, 무엇보다 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현시점에서 나에 대한 정보의 가치는 미드 온라인에서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으니까.’
이유는 그가 유일무이한 신화 등급 직업의 플레이어이기 때문!
‘터뜨리는 건 조금 더 나중이 되어야 해. 힘을 좀 더 키우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을 때.‘
그때야말로 카이가 태양의 사제로서 유저들 앞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 될 것이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지금의 저에게는 너무 과분한 자리인 것 같습니다.”
“흠.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본인이 그렇다면 굳이 강요할 생각은 없네.”
한국인이라면 못 해도 세 번은 물어보는 법이거늘!
아르센 남작은 라시온 왕국인인지라 그런 것이 없었다.
‘물론 나는 전면에 드러날 생각이 없지만, 이 기회를 다른 유저에게 줄 수도 없는 법이지.’
그야말로 고약한 심보!
하지만 본래 자신의 것이었어야 할 것을 남이 가지면 더욱 배가 아픈 법!
카이는 고민 끝에 슬며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