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2화 (32/441)

# 32

힐통령 032화

15장. 사전 조사

“남작님. 혹시…… 제가 거절한 통솔자의 자리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음? 아마 토벌대에 가입 신청을 한 모험가 중에서 명성이 높은 자를 앉히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다른 의견이라도 있는가?”

“제 생각에는 토벌대의 대장이 모험가들의 통솔도 병행하는 것이 나은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뭔가?”

아르센 남작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자신이 꺼낼 말을 두 번, 세 번 생각한 카이는 완성된 문장을 입에 담았다.

“이 토벌대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글렌데일이지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모험가들은 대부분 성장에 목을 말라 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이 자체적으로 통솔권을 쥐게 된다면, 공헌도를 높이기 위해 무리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흐음, 모험가들의 탐욕이야 익히 알고는 있지…… 그러니 아예 토벌대장으로 하여금 그들의 고삐를 강력하게 쥐어라?”

“물론 아르센 남작님이 판단하실 문제입니다.”

“으으음…….”

잠시 고민을 하던 아르센 남작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괜찮은 것 같네. 모험가들은 모험가들이 잘 알 거라고 생각해서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통솔권을 넘겨줄 생각이었는데…… 확실히 내 병사들의 목숨이 달려 있는 만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모험가들은 철저히 통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대신에.”

“대신에……?”

“자네는 토벌대장의 옆에서 어느 정도 조언을 해줘야 하네. 아무래도 우리는 모험가들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니까 말일세.”

“그 정도라면…… 물론입니다.”

카이의 안색이 밝아지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원하던 것을 얻었을 때 자주 나오는 미소였다.

‘내가 원하던 상황이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내 재량껏 활약할 수 있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만약 그가 토벌대장과 친해질 수 있다면, 이런저런 편의를 받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명심하게. 내 수하들이지만, 기사들의 자존심은 높아. 만약 자네가 사사건건 참견을 하면 그들의 화를 불러일으킬 걸세.”

“명심하겠습니다.”

카이가 제법 뻔뻔한 건 사실이었지만, 기사들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할 정도로 양심이 없지는 않았다.

‘글렌데일 쪽의 기사들이면 레벨이 최소 120은 될 텐데, 내가 어떻게 까불어?’

기사들이 까불어달라고 떠밀어도 거절해야 할 상황이었다.

누울 자리도 방구석 넓이를 봐가면서 다리를 뻗어야 하는 법!

카이는 자신의 편의를 봐준 남작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닐세. 나야말로 부탁하지. 부디 오크 주술사를 꼭 처치해 주게.”

아르센 남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토벌대는 오늘로부터 한 달 후에 출정을 할 예정이네. 모험가들을 영입하는 건 대략 3주 정도가 흘렀을 때겠군.”

“3주…….”

일정은 카이의 생각보다 훨씬 여유로웠다.

“자네는 그때까지 조금 더 성장을 해두는 편이 좋겠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오크 주술사를 처치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세. 녀석을 지키는 오크 워리어와 오크 히어로들부터 뚫어야 할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토벌대가 결성되는 날까지 실력을 키워야겠군요.”

“충고를 하자면 오크들과의 전투를 미리 경험해 놓는 것이 좋을 걸세.”

말을 마친 아르센 남작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하려는 카이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

던전을 공략하는 자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작게는 포션이나 장비 수리 킷부터 시작해서, 조금 크게는 믿을 수 있는 동료들과 높은 등급의 아이템들까지! 하지만 모든 것들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였다.

‘흐음, 하녹스의 시련에 대한 정보가 없네.’

카이는 시간이 날 때마다 커뮤니티 사이트를 열심히 뒤져봤지만, 아쉽게도 건질 만한 정보는 없었다.

‘이대로는 곤란해.’

던전은 온갖 위험요소로 가득 차 있는 미지의 영역이다.

준비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조그마한 차이가 던전 공략의 성공 여부를 결정지을 정도!

‘돈을 써야 한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이런 경우에 쓸 만한 방법이 하나 있지.’

카이가 발걸음이 향한 곳은 글렌데일의 시립 도서관이었다.

돈이 많았다면 정보 길드로 향했겠지만, 고생은 더 하더라도 이쪽이 훨씬 더 싸게 먹혔다.

도서관에 들어가자 안내 데스크의 직원이 방긋방긋 웃으며 밝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1층을 이용하실 예정인가요?”

“2층까지 둘러보겠습니다.”

인벤토리에서 주저 없이 골드를 꺼낸 카이가 말했다.

도시마다 존재하는 시립 도서관 1층은 무료로 개방되지만 2층은 아니었다.

‘2층에 있는 책들의 가치가 훨씬 높기 때문이지.’

2층은 열람하는데 무려 1골드나 내야 하는 장소!

얼핏 보면 비싸다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으나, 지식의 보고(寶庫)라 불리는 곳의 정보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값싸다고 생각될 정도다.

‘1층에는 역시 사람이 많구나.’

1층에는 많은 수의 NPC와 모험가들이 책상에 책을 쌓아놓고 독서 중이거나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는 중이었다.

카이는 곧장 1층의 데스크를 지키고 있는 여자 사서에게 다가갔다.

“혹시 하녹스에 관련된 책자가 있습니까?”

“하녹스요? 처음 들어보는데……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고개를 갸웃거린 그녀는 책상 위의 마법 수정구를 조작해 뭔가를 입력했다.

잠시 마법 수정구를 이리저리 돌려보던 그녀가 탄성을 질렀다.

“아앗…… 찾았어요! 찾으시는 정보가 고대도시 하녹스. 맞지요?”

“네, 아마도요.”

카이가 미소를 지었다.

커뮤니티에서조차 찾을 수 없던 정보의 실마리를 드디어 잡았기 때문이다.

***

게임에서는 아이템 이름 앞에 ‘고대’라는 말이 수식어가 붙으면 자연스럽게 값어치가 높아진다.

하녹스가 고대도시라는 것을 알게 된 카이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관련 책자는 어디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죄송하지만 이와 관련된 책자는 2층으로 올라가셔야 해요.”

예상대로였다. 카이는 당황하지 않고 1골드를 지불하고 구매한 입장 티켓을 건넸다.

“아! 이미 2층 열람권을 구매하셨군요. 그럼 절 따라오세요.”

사서는 곧장 카이를 이끌고 2층으로 향했다.

병사들이 계단을 지키고 있었으나, 열람권을 지닌 카이는 여유롭게 통과할 수 있었다.

‘이곳이 도서관의 2층인가.’

카이도 그 존재를 일찌감치 알고만 있을 뿐, 직접 와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럴 것이 지금까지 도서관을 찾을 만큼 정보가 필요하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놀의 무덤은 예기치 못하게 입장했으니 준비할 시간이 없었기도 하고.’

2층은 1층에 비해 압도적으로 수가 줄었지만, 여전히 NPC와 플레이어들이 몇 있었다.

그들은 새롭게 2층으로 들어온 카이를 흘깃 쳐다보더니, 다시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에 다니던 독서실 같네.’

타인에게는 절대 3초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 삭막한 공간!

“이쪽으로 오세요.”

사서는 먼지 덮인 냄새가 나는 선반 쪽으로 카이를 이끌었다.

“으음…… 분명히 『대륙의 사라진 문명들』이랑 『고대 전사의 길』이 이쯤에 있었을 텐데…….”

잠시 선반을 뒤적거리던 그녀는 짤막한 탄성을 터뜨리더니,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 두 권의 책을 뽑아왔다.

“쿨럭, 쿨럭…… 아우 먼지야. 여기 있어요.”

책을 받아든 카이는 먼지를 툭툭 털어내는 사서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헤헤, 뭘요.”

“…….”

짤막한 대꾸를 한 사서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카이를 빤히 쳐다봤다.

게다가 뭔가를 원하는 듯 꼼지락거리는 그녀의 손가락!

‘……아, 수고비.’

그 의미를 알아챈 카이는 곧장 5실버 정도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헤헤, 감사합니다!”

그제야 밝게 웃은 사서가 자리를 떠나려 하자, 카이가 그녀의 소매를 급히 붙잡았다.

“……왜 그러세요?”

5실버를 꼬옥 끌어당기며 경계의 빛을 띄우는 사서 소녀!

카이는 양손을 들어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는 제스쳐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혹시 밤에 잠을 잘 못 주무시지 않으세요?”

“앗…… 그걸 어떻게……?”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의 말대로, 요즘 들어 심해진 불면증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것이 일쑤였기 때문이다.

“딱 보면 아는 거죠, 뭐. 다크써클이 짙으니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을 테고, 눈도 퀭해 보이니 자다가도 여러 번 깰 것 같고.”

“마, 맞아요. 원래부터 불면증이 있었는데, 요즘은 과로 때문에 증상이 더 심해졌어요.”

사서가 울적한 표정으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에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 카이!

프리카의 마을 주민들을 치료해 주며 습득한, 사기꾼 같은 말발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증상은 때려 맞춘 거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면 피곤해 절어 있다는 건 굳이 카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

그걸 전문가답게 포장하는 기술이야말로 카이가 프리카에서 얻은 커다란 수확 중 하나였다.

“흐음…… 원래 이런 건 잘 안 해드리는 건데…….”

주변을 슬쩍 둘러본 카이는 손을 슬쩍 들어 올렸다.

“햇살의 따스함, 블레스.”

회복과 동시에 모든 상태 이상을 해제해 주는 최상급 치료 스킬!

게다가 일시적으로 모든 스탯이 상승하는 블레스까지 걸어주자, 그녀의 얼굴은 밝다 못해 보톡스라도 맞은 것처럼 빵빵해졌다.

“이건……?”

“일단 거울부터 보시죠.”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이가 내민 거울을 받아들인 그녀가 감탄했다.

“어, 어머! 피부 좀 봐…… 요즘 피부가 퍼석해 보였는데…….”

거울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미소를 짓는 사서!

카이는 뒷짐을 진 채 헛기침을 삼켰다.

“크흐흠. 자비로운 태양신께서는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도우라고 하셨지요.”

“아앗, 태양교의 사제분이셨군요?”

카이는 아무 말 없이 태양교의 사제를 의미하는 목걸이를 슬쩍 꺼내 흔들어 보였다.

이를 확인한 사서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어머, 정말이네요. 태양교의 사제님에게 축복을 받으면 피부가 좋아진다는 말이 사실이었어!”

그녀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주머니를 뒤지더니 5실버를 도로 꺼냈다.

“태양교의 사제분에게까지 수고비를 받을 수는 없어요. 부디 도로 가져가 주세요.”

“허허,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서…….”

“그렇군요.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

두 번 거절은 하지 않는 카이!

잠시 미묘한 표정을 짓던 사서는 고개를 숙이더니 1층으로 내려갔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카이는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춤을 췄다.

‘태양 만세!’

사실 카이가 뜬금없이 그녀를 치료해준 것은 오늘 아침 커뮤니티에서 신기한 글을 봤기 때문이었다.

[요리사 클래스의 유저입니다. 꿀팁 공개합니다.]

-현재 바덴 성에서 조그마한 양식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유저입니다. 아무래도 가장 잘 팔리는 메뉴가 레드 보어의 스테이크이다 보니 매일 아침 신선한 재료를 구매하기 위해 주마다 한 번 근처의 보어 사냥터에서 고기를 구매합니다. 그리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바덴 성은 통행세만 50실버를 받는 곳이지요. 사실 어떻게 보면 그 병사분들이 현실의 경찰과 같은 존재이지 않습니까? 고마운 마음이 들어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은 음식들은 성문을 통과할 때 한 번 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 성문을 통과하려는데 병사가 통행세를 받지 않더군요. 아마도 요리를 줬더니 NPC의 호감도가 오른 것 같습니다. 생산직 클래스의 유저시라면 이런 식으로 본인이 만든 작품이나 요리 등을 통해 통행세 면제를 받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오, 나름 꿀팁인데?

-전 화가인데, 제 그림을 받은 경비대장이 맨날 술 먹자고 하더군요. 저만 아는 팁인 줄 알았는데…….

└그런 건 같이 공유 좀 합시다.

-거짓말 아닌가요? 저도 성문 지나갈 때마다 병사들한테 요리를 주는데, 오히려 통행세가 늘어나던데요?

└그건 님이 요리를 더럽게 못해서 그런듯.

└얼마나 맛 없으면ㅋㅋㅋ 안 쫓아낸 병사가 보살급이네.

‘호오…….’

그 글을 봤던 카이로서는, 혹시 힐이나 축복으로도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었다.

‘결과는 대성공, 이건 제법 유용하겠어.’

환한 미소를 지은 카이는 적당한 책상 하나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그럼 우선 『대륙의 사라진 문명들』부터 읽어볼까.”

카이는 조용히 독서를 시작했다.

역시 도서관이라 그런지, 주변에서는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조용히 맴돌았다.

이 기세로 공부를 했다면 한국대학교도 통과했을 정도의 집중력!

카이는 책을 편 지 2시간 만에 『대륙의 사라진 문명들』를 모두 읽었다.

‘이 책에는 내가 원하는 정보가 없어.’

분명 책의 내용 중에는 하녹스라는 고대도시의 정보가 수록되어 있었지만, 단순한 정보들만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 책에 따르면 하녹스는 고대시대에 용맹한 전사들을 최고로 치던 부족 형식의 도시야.’

모든 것이 힘으로 귀결되는 약육강식의 도시!

대체 성기사인 패트릭이 왜 그런 야만적인 도시의 시련을 후대에 남긴 것일까?

카이는 그 궁금증을 『고대 전사의 길』이 풀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사라락.

다시 이어지는 책장을 넘기는 소리.

카이는 담담한 눈빛으로 책을 구석까지 꼼꼼하게 읽었다.

‘……찾았다!’

시간이 제법 흘러 허리가 아파오려던 찰나, 하녹스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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