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3화 (33/441)

# 33

힐통령 033화

16장. 거미의 숲(1)

[하녹스는 고대 전사들로 이루어진 고대의 도시이다. 이곳의 주민들은 강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으며, 아이가 성인이 되면 시련의 장이라는 곳에 보내어…….]

글을 읽던 카이의 눈이 그 자리에서 우뚝 멈췄다.

‘시련!’

자신이 애타게 찾고 있던 정보가 이 책에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급해진 카이는 책을 읽는 속도를 조금 더 높였다.

[고대 서적에 따르면 시련의 장은 강인한 전사를 시험하는 장소이다. 이곳을 통과하려면 완성된 전사의 필수 요소인 용기와 지혜, 힘이 필요하다. 세 가지 중 하나만 부족하더라도 시련을 통과할 수 없으며, 시험에 통과 못 한 아이는 자랑스러운 전사로 인정받지 못하고 도시의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는 잡부가 되었다…….]

이후로 책을 조금 더 읽던 카이는 책을 덮었다.

하녹스의 시련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끝났기 때문이다.

‘비록 시련을 공략할 방법은 쓰여 있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해.’

던전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얻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레벨을 올리는 것뿐이었다.

‘겸사겸사 신성 폭발의 감각도 조금 더 연습해야 하고.’

스네이크 형제들을 상대할 때처럼 성력이 고갈되는 일을 또 겪을 순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카이는 미련 없이 도서관을 나왔다.

비록 2시간 만에 1골드라는 거금이 깨졌지만, 수확은 차고도 넘쳤다.

***

“자, 이 도시에는 어떤 퀘스트들이 있을까요.”

글렌데일의 중앙 광장에 도착한 카이는 퀘스트 게시판을 뒤적거렸다.

오크 부락에서 사냥을 하면서 병행할 퀘스트를 찾기 위함이었다.

“이건 레벨이 60 이상이니까 패스. 이건…… 힘이 140 이상인 모험가만? 조건들이 전부 까다롭네.”

머리를 벅벅 긁은 카이가 자신의 스탯창을 확인했다.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56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16,000

신성력 : 22,800

능력치

힘 : 77 체력 : 160

지능 : 68 민첩 : 77

신성 : 228 선행 : 38

남은 스탯 : 50

캐스팅 시간 -30%

스킬 쿨타임 –9%

받는 피해 -3%

어느새 모아놓은 스탯만 무려 50개!

카이는 그 수치를 볼 때마다 적금을 들어놓은 것처럼 든든했다.

‘일단 토벌대가 결성되기 전까지의 목표는 두 가지.’

하나는 60레벨을 찍어 ‘깨달은 자의 롱소드’를 장착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하녹스의 시련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음, 생각보다 할 만한 퀘스트가 별로 없네. 도시라서 그런지 퀘스트가 금방금방 나가는 느낌이야.’

좋은 조건의 퀘스트가 쉽게 보이지 않자 카이가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노파 하나가 그의 옆을 지나쳐 게시판에 새로운 종이를 정성스럽게 붙였다.

‘새로운 퀘스트다.’

그 장면을 목격한 주변의 유저들이 눈을 빛내며 퀘스트를 확인했다.

“에이, 뭐야.”

“쯧.”

“……하아.”

하지만 내용을 확인하는 즉시 혀를 차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유저들!

카이는 그들의 행동을 보고 퀘스트의 내용을 짐작했다.

‘보상이 안 좋나 보네.’

퀘스트라는 건 병행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보상이 크게 나쁘지 않으면 웬만해서는 수락을 하는 편이었다.

‘그러니 저 유저들이 전부 외면했다는 건 보상이 안 좋다는 뜻이겠지.’

카이는 노파가 붙인 종이로 다가가 내용을 확인했다.

[실종된 손자]

난이도 : C-

글렌데일의 주민인 데바의 손자 로디는 장래희망이 용병인 소년입니다. 그는 항상 밝고 씩씩했지만, 며칠 전 용병이었던 부모님이 거미의 숲에서 실종되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부모님을 찾겠다며 낡은 철검 한 자루만을 움켜쥔 채 거미의 숲으로 떠났지만 나흘째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거미의 숲에서 로디와 그의 부모님을 수색하십시오.

퀘스트 해결 조건 : 로디 가족의 생존 유무를 확인하라. 만약 그들이 죽었을 시, 유품을 데바에게 가져다주자.

퀘스트 보상 : 데바의 오래된 동화책, 23실버.

“역시.”

보상 부분의 메리트가 확실히 떨어졌다.

거미의 숲은 단순한 사냥터가 아니라, 오크 부락과도 연결되는 거대한 지역이었다.

그곳에서 실종된 사람을 찾는다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

그만한 노력을 하는 것에 비해 보상은 빈약하다 못해 없다고 생각될 지경이다.

‘하지만…….’

카이는 슬쩍 고개를 돌려 퀘스트를 등록한 노파, 데바를 쳐다봤다.

퀘스트를 게시판에 올렸으면 돌아가도 될 법한데, 그녀는 제자리에서 발발 동동 굴리며 자신의 의뢰를 지나치는 모험가들을 슬픈 눈으로 쳐다보는 중이었다.

“아, 근데 진짜 안 되는데.”

벅벅.

카이가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옆머리를 긁었다.

‘레벨 업도 해야 되고, 오크 부락에서 실전 경험도 쌓아야 돼. 그리고 하녹스의 시련까지 공략하려면 몸이 두 개여도 모자라. 아쉽지만 이건…… 포기하자.’

마음을 굳힌 카이는 다른 퀘스트를 찾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뒤쪽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야야, 이거 봐라?”

“뭔데?”

“이 개 쓰레기 같은 퀘스트는 뭐냐?”

“헐! 진짜네. NPC 양심 어디?”

“보상이 23실버, 그리고 구닥다리 책 한 권이야. 어지간히 양심이 없어야지.”

“야, 이런 건 이렇게 해야 제맛이지.”

북북!

퀘스트 종이를 떼어낸 뒤 이를 찢어버리는 유저들!

그들은 낄낄거리며 허공을 터치했다.

“그리고 퀘스트 포기를 누르면…… 쨘, 쓰레기 퀘스트 완벽하게 청소!”

“크으, 역시 머리가 좋다니까.”

“엣헴. 유저들 생각해 주는 건 우리밖에 없어요.”

“그렇지, 그렇지. 우리 같이 선량한 사람들 때문에 다른 유저들이 저런 쓰레기 퀘스트를 자동적으로 거를 수 있잖아.”

“아마 저 퀘스트 등록한 NPC는 자기 퀘스트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졌다는 걸 꿈에도 모를걸?”

“그게 또 재밌는 부분이지, 크크큭.”

그 장면을 목격한 카이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비단 카이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 유저들도 모두 눈살을 찌푸릴 정도!

하지만 그들에게 함부로 시비는 거는 이들은 없었다.

‘장비를 보니 레벨이 제법 높아 보이는데.’

‘가슴팍에 길드 마크도 박혀있고…….’

‘괜히 엮이면 피곤해지겠어.’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유저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있었다.

“제 손자…… 제 손자 로디와 아들, 며느리를 좀 찾아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모험가님들.”

그들이 의뢰를 수락했다고 착각한 데바는 그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이에 퀘스트를 포기한 유저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또 한바탕 웃었다.

“크하하하! 야, 이 할머니가 퀘스트 등록 했나 본데?”

“우리가 퀘스트 받았다고 착각하는 거 아니야?”

“할매요. 보상이 그렇게 거지 같으면 아무도 퀘스트를 수락 안 해요. 저희 덕분에 늘그막에 하나 배운 줄 아세요.”

절실한 그녀를 조롱하는 세 사람!

뒤늦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데바는 힘이 쭉 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여 땅만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카이가 크게 소리쳤다.

“저런, 싸가지……!”

“뭐 하냐?”

싸가지 삼인방의 곁으로 몇 명의 유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게다가 가슴팍에는 놈들과 똑같이 생긴 길드 마크까지 박고 있는 상태!

카이의 입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닫혀졌다.

“아, 길마 왔어? 아, 쓰레기 퀘스트 청소하고 있었지. 늘 하던 거.”

“적당히 해, 새끼야. 길드 이미지라는 것도 있으니까.”

선두에 서 있는 키 큰 남자가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싸가지 삼인방이 굽실거렸다.

“헤헤. 알았다고.”

“길마 말씀인데 들어야지.”

“그나저나…….”

삼인방 중 한 명이 웃으면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너, 방금 우리한테 싸가지가 어쩌고 하지 않았냐?”

“…….”

카이는 침착하게 실눈을 뜨며 그들의 머릿수를 파악했다.

‘……총 6명.’

지금의 카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숫자!

하지만 카이는 전혀 겁먹지 않은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런, 남은 음식을 미처 싸가지 못한 손님의 뒤를 쫓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들렸나요?”

“…….”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은 광장!

하지만 잠시 후, 싸가지 삼인방이 폭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이 새끼, 재미있는데?”

“크크큭, 안쓰러워서 한 번 봐준다!”

싸가지들은 카이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그대로 지나갔다.

부들부들!

온몸으로 굴욕을 표현해낸 카이는 멀리 떠나가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옆에 있는 유저 하나를 붙잡았다.

“저기요, 혹시 저 길드 이름이 뭔지 아세요?”

“흐음 붉은색 주먹이라…… 붉은 주먹이네요.”

“붉은 주먹이요?”

“네, 길드원이 저기 있는 6명이 전부예요. 그런데 소문이 좀…… 많이 안 좋으니 웬만하면 엮이지 마세요.”

고개를 갸웃거린 카이가 재차 질문했다.

“혹시 붉은 노을 길드랑 무슨 관련이 있나요?”

“예? 붉은 노을 길드라는 곳도 있어요?”

“…….”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가!

카이는 친절히 설명해 준 유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 뒤, 이마를 짚었다.

‘……길드 이름 앞에 붉은 자만 붙이면 다 저렇게 되는 건가? 아니면 싸가지 없는 놈들끼리는 뭔가 통하는 거라도 있나?’

카이는 언젠가 길드에 가입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붉은’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길드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붉은 주먹이라 이거지.’

은혜는 2배로 갚고, 원수는 생각이 날 때마다 이자까지 쳐서 갚는 것이 카이의 지론!

붉은 주먹 길드의 존재가 그의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되었다.

“아이구…… 아이구…….”

그런 카이의 눈에 바닥에 쭈그려 앉아 찢어진 종이들을 줍는 데바가 보였다.

“……아, 진짜 안 되는데.”

그 모습을 쳐다보던 카이가 피곤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내 팔자가 어디 가겠냐.‘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정말 고마우이, 정말…….”

“감사 인사는 손자분 찾아오면 그때 받을게요.”

결국 퀘스트를 받아들인 카이는 그녀의 손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나이는 14살. 녀석의 부모님이 조사한다고 떠난 장소는 거미의 숲 중앙 부근인가.‘

그것만으로도 수색 범위가 크게 줄어든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미니맵을 보고 자신이 가야 할 장소를 표시해둔 카이는 곧장 장비부터 점검했다.

‘장비 내구도 Ok, 인벤토리 공간 Ok, 밥도 충분히 먹었고, 잠도 잤어.’

그야말로 모든 준비가 완벽!

더 이상 준비할 것이 없던 카이는 곧장 거미의 숲으로 향했다.

“53레벨 이상 전사 구합니다!”

“화염 계열 마법사가 파티 구합니다, 레벨은 55예요!”

“최소 55레벨 이상으로 구성된 파티에서 탱커 구합니다! 바로 출발 가능해요!”

파티원 모집은 보통 도시의 광장이나 사냥터의 입구에서 하는 편이었다.

요즘 갑자기 인기가 된 거미의 숲에도 많은 유저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 저 녀석 아까 그 광장의 걔 아니냐?”

“응? 어디 어디?”

붉은 주먹 길드의 싸가지 삼인방이 거미의 숲으로 향하는 카이를 발견한 뒤 미소를 지었다.

“야, 가서 파티하자고 해봐.”

“뭐? 저 새끼랑 파티를 왜 해.”

“왜기는, 오랜만에 돈 좀 벌자고.”

“……아하. 그럴까?”

비열한 웃음을 지어 보인 싸가지 삼인방이 곧장 카이에게 다가갔다.

덥석!

누군가에게 다짜고짜 손목이 붙잡힌 카이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인연은 인연이네. 광장에서 보고, 여기서도 또 마주치고. 안 그래?“

“…….”

카이는 삼인방이 하는 말을 무시한 채, 차가운 눈으로 자신의 붙잡힌 손목을 쳐다봤다.

“너 딜러면 우리랑 같이 파티 할래?”

“우리가 전리품 배분 잘해줄게.”

“츄라이, 츄라이.”

[파티에 초대받았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

카이는 그들의 얼굴을 한 차례씩 쳐다보더니, 거칠게 손목을 빼내며 경고했다.

“남의 몸, 함부로 만지지 마시죠.”

“……뭐?”

“이 새끼 말하는 거 봐라?”

“너 우리 누군지 몰라? 아까는 설설 기어 다니던 놈이!”

대번에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화를 내는 싸가지 삼인방!

하지만 카이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 아까는 여섯 명이었고, 탁 트인 광장이었으니까.’

아르센 남작의 퀘스트를 수행 중인 도시에서 말썽을 피워봐야 좋을 게 없기 때문이지, 절대 이 녀석들이 무서운 건 아니었다.

“아무튼 전 남의 몸에 함부로 손대는 매너없는 사람들이랑은 파티 안 합니다. 그리고….”

[파티 신청을 거절하였습니다.]

파티 신청을 거절한 카이가 그들을 노려봤다.

“다음에 허락 없이 또 내 몸에 손대면, 그땐 죽는다.”

그 말을 남긴 카이는 그대로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입만 멍하니 벌린 채 그 모습을 쳐다보던 싸가지 삼인방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어어!”

“야, 거기 서라! 서라고 했다! 3, 2, 1……!”

“저 새끼가 안 서네!?”

싸가지 삼인방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경고를 했지만, 카이가 그딴 개소리를 들을 리 만무!

오히려 주위의 시선이 집중되자 삼인방의 표정만 썩어들어갔다.

“아오, 마스터가 적당히 몸 사리라는 말만 안 했어도…….”

“저 새끼…… 필드에서 만나면 바로 죽여버리자.”

“오랜만에 열 받게 만드네.”

그들은 한참을 투덜거리더니 길드원 하나를 더 호출했다.

“뭐야, 왜 불렀어?”

“몇 시간 째 벗겨 먹을 놈 구하고 있는데 오늘은 계속 실패하네. 그냥 사냥터에서 다른 파티 덮치자.”

“오랜만에 한탕 하려고? 좋지.”

새롭게 파티에 합류한 라크라는 탱커가 씨익 웃었다. 무언가 더러운 계획을 지닌 듯한 그들은 곧장 거미의 숲으로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