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5화 (35/441)

# 35

힐통령 035화

17장. 페르메의 둥지(1)

카이는 눈만 감아도 그들의 차원이 다른 싸가지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녀석들이 던전의 존재를 알아차리고도 쉽게 넘어갈 리 없지.’

휴고의 말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분위기도 크게 흉흉하지 않았습니다. 던전을 먼저 발견한 건 저희 파티였으니, 저희는 권리를 주장했지요.”

“그 녀석들이 말을 들을 리가 없었겠죠.”

“예. 처음에는 자신들이 던전을 먼저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당연한 말이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던전의 최초 발견 보너스를 저희 파티가 얻은 상태였거든요. 대화로 좋게 타일러서 그들을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기습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상성 또한 안 좋았죠.“

휴고가 자신의 활을 들어 보였다.

“저희는 거미의 숲에서 보다 쉽게 사냥하기 위해서 화염 계열 마법사와 탱커 하나, 사제와 궁수인 저로 이루어진 파티였습니다.”

“놈들은요?”

“탱커 한 명과 도적 두 명…… 그리고 화염 계열 마법사입니다.”

“흐음…….”

대충 싸움의 양상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도적 두 명이 사제와 마법사를 기습했을 것이고, 그 기습이 성공한 순간 싸움은 이미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설명을 들어보니 어차피 파티원분들은 전부 사망하신 것 같은데…… 저보고 대체 뭘 도와달라는 겁니까?”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가만히 보면 휴고의 상태도 영 메롱이다.

붉은 주먹 길드 녀석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의 파티원들을 가만히 놔뒀을 리가 없다.

“복수…….”

휴고가 이를 빠드득 갈며 무릎을 꿇었다.

“저희의 원수를 갚아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던전, 저희가 2주 넘게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겨우 찾은 겁니다. 그런 양아치 놈들에게 넘기는 건 죽기보다 싫습니다.”

“……죄송한데, 전 혼자거든요?”

카이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자신은 그에게 보여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자신에게 복수를 운운하는 것일까?

휴고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끔씩 지나가다가 사냥을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거미의 숲에서 홀로 사냥을 하실 정도의 실력자이시기도 하고, 간간이 뿌려내는 백색의 광선…… 그 위력은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보기에도 강력해 보였습니다.”

“으음…….”

자신을 어떻게 찾아왔는지도 알 것 같았다.

‘아까 쏜 홀리 익스플로전…… 그걸 보고 찾아온 건가.’

확실히 그의 말대로, 던전이라는 존재는 무척이나 끌린다.

‘문제는 내가 붉은 주먹 놈들을 모두 처리할 수 있느냐는 건데…….’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을 하던 카이가 휴고를 자세히 살폈다.

‘장비한 아이템은 레벨 제한 54의 수색대장의 가죽 갑옷과 뭉구스의 조악한 활인가…… 레벨은 높아 봐야 56 정도겠어.’

사제같이 특별한 클래스가 아니라면, 파티원들이 2레벨 이상 차이 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평균 레벨 56의 파티를 기습으로 죽일 정도라면…… 붉은 주먹 놈들은 최소 59레벨이라고 봐야 되나?’

도적 두 명과 탱커 하나, 그리고 마법사 하나.

확실히 몬스터보다는 사람을 상대하기 좋은 조합이었다.

‘이쪽도 사실 따지고 보면 혼자는 아닌데…….’

놀 언데드 치프의 스태프!

다소 운이 따라야 하겠지만, 이를 통해 3~4마리만 소환이 되어도 크게 불리할 것 같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저들은 나의 존재를 모르지.’

지금쯤 신나게 던전을 수색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던전에 정신이 팔리면 팔릴수록, 그들의 뒤통수를 치는 일은 수월해진다.

계산을 하면 할수록 마음이 점점 기울었다.

‘게다가 녀석들은 이 남자의 파티를 죽였어. 카오틱 상태겠지…… 죽으면 무조건 아이템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던전도 덤으로 따라오고, 무엇보다…….’

속이 시원해진다!

그 싸가지 없는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모멸당한 것이 불과 이틀 전!

아직도 침대에 누우면 이불을 뻥뻥 찰 정도로 분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카이는 휴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서걱!

“여기인가.”

굵은 덩쿨들을 잘라내며 앞으로 이동한 카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던전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모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던전을 찾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진짜 쓰레기 게임…… 던전을 이딴 곳에 숨겨놓으면 정보 없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물론 정보가 없으면 던전을 찾지 말라는 페가수스사의 거룩한 뜻이다.

“그나저나…….”

주변을 살펴보던 카이가 눈을 반짝였다.

혹시나 싶었던 의심은, 던전을 찾아오면서 점점 확신으로 변했다.

‘확실해. 붉은 주먹 녀석들과 던전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휴고는 피해자이기 때문에 이 일을 냉정히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카이는 사건을 보다 더 객관적으로 바라봤다.

‘미행당했네.’

녀석들이 어떻게 휴고의 파티를 미행할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결코 좋은 의도를 가지고 미행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놈들이 단체로 벼락이라도 맞아서 미치지 않은 이상, 다른 파티가 걱정되어서 뒤를 따라갔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된다.

서걱, 서걱!

카이가 마지막 덩쿨을 잘라내자 음침한 동굴이 아가리를 쩍 벌린 채 반갑게 맞이했다.

‘이곳이 페르메의 둥지.’

던전의 이름이다.

거미의 숲을 지배하고 있다는 여왕 거미 페르메가 기거한다는 던전!

‘휴고의 말에 따르면 페르메는 레벨이 70이라고 했지.’

사실이라면 카이로서도 지금 당장 공략할 수는 없는 곳이다.

하지만 던전은 굳이 보스 몬스터가 아니더라도 풍부한 경험치와 재화가 즐비한 곳!

카이는 망설임 없이 동굴로 들어갔다.

‘몬스터들이 죽어 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폴리곤 덩어리들이 그 증거였다.

“이건 뭐, 헨젤과 그레텔이야?”

그들은 빵조각을 남겼지만, 붉은 주먹 길드는 폴리곤 덩어리들을 남겼다.

“뭐, 덕분에 찾기는 쉽겠네.”

카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반짝였다.

사냥은 이미 시작되었다.

***

“막아!”

콰아아아앙!

“크윽! 존나 아프네!”

“데미지 실화냐? 화염 마법 좀 팍팍 써봐!”

“젠장, 너 캐스팅이라는 게 뭔지는 아냐? 쿨타임이라는 개념도 모르지?”

던전을 공략 중인 네 명의 붉은 주먹 길드원들은 진땀을 빼고 있었다.

‘생각보다 던전의 수준이 높잖아?’

평균 레벨이 59인 그들의 수준으로도 던전의 일반 몬스터는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로 마주친 정예 몬스터.

온몸이 새하얀 털로 뒤덮인 파라스라는 거미는 그들의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크윽…… 젠장!”

은신으로 파라스의 뒤를 잡으려다 실패한 도적, 던컨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젠장! 이거 이러다가 공략 실패하는 거 아니야?”

붉은 주먹 길드는 PK범 6명이 모여서 만든 길드였다.

길드 마스터인 붉은 주먹을 필두로 모인 그들은 보통 사냥터에서 다른 파티를 죽여서 아이템을 줍거나 순진한 유저들을 꼬드긴 후 돈을 뜯어내는 양아치들이었다.

‘어차피 공략을 못 하면 입을 맞춘 의미가 없잖아?’

휴고 파티를 덮치는 과정에서 우연히 던전을 발견한 그들은 서로의 입을 맞췄다.

던전에 대한 정보를 길드에 말해봤자 그들의 몫만 줄어들기 때문에, 그들은 네 명이서 던전을 공략하고 입을 닫기로 했다.

애초에 신뢰가 없는 관계였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조금만 더!”

“라크, 좀만 더 버텨!”

“체력 5% 남았다! 조금만 더 때려!”

하지만 아무리 정예 몬스터라고 해도 몬스터!

인공지능이 가진 패턴은 결코 무한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차근차근 파라스를 공략해 나갔다.

‘이제 다 잡았다!’

파라스의 남은 체력은 고작 1%!

무려 40분이나 사냥을 한 끝에 손에 넣은 결과였다.

“야, 마무리해.”

“맡겨 두라고!”

파티에 속한 화염 계열의 마법사가 주문을 사용했다.

“타오르는 불꽃의 창이여, 나의 뜻대로 움직여 적을 섬멸하라! 플레임 스피어!”

화르르르륵!

허공에 소환된 것은 주변의 평균 온도 자체를 올려버리는 무식한 화염의 창!

마법사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것을 파라스에게 조준했다.

“죽어라!”

허공에 팽팽하게 묶여 있던 창은, 자신의 목줄이 풀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법사가 목줄을 놓아버린 순간, 창은 고삐 풀린 맹수처럼 공기를 격살하며 쇄도해나갔다.

‘드디어 끝났다.’

‘후우, 그래도 정예 몬스터니까 레어 아이템이 나오지 않을까?’

‘만약 레어 아이템이 나오면…….’

‘적당히 눈치 좀 보다가 뒤통수를 때려야겠군.’

생각하는 수준이 거기서 거기인 양아치들!

하지만 그들이 바라던 레어 아이템은 파라스를 잡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것.

정체 모를 백색섬광이 파라스의 머리를 먼저 터뜨린 순간, 그들의 노력은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소리였다.

“뭐, 뭐야!”

“이런 미친!”

각자 붕대를 감고 포션을 마시며 체력을 회복 중이던 붉은 주먹 길드원들이 펄쩍 뛰었다.

“뭐, 뭐야? 잡은 거야?”

“우리가 죽인 거 맞지? 그렇지?”

메시지창을 확인하자 확실히 경험치는 들어왔다.

하지만 중요한 건 불청객과 경험치, 보상을 함께 나누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눈을 까뒤집고 서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이런 멍청한 새끼! 그거 하나 마무리 못 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뭐? 이게 내 잘못이라고? 애초에 너희들이 나한테 귀찮은 일 떠맡긴 거 아니야?”

“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순식간에 분열되는 파티!

하지만 그들을 다시 하나로 묶어 사이좋게 만든 이들이 있었다.

철그럭, 철그럭.

“……이건 또 뭐야.”

“해골들?”

“수는 세 마리밖에 안 되는데?”

바로 그들의 앞에 나타난 세 마리의 놀 스켈레톤!

붉은 주먹 길드원들은 본능적으로 파라스의 막타를 친 녀석을 먼저 처리해야 함을 느꼈다.

“……야, 적들은 최소 두 명이다.”

“해골을 다루는 걸 보니 네크로맨서는 무조건 있어.”

“그리고 파라스 막타친 하얀색 광선쏘는 놈도 있고.”

“다들 조심해!”

순식간에 다시 정비를 마친 그들은 놀 스켈레톤을 견제했다.

하지만 그 순간! 다시 한번 그들에게 백색 광선이 쏘아졌다.

“크윽, 피해!”

겨우 정비해놨던 전열이 허무하게 흐트러졌고, 놀 스켈레톤들은 그 틈을 귀신같이 파고들었다.

“젠장! 이 해골 새끼들부터 처리해!”

“이 새끼들 이거 왜 이렇게 단단해?”

“커억! 50레벨 주제에 공격력도 상당해!”

그 이유는 바로 카이에게 모든 버프를 빵빵하게 받았기 때문!

귀여운 놀 스켈레톤들이 붉은 주먹 길드원들이 투덕거리는 모습을 여유롭게 쳐다보던 카이가 중얼거렸다.

“흐흐흐. 힘 스탯에 5포인트 추가.”

[힘이 5 상승하셨습니다.]

던전의 정예 몬스터인 파라스를 잡는데 훌륭하게 밥 숟가락을 얻은 카이!

사냥 기여도는 낮았지만 막타를 챙김으로써 상당한 경험치가 들어왔다.

올라간 힘을 쳐다보던 카이는 비린내를 물씬 풍기는 웃음을 지었다.

“후후후.”

갓 잡아 올린 참돔처럼 싱싱하고 비릿한 미소!

자신의 계획이 완벽하게 맞아들었을 때 카이가 짓는 미소였다.

‘속이 다 시원하네!’

마치 막힌 변기가 뻥 뚫린 것 같은 해방감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카이는 그 경쾌하고도 시원한 기분에 몸을 던졌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카이의 신형은 예고 없이 불어온 바람처럼 느닷없이 등장했다.

“이, 이 새끼는 또 뭐야!”

“전사도 있구나!”

“3인 파티인가!”

“젠장, 입구에서 처리한 새끼들이 아군들을 불렀나 본데?”

“그래도 움직임이 생각보다 느려! 상대할 수 있어!”

단단히 착각을 하는 붉은 주먹 길드원들!

물론 카이는 그 착각을 고쳐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내 움직임이 생각보다 느리다고?’

카이가 그 말을 내뱉은 도적을 쳐다봤다.

‘확실히 지금은 제법 느려 보일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의 속도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치가 아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