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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통령 태양의 사제-36화 (36/441)

# 36

힐통령 036화

17장. 페르메의 둥지(2)

카이의 철검이 곧장 도적을 향해 쇄도했다.

“피, 피했다!”

상체를 비틀어 그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한 던컨!

그는 눈앞의 전사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만, 이 녀석 장비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정신이 잠깐 다른 곳으로 팔린 사이, 상대방의 뒷발 차기가 그의 명치에 꽂혔다.

“커억……!”

“아오, 속 시원해.”

그 말을 남긴 상대방은 곧장 마법사를 향해 쇄도했다.

“플레임 에로…… 커억!”

캐스팅을 절묘하게 끊어버린 카이!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탱커, 라크가 소리쳤다.

“젠장! 난 해골들 막는다고 바빠! 네놈 셋이서 저거 한 마리 상대 못 한다는 게 말이 돼!?”

그 호통에 정신이 번쩍 든 던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저 장비…… 이틀 전의 그 미친놈이잖아!”

그제야 카이가 생각난 던컨!

“너 이 새끼! 잘 걸렸다!”

순식간에 분노에 물든 던컨이 바닥을 박차고 카이에게 달려들었다.

“야! 이 새끼 이틀 전에 우리한테 시비 걸었던 그놈이야!”

“어? 그러고 보니…….”

“맞네, 맞아!”

“죽어!”

“싫어.”

카이의 철검이 던컨의 공격을 가볍게 쳐냈다.

카아앙!

철검과 단검이 부딪치며 불똥이 피어올랐고, 카이의 왼손이 그 불똥을 집어삼키며 앞으로 뻗어 나왔다.

“이거나 받아가라. 홀리 익스플로전!”

콰아아아앙!

카이의 왼손에서 뻗어 나간 백색 광선이 던컨의 머리를 그대로 강타, 그를 벽에 처박아버렸다.

“크아아아악!”

단번에 생명력이 30%나 줄어들 정도의 엄청난 공격력!

게다가 그들은 파라스를 사냥한다고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던컨이 순식간에 빈사 상태에 빠지자, 카이가 눈을 빛냈다.

‘여기서 확실하게 끝낸다.’

전투에서는 서로의 실력과 레벨, 아이템 등 중요한 요소는 넘치도록 많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사기였다.

상대방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행동이 굼떠지고 위력이 떨어지기 때문!

‘완전히 콧대를 눌러버려야겠어.’

다시는 덤빌 생각조차 할 수 없게끔!

카이가 신성폭발을 사용하는 사이, 라크가 마법사에게 명령했다.

“캐스팅 긴 거 말고, 짧은 걸로 발부터 묶어!”

“아, 알았어. 파이어 필드!”

마법사가 스킬을 사용하자, 카이가 있던 바닥 부근에서 강렬한 불길이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옆으로 옮겨붙은 불길은 마치 감옥처럼 변모했다.

“됐어! 당분간 저 안에서 나오지 못할……?”

말을 잇던 마법사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뭐, 뭐야. 이 새끼 어디 갔어?’

당연히 파이어 필드 안에 있어야 할 카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

당황한 것은 마법사뿐만이 아니었다.

‘잠깐, 내가 움직임을 놓쳤다고? 나 암살자인데?’

파티의 두 번째 도적이던 그는 암살자 계열의 유저였다.

암살자는 적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소리 없이 죽이는 것에 특화되어 있는 직업!

‘대체 이 새끼 레벨이 몇이야!’

암살자가 속으로 경악성을 내지르고 있을 때, 카이는 이미 그들의 뒤를 점한 상태였다.

힘에 엄청난 스탯을 투자하고, 신성 폭발을 사용했기에 가능한 일!

‘15초 안에 끝낸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오히려 위험해지는 것은 카이 자신이었다.

파앗!

바닥을 박차고 튀어나간 카이는 순식간에 도적의 머리와 심장, 두 다리를 공격했다.

서걱, 서걱, 서걱!

“어엇!”

[상태이상 ‘실명’에 걸렸습니다.]

[상태이상 ‘슬로우’에 걸렸습니다.]

[상태이상 ‘이동 불가’에 걸렸습니다.]

그야말로 빛과 같은 속도!

도적의 귓가로 연신 피해를 받았다는 알림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단 하나의 메시지만 남긴 채, 그 많던 메시지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사망하셨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단 한 줄의 메시지!

로그아웃을 당한 암살자는 신경질적으로 헤드기어를 집어 던지며 중얼거렸다.

“……그 새끼, 대체 정체가 뭐야?”

***

신성 폭발의 운용시간은 최대 22초.

하지만 자신을 비롯해 놀 스켈레톤들에게도 버프를 사용한 카이에게는 15초가 최대였다.

그리고 카이는 그중 4초를 투자해 암살자 하나를 처치하는 데 성공했다.

‘다음은 마법사!’

칠흑의 원한을 장비한 카이가 마법사의 동체시력을 넘는 속도로 움직이자, 마치 어둠이 몰려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서걱!

“그, 그르륵……!?”

[상태이상 ‘침묵’에 걸렸습니다.]

갈라진 목을 부여잡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는 마법사!

그로서는 이런 일을 처음 당해봤을 뿐이지만, 카이는 아니었다.

‘뮤튜브에서 본 걸 이런 식으로 써먹는구나.’

애초에 미드 온라인의 랭커에게 관심이 많던 카이!

그는 랭커들의 유명한 대결 영상은 빠지지 않고 챙겨봤고, 그 덕분에 게임에 대한 이론 자체는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지금까지는 그걸 내 몸으로 펼칠 수가 없었을 뿐이지!’

주먹을 마법사의 명치에 꽂아버린 카이는, 곧장 손바닥을 펼쳤다.

“홀리 익스플로전!”

콰아아앙!

천장 높은 줄 모르고 높게 떠오르는 마법사!

“아, 안 돼!”

“돼.”

천장의 종유석에 그대로 몸이 꿰뚫린 마법사가 폴리곤이 되어 사라지자, 라크가 고함을 질렀다.

“크아아악! 이 병신들아!”

그는 강화된 놀 스켈레톤을 세 마리나 상대하고 있었기에, 그들을 돕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었다.

그사이 카이는 홀리 익스플로전을 맞고 빈사 상태에 빠진 던컨에게 달려들었다.

“이, 이런 미친…….”

던컨이 새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땅을 더듬거리며 뒤로 기어갔다.

‘이게 말이 돼!? 고작 한 놈한테 우리 파티가 전부 털리다니……!’

어디서 하소연을 할 수도 없는 창피한 상황!

게다가 그들은 PVP를 전문적으로 해오던 카오틱 유저들.

대인전이라면 그 누구보다 능숙했지만, 카이의 공격력과 속도를 상대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웃차.”

콰드드득!

“크윽……!”

누워있는 던컨의 갈비뼈를 발꿈치로 부숴버린 카이의 눈에, 붉은 주먹 길드의 마크가 보였다.

“너, 너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알지. 붉은 주먹. 길드원이 여섯 명뿐인 허접 길드.”

카이의 철검이 곧장 바람을 가르며 튀어나갔다.

푸욱!

“커억…….”

녀석의 가슴팍에 새겨진 붉은 주먹 표식을 그대로 관통한 검은 심장까지 함께 꿰뚫었다.

카이는 고통과 분함이 가득 찬 던컨의 얼굴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표정 풀어. 게임이잖아?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살은.”

“너 이 새끼…… 비겁하게 기습만 안 당했으면…… 체력만 멀쩡했으면……!”

카이는 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을 베어 마무리했다.

세 명을 처리하고도 신성 폭발의 남아 있는 시간은 무려 5초!

그제야 여유를 되찾은 카이는 마지막 목표인 탱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이 이어질수록 걷기는 경보가 되었고, 경보는 곧 달리기가 되었다.

“그 녀석 꽉 잡아!”

카이의 명령이 떨어지자, 놀 스켈레톤들이 탱커의 두 팔과 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뭐, 뭐야. 이거 안 놔!”

“아주 잘했어!”

딱딱딱!

마치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행동하는 녀석들!

카이는 그들이 넓게 벌려 준 가슴을 향해 철검을 그대로 쑤셔 박았다.

푸욱!

“크, 크으으……!”

“아, 넌 좀 단단하네?”

탱커는 심장을 찔렀음에도 불구하고 10%의 체력만이 줄어들었다.

과연 탱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방어력!

“지금부터는 안 보는 게 더 정신 건강에 이로울 거야.”

카이의 검이 녀석의 두 눈을 그어버렸다.

순식간에 새카만 세상에 떨어져 버린 탱커가 불안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 뭐냐!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그야 뭐, 간단하지.”

카이는 단순히 검을 녀석의 심장에 찔러 넣고, 뺐다가 다시 찌르기를 빠르게 반복했다.

푹, 푹, 푹, 푸욱!

“으, 으윽!”

탱커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것은 고통 때문이 아니라 심리적인 공포감 때문이었다.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그가 볼 수 있는 거라고는 칠흑 같은 어둠뿐!

그런 상태에서 두 팔은 꽉 잡혀 있었고, 무언가가 심장을 계속해서 꾹꾹 찔러댔다.

“으…… 으아악!”

아무리 게임이었지만, 탱커는 물론 일반인이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익숙할 수가 없다.

“머리가 있다면 알아들었겠지만, 난 친절하니까 한 번 더 경고해 줄게.”

녀석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은 카이는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 건들지 마.”

“커어어억…….”

결국 공포를 이겨내지 못한 탱커는 로그아웃을 당한 순간 안도감을 느꼈고, 헤드기어를 집어 던지며 축축한 하의를 붙잡은 채 화장실로 달려갔다.

“후우!”

투구를 벗고 이마의 땀을 닦은 카이는 주변의 폴리곤 덩어리들을 보며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쓰레기 청소 끝!”

***

페르메의 둥지 안, 바닥과 천장에는 거미줄이 잔뜩 쳐져 있는 음침한 공간에서 한 존재가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녀석들…… 진짜 노답이네.”

답이 없다는 뜻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카이는 눈앞의 아이템들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카오틱 유저 네 명을 잡았는데, 레어 아이템은 하나뿐이라고?’

최소 레어 아이템이 두 개는 떨어질 줄 알았던 카이는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유일한 레어 아이템이 상당히 쓸만해서 다행이지만.”

카이는 탱커가 장비하고 있던, '장미 문양이 새겨진 망토'를 들어 올렸다.

[장미 문양이 새겨진 망토]

등급 : 레어

방어력 342

마법 방어력 319

힘 +2

민첩 +2

체력 +4

귀족가의 자제들이 즐겨 입는 망토입니다. 고급스러운 원단에 장미 문양을 새겨 넣어 멋스러운 디자인이 탄생하였습니다.

내구도 46/91

‘이건 내가 써야지.’

망토를 가지고 있지 않던 카이로서는 상당히 탐나는 아이템!

외관이 조금 화려해서 칠흑의 원한 세트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유일한 흠이었으나, 카이는 성능만 좋으면 외견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게다가 파라스를 잡고 나온 아이템도 우선권을 가진 녀석들이 모두 죽어버려서 내 차지!’

비록 레어 아이템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경매장에 올리면 제법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매직 아이템이 세 개나 나왔기 때문이다.

“웃차…….”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어낸 카이는 쉬면서 모두 회복된 신성력을 흘깃 쳐다봤다.

‘상태도 완벽하군.’

붉은 주먹의 길드원들을 모두 처치했으니, 이제 이 던전에 남아 있는 사람은 자신뿐!

‘후후, 이래서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거지.’

착하게 살면 자다가도 돈이 나오고, 떡이 나오고, 던전도 나오는 법!

그리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몬스터도 나오는 법이었다.

“응?”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깜빡거리는 카이!

그는 곧장 검을 빼 들며 소리쳤다.

“뭐, 뭐야!”

“키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본인의 존재감을 어필하는 몬스터!

[흉포해진 페르메의 새끼 LV.61]

‘젠장, 새끼 주제에 레벨이 왜 이렇게 높아!’

“키르아악!”

투덜거릴 시간조차 주지 않는 페르메의 새끼!

카이는 숲 거미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날아오는 침과 거미줄을 피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래도 거미를 상대하는 방법은 이제 제법 잘 알아.’

공격을 열심히 피하는 카이가 녀석의 모습을 관찰했다.

거미의 급소는 두 군데였다.

바로 머리와 배!

하지만 여덟 개의 다리를 이용해 계속해서 움직이는 거미의 배를 노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

‘그래서 다리를 먼저 절단해서 기동력을 봉쇄시키는 것이 첫 번째!’

서걱! 서걱!

언제나 그랬듯이 녀석의 다리를 잘라낸 카이의 검이 향한 곳은 한 군데였다.

“눈!”

거미는 총 네 쌍의 눈을 지니고 있다.

한 마디로 눈만 여덟 개라는 뜻!

카이는 거미의 숲에 오기 전, 커뮤니티에서 거미 몬스터와 관련된 글을 모두 정독했다.

‘거미의 눈을 총 여덟 개지만, 각각의 눈이 지닌 고유 기능은 모두 달라.’

예를 들어 가장 중요한 중앙의 눈 한 쌍은 사물의 세부 모양이나 크기를 가늠하는 데 사용이 된다.

그리고 측면에 있는 눈들은 무엇인가가 자신에게 다가올 때 경고를 해주는 용도!

‘한마디로…….’

카이의 검이 기동력을 상실한 거미의 눈을 베어버렸다.

그가 베어버린 것은 측면에 위치한 여섯 개의 눈!

“키르륵…….”

페르메의 새끼가 크게 당황했다.

무엇이 자신에게 다가오는지를 알아차릴 수 없는 녀석은, 한 마디로 바보가 되었기 때문.

푸쉬익, 푸쉬익!

공포를 느끼기는 몬스터도 마찬가지다.

녀석은 주변을 향해 미친 듯이 독침과 거미줄을 뿌려댔다.

‘나는 저 녀석이 발작을 멈출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면 되는 거지.’

멀찍이 자리 잡은 카이는 인터넷 창을 켜서 뮤튜브를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페르메의 새끼가 발작을 멈추기까지 걸린 시간은 3분 정도!

‘숲 거미는 1분이었는데, 역시 던전 몬스터는 다르네.’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난 카이는, 지칠 대로 지친 녀석에게 천천히 다가가 목숨을 끊어버렸다.

[경험치를 14,185 획득하셨습니다.]

“경험치도 좋고, 쉬워. 개꿀이네.”

진한 미소를 지은 카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둥지의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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