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7화 (37/441)

# 37

힐통령 037화

17장 페르메의 둥지(3)

“으흐흥~”

기분 좋은 소식을 맞이한 카이는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던전에 들어온 지 오늘로 사흘째.

붉은 주먹 녀석들과의 싸움 이후, 세 개의 레벨을 더 올린 카이는 무려 61레벨이었다.

놀의 무덤 때와 마찬가지로 3시간씩 자면서 사냥을 했기에 가능한 수치!

카이의 기분이 좋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구구, 우리 귀염둥이 피 묻었쪄요?”

바로 60레벨을 찍으면서 장비할 수 있게 된 ‘깨달은 자의 롱소드’!

그것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르르릉.

카이는 전투가 끝날 때마다 깨끗한 헝겊을 꺼내 롱소드를 청소했다.

‘후후, 장비 하나 바꿨을 뿐인데 공격력이 그렇게 올라가다니…….’

깨달은 자의 롱소드를 휘두르면 페르메의 새끼를 정리하는 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몬스터가 더 빨리 죽으니 사냥 속도가 빨라지는 건 당연한 수순.

게다가 이전에 쓰던 철검과는 다르게, 깨달은 자의 롱소드는 솔리드가 오직 카이만을 위해 제작한 맞춤형 아이템이었다.

“내 손에 아주 딱 맞아.”

검의 손잡이를 쥐면, 당장에라도 휘두르고 싶어 손이 근질거린다.

한마디로 자신만을 위한 검이라는 느낌이 팍팍 들 정도였다.

“자, 그럼 이제…….”

원기 회복의 샘을 설치한 카이가 계산을 시작했다.

‘붉은 주먹 녀석들도 그렇고, 궁수 남자의 파티도 그렇고, 이제 슬슬 부활할 시간이야.’

부활 페널티인 사흘의 시간이 지났으니 말이다.

카이는 사냥 속도를 올리는 한편, 뒤통수를 항상 경계했다.

놀의 무덤 때와는 다르게 페르메 둥지는 그 존재를 알고 있는 곳만 두 파티가 있었으니까.

‘휴고 파티는 그렇다 치더라도, 붉은 주먹 같은 경우는 제법 위험하지.’

만약 사냥을 하고 있는 와중에 그놈들이 뒤를 덮친다면 난감해진다.

물론 경고는 해뒀지만, 그들이 그 경고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카이도 확신을 하지 못했다.

“하긴, 그렇게 당하고도 안 오면 남자도 아닌가?“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이 운이 안 좋아서 패배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그들은 체력과 마나가 너덜너덜한 상태에서 카이에게 기습을 당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지닌 선택지는 두 가지.”

하나는 지금 당장 이 던전을 벗어나서, 다시 로디를 찾으러 가는 것이다.

홀리 익스플로전만 쓰지 않는다면, 이 넓은 거미의 숲에서 솔플을 하는 자신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카이의 시선이 자꾸 둥지의 안쪽으로 향했다.

조금만 더 가면 나오는 것은 이 둥지의 주인인 페르메다.

레벨이 무려 70인 괴물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탐스러운 보상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 녀석을 처치하고 보상을 몽땅 챙기는 것이 두 번째 선택지였다.

‘이 던전을 발견한 건 내가 처음이 아니지만, 페르메 사냥을 시도하는 건 내가 처음이지.’

미드 온라인에 존재하는 보스 몬스터들은 처음 잡힐 때, 가장 좋은 아이템을 드랍한다.

카이는 그 기회를 붉은 주먹 길드가 홀라당 집어삼키는 꼴을 보기가 싫었다.

“70레벨이라…….”

카이는 여전히 모든 스탯을 힘에 투자하고 있었다.

뒤늦게나마 본격적으로 올힘 사제 육성을 시작한 것이었다.

다른 스탯들이 크게 필요해진다면 모를까, 당분간은 힘 스탯을 주력으로 올릴 생각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버프 스킬들 덕분에 데미지는 잘 나온단 말이지.’

게다가 신성 폭발 스킬로 인해 한순간이지만 90레벨에 가까운 스탯을 보유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는 페르메를 사냥하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보스를 잡는 건 마라톤이니까.“

반면에 현재 카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전력은 100미터짜리 단거리 경주용이다.

상식적으로 따져보면 지금 당장 이 장소를 벗어나는 것이 맞았다.

“쩝…….”

카이는 아쉬운 마음을 삼켰다.

굳이 페르메를 잡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

‘로디네 가족도 찾아야 하고, 오크 부락도 가야 하고, 하녹스의 시련도 공략해야 되지.’

하나만으로도 머리가 지끈지끈거릴 지경!

자리에서 일어선 카이는 방금 잡은 페르메 새끼의 폴리곤 덩어리를 뒤적거렸다.

[부식된 단검을 획득했습니다.]

[하급 독액을 획득했습니다.]

[로디의 피 묻은 손수건을 획득했습니다.]

“……응?”

루팅된 아이템들을 확인하던 카이의 눈동자가 커졌다.

[로디의 피 묻은 손수건]

할머니인 데바가 직접 짜준 부드러운 손수건입니다. 피에 젖고 찢어져서 헝겊처럼 보입니다.

“…뭐야?”

로디의 손수건이 왜 페르메의 새끼를 잡고 나오는 거지?

잠시 멍한 표정으로 머리를 굴리던 카이의 인상이 돌연 찌푸려졌다.

“이런…….”

상황을 대충 이해한 카이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넘겼다.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미드 온라인에서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즉, 모든 것은 상호 작용을 한다는 이야기!

단순하게 말해서 로디의 손수건이 이곳에 있다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소리였다.

“실종된 놈 손수건이 여기 있을 이유라고는…… 하나밖에 없지.”

로디, 그가 실종된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

던전의 끝.

더 이상 공략을 진행할 수 없는 막다른 장소에서, 카이의 시선이 두 개의 입구를 향했다.

‘오른쪽은 딱 봐도 보스룸이지?’

거미줄로 칭칭 감겨진 거대한 입구는 누가 봐도 위험해 보였다.

반면 그 옆에 위치한 부서진 벽의 틈새는, 성인 남성이 겨우 기어들어 갈 정도로 협소했다.

‘만약 로디가 무사하다면 이쪽에 몸을 숨겼겠지.’

페르메의 둥지를 끝까지 공략했지만 로디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눈앞의 두 장소 중 한 곳에 있다는 것!

“제발 보스룸은 아니길, 인생 좀 그만 꼬이길. 제발…….”

카이는 마치 주문이라도 외우듯 중얼거리면서 벽의 틈새로 기어들어 갔다.

“신성한 빛.”

파앗!

환한 빛이 밝힌 안쪽 공간은 카이의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고시원 원룸의 크기와도 비슷한 답답한 공간.

그곳에 쓰러져있는 소년을 발견한 카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를 부축했다.

“로디! 로디 맞지? 괜찮아?”

“으으…….”

로디로 추정되는 소년을 안아 올리자, 그가 힘없이 눈을 떴다.

“아아…….”

로디의 말라 비틀어진 입술에서는 피가 나왔고, 도저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처럼 보이지 않았다. 카이는 곧장 손을 들어 올렸다.

“햇살의 따스함, 블레스.”

대상을 치유해 주고 버프를 걸어주는 스킬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카이는 인벤토리에서 시원한 물을 한 병 꺼내 로디의 입술 사이로 흘려보냈다.

“무, 물!”

로디는 허겁지겁 물을 마셨고, 한 통을 다 마신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카이를 쳐다봤다.

녀석이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그런데 누구세요?”

“난 데바 할머니에게서 의뢰를 받아 널 구하러 온 모험가다.”

“아아……!”

그제야 안심을 하고 눈시울을 붉히는 로디!

카이는 웃으면서 그의 등을 토닥였다.

“이제 괜찮으니 같이 나가자. 내가 널 도시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줄게.”

“아, 안 돼요!”

로디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 혼자 돌아갈 순 없단 말이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안쪽에 부모님이 잡혀 있어요! 부모님뿐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더 있어요!”

꽈악.

로디의 조그마한 손이 카이의 가슴 부근을 꽉 쥐었다.

“모험가 아저씨. 제발, 제발 부탁드릴게요. 염치없는 건 알지만…… 제발……!”

“…….”

카이가 자신의 가슴 부근을 내려다봤다.

방어구 때문에 그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눈물을 줄줄 흘리는 로디의 슬픈 표정 때문인지 가슴이 욱신거렸다.

‘같은 방식이지만, 정말 다르네.’

카이는 문득 며칠 전에 거미의 숲 입구에서 만난 붉은 주먹 길드원들을 떠올렸다.

그들과 로디는 자신의 허락 없이 몸에 손을 댔지만, 두 상황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카이는 그 이유 또한 알고 있었다.

‘마음이 느껴지니까.’

자신을 이용해 먹겠다는 더러운 마음과, 소중한 이들을 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둘 중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 것인지는 명백했다.

스윽, 스윽.

카이의 손이 로디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휩쓸었다.

“모, 모험가님?”

로디가 퉁퉁 부어오른 눈을 깜빡이며 카이를 올려봤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카이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선 하나 정정할 게 있어. 나는 아저씨가 아니라, 사제다.”

“사제가 뭐예요……?”

“음. 자비와 심판의 신인 헬릭을 모시는 태양교는 알지?”

“그건 알아요.”

“난 헬릭 님께서 지상의 어려운 자들을 도와주라고 보낸 사제…… 그러니까, 천사 같은 거야.”

“……천사요?”

로디의 두 눈동자가 카이의 전신을 빠르게 훑었다.

“천사처럼 보이지는 않으신데…….”

“…….“

꽈악.

로디의 머리를 쓰다듬던 카이의 손아귀에 힘이 약간 들어갔다.

“뭐라고?”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천사 같은 사제님.”

“옳지, 착하다.”

다시금 미소를 되찾은 카이!

그는 로디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장비를 점검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로디만 데려가도 데바의 퀘스트는 완료될 것이다.

하지만 로디의 눈물을 보는 순간, 퀘스트나 보상에 대한 생각이 깨끗하게 씻겨져 나갔다.

‘이런 기분, 오랜만인데.’

선행 스탯이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

태양의 사제로 전직을 하고 난 이후로 거의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스윽, 스윽.

로디의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은 카이가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모두 구해올 테니까.”

***

“후우…….”

카이는 횃불을 든 채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로디에게 큰소리는 쳐놨지만, 눈앞의 거대한 입구를 보자 자신감이 뚝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들어가기 싫다.’

게임 오버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흘의 사망 페널티를 받는 건 카이뿐만 아니라, 그 어떤 유저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한번 로디의 눈물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어린아이의 마음.

그 슬픈 눈동자를 떠올린 카이는 횃불을 거미줄에 가져댔다.

치지지지직.

불은 페르메의 기름진 거미줄로 금방 옮겨붙었다.

화르르르륵!

거미줄이 순식간에 제거되고, 수많은 고치가 가득 찬 보스 룸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안쪽은 제법 넓은데?’

내부는 마치 야구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거대했다.

벽의 곳곳에 횃불이 붙어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공간이었다.

카이가 안쪽을 바라보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경고합니다. 보스 방에 진입할 시 전투가 끝나기 전까지 로그아웃과 귀환의 사용이 금지됩니다. 그래도 진입하시겠습니까?]

“아니….”

[입장을 취소합니다.]

“아니, 아니야. 들어갈게.”

카이를 밀어내던 무중유의 힘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검을 뽑아든 카이가 안쪽으로 한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땅이 울렸다.

“……땅이 왜 울리지?”

온천처럼 샘솟는 불안한 마음!

카이는 부정적인 생각을 억지로 억눌렀다.

“다, 단순한 지진이겠지.”

하지만 카이의 생각은 멋들어지게 빗나갔고, 곧 거대한 그림자가 그를 덮쳤다.

거대한 내부의 공간.

그리고 그 거대한 내부의 절반 이상을 드리우는 더욱 거대한 그림자!

카이의 고개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우둘투둘한 돌기가 튀어나와 있는 흉측한 검은색의 거미!

하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그 크기였다.

어색한 웃음을 지은 카이가 집채만 한 거미에게 공손하게 물었다.

“하, 하하… 혹시 그쪽이 페르메…님?”

공손한 대답에 돌아온 것은, 우렁찬 포효였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악!”

“이런, 젠장!”

그 시끄러운 소리에 인상을 찡그린 카이가 두 귀를 막았다.

순식간에 전투 상태가 되었고, 거미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난폭해진 거미들의 여왕, 페르메 LV.75]

“진짜 페르메잖아!”

그녀는 건물의 기둥처럼 두꺼운 여덟 개의 다리를 순식간에 움직이며 카이에게 돌진했다.

“그리고 70레벨이라며!”

카이가 비명을 내질렀지만, 지금은 불평을 내뱉기에는 영 좋지 않은 상황!

그의 손아귀에 잡힌 놀 언데드 치프의 스태프가 흔들렸다.

"열 마리! 열 마리! 열 마리! 신이시여, 제발 열 마리!"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은 카이가 맹렬하게 돌아가는 원판을 향해 연신 고개를 꾸벅꾸벅 숙였다.

그리고 서서히 속도를 늦춘 돌림판이 가리킨 숫자는….

[꽝! 아쉽네요. 다음 기회를 노려보세요.]

“꽈, 꽝이라고!? 이런 미친! 꽝이 왜 있어, 꽝이!”

어쩐지 돌림판 칸이 11개더라!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 되는 것이 이 세상의 법칙!

카이가 울고 싶은 표정을 지으며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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