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힐통령 038화
17장. 페르메의 둥지(4)
카이가 입구로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입구는 이미 페르메의 거미줄로 막힌 상태였다.
결국 선택지를 잃어버린 카이는 그대로 방향을 틀어 왼쪽으로 도망쳤다.
콰앙, 콰앙, 콰아앙!
페르메가 다리 하나를 뻗을 때마다 무너지는 동굴!
“이거 네 집이잖아! 왜 부수고 난리인데! 나중에 보수할 거 생각 안 하냐!?”
친절한 카이는 페르메의 지갑 사정을 걱정해줬지만, 그녀가 알아들을 리 만무!
오히려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카이에게 화가 난 녀석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코로로로록…….”
마치 24년 차 흡연자가 가래를 끓는 듯한 소리!
카이는 본능적으로 지독한 무언가가 날아온다고 판단, 황급히 몸을 날렸다.
퉤엣! 치이이익!
바닥을 그대로 녹여버리는 페르메의 치명적인 독!
그 모습을 확인한 카이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저딴 건 맞기 싫어!’
75레벨의 보스 몬스터가 쏘아내는 극독이다.
해독을 하기 전에 빈사 상태에 빠질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냄새가 고약했다.
“젠장, 어쩔 수 없지!”
인벤토리를 연 카이가 세 종류의 포션을 꺼내 들었다.
바로 웜 리자드의 혈액을 이용해 마탑에서 만들었던 포션들!
[저항력 증가 포션 Lv.3]
5분 동안 각종 상태이상 저항력이 증가합니다.
[속도 증가 포션 Lv.3]
5분 동안 모든 속도가 증가합니다.
[공격력 증가 포션 Lv.3]
5분 동안 공격력과 마법 공격력이 증가합니다.
카이가 이름 붙이기를 이른바 도핑 3종 세트!
‘젠장, 이거 경매장에 팔면 족히 50실버는 받을 수 있는데!’
하지만 목숨이 위험한 판국이었기에, 카이는 과감하게 투자를 감행했다.
‘포션은 이제 각각 9병씩 남았다.’
만약 이 전투에서 그 포션들을 모두 마신다면 무려 50만 원을 사용하는 꼴!
“그래, 전부 마시는 한이 있어도 너는 반드시 잡는다!”
카이의 몸놀림이 기민해졌다.
포션의 힘도 있었지만, 저 거대한 거미를 자신의 발아래에 놓겠다는 각오가 섰기 때문이었다.
‘여태까지 파악한 공격 패턴은 총 네 개.’
카이라고 아무런 대책 없이 도망만 치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도망을 치면서 페르메의 공격 패턴을 분석했다.
보스 몬스터들은 기본적으로 몇 가지 패턴을 상황에 따라 절묘하게 사용했다.
‘독 뿌리기, 몸통 박치기, 여덟 개의 다리로 땅을 미친 듯이 내려찍기. 마지막으로 거미줄 난사, 이 정도인가?’
다른 거미 타입 몬스터와 크게 다르지 않은 패턴!
그나마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몬스터들의 공격은 몇 번 맞아도 허허 웃을 수 있는 반면 이 녀석의 공격은 맞는 순간 비명을 내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카이의 눈이 반짝였다.
페르메의 고개가 뒤로 크게 젖혀졌기 때문!
‘저건 독을 뱉기 전의 행동이다!’
카이는 그 사실을 파악하는 순간 앞으로 뛰쳐나갔다.
“신성 폭발!”
현저하게 빨라지는 속도!
당황한 페르메가 평소보다 조금 빨리 독을 내뱉었다.
퉤에엣!
‘피할 수 있어!’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진 카이는 그대로 바닥을 미끄러졌다.
치지이익…….
투구의 윗부분을 살짝 스쳐 지나가는 독액!
곧장 페르메의 배 밑에 도착한 카이는 손을 쭉 뻗었다.
“이거나 먹어라! 홀리 익스플로전!”
콰아아아아앙!
백색 광선이 거미의 급소인 배를 정확하게 강타했다.
“끼에에에에엑!”
페르메가 전투 시작 이래 처음으로 비명을 질렀고, 그 강력한 위력에 녀석의 거대한 몸이 잠시나마 허공에 붕 떴다.
‘체력, 녀석의 체력은?’
곧장 페르메의 체력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짙은 패색으로 물들었다.
***
홀리 익스플로전은 현재 카이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중에서 가장 높은 공격력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급소를 공격해서 1.5배의 데미지까지 들어간다는 것을 감안하면, 녀석의 체력이 1%밖에 깎이지 않은 것은 절대로 납득할 수 없다.
“캬아아아악!”
쾅, 쾅, 콰아앙!
카이에게 배를 가격당한 페르메는 여덟 개의 다리로 땅을 미친 듯이 찔러댔다.
마치 탭 댄스를 추는 듯한 녀석의 움직임을 요리조리 피하던 카이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갈구했다.
‘이건 뭔가 이상해.’
아무리 페르메가 75레벨의 보스 몬스터라고 해도, 신성 폭발까지 사용한 자신의 공격이 고작 1%를 깎았다는 건 절대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이 녀석, 약점이 따로 있구나.’
던전에는 종종 이런 종류의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보스 몬스터는 공격을 피해 다니며 아무 곳이나 때려도 데미지가 들어갔지만, 이렇게 다른 곳을 때려도 데미지를 입지 않는 녀석들은,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위치를 공격해야만 데미지가 들어갔다.
한마디로 약점의 위치를 빠르게 찾는 것이 공략의 핵심!
카이가 녀석의 전신을 훑었다.
‘약점, 약점, 약점…….’
하지만 녀석의 몸이 워낙 거대하다 보니, 약점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카이는 우선 신성 폭발을 비활성화로 돌린 뒤 자신의 신성력을 힐긋 쳐다봤다.
‘남은 신성력은 7,200 정도…….’
무리하자면 신성 폭발을 7초 정도 더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카이는 우선 모든 신경을 녀석의 공격을 피하는 데만 집중했다.
“키라라라락!”
쾅, 콰앙, 콰과광!
자신의 둥지를 무너뜨릴 기세로 돌진을 하는 페르메!
카이는 그때마다 몸을 아낌없이 던지며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피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낙석에 깔렸습니다. 2,5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독 웅덩이에 빠져 중독당했습니다. 초당 800의 피해를 받습니다.]
[돌멩이에 맞았습니다. 출혈이 멈추기 전까지 초당 200의 피해를 받습니다.]
그리 큰 데미지는 아니었지만, 여러모로 짜증 나는 피해들!
카이는 상태이상이 걸릴 때마다 햇살의 따스함을 통해 이를 정화하기를 반복했다.
“젠장, 이런 식으로는 끝이 없잖아!”
척 보기에도 페르메는 전혀 지친 것 같지 않은 모습이다.
‘침착하자, 침착해.’
카이는 마음이 조급한 만큼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공략이 불가능한 보스를 만들었을 리가 없잖아.’
물론 이곳은 던전이니 파티플레이를 위주로 만들어졌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솔로 플레이를 하는 유저는 절대로 깰 수 없는 던전을 만들었을 리도 만무!
한참을 공격을 피하던 카이가 결론을 내렸다.
‘밑에서는 약점을 찾아볼 수 없어.’
다리도 공격해 보고, 배도 공격해 봤지만 데미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장소는 한 곳뿐!
‘……위다!’
녀석의 거대한 몸집의 위.
자신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
카이는 녀석의 약점이 그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녀석의 몸 위에 올라탈 수 있지?’
순식간에 두세 개의 방법이 떠올랐다.
하나는 녀석의 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녀석의 여덟 개 다리를 모두 무릎 꿇리는 것이었다.
“…아니지. 굳이 내가 올라갈 필요는 없잖아.”
카이는 곧장 벽에 달려 있는 횃불 하나를 뜯어냈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천장에 달려 있는 무수한 고치들!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야지!”
힘껏 던진 횃불이 순식간에 천장의 거미줄로 쏘아졌다.
화르르르륵!
보스 룸의 거미줄을 제거할 때도 느꼈지만, 페르메의 거미줄은 불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도미노처럼 옮겨붙은 불은 순식간에 천장을 불의 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키아아악?”
머리맡이 뜨거워지자 고개를 올리는 페르메!
그런 녀석의 위로 고정력을 잃어버린 고치들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고치 스트라이크다!”
물론 카이라고 무사하지는 않았다.
천장의 고치가 대상을 알아보고 떨어질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덩치가 작아서 떨어지는 고치를 잘 피할 수 있는 그와는 다르게, 페르메는 고치가 떨어지는 족족 얻어맞기 시작했다.
‘데미지가 박힌다!’
카이의 눈이 빛났다.
수백 개의 고치에 적중당한 페르메의 체력이 40%나 날아갔기 때문!
“캬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던 페르메가 자세를 낮추며 몸을 웅크리자, 카이는 잽싸게 그 위로 올라탔다.
“역시!”
카이가 쾌재를 불렀다.
다리와 배 쪽에는 온갖 돌기가 솟아난 단단한 껍질이 방어하고 있는 반면, 등과 머리 부분은 다른 거미와 다를 바 없는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신성 폭발.”
버프를 사용한 카이는 깨달은 자의 검을 녀석의 등에 단단하게 박아넣은 뒤, 손잡이를 거꾸로 잡고 그대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찌지지지지직!
“캬아아아아아아악!”
마치 커터 칼로 종이를 베듯, 두부처럼 잘려나가는 페르메의 등짝!
그 압도적인 고통에 페르메가 온몸을 뒤틀면서 괴로워했다.
쿠웅, 쿵!
녀석의 몸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낙석들!
하지만 그것들 또한 페르메의 피를 깎는 데 도움을 줬다.
‘이거, 여기서 끝낼 수도 있겠는데?’
카이가 녀석의 등과 머리를 집중적으로 공략하자, 녀석의 체력은 순식간에 30%까지 줄어들었다. 그야말로 고지가 눈앞이라는 느낌!
하지만 페르메 또한 숨겨진 한 수를 가지고 있었다.
푸쉬이이이익!
녀석의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라색 연기!
공기를 통해 퍼져나간 독가스는 순식간에 카이를 중독시켰다.
“커억!”
[중독되었습니다. 초당 1,500의 피해를 받습니다.]
“햇살의 따스함!”
겨우 중독의 효과를 풀었지만, 그 사이 페르메는 몸을 흔들어 카이를 떨어뜨린 후였다.
“이런.”
카이가 자신의 위에 올라오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거리를 벌린 채 거미줄과 독침만 뱉어내는 졸렬한 페르메!
검 또한 녀석의 머리에 박혀있는 터라, 현재 카이가 지닌 공격 수단은 홀리 익스플로전밖에 없었다.
‘홀리 익스플로전으로 녀석에게 데미지를 주려면…….’
녀석의 몸 위를 공격해야 한다.
하지만 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홀리 익스플로전이 그런 공격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진작 포기했을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카이는 오히려 눈을 빛냈다.
***
“홀리 익스플로전!”
콰아아앙!
또 한 번의 백색 섬광이 어두운 보스 룸을 환하게 물들였다.
“키에에에엑!”
자신을 빗나간 카이의 공격을 비웃는 페르메!
하지만 신기하게도 카이의 입에도 미소가 걸려 있었다.
“됐다.”
카이가 천장에 때려 박은 것은 무려 스무 개의 홀리 익스플로전!
일개 유저가 지형이나 다름없는 천장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번이라면?’
카이가 노린 것은 바로 천장의 붕괴!
게다가 천장을 모두 무너뜨리겠다는 광오한 꿈을 품지도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천장의 일부분!
그랬기에 그가 쏘아낸 홀리 익스플로전은 천장을 동그란 점선의 모양으로 강타한 상태였다.
‘이제 저 중심 부근에 충격만 가하면 된다.’
결론을 내린 카이는 신성 폭발을 사용했다.
푸쉬이이익!
순식간에 찜질방이 생각날 정도로 체내의 온도가 올라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잃지 않은 카이는 곧장 페르메에게 달려들었다.
“키에에엑!?”
카이가 달려들자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나는 페르메!
녀석은 물러나는 와중에도 독침과 거미줄을 미친 듯이 발사했다.
‘이게 마지막 관문!’
카이는 엄청난 집중력을 끌어내며 날아오는 모든 투사체를 피하기 시작했다.
팟, 팟, 파앗!
아슬아슬하게 카이의 몸을 스쳐 지나가는 페르메의 공격들!
가까스로 녀석의 모든 공격을 피해낸 카이가 바닥을 미끄러졌다.
투두두두둑.
미끄러지는 와중에 오른손을 곧게 뻗은 카이의 입에서, 우렁찬 소리가 튀어나왔다.
“홀리 익스플로전!”
콰아아아아앙!
동그랗게 그려놓은 점선의 정중앙 부근을 강타한 홀리 익스플로전!
드드드드득.
그것은 지금까지 쌓아놓은 천장의 피해를 단숨에 터뜨려 버렸다.
콰르르르르!
둑이라도 터진 것처럼 쏟아져 내리는 거대한 낙석들!
페르메의 배 밑에 숨은 카이는 녀석을 방패로 삼으며 연신 힐을 사용했다.
“햇살의 따스함, 햇살의 따스함, 햇살의 따스함!”
본의 아니게 카이를 보호하게 된 페르메!
“캬아아아아악!”
그녀는 당장에라도 몸을 움직여 카이를 죽이려고 했지만, 천장에서 떨어지는 바위들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쾅, 콰앙, 콰아앙!
아까 전의 고치들이 잽이었다면, 지금 그녀의 약점을 두드리는 바위들은 묵직한 스트레이트!
페르메의 체력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20%, 15%. 10%…….’
천장의 낙석 세례가 끝났을 때 녀석에겐 고작 1%의 체력만이 남아 있었다.
“됐다!”
카이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녀석의 배를 향해 손을 뻗었다.
“홀리 익스플로전!”
콰아아아앙!
광선에 얻어맞은 페르메의 배가 산산이 조각나며 부서졌다.
“끼아아아아아악!”
구슬픈 비명을 내지른 페르메는 다리 부분부터 천천히 폴리곤으로 변하며 서서히 흩어졌다.
난장판이 되어버린 동굴에 홀로 남겨진 된 카이는 몸을 덮은 흙을 털어내며 슬며시 일어났다.
“이, 이긴 거지?”
본인이 저지르고도 믿기지 않는 대형사고!
하지만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메시지들의 향연이 그 사실을 입증해 줬다.
띠링!
[거미들의 여왕, 페르메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250,000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탯 포인트를 15개 획득했습니다.]
[거미 숲의 지배자인 페르메를 단독으로 처치했습니다. 명성이 3,000 증가합니다.]
[스페셜 칭호, '여왕 살해자'를 획득했습니다.]
“우와!”
그야말로 피로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마법의 문장들!
게다가 그중 대미를 장식한 건 무려 스페셜 칭호였다.
“칭호 도감.”
카이는 곧장 소환된 도감을 펼쳤다.
[여왕 살해자]
등급 : 스페셜
내용 : 거미들의 여왕 페르메를 단신으로 처치한 유저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모든 스탯 +3
독 저항력 +30
거미 타입의 몬스터에게 선제공격을 받지 않음.
(이 효과는 칭호를 착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크으~ 이거지!”
카이의 입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걸친 듯한 구수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같은 스페셜 칭호라고 하나, 웜 리자드 슬레이어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고고한 칭호!
느낌 있게 어깨춤을 추던 카이는 새롭게 추가된 스탯 포인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 그야 당연히 힘이죠!”
단번에 15포인트나 상승하는 힘!
카이는 불끈불끈한 힘을 느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올힘 사제가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