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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통령 태양의 사제-40화 (40/441)

# 40

힐통령 040화

19장. 자본주의의 냄새(1)

카이가 멍한 표정으로 눈만 껌뻑거렸다.

‘글렌데일의 성자? 헬릭의 호감도? 명성…… 선행 스탯?’

머리가 한 번에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쏟아진 메시지들의 홍수!

카이는 무엇에라도 홀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칭호 도감을 펼쳤다.

[글렌데일의 성자]

등급 : 스페셜

내용 : 진심 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여 그들의 존경심을 끌어낸 자에게 부여되는 칭호.

효과 : 위엄 +10, 신성력을 소모하는 모든 스킬의 효과 +10%(이 효과는 칭호를 착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성자…….”

카이는 그 단어를 입속에서 굴리면서 몇 번이고 곱씹었다.

단 두 글자에 불과한 짧은 단어였지만, 그 무게감은 카이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 정도였다.

동시에 자신만을 쳐다보는 NPC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쁘지 않은 기분인데?’

자신의 선행을 누군가가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은 태양의 사제로 전직한 날 이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뭉클한 감정이었다.

특히 현실에서 항상 부정만 당해오던 카이에게는 무엇보다도 값진 경험이었다.

‘그나저나 위엄 스탯은 뜬금없이 뭐야?’

카이는 스탯 창을 열어 위엄 스탯의 효과를 살펴봤다.

[위엄 : 타인에게 스스로의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는 능력치.]

“으음…… 한마디로 위압감이 상승한다는 건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새로운 스탯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

“엄마! 아빠!”

“로디야!”

“내 새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한 가족의 감동 실화!

카이는 흐뭇하고도 뿌듯한 표정으로 로디 가족의 상봉을 지켜봤다.

다른 주민들도 그 모습을 보며 훈훈한 덕담을 늘어놓았다.

“거, 로디 녀석 부모 사랑이 각별하구만.”

“14살짜리 꼬맹이가 부모를 찾겠다고 다짜고짜 숲에 들어오다니. 저놈은 크게 되겠어.”

“에잉, 내 자식들은 어디서 뭐하나 모르겠군.”

그들의 내심 부러운 듯한 말투는 로디의 부모인 레디와 타냐를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엄마가 집에 가면 맛있는 거 해줄게.”

“으으응, 괜찮아요. 그냥 오래오래 살기만 해주세요.”

“허허. 여보.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의젓해졌지?”

“그러게 말이에요. 호호.”

그들이 ‘저희 단란한 가정이에요~’ 오라를 뿜어내는 사이, 카이는 주민들을 통솔하며 던전을 빠져나왔다.

“응?”

던전을 나온 카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둥지의 입구에는 누군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고 님?”

바로 카이에게 복수를 요청했던 궁수, 휴고였다.

게다가 그는 파티원으로 추정되는 유저 세 명과 함께 서 있었다.

카이가 살짝 경계심을 드러내자, 휴고가 양손을 들며 적대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아아, 불순한 의도를 품고 온 것은 아닙니다.“

휴고와 그의 동료들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저희의 무리한 부탁을, 복수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인사를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아니 뭐, 저도 이득을 많이 봤으니까요.”

그들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던 카이가 뻘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마 내가 페르메까지 처치했다는 건 모르겠지?’

휴고 파티는 물론 붉은 주먹 길드조차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솔플 유저가 보스를 잡는 건 실력만 좋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휴고는 카이의 뒤편을 슬쩍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뒤쪽의 분들은……?”

“이들은 던전에 갇혀있던 글렌데일의 주민들입니다.”

“아! 역시 그렇군요. 그것보다…….”

“저기, 저기 있다!”

누군가의 음성이 휴고의 말을 끊어버렸다.

이에 자리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돌아갔다.

“붉은 주먹 길드.”

카이는 새롭게 등장한 무리를 쳐다보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을 했기 때문에 보일 수 있는 반응이었다.

게다가 그의 예상대로, 퀘스트 게시판 앞에서 만났던 붉은 주먹 길드의 마스터도 보였다.

그는 카이의 모습을 한 차례 훑었다.

“뭐야, 저 검둥이는…… 광장에서 만났던 그 웃긴 놈 아니야? 너희 설마?”

“그, 그렇긴 한데…… 그때는 상황이 안 좋았다니까! 사냥하다가 뒤치기 당해서 진 거라고.”

싸가지 삼인방 중 한 명인 던컨이 귀까지 시뻘겋게 물들인 채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네 명을 한자리에서 해치웠다니…… 실력이 영 쓰레기는 아닌가 봐?”

붉은 주먹의 길마는 목을 뚝뚝 돌리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자신의 두 주먹을 허공에서 부딪치며 카이를 오만하게 쳐다봤다.

“난 붉은 주먹 길드의 마스터인 적권이다. 네가 우리 애들을 좀 귀여워해 줬다고?”

“귀여운 구석이 있어야 귀여워해 주지.”

“킥, 하긴. 우리 애들이 좀 생기다 말긴 했지.”

적권은 마치 재미있는 사냥감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혀로 입술을 축였다.

“재미있는 놈이긴 하지만, 아쉽게도 상대를 잘못 건드렸어. 감히 우리 애들을 건드리다니.”

“미안한데, 먼저 건드린 건 그쪽이거든?”

“그래서?”

적권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강자는 너희 같은 약자를 상대로 무슨 짓을 해도 용서가 되는 법이지. 그것이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사회의 기본적인 법칙, 약육강식이다.”

“그래?”

카이가 검 손잡이를 쥐면서 차가운 목소리를 뱉어냈다.

그 순간, 휴고가 카이의 시야를 막아섰다.

이에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뭐하시는……?”

“여긴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예?”

“저희는 처음부터 저 녀석들이 당신에게 복수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카이가 감동한 표정을 짓자, 휴고가 씨익 웃었다.

“비록 게임 속의 인연이지만, 은혜를 받은 입장에서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으니까요.”

휴고를 비롯한 그의 파티원들이 무기를 뽑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멍청이 때문에 두 번이나 죽게 되다니. 내 팔자야.”

“뭐, 사망 페널티 끝나면 다시 열심히 사냥하자고.”

“장비 복구하는 데 한 달 정도 걸리려나?”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치고는 초연해 보이는 태도!

‘대체 뭘 믿고?’

카이가 객관적으로 평가를 했을 때, 휴고 파티는 붉은 주먹 길드보다 약했다.

애초에 레벨도 낮을뿐더러, 인원수까지 적기 때문이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미 한 번 사망을 했기에 운이 나빴다면 장비도 떨어뜨렸을 터!

‘그런데도 날 위해서 이렇게 와줬다고?’

카이는 멍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거렸다.

휴고 파티는 카이가 게임을 시작하고서 처음 만나는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그야말로 낭만과 의리를 아는 게이머들!

“뭐, 시간을 오래 끌지는 못합니다. 길어야 10분 정도겠지요.”

휴고와 그의 동료들은 죽음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행동했다.

하지만 초보자도 아니고, 60레벨이 다 되어가는 이들이 죽는다는 게 말처럼 가벼운 일은 아니었다.

‘경험치가 떨어지겠지. 운이 나쁘면 레벨이나 장비도 떨어질 거고.’

하지만 이들은 그 모든 페널티를 감수하는 것을 선택했다.

고작 은혜를 갚겠다는 생각 하나 때문에!

“쓰읍…….”

카이는 입맛이 텁텁한 감정을 느끼며 고개를 흔들었다.

‘저런 말을 듣고 혼자 갈 수 있겠냐고.’

저들이 의리를 알고 자신을 보호하러 와준 것처럼, 카이도 의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카이의 몸은 다시 한 발자국을 걸어나가 휴고의 시야를 가렸다.

“저기, 앞이 안 보이는데요?”

“저희의 말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은데…….”

“아아, 이해는 충분히 했어요. 필요 이상으로 해버려서 문제지.”

스르릉.

카이는 검을 뽑으며 말을 이었다.

“혹시 역할 분담이라는 말 아세요?”

“……?”

휴고 파티가 눈만 깜빡거렸다.

“여러분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여러분은 높은 확률로 지게 될 겁니다. 제 말이 틀립니까?”

“그건…… 맞지만…….”

“그렇죠? 그러니까 제가 방법을 제시해 드릴게요.”

카이는 의문을 드러내는 휴고 파티를 돌아보지 않은 채, 엄지로 뒤편을 가리켰다.

“휴고 파티에게 정식으로 부탁드립니다. 저를 대신해서 마을주민들을 무사히 글렌데일로 데려가 주십시오.”

“자, 잠깐만요! 지금 저희를 대신해서 죽겠다는 소리입니까?”

“죽긴 누가 죽어요?”

고개를 돌린 카이가 이상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혼자 이 자리에 남으면 틀림없이 죽을 겁니다.”

“걱정 말고 가세요. 그리고 두 시간 정도 후에 커뮤니티 동영상 게시판 확인하시고요.”

“동영상 게시판이요? 거긴 왜…….”

카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휴고의 등을 떠밀면서 말했다.

“검색 키워드는 뭐가 좋으려나…… 아! 그렇지.”

뭔가를 떠올린 카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참교육. 이게 재미있겠네요.”

***

등을 떠밀어서 휴고 파티를 기어코 쫓아낸 카이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그의 눈앞에 있는 녀석들은 다른 유저들을 사냥하고, 낄낄거리는 양아치들.

개인적으로 카이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의 쓰레기들이었다.

그랬기에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상대할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네놈은 모르겠구나. 왜 내 닉네임이 적권인지 알아?”

“알게 뭐야.”

심드렁한 목소리를 내뱉는 카이에게, 적권이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어릴 때 감명 깊게 본 만화에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 붉은색은…… 세 배 더 빠르다고!”

말을 마친 적권의 신형이 예고 없이 튀어나왔다.

그 엄청난 속도는 같은 길드원들의 탄성을 자아낼 정도!

“크으, 역시 길마야!”

“흐흐. 힘과 속도 능력치가 붙은 아이템만 장비한 결과지.”

“아마 PK로는 70레벨 유저도 잡을 수 있을걸?”

‘……확실히.’

카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말처럼, 적권의 움직임은 결코 60레벨 정도의 유저가 보여줄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

카이의 모습이 흐릿하게 변했다.

신성 폭발을 사용해 아득하게 빨라진 움직임!

“뭐야!”

“저, 저번에 싸울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카이의 움직임에 붉은 주먹 길드원들이 입을 쩍 벌렸다.

그들에게 주어졌던 불과 사흘의 사망 페널티.

그 시간 동안 카이는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해 있었다.

모든 경험치를 독식하며 레벨을 올리고, 새롭게 증가한 30개의 선행 스탯이 그 원인이었다.

“마, 말도 안 돼!”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카이를 맞상대하고 있던 적권이었다.

‘내가 속도에서 밀리다니!’

지금의 속도를 내기 위해 모든 장비를 힘 스탯이 붙었거나, 속도 능력치가 붙은 것들로만 구매했다.

‘그런 내가 움직임에 반응조차 하지 못한다고?’

경악으로 물든 적권의 등 뒤에서 한 자루의 검이 튀어나왔다.

***

“에이, 오늘도 손님이 없네.”

반스라 불리우는 유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상인으로 전직한 그는 도시 광장에서 좌판을 늘어놓은 채 오지도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오늘도 커뮤니티나 기웃거려야 하나.’

상인은 그 누구보다 정보에 민감해야 하는 법!

반스는 오늘처럼 손님이 없을 때면, 커뮤니티를 둘러보며 돈이 될 만한 정보를 모았다.

“어디 어디, 오늘은 새 소식이 뭐 없으려나?”

새로운 정보를 찾지 못한 반스가 심드렁한 표정을 짓던 찰나, 실시간으로 떠오르는 게시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응? 이건 제목이 왜 이래. 붉은 주먹 참교육?”

익명으로 등록된 그 동영상은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추천 수와 조회 수가 가파르게 올라가는 중이었다.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궁금증을 참지 못한 반스는 동영상을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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