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힐통령 041화
19장. 자본주의의 냄새(2)
조회 수 : 115,741
추천/비추천 : 3141/6
내용 : 동영상 주인공이 검은색 갑주.
곧장 동영상의 정보를 확인한 반스는 황당한 표정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뭐야 이 조회 수는? 등록된 지 고작 30분 지났는데?’
성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설명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은 조회 수와 추천 수!
‘대체 어떤 영상이길래…….’
서둘러 재생한 동영상은 숲속을 배경으로 시작되었다.
숲속의 나무는 잔잔한 바람에 의해 흔들렸고, 따사로운 햇살 때문인지 평화로워 보였다.
파삭!
하지만 그 평화는 가슴에 붉은 주먹을 박아넣은 사람들의 등장으로 깨져버렸다.
평소 커뮤니티를 자주 둘러보던 반스는 숲의 배경을 단번에 유추해낼 수 있었다.
‘침엽수가 많고 나뭇잎 사이사이에 거미줄이 쳐진 곳이라면…… 거미의 숲이다!’
이곳은 고레벨 유저들이 활동하지 않는 지역이다.
그런 곳에서 찍힌 동영상이 이렇게 인기가 좋다니?
반스는 입을 다물고 영상을 쭉 지켜봤다.
두 무리의 사람들이 대치를 하고 있었고, 그중 주먹이 붉은 유저 하나가 입을 열었다.
-강자는 너희 같은 약자를 상대로 무슨 짓을 해도 용서가 되는 법이지. 그것이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사회의 기본적인 법칙, 약육강식이다.
“뭐야, 이 재수 없는 놈은.”
반스의 눈이 찌푸려졌다.
생산직 클래스인 그는 사냥터에서 저런 종류의 괄시를 받아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저 붉은 주먹 길드라는 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혹시 필드에서 억울하게 PK 당한 영상을 올린 건가?’
하지만 그런 영상은 하루에도 수백 개도 넘게 올라온다.
영문을 알 수 없던 반스의 눈은 영상이 재생되면서 점점 커졌다.
“어어? 동료들을 보내면 안 되지!”
검은색 경갑을 입은 사람이 자신을 제외한 아군을 모두 대피시켰고, 맞은 편에 서 있던 놈들은 낄낄 웃으며 이를 가만히 쳐다봤다.
‘아이구, 망했네.’
태생이 약자여서 그런지, 반스는 검은색 경갑의 전사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동료들이 떠날 때 안타까워했고, 상대편의 유저가 압도적인 속도로 튀어나왔을 때 깜짝 놀랐으며, 그다음 순간에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허, 허억!”
약자인 줄 알았던 검은색 경갑 전사의 움직임은 영상으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차원이 달랐다.
일정한 시간이 흘러가는 동영상에서, 마치 혼자만 배속을 높인 것 같은 엄청난 움직임!
‘하지만 속도뿐만이 아니야.’
그는 플레이어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인물처럼 보였다.
시기적절한 상황에서 상대방의 눈을 찌르거나 아킬레스건을 그어버리는 등.
그야말로 PVP의 정석과도 같은 움직임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발휘했다.
“어어, 저놈들도 반격하잖아!”
물론 영상 주인의 움직임은 빨랐지만, 정신을 차린 상대방이 아무것도 못 할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적들의 숫자는 무려 여섯!
똘똘 뭉친 그들은 서로 협력하면서 조금씩 영상의 주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아쉽네. 역시 혼자서 여섯 명은 무리지?”
반스가 짙은 아쉬움을 토해내는 순간, 영상의 주인은 왼손에 스태프 하나를 소환했다.
동시에 들썩거리기 시작하는 땅바닥!
“어엇!?”
들썩거리던 바닥을 뚫고 나온 건 무려 여섯 마리의 놀 스켈레톤들!
붉은색 안광을 뿜어낸 그들은 영상 주인의 명령에 따라 적들에게 돌진했다.
이에 붉은 주먹 길드원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소리쳤다.
-이거야! 저번에도 이 해골들을 다뤘다고!
-진형 붕괴가 되지 않게 조심해!
-레벨에 비해 공격력과 방어력이 높은 놈들이야! 방심하지 마!
언데드의 최대 강점은 바로 두려움을 모른다는 것!
동시에 주인의 명령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콰드드득!
자신의 갈비뼈가 날아가고 두개골이 바닥에 떨어져도 돌진을 멈추지 않은 놀 스켈레톤들!
결국 붉은 주먹 길드의 진형에 조그마한 틈이 생겼다.
그리고 그 틈새를 귀신처럼 파고드는 영상의 주인!
“우와아…….”
동영상을 모두 시청한 반스가 입을 멍하니 벌린 채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여섯 명이나 되던 상대편이 모두 쓰러지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8분!
영상은 놀 스켈레톤들이 자신의 두개골을 들고 유쾌하게 춤을 추면서 끝났다.
동영상의 밑에는 이미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린 상태였다.
-이거 재밌네
-어느 길드 루키지?
-참고로 영상에서 처참하게 발린 여섯 명은 글렌데일 위주로 활동하는 붉은 주먹이라는 길드원들인데, PK랑 몬스터 스틸로 유명한 쓰레기들임
-요즘 볼 만한 동영상 몇 개 없었는데 오랜만에 괜찮은 영상 건졌네. 후원하고 감
-어휴, 붉은 주먹 저 쓰레기들한테 PK당했던 사람입니다. 속이 아주 후련하네요. 얼마 안 되지만 후원하고 갑니다
ㄴ2222 저도 당했음 ㅠㅠ
ㄴ3333 진짜 대리만족 한 번 시원하게 하네요. 저도 후원금 남기고 갈게요
-그런데 중간에 저 해골들은 뭐임? 설마 영상 주인이 네크로맨서라는 반전은 아니겠지?
ㄴ다시 돌려보니까 해골들 소환되기 전에 스태프 꺼내네요. 그 뒤에 원판 하나 튀어나오는 거 보니…… 아무래도 스태프에 소환 스킬이 붙어 있는 것 같은데요?
ㄴ헐. 저런 성능의 아이템이면 최소 레어 등급이겠네요
-해골들 춤 추는 거 귀엽다ㅋㅋ
ㄴ심지어 은근히 잘 춤ㅋㅋㅋㅋ
-비추천 정확하게 6개인 거 보소ㅋㅋㅋㅋ 비추 실명제냐?
-영상보고 재미있어서 후원한 건 이게 처음! 혹시 시리즈 같은 건 안 내주려나?
ㄴ익명으로 올린 거 보니 딱히 욕심은 없는 것 같은데?
ㄴ아쉽다. 시리즈로 내면 무조건 구독할 생각이었는데
ㄴ입고 있는 장비들 보니까 돈도 많아 보이는데 굳이 할 것 같지는 않음.
-영상 주인의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닌데, 고군분투하면서 열정적으로 싸우는 모습에 엄청나게 몰입된다.
ㄴ동감. 다른 랭커들처럼 깔끔하고 세련된 결투 영상은 아닌데, 뭔가 나도 모르게 응원해지고 싶어짐.
대부분이 칭찬으로 일색인 댓글들!
게임이 오픈된 지 4개월이 지나, 나름 고착화가 되어버린 미드 온라인에 재미있는 루키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
“이거 전부 다 합쳐서 4골드에 급처할 게요.”
“……지, 진심이십니까?”
“리얼 진심.”
도시로 돌아와, 사제복으로 갈아입은 카이는 눈앞의 상인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다른 말 하기 없습니다?”
“물론이죠.”
상인에게 여섯 개의 장비를 건네주고, 4골드를 건네받은 카이가 희희낙락한 표정을 지었다.
붉은 주먹 길드원들은 다른 유저들을 자주 죽여서 그런지 이름이 새빨간 상태였다.
그 말은 곧 카오틱 유저라는 뜻!
‘미드 온라인에서 카오틱 유저의 페널티는 상당히 심각하지.’
이름이 계속 머리 위에 떠 있다는 것도 치명적인 페널티 중 하나였지만, 무엇보다 큰 페널티는 사망할 시 무조건 장비한 아이템 하나를 드랍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카이가 손에 넣은 건 네 개의 노말 아이템과 두 개의 매직 아이템!
하지만 애석하게도, 썩 좋은 장비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카이는 상인 유저에게 싼값에 장비들을 넘겨 소소한 용돈이라도 챙긴 것이었다.
‘그럼 이제 나도 좀 쉬어볼까.’
페르메의 둥지에서는 생각보다 체력과 정신력을 많이 소모했다.
던전을 공략하는 한편, 뒤통수도 항상 경계해야 했으니까.
안전한 도시로 들어와 긴장이 풀리자, 그동안 억눌러 왔던 피로감이 한 번에 몰려들었다.
“후, 로그아웃.”
헤드기어를 벗고 캡슐에서 일어난 한정우는 거실로 나갔다.
“응?”
거실에서는 그의 누나가 홀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한 시.
한정우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청승맞게 새벽에 왠 혼술?”
“시끄러워.”
입술을 삐쭉 내밀며 동생을 쳐다본 한지혜가 입을 열었다.
“엄마한테 이야기는 들었어. 너 엄마 생신에 한턱낸다고 큰소리쳐 놨다며?”
“응? 아, 그랬지.”
“대체 뭘 어쩌려고? 너 돈 없잖아.”
“에이, 언제적 얘기를 하시나?”
한정우가 승리자의 여유로운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누나, 그거 알아? 과거에는 나처럼 집 안에 틀어박혀 게임만 주야장천 하는 이들이 백수, 혹은 게임 폐인이라고 불렸다는 사실.”
“응? 그거 과거 아닌데? 동네에 소문 다 났어. 우리 집에 백수 게임 폐인이 산다는 거. 엄마가 부끄러워서 시장을 안 가려고 하시더라.”
“……크흐흐흠!”
타오르는 갈증을 참지 못한 한정우는 누나의 맥주를 뺏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흐으. 잘 들어, 누나. 게임 하나만 잘해도 부자가 될 수 있고, 명성을 얻을 수 있어. 게임을 잘하는 것이 곧 재능인 세상이란 말이지.”
“그건 나도 알지. 그래서 너 게임에 재능 있어?”
“……으, 응?”
있지 않을까?
평소 그런 종류의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한정우가 눈만 깜빡거렸다.
한지혜는 동생의 멍청한 얼굴을 쳐다보더니 오징어를 냠냠 씹었다.
“그래서 님 레벨이?”
“……64레벨.”
“그래서 님 랭킹이?”
“…….”
물론 한정우는 간간이 자신의 랭킹을 확인했지만, 순위를 정확하게 외우지는 못했다.
‘엊그제 확인했을 때가 랭킹 2억 어쩌구였는데 그걸 어떻게 외워?’
잔혹한 팩트에 얻어맞은 한정우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한지혜는 짧은 한숨을 내쉬더니 동생의 어깨를 토닥였다.
“힘내렴, 동생아.”
“고마워. 그래도 누나밖에 없다.”
“어우, 징그러워. 저리 가.”
그녀는 퉁명스럽게 대꾸를 하면서도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었다.
“아무튼, 정우 네가 게임으로 성공해서 돈과 명예를 거머쥔다고 해도, 넌 내 동생이야. 반대로 지금처럼 한심한 꼴이라도 내 동생인 건 변함없어.”
“누, 누나…….”
감동을 받은 한정우가 물기 젖은 목소리로 말하자, 누나가 말했다.
“그리고 동생은 누나 말 잘 들어야 되는 법! 편의점 가서 오징어나 좀 더 사와. 버터구이로.”
“…….”
“거스름돈 드림.”
“콜.”
만 원을 받아든 한정우는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
“어디 보자…….”
누나의 심부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한정우는 컴퓨터 앞에 앉아 삼각 김밥을 먹었다.
“역시 참치 마요네즈가 진리지.”
그는 출출한 배를 채우며 커뮤니티에 새로 올라온 정보들을 확인했다.
“흐음…… 이제 나름 고수라고 불리는 유저들은 전부 150레벨이 넘은 건가? 엄청 빠르네.”
지금처럼 사냥해서는 도무지 쫓아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답답함에 뒷머리를 벅벅 긁은 정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한두 달 만에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 길게 보자.’
옅은 한숨을 내쉰 한정우는 화면의 구석에서 계속해서 떠오르는 알림창을 쳐다봤다.
[등록하신 게시물에 댓글이 달렸습니다.]
[등록하신 게시물에 댓글이 달렸습니다.]
[등록하신 게시물에 댓글이 달렸습니다.]
…….
“내가 등록한 게시물이라면……? 아아.”
한정우는 불과 몇 시간 전에 올린 동영상을 떠올렸다.
붉은 주먹에게는 창피를, 휴고 파티에게는 통쾌함을 주고 싶어서 열심히 편집까지 했었다.
비록 비전문가의 솜씨인지라 투박하고 허접하기 그지없었지만, 본인은 충분히 만족한 상태!
“거기에 댓글 몇 개 달렸나 보네. 붉은 주먹 녀석들이 욕이라도 달고 갔나?”
한정우는 별 기대 없이 알림창을 클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