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힐통령 042화
20장. 약탈자들의 왕(1)
조회 수 : 2,435,741
추천/비추천 : 145,741/11,375
내용 : 동영상 주인공이 검은색 갑주.
“……응?”
한정우는 화면에 떠오른 숫자들을 쳐다보며 자신의 눈을 비볐다.
“인기 동영상 랭킹 5위…… 라고?”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다른 동영상을 클릭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이건 내 영상이 맞는데?’
아이디를 익명으로 돌린 것도 그렇고, 내용을 확인해도 역시 자신의 영상이 맞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말도 안 되는 조회 수와 추천 수는 무엇이란 말인가?
“허…….”
사람이 너무 기가 차면 말도 나오지 않는 법!
한정우는 이미 수백 페이지를 넘어가는 댓글창을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대체 뭐냐, 이 긍정적인 반응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읽기 시작한 댓글들은, 칭찬과 감탄이 연신 이어지자 점점 밝아졌다.
그런 한정우의 움직임이 돌연 멈춘 것은, 계속해서 언급되는 후원금이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후원금? 이건 또 뭐야.”
그 달콤한 단어에서 자본주의의 냄새를 맡은 한정우의 손이 분주해졌다.
“여기 있다.”
약간의 시간을 투자한 끝에 후원금 페이지를 찾아낸 한정우!
그곳에 표시된 액수를 읽은 그의 눈동자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부, 분명히 내가 이 영상을 편집하는 데 걸린 시간이…….’
겨우 두 시간 정도다.
게다가 동영상을 등록한 지는 이제 고작 여섯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110만 원이나 들어왔다고?’
물론 로또와 비교할 정도로 큰돈은 아니다.
하지만 한정우는 동영상에 어떠한 광고도 삽입하지 않았다.
당연히 동영상의 조회 수가 1억일지라도 수입은 0원일 수밖에 없다.
‘대박이다. 그럼 110만원이 모두 후원금으로만 이루어져있다는 소리잖아?’
한정우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말고, 생각을 좀 해보자.’
이 동영상이 왜 이렇게 인기가 있었는지, 어느 부분이 유저들의 관심을 끌었는지.
한정우는 인기 카테고리의 다른 동영상들과 비교를 하며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영상을 시청한 그가 내린 결론은 지극히 간단했다.
“……허접해서 그렇네.”
다른 인기 동영상들의 주인공은 대부분이 랭커였다.
랭커들의 결투 영상, 랭커들의 레이드 영상, 랭커들의 사냥 영상…….
모든 것이 랭커에서 시작되고, 랭커에서 끝났다.
랭커가 연관되지 않은 동영상 중에 인기 카테고리에 등록된 건, 코미디 영상 정도뿐.
그랬기에 더욱 한정우의 동영상은 빛을 발휘했다.
‘영상 속의 나, 카이는 랭커들처럼 실력이 뛰어나지도, 레벨이 높지도 않아.’
하지만 그 부분이 오히려 이 동영상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허접한 주인공은 응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켰고, 약자로 보이던 자신이 치열한 싸움과 노력 끝에 다수의 적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게다가 비록 20분 정도의 짧은 영상이었지만, 나름의 스토리도 있고 반전도 있었다.
‘그리고 놀 스켈레톤들. 이 녀석들의 인기가 생각보다 엄청 대단하네.’
다시 한번 댓글을 확인해 보니, 놀 스켈레톤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스태프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혹시 판매할 의사는 있는지 등등.
그 모든 것이 놀 스켈레톤들 덕분이었다.
‘캐릭터 성…… 이라는 건가.’
보통 언데드, 스켈레톤 하면 끔찍한 몰골인지라 여성 유저들이 굉장히 싫어한다.
하지만 놀 스켈레톤들은 기본적으로 모습이 놀!
짜리몽땅한 키에 강아지를 닮은 두개골은 제법 귀엽게 보였다.
게다가 주인의 말을 절대적으로 복종한다는 점 또한 플러스였다.
한 마디로 어설픈 부분들이 하나씩 모여, 신선의 극을 달리는 최고의 소재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한정우는 그 소재를 가공할 수 있는 유일한 플레이어였다.
‘이거, 돈이 된다.’
한정우가 눈을 빛냈다.
수차례 생각을 해보고, 견적을 짜본 결과는 간단했다.
바로 카이라는 캐릭터와 놀 스켈레톤들을 상품화하여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놀랍게도 리스크가 없다는 점이었다.
‘지금 내가 가장 감추고 싶은 건 내가 신화 등급의 직업 소유자라는 거지.’
하지만 동영상에는 플레이어의 직업도, 상태창도, 레벨도 표시되지 않는다.
게다가 만약 이상한 점이 있더라도, 그 장면을 삭제하면 그것으로 안전해진다.
그야말로 노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최고의 돈벌이 방법!
‘하지만 이번 영상은 축복임과 동시에 독이 될 수도 있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마음이 붕 떠서 핑크빛 미래를 그릴 테지만, 한정우는 특유의 객관적인 판단력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라봤다.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가 되기 딱 좋은 상황이잖아, 이거.”
우연히 단 하나의 흥행을 터뜨린 후, 그 영광의 순간을 잊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그에 매달리는 안타까운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한정우는 이 순간의 기쁨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경계했다.
‘어차피 이 상황은 내가 의도한 게 아니야.’
한마디로 이 동영상으로 벌어들인 돈도, 그리고 인기 동영상 랭킹 5위라는 놀라운 성적도.
모두 금방 사그라들 거품 같은 허상이다.
‘만약 여기서 한 번 더 대박을 터트린다면…… 부수입을 챙기기에는 최고의 방법이 되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딱히 실망을 할 필요는 없어.’
실패를 해도 그만, 성공하면 그걸로 만족.
그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동영상을 업로드 한 뒤에 경과를 지켜보면 될 것이다.
한정우는 냉정하게 선을 그어놓은 뒤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뭐, 그래도 지금 당장은 이 기분을 즐겨도 되겠지.’
수백만의 조회 수, 수십만 개의 추천, 그리고 수만 개의 댓글!
한정우가 22년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그를 감싸 안았다.
‘……왜 SNS의 관심 종자들이 생겨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아마 이 짜릿한 쾌감과 고양감, 충족감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적당히 마음을 안정시킨 한정우는 홈페이지 메인으로 돌아왔다.
랭킹 5위에 걸려있는 자신의 동영상이 그를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만들어줬다.
“후후.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한정우가 기분 좋은 미소를 흘리며 컴퓨터를 끄려던 순간, 커다란 배너가 새롭게 떠올랐다.
[속보! 천화 길드. 약탈자들의 왕 베이거스 레이드에 최초 성공.]
레이드의 성공 소식을 알리는, 강렬한 속보였다.
평소대로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탈자들의 왕 베이거스라는 단어가 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뭐, 뭐야. 베이거스를 벌써 잡았다고?”
한정우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서둘러 배너를 클릭했다.
약탈자들의 왕, 베이거스.
180레벨의 보스 몬스터로, 일반적인 파티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사냥할 수 없는 존재다.
최소 길드 단위에서 공략을 해야 하는 레이드 몬스터라는 뜻이다.
근래에 최종 보스 정도로 여겨지던 녀석이니 그 정도는 당연했다.
‘그런데 그걸 천화 길드가 잡았다고?’
한정우는 미드 온라인을 좋아하는 만큼, 세계적인 길드의 이름 정도야 당연히 알고 있었다.
천화 길드는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한 곳으로, 한국 최고의 길드 중 하나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세계를 상대로 비교하면 약간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천화 길드가 베이거스를 잡기에는 딜러들이 많이 부실할 텐데?”
혹시 천화에서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던 비밀 전력이라도 있었던 걸까?
눈을 가늘게 뜬 한정우가 기사 내용을 읽었다.
[한국 최고, 최대 규모의 길드 중 한 곳이 천화에서, 특별한 용병을 고용해 베이거스 레이드에 성공해 화제가 되고 있다. 천화 길드는 레이드 당일까지 이 용병의 정체를 공개하지 않고 있었으나, 라이브 방송에서 공개된 용병의 정체는 바로 플레이어 유하린으로 밝혀져…….]
“……!”
한정우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만큼 유하린이라는 존재는 이 정도의 반응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유하린이면…… 랭킹 1위의 그 유하린이지?”
그녀를 수식하는 별명은 수두룩하다.
괴물! 부동의 랭킹 1위! 걸크러쉬! 등등…….
“설마 천화 길드에 들어간 건가?”
여태까지 길드에 가입하지 않고 혼자 플레이하면서 전 세계 랭킹 1위를 찍었던 그녀였기에, 이번 천화 길드와의 레이드는 그야말로 서프라이즈 그 자체였다.
한정우의 시선이 기사의 하단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30초 정도의 짤막한 영상이 게재되어 있었다.
딸깍.
[검과 마법이 공존하는 새로운 세상. 미라클 드림…….]
딸깍.
“스킵!”
[스킵하실 수 없습니다. 광고가 끝난 뒤 영상이 시작됩니다.]
“…….”
티끌만 한 광고비까지 빠트리지 않고 챙기겠다는 천화 길드의 뻔한 속셈!
‘으으, 대기업 놈들. 누진세는 이를 위한 포석이었나……!’
미친 듯이 배가 아파 왔지만, 차마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를 수는 없었다.
천화 길드와 유하린이 어떤 마법을 부렸는지 미치도록 궁금했으니까.
***
마법사들의 현란한 마법이 전장을 지배하고, 궁수들의 화살이 하늘을 뒤덮었다.
사제들의 버프와 힐이 바람을 가르며 아군에게 스며들었고, 전사들이 높게 솟아 올린 무기들은 적군을 분쇄했다.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박진감 넘치는 영상을 보던 한정우가 감탄했다.
“와…… 편집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했네.”
자신이 편집했던 참교육 영상을 길거리 쓰레기 수준으로 만들어버리는 퀄리티!
천화 길드처럼 거대한 길드는, 종종 대기업에 비견될 정도로 덩치가 크다.
길드 내에 전문적인 영상 편집자도 있고, 레이드 영상을 유료로 판매하기까지 한다.
더군다나 베이거스 정도의 몬스터라면, 모르긴 몰라도 보상만 몇억이 가볍게 넘어갈 것이다.
‘천화에 가입하지 못해서 안달 난 유저만 수천, 아니, 수만 명은 가볍게 넘겠지.’
거대 길드는 마치 회사처럼 월급도 나오고, 기본적인 장비마저 지급된다.
심지어 던전과 사냥터를 통제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까지 한다.
물론 길드가 이렇게 성장하려면 초반에 압도적인 자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천화 그룹이 모태인 천화 길드는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천화 그룹 회장의 손녀딸이 길드마스터라는 소문은 게임 초기부터 파다했다.
‘뭐, 그만큼 욕도 많이 먹고 있지만.’
사냥터를 독점하며 입장료를 받거나, 재료의 공급을 조절하며 시세를 조작하는 그들의 횡포는 일반 유저들의 원성을 사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힘이 없는 것을.
한정우는 입을 다물고 영상을 뚫어질 듯 쳐다봤다.
휘이이잉.
폐허가 된 초원.
베이거스와 그의 수하들이 지나간 곳은 언제나 을씨년스러운 적막감과 죽음의 기운만이 감돌았다.
[어리석은 것들…….]
검은색의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한쪽 눈에 안대를 착용한 거한이 살기가 깃든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약탈하는 희대의 악당, 베이거스.
미드 온라인의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누구나 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나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어.’
한정우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도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베이거스의 이름 정도는 들어봤다.
‘개발자들은 최소 3개월은 더 지나야 베이거스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대체 어떻게 녀석을 공략한 걸까?
카이는 숨을 잔뜩 죽인 채 영상을 관전했다.
[쓸어버려라.]
베이거스의 짤막한 명령과 함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웬만한 영화는 명함조차 못 내밀 수준의 영상.
미드 온라인이 어떻게 세계의 모든 컨텐츠를 씹어 먹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오오…….”
무료 영상이라서 그런지, 중요한 전투 장면은 보여주지 않았고, 영상은 빠르게 스킵 되었다.
어느새 수하를 모두 잃어버린 베이거스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를 둘러싼 천화 길드원들의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내구도가 바닥난 장비들이 군데군데 파괴되었고, 인원도 절반 이상이 사라져 있었다.
그런 그들의 사이에서, 한 명의 유저가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