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힐통령 050화
25장. 죽음의 술래잡기(1)
검은 벌(Black Bee).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10개의 길드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구성원들은 모두 마법사로 이루어져 있고, 그런 만큼 화력은 앞에서 1, 2위를 다툰다.
마법사라면 모두 가입하기를 희망하는 곳.
아니, 굳이 마법사들이 아니더라도 세계 10대 길드라는 타이틀은 군침이 돌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검은 벌에서 촉망받는 루키, 클라드가 직접 제안을 한다는 건 파격적인 일이었다.
“이 토벌대가 끝나기 전까지 우리와 함께 행동하지 않겠나? 토벌 포인트는 나눠 주지 못하겠지만 50골드를 챙겨주고 이 일은 마스터에게 직접 이야기해 주겠다. 어떤가?”
게다가 그 내용 또한 파격적이다.
말만 제안일 뿐, 일개 사제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
“와, 저 사제 계 탔네. 계 탔어.”
“나도 사제나 키울 걸 그랬나.”
“아서라. 네 성격이면 50레벨 마의 고비도 못 넘을걸.”
“하긴.”
그 장면을 목격한 주변 유저들도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지만, 딱히 질투하지는 않았다.
‘그야 사제인걸.’
‘그야 사제니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녀석들이잖아.’
키우기는 더럽게 힘든 주제에 파티원이 없으면 사냥조차 못 하는 쓰레기 직업!
그것이 사제에 대한 현재의 인식이었고, 그래서 사제라면 이 정도의 대우는 받아도 된다고 자리에 있던 유저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사제는 티 없이 밝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우와! 검은 벌에서 저를요? 영광이죠!”
당연한 말이지만 사제는 클라드의 제안을 냉큼 수락했다.
그렇게 파티가 이루어졌고, 클라드는 파티에 가입한 사제의 정보를 확인했다.
‘흐음, 닉네임은 비공개인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클라드였지만, 이내 납득했다.
현재 그에게 필요한 건 사제의 닉네임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클라드는 사제의 레벨이 64라는 것과 직업이 사제라는 것만을 확인했다.
‘그럼 위험 요소도 없겠군.’
그것을 끝으로 클라드는 사제에 대한 관심을 꺼버렸다.
랭커를 목표로 게임을 하는 그에게 이 정도 수준의 사제는 기억해 둘 가치도 없었으니까.
* * *
‘철두철미한 놈들. 역시 모든 정보는 비공개인가?’
아무런 의심 없이 검은 벌 파티에 들어오게 된 사제, 카이는 깊숙한 후드 아래에서 혀를 찼다.
‘뭐, 애초에 기대도 안 했지만.’
이 녀석들의 길드는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세계 10대 길드다.
그런 곳에서 작정을 하고 키우는 루키 파티의 레벨이나 닉네임, 직업 등등.
모든 정보는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꽁꽁 숨겨놓은 정보를 처음 만난 사제에게 공개한다?
‘머리에 총이라도 맞지 않은 이상 그럴 리는 없겠지.’
그것이 카이가 그들의 정보에 별 기대를 안 한 이유였고, 덕분에 실망감도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10대 길드인가…… 이번엔 좀 조심해야겠어. 붉은 주먹 때와는 달라.’
10대 길드라는 건 허울뿐인 타이틀이 아니다.
그들은 자체적으로 사냥터나 던전 등을 독점하고 있으며, 그곳을 이용해 돈을 번다.
그것도 일반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돈을 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다시 길드의 전력을 강화하는 데 고스란히 투자된다.
막대한 수익과 막대한 투자.
그것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불멸의 사이클!
세계 10대 길드가 말도 안 되는 강함을 지니고 있는 비결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10대 길드의 전력은 개사기지.’
현재 미드 온라인에서 가장 강력한 길드들을 1위부터 100위까지 줄 세워놓고, 상위 10개 길드와 나머지 90개 길드가 싸우라고 시켜도 10대 길드가 우위를 차지할 정도다.
그것은 카이 스스로의 생각이 아니었다.
다방면의 전문가들과 랭커들이 길드의 전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내린 결론이다.
‘그렇게 대단해 보이던 천화 길드조차 세계 10대 길드에는 비비지도 못하니까.’
후드 아래에서 카이의 눈매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조심, 또 조심하자. 상대는 검은 벌이라는 걸 절대 까먹으면 안 돼.’
붉은 노을, 붉은 주먹 같은 허접들을 상대할 때처럼 움직이면 안 된다.
이들은 프로였다.
밥만 먹고 게임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게임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은 그중에서도 소수다.
그리고 이들은 그 소수 중에서도 상위 1%에 속하는 사람들.
카이는 자그마한 실수도 하지 않도록 경계심이라는 매듭을 단단히 조였다.
“곧 다섯 번째 전투가 시작될 것 같군.”
토벌대장의 주변을 쳐다보던 클라드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토벌대장의 옆에 있던 병사 하나가 뿔나팔을 높이 들어 올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우리는 이번 전투에서 부락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클라드의 말에 검은 벌 길드원들은 물론이고, 카이조차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네 번의 전투에서 토벌대는 계속 승리해 왔어.’
덕분에 전선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었고, 현재 토벌대는 오크 부락의 코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오크들도 부락의 입구를 굳게 닫은 채 나오지 않는 상황.
‘이번에는 단순히 쏟아져나오는 오크들을 잡는 게 아니라, 전진하면서 놈들을 잡아야 돼.’
난이도로 따지면 이쪽이 훨씬 어렵다.
게다가 부락의 안쪽에는 오크 워리어나 오크 히어로들도 잔뜩 있을 터.
검은 벌 길드원들도 제법 긴장이 됐는지 이전의 여유로운 표정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그 와중에 클라드가 간단한 명령을 마쳤다.
“진형은 B-4로 통일한다. 그리고…… 그쪽의 사제님은 체력이 떨어지는 이들 위주로 힐을 주십시오.”
“맡겨주세요. 그럼 먼저 버프 돌리겠습니다.”
카이는 태양의 축복과 갑옷을 제외한 간단한 버프를 그들에게 걸어줬다.
“오, 스탯이 제법 오르는데?”
“이 정도면 아까보다 더 수월하게 싸울 수도 있겠어.”
카이의 버프에 크게 만족을 하는 검은 벌 길드원들!
그리고 동시에 뿔나팔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토벌대장의 목소리도 초원에 울려 퍼졌다.
“오크 부락의 입구를 무너뜨리고 내부를 점거하라!”
“우와아아아아!”
전투가 시작되자 마법사들의 폭격이 오크 부락의 울타리를 강하게 두드렸다.
“오오, 내구도 빨리 까진다!”
“이 정도면 금방 무너뜨릴 수 있어!”
다른 근접 계열 유저들은 각자의 무기를 꼬나쥔 채, 울타리가 쓰러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기를 잠시…….
쿠우우웅!
쿠웅!
“울타리가 쓰러졌다!”
“돌격!”
“다 죽여버려!”
토벌대원들이 해일처럼 몰려들며 오크 부락으로 쏟아져 갔다.
“우리도 늦지 않게!”
“오크 부락에는 몬스터가 많아. 포인트가 따라잡히지 않게 서둘러!”
검은 벌 길드원들도 발 빠르게 내부로 진입했고, 그때부터 쉴 틈도 없이 전투가 이어졌다.
‘정신이 하나도 없잖아!’
그들의 사냥 페이스를 간신히 따라가던 카이가 혀를 내둘렀다.
‘이게 10대 길드의 루키들 수준인가?’
이미 그들과는 몇 번이나 함께 사냥을 했지만, 진심을 드러낸 이들의 수준은 차원이 달랐다.
전투는커녕 그들에게 힐을 주면서 쫓아가는 것만도 벅찰 지경!
‘숫제 괴물들이잖아.’
카이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사제 된 몸으로 혼자 페르메를 처치하고, 붉은 주먹 길드를 쓸어버렸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밴 오만과 자신감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마음으로, 먹을 수 있는 건 남김없이 먹어치우자.’
비록 이들은 마법사이지만, 카이는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냉철하고 정확하게.
* * *
파지지지직!
쿠웅!
“후욱, 후욱…….”
어느덧 주변을 정리한 파티원들이 땀을 닦으며 태세를 정비했다.
오크 부락의 내부도 다른 토벌대원들에 의해 순조롭게 공략당하는 상황.
그 때문에 카이의 마음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이 돼지 같은 놈은 포인트를 아주 우걱우걱 처먹는구나!’
파티 창에는 연신 클라드가 토벌 포인트를 획득했다는 메시지가 도배되었다.
이미 그의 포인트는 600포인트를 훌쩍 넘긴 상태!
‘만약 이놈이 오크 로드까지 잡게 된다면…….’
카이가 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오크 주술사를 처치한다고 해도 1등은 물 건너가게 된다.
까맣게 안색이 죽은 카이가 간절히 기도했다.
‘젠장, 오크 주술사 빨리 좀 나와라……! 아니면 오크 로드를 다른 놈이 잡든가!’
그때, 저 멀리서 사냥 중이던 유저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오, 오크 로드다!”
“이 녀석…… 레벨이 90이나 되는데!?”
“미친, 이딴 걸 우리가 어떻게 잡아!”
한껏 당황한 유저들의 감정은 공기를 타고 카이에게까지 전해져 왔다.
카이는 슬쩍 고개를 돌려 클라드의 반응을 확인했다.
“오크 로드라…….”
그는 토벌 순위표를 쳐다보며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오크 로드는 포기한다.”
“예.”
“현명한 선택이네요.”
아주 쿨하게 오크 로드를 포기해버리는 클라드!
그 판단은 지금 상황에서 결코 나쁜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2위 녀석이 오크 로드를 잡는다고 해도 내 포인트를 따라잡을 순 없어.’
이미 500포인트 이상의 격차는 벌려놨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크 로드는 레벨이 90이라고 한다.
100레벨이 넘어가는 유저들이라면 모를까, 글렌데일에서 활동하는 유저들 중 그 정도의 고레벨 유저는 없다.
한마디로 일개 파티가 잡을 수 있는 녀석이 아니라, 토벌대 단위로 레이드를 해야 한다는 소리!
‘오크 로드를 잡을 시간에 잡몹들을 처리하면서 포인트를 쌓는 것이 더 빠르다.’
물음표로 표시된 1,000점짜리 존재가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현재로선 아무 정보가 없었다.
결국 클라드는 현재 시점에서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를 순식간에 고른 것이다.
‘무섭고도 똑똑한 새끼……!”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카이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
그사이에도 클라드의 포인트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아자! 800포인트 넘겼다!”
“200포인트만 더 쌓죠! 그럼 유니크 장비가 2개인데!”
잔뜩 신나서 말이 많아지는 검은 벌 길드와는 다르게 카이의 입술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는 속이 까맣게 탄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를 절실하게 느끼는 중이었다.
‘오크 주술사, 이놈은 왜 안 나와?’
이렇게 된다면 자신이 검은 벌 파티에 들어온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놈들과 오크 주술사 사이에 싸움이 붙으면 적당히 뒤통수를 치려고 했건만!
‘이 정도면 근무 태만 수준인데?’
카이의 걱정과는 별개로 파티의 사냥은 점점 탄력을 받아 빨라졌다.
그때였다.
오크 로드를 잡고 있던 토벌대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됐다! 체력 30% 남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오크 로드도 여럿이서 잡으니까 별거 아닌……?”
말수가 점점 줄어드는 유저들.
그리고 동시에, 토벌대 전원의 시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오크 로드 우르간의 체력이 3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우르간이 분노를 느낍니다. 모든 능력치가 20% 증가하는 대신, 받는 피해가 30% 증가합니다.]
[오크 주술사의 강력한 군세가 우르간을 지원합니다.]
“페가수스사 진짜 너무하네! 2페이즈도 있어?”
“거기다가 빌어먹을 분노 모드잖아!”
“그리고 오크 주술사? 강력한 군세? 이것들은 또 뭔데?”
“자, 잠깐…… 저기 좀 봐!”
한 장소를 바라본 유저 한 명이 비명을 토해냈다.
그가 쳐다본 곳은 이미 무너져 버린 오크 부락의 입구였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린 다른 유저들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저게 강력한 군세?”
“끄응. 엿 됐다.”
“와씨, 돌겠네.”
수십 마리의 오크 히어로와 수백 마리의 오크 워리어.
그리고 그들이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의 오크 한 마리까지!
도리어 입구를 봉쇄한 그들은 토벌대의 뒤를 완벽하게 점거하였다.
“젠장, 이제 조금만 더 잡으면 오크 로드도 죽일 수 있었는데.”
“무리야. 지원군 숫자가 너무 많아.”
“그리고 저 빼빼 마른 오크는 뭐야!?”
“길을 저따위로 막아놓으면 도망칠 수도 없다고.”
앞에는 오크 로드와 놈의 친위대. 그리고 뒤는 오크 주술사와 강력한 군대들!
그 사이에 끼여 잔뜩 위축된 유저들을 바라보던 클라드가 눈을 빛냈다.
“지금부터는 우리도 저곳을 지원한다.”
“예에? 이제 와서 오크 로드를 잡자고요?”
“아니, 우리 목표는 저기 있는 오크 주술사라는 놈이다.”
클라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저놈인 것 같군. 1,000점짜리.”
‘어휴, 하여튼 감 하나는 기가 막히네.’
그것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카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기를 잠시, 카이는 고개를 위로 올려 하늘을 쳐다봤다.
먹구름이 가득 깔린 하늘과 땅거미가 지면서 석양이 가라앉는 지평선.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배경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거, 영상 찍기 딱 좋은 날씨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