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56화 (56/441)

# 56

힐통령 056화

26장. 토벌이 끝나고(1)

“우선 칭호 확인부터.”

[오크 주술사 슬레이어]

등급 : 스페셜

내용 : 오크 주술사를 최초로 처치한 유저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마법 방어력 +10%(이 효과는 칭호를 착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음…… 생각보다 별로네?’

오크 로드가 줬던 용맹한 전사에 비하면 제법 수준이 떨어지는 칭호였다.

심지어 페르메를 잡고 획득했던 여왕 살해자보다 안 좋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스페셜 칭호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칭호 효과는 다소 아쉬웠지만, 다른 보상들이 이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카이가 천천히 장비들을 감정해나갔다.

[갈구하는 핏빛 양날 도끼]

등급 : 유니크

공격력 145~189

힘 +20

체력 +8

도끼날에 피가 묻어 있을 시 공격력 10% 상승.

오랜 시간 동안 전장에서 사용된 병기는 어느새 피를 갈구하게 됩니다. 이 도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귀병(鬼兵)의 일종이 된 이 장비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누구보다 전장에서 지내는 것을 좋아해야 할 것입니다.

착용 제한 : 레벨 90, 힘 320 이상, 도끼술 중급 1레벨 이상 필요.

내구도 67/120

‘유니크네.’

우르간을 잡고 나온 도끼였다.

옵션을 확인하자 녀석이 줄기차게 휘두르던 공격을 피했다는 것이 천만다행으로 느껴졌다.

한 대라도 맞았으면 그대로 하늘에 계신 헬릭 님을 만났을지도 모르는 일!

‘도끼날에 피가 묻어 있으면 공격력이 10%나 증가된다 라…… 전사들이 좋아하겠어.’

골렘이나 슬라임 같은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옵션이 항시 발동이나 다름없었다.

“괜찮네. 그럼 다음은…….”

유니크 아이템을 보고도 덤덤한 표정을 짓던 카이의 입가로 감출 수 없는 미소가 스며들었다.

‘오크 주술사 이 기특한 녀석! 야간 버프를 받아서 그런가? 아이템을 두 개나 뱉을 줄이야.’

물론 골드를 제외하고 아이템만 두 개가 나온 것이다.

각각 지팡이와 책이 그것의 정체였다.

카이는 우선 지팡이부터 확인했다.

[기억하는 자의 지팡이]

등급 : 유니크

주문력 220~234

지능 +14

마나 재생능력 +10%

메모라이즈 스킬의 슬롯 2칸 추가

게을러서 주문을 외우기도 귀찮아하던 한 천재 마법사가 장난삼아 만든 지팡이다.

착용 제한 : 레벨 89, 지능 315 이상.

내구도 82/94

“호오! 또 유니크잖아!?”

앞서의 도끼와 마찬가지로 유니크 등급이었지만, 카이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유니크 양날 도끼도 물론 엄청난 아이템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허나 근접 클래스들, 그것도 그중 일부만이 익히는 스킬이 바로 도끼술이다.

한 마디로 양날 도끼는 일종의 비주류 무기라는 소리!

‘하지만 스태프는 달라.’

지팡이는 대다수의 마법사들이 사용한다.

네크로맨서나 소환술사, 원소 마법사를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쓰이는 메이저 무기다.

그리고 메모라이즈는 마법사들이라면 누구나 배우고 싶어 하는 스킬!

‘주문을 미리 슬롯에 저장해놓았다가 시동어만 외쳐서 바로 쓰는 스킬이야. 물론 스킬 북으로밖에 배울 수 없어서 엄청 희귀하지만.’

메모라이즈 스킬의 슬롯은 숙련도에 따라 다르지만, 많아 봐야 5칸이다.

‘그런데 이 스태프를 장비하는 것만으로 2칸이 추가된다고?’

한 마디로 이 스태프는 90레벨대의 마법사에게는 사고 싶어도 없어서 못 사는 물건!

아니, 100레벨 이상의 마법사들도 경우에 따라서는 이 스태프가 욕심 날수도 있었다.

‘진짜 로또라도 하나 사봐야 되나? 아니지, 여기에 로또 당첨될 운을 끌어다 쓴 건가?’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리!

카이는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유니크 무기들을 사랑스러운 연인처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페르메의 독니도 팔아야 되고…… 경매장에 한 번 가야겠네.’

카이는 시간 끌 것 없이 빠르게 책을 감정했다.

[스킬 북 - 주문 저항의 피부(Passive)]

등급 : 유니크

시전자의 마법 방어력이 큰 폭으로 상승됩니다.

사용 제한 : 60레벨 이상.

“헉!”

카이의 눈이 부릅떠졌다.

‘또니크다!’

또 유니크라는 말을 세 글자로 줄여버리는 카이!

게다가 이건 무려 마법 저항력을 올려주는 스킬 북이다.

그 순간 카이의 뇌리로 검은 벌들의 불평이 떠올랐다.

‘분명 오크 주술사의 마법 방어력이 왜 이렇게 높냐고 불평을 했었지.’

역시 미드 온라인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

카이는 반짝이는 책을 들어 올렸다.

“이 정도 스킬 북을 팔면 못해도 억이야.”

하지만 냉정히 따져봤을 때,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사용하는 게 낫지.’

만약 본인이 사용을 못 하거나, 별 쓸모가 없는 스킬이라면 고민하지 않고 팔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문 저항의 피부는 우선 배워두면 무조건 이득인 스킬!

게다가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오크 주술사 사냥꾼 칭호와의 시너지까지 생각한다면?

카이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스킬 북 사용.”

[스킬 북 - 주문 저항…….]

“어.”

[스킬 - 주문 저항의 피부를 획득하셨습니다.]

[초급 주문 저항의 피부(Passive) LV.1]

마법 방어력이 30% 상승합니다.

숙련도 0/100

고작 한 줄짜리의 단촐한 설명문!

하지만 설명이 단순해서 그런지 더 직관적이었다.

‘숙련도가 아직 초급 1레벨인데 마법 방어력이 30% 증가라…….’

게다가 이런 종류의 패시브 스킬은 딱히 숙련도 노가다를 할 필요도 없었다.

‘마법사들한테 열심히 두드려 맞으면 숙련도가 올라가겠지.’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카이는 이미 검은 벌 길드에게 단단히 찍힌 상태!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인 그는 스킬의 효과에 크게 만족했다.

“제법 비싸긴 하지만, 마음에 들어.”

제법 수준이 아니라 억 소리가 나오는 스킬 북이었지만, 카이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건 곧 나에 대한 투자야.’

어차피 현재 자신은 숱한 랭커들에 비해 여러모로 떨어진다.

그런 자신이 그들을 따라잡으려면?

‘지금처럼 몇 배로 더 노력하고, 몇 배로 더 돈을 지르고, 몇 배로 더 운이 좋아야지!’

그야말로 고생 길이 훤히 열린 것 같은 앞날!

옅은 한숨을 내쉰 카이는 검은 벌 녀석들이 떨어뜨린 아이템은 없는지 살펴봤다.

“음…… 이 거지들. 고작 이거 하나야?”

그들의 시체를 한 바퀴 돌아보던 카이가 멈춘 곳은, 클라드가 죽은 장소였다.

‘그래도 대장이라고 뭘 떨어뜨리긴 하네.’

그렇게 주워 올린 것은 허름하고 오래되어 보이는 팔찌였다.

“아이템 감정.”

[길잡이의 수색 팔찌]

등급 : 매직

방어력 260

마법 방어력 275

고대왕이 잠든 곳을 알고 있는 길잡이가 아끼던 팔찌이다.

착용 제한 : 레벨 50 이상.

내구도 32/75

“에이.”

한동안 레어,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만 봐서 그런지 눈이 높아진 카이!

“좀 좋은 것 좀 들고 다니지. 고작 매직…….”

말을 잇던 카이의 미간이 좁혀졌다.

‘잠깐만. 검은 벌에서 밀어주는 최고의 루키가 매직 아이템을 장비하고 다닌다고?’

아니, 그게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클라드는 이런 팔찌를 장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 인벤토리에서 떨어졌다는 소리?”

아무래도 재수 없게 인벤토리에 있던 잡템이 떨어진 모양!

‘뭐, 그래도 다른 곳에서 이득을 충분히 봤으니까.’

남들은 평생 가도 하나를 보기 힘들다는 유니크 아이템만 세 개를 먹었고, 70골드는 덤이다.

물론 레이드 보스 몬스터 두 마리를 독식한 결과였으니 이상할 건 없었다.

‘일이 너무 잘 풀려서 뒤가 좀 싸하긴 한데…….’

탁, 탁.

길잡이의 수색 팔찌를 몇 번이고 던졌다가 받은 카이는 그것을 인벤토리 구석에 처박았다.

“뭐, 이거 주웠으니 액땜했다고 치면 되나?”

***

“정말 고맙네, 이 마음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솔직히 이번에는 고생 좀 했습니다.”

아르센 남작의 두꺼운 손에 붙잡힌 카이의 팔이 연신 덜렁덜렁 줄넘기처럼 움직였다.

그만큼 반갑고 고맙다는 뜻!

적당히 인사를 마친 두 사람은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들을 비롯한 병사들의 피해를 최소화시켜줘서 정말 고맙네. 몇 번이나 말해도 부족할 지경이야.”

“다른 분들이 많이 도와줘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자네의 겸손은 정말…….“

카이가 미소를 지으며 겸손을 떨자 아르센 남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벌들이 좀 꼬였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예. 아주 속이 시커먼 말벌들 몇 마리가 꼬였더군요. 죽다 살아났습니다.”

“해충을 박멸하는데도 일가견이 있는 줄은 몰랐네만.”

“박멸이요? 아니요. 그저 잠시 쫓아냈을 뿐입니다.”

“흐음.”

아르센 남작의 눈이 깊어졌다.

“……모험가들 사이에서 제법 대단한 세력이라고 들었네. 괜찮겠나?”

“뭐 어쩌겠어요. 도저히 남작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거든요.”

“허허, 사람 참.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군. 걱정하지 말게. 이 도시 안에서만큼은 누구도 자네를 건드릴 수 없게 만들어주지.”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글렌데일 한정이지만, 귀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카이는 한시름을 놓았다.

제아무리 검은 벌 길드라고 해도, 글렌데일까지 들어와 말썽을 부리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그들은 언노운이 자신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겠지만.

‘프리카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그렇고…… 나는 왜 항상 길드 놈들이랑 엮이는 거지?’

게다가 검은 벌은 붉은 노을 놈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 길드!

카이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사이, 책상으로 다가간 아르센 남작은 편지지 하나를 집었다.

“자네가 내 부탁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줬으니, 약속했던 보상을 지급해야겠지. 받게나.”

“이건……?”

카이가 편지지를 받자 메시지들이 터져 나왔다.

[유망주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아르센 남작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아르센 남작의 추천장을 획득했습니다.]

‘어! 유망주는 스페셜 칭호가 아니었구나.’

오랜만에 보는 일반 칭호가 오히려 반가울 지경!

하지만 일반 칭호가 좋아 봤자 얼마나 좋겠는가.

칭호의 정보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 곧장 편지지를 살피던 카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 나, 남작님! 이건 대체?”

“말했잖나? 보상일세. 내 도시의 성자를 위해 영주로서 줄 수 있는 최고의 보상.”

아르센 남작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건…….”

어느새 눈빛이 몽롱하게 변한 카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유니크 무기고 뭐고, 이 편지가 그 가장 소중했다.

“자네에게 무슨 보상을 줘야 할 지 고민을 많이 했네. 강력한 무구를 줄 수도 있고, 다른 던전에 대한 정보와 의뢰를 줄 수도 있었지. 하지만 모험가들은 기본적으로 떠도는 자들 아닌가? 자네 또한 얼마 안 있어 이 도시를 떠나겠지. 그래서 한 번 준비해봤네. 마음에 드는가?”

“그야…… 마음에 들다 못해 감격스러울 정도입니다!”

카이가 반응은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현재 그의 손에 잡힌 편지지는 무려 아르센 남작의 추천장이었기 때문!

일개 마을의 촌장이었던 분터와는 비교도 안 되는 파급력을 지닌 물건이다.

비록 남작이기는 하지만, 아르센 남작은 귀족!

‘거기다 수신인은 무려…… 바덴 성의 성주다!’

카이의 눈이 빛났다.

바덴 성은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라시온 왕국의 최전방이라고 불리던 도시다.

물론 지금에 와서야 고수들의 레벨은 이미 150이 훌쩍 넘었고, 최상위 랭커들은 180레벨도 넘겼지만, 바덴 성은 아직까지 고수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박혀있었다.

‘10대 길드 중에는 라시온 왕국에서 시작한 녀석들도 있지.’

그리고 그들 모두가 한때는 바덴 성에 모여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물론 그 고래들의 싸움에 등이 터진 건 새우인 일반 유저들이었지만, 돌려 말하면 지금은 그런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이미 바덴 성 너머의 지역으로 떠났으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꼭 뜻깊은 곳에 쓰겠습니다!”

“……아니, 뭐. 자네 마음대로 쓰게나. 그나저나 저녁은 먹었는가?”

“아니요. 아직 못 먹었습니다.”

“잘 됐군. 같이 저녁 식사나 하지. 소개시켜 줄 사람도 있고.”

“……소개시켜 줄 사람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이를 이끈 남작은 저택의 식당으로 향했다.

“오, 이미 와있었군.”

“헉…….”

눈을 깜빡인 카이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여인을 쳐다보는 순간 헛바람을 삼켰다.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흑발의 생머리를 뒤로 묶은 포니테일과 우윳빛처럼 새하얀 피부.

마지막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까지!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예쁘다.’

어지간한 연예인…… 아니, 아이돌…… 아니, 여배우를 갖다 대도 밀리지 않는…… 아니! 아예 압도해 버리는 미모! 겨우 정신을 차린 카이는 그녀가 입고 있는 의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NPC?’

만약 아르센 남작과 얼굴을 맞댈 수 있는 유저라면, 카이처럼 추천장을 받지 않은 이상 장비가 좋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다소 허름했다.

카이의 눈동자에 안타까움의 눈빛이 잠깐 떠올랐다.

‘내 초보자 시절이 생각나는구나. 춥고, 배고프고, 믿을 사람 아무도 없던 힘든 시절이었지.’

물론 그건 카이가 사제였기에 겪은 일이었지만!

하지만 카이는 한 가지만큼은 확신했다.

‘그럼 그렇지. 저런 미모를 가진 모험가가 있을 리가 없어.’

분명 페가수스사의 모든 개발진이 머리를 한데 모아 디자인한 NPC가 분명할 것이다.

“……?”

카이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그녀는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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