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58화 (58/441)

# 58

힐통령 058화

27장. 경매대란(1)

글렌데일의 경매장 NPC들은 기본적으로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으며, 친절하다.

왜 안 그렇겠는가?

경매장을 찾는 모험가들은 물건을 판매하든, 구매하든, 수수료를 지불하는 고객들!

“번호표 하나 주세요.”

“예, 고객님…… 어!”

밝게 웃으며 번호표를 뽑아주던 직원은 카이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양해를 구하곤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를 대신해 말끔한 의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곳의 지점장을 맡고 있는 브레드라고 합니다.”

“예……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카이 님의 업무를 도와드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안쪽으로 가시지요.”

사무적인 미소를 지은 브레드는 카이를 VIP룸으로 안내했다.

최소 몇백 골드 단위의 물품을 거래한 자들만 안내되는 장소!

라이트 유저가 게임 경매장에서 몇천만 원을 쓰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한마디로 이 VIP룸을 이용할 수 있는 건 게임에 인생을 바친 이들뿐.

‘저번에 등록한 물건들이 제법 비싸게 팔리긴 했지.’

대우를 해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카이를 고급 소파에 안내한 브레드는 맞은 편에 앉으며 공손하게 물었다.

“이번에는 어떤 목적으로 경매장을 방문해주셨는지요?”

“지난번과 같은 판매입니다.”

“그럼 이쪽 상자에 등록하실 물건들을 담아주십시오.”

브레드는 제법 큼지막한 상자를 내밀었지만, 솔직히 카이의 물건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첫 거래에 200골드 상당의 물건들을 판매하신 고객님이군.’

이미 카이의 거래 내역은 빠삭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카이라는 고객은 제법 뛰어난 레어 아이템을 판매하는 모험가였다.

이번에도 운이 좋아 봤자 지난번과 비슷한 수준의 아이템들을 등록할 것이라 예상했다.

“전부 담았습니다.”

“그럼 확인하겠습니다. 판매 등록을 원하시는 물건은 페르메의 독니와 스킬 북인 검은 과부의 독, 갈구하는 핏빛 양날 도끼와…….”

물건들을 하나씩 감정해 가던 브레드의 안색이 점점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 이 물건들은 대체!’

카이가 등록한 아이템은 고작 다섯 개뿐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개, 많으면 백 개까지 등록을 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절대 많은 양은 아니다.

하지만 브레드를 놀라게 한 건 아이템들의 수준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니크 등급의 양날 도끼 하나에 마찬가지로 유니크 등급인 스태프…… 그리고 유니크와 비교를 해도 손색이 없는 레어 등급 단검 하나와 레어 스킬 북이라니……!’

마지막에 매직 등급의 팔찌 하나가 껴있긴 했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대박 중의 초대박!

게다가 최근 경매장에는 쓸 만한 유니크 아이템이 등록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만한 물건들이 동시에 풀린다면…….’

경매대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 사실을 빠르게 인지한 브레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정도 규모의 거래가 불발되는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랬기에 브레드는 조그마한 실수도 만들지 않으려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희, 희망하시는 경매 시작가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음? 지난번에는 직원분이 추천해주시던데요? 시세에 맞게.”

“하지만 이런 고가의 물건은 판매하는 고객님께서 가격을 정하시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혹시라도 경매장 측에서 시세보다 싼 가격을 추천했을 경우, 신뢰도가 대폭 하락하기 때문!

“으음. 그렇다면…….”

카이는 자신의 물건들에 달린 태그에 호기롭게 가격을 써나갔다.

[페르메의 독니(레어), 60골드]

[스킬 북 - 검은 과부의 독, 150골드]

[갈구하는 핏빛 양날 도끼(유니크), 300골드]

[기억하는 자의 지팡이(유니크), 500골드]

[길잡이의 수색 팔찌(매직), 1골드]

“이렇게 해주세요.”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아직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브레드는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깍듯한 인사를 하고는 곧장 카이의 지시를 처리했다.

그동안 카이는 자신의 앞에 놓인 생과일주스를 마시며 물건들의 가격을 떠올렸다.

‘저 가격에 다 팔리면 천 골드가 넘겠네.’

한화로 무려 1억이 넘는 돈!

물건들이 성공적으로 팔린다면 그때부터 카이는 돈 걱정을 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헝그리 정신?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자고로 등 따시고 배가 부른 놈이 뭘 해도 더 잘하는 법!

경매장에 물건을 성공적으로 등록한 카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로그아웃을 했다.

***

같은 시각.

검은 벌 길드의 유망주인 클라드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그의 얼굴에서는 평소의 건방지고 당당한 표정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어울리지도 않게 초조하고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던 그 적막감은, 화상통화를 하고있는 상대에 의해 박살 났다.

-뭘 드랍했다고?

“그, 그게…….”

-닥치고 대답해라. 뭘 드랍했다고?

“기, 길잡이의 수색 팔찌……요…….”

-이런 멍청한 놈!

콰아앙!

모니터에서 상대방이 책상을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클라드의 가슴도 철렁 내려앉았다.

평소 그의 성정을 생각하면 감히 누구에게 소리치냐며 욕을 한 사발 퍼붓고 전화를 끊었을 테지만, 모니터에 떠오른 상대는 클라드가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 지금 죄송이라는 말이 나오나? 그 아이템이 어떤 아이템인지 모르지는 않을 텐데?

“……반드시 회수하겠습니다.”

-젠장, 다른 10대 길드 놈들 눈을 피하겠다고 네 놈에게 맡겨놓는게 아니었는데…… 앞으로 정확하게 일주일을 주겠…… 무슨 일이냐. 통화 중이라고 했을 텐데?

갑자기 화면에 한 사람이 더 끼어들었다.

그는 전화 상대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뭐?

대체 무슨 말을 들은 것일까.

상대방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당장 구매해라!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까!

잔뜩 쫄아 있는 클라드에게 상대방.

그러니까 검은 벌 길드의 마스터인 스팅이 서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고맙다. 네놈이 칠칠치 못하게 흘린 그 물건, 지금 경매장에 올라왔다고 하는군.

“그, 그렇다면…….”

-우리 길드에서 다시 팔찌를 회수한다면 한 번은 눈감아주지. 하지만 만약 다른 놈들이 팔찌를 손에 넣는다면…….

스팅이 살벌한 눈빛으로 클라드를 뚫어버릴 것처럼 쏘아봤다.

-그때는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하, 한 번만 용서를…….”

뚝.

더 이상 용건은 없다는 듯 전화가 꺼져 버렸고, 화면엔 통화 프로그램만이 깜빡였다.

“그, 그놈이 그 물건을 경매장에 등록했다고?”

설마 물건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그 물건은 몇 달이라는 시간 동안 메인 에피소드에 주력한 세력들만이 알 수 있다.

‘오히려 잘되었어.’

놈이 그 가치를 모른다면 분명 싼 가격에 올렸을 터.

적당히 높은 가격으로 입찰을 한다면 되찾아 올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클라드는 어지러운 정신을 겨우 붙잡으며 컴퓨터를 켰다.

그가 접속한 곳은 미드 온라인의 경매장 사이트.

게임에 접속하지 않아도 경매장에 등록된 아이템을 구매/판매할 수 있는 곳이었다.

‘길잡이의 수색 팔찌…….’

아이템을 검색해 입찰 금액을 확인한 클라드의 얼굴이 까맣게 죽었다.

[길잡이의 수색 팔찌]

[경매 시작가 - 1골드, 100,000원]

[입찰금 갱신 - 5골드 46실버, 546,000원]

[입찰금 갱신 - 10골드 12실버, 1,012,000원]

[입찰금 갱신 - 15골드 36실버, 1,536,000원]

[입찰금 갱신 - 20골드 74실버, 2,074,000원]

[입찰금 갱신 - 22골드 22실버, 2,222,000원]

…….

“젠장……!”

그곳엔 이미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 무리가 잔뜩 몰려든 상태였다.

***

“하아아암.”

잠에서는 깼지만 침대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상태.

한정우는 유체이탈이라도 하고 싶은 건지, 침대에 가만히 앉은 채 부스스한 머리를 긁었다.

‘오랜만에 실컷 잤네.’

시계를 보니 무려 13시간이나 숙면을 취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보다 몸이 훨씬 가벼웠다.

‘게으른 곰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은 좀 그렇지만.’

그간의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평소보다 2배에 달하는 시간을 잠시도 쉬지 않고 자 버린 것이다.

“으으으으으음!”

두 팔을 쭈욱 뻗으며 기지개를 켠 한정우는 컴퓨터를 켜곤 경매 사이트에 접속했다.

“고작 13시간 정도밖에 안 지났지만…….”

유니크 아이템들은 가격이 가격인지, 지금쯤 얼마에 입찰이 되었을지 궁금했다.

“오, 생각보다 순조로운데?”

한정우의 입가로는 아침부터 만족스러운 미소가 찾아들었다.

경매장에 등록한 유니크 아이템들은 낮게는 5골드부터, 높이는 8골드 정도씩 새로운 입찰가가 들어왔기 때문!

‘아, 그러고 보니 하나 더 등록했었는데.’

고작 매직 아이템에 불과하지만, 그것도 1골드에 올려놨으니 무려 10만 원!

“이름이 길잡이의 수색 팔찌였나?”

고개를 갸웃거린 한정우가 키워드를 집어넣고 엔터를 치는 순간,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뭐, 뭐야 이게.”

터무니없는 가격을 목격한 한정우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크게 웃었다.

“하하! 그럼 그렇지. 내가 13시간이나 잤을 리가 없잖아. 곰도 아니고 사람인데.”

한정우가 꿈에서 깨기 위해 선택한 행위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볼을 꼬집는 것이었다.

단언컨대, 그것은 한정우가 올해 내린 판단 중 최악이었다.

“아아악!”

눈앞에 불똥이 튀면서 번쩍 뜨이는 정신!

거울을 쳐다보니 얼얼한 볼은 순식간에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꿈이 아니라고? 그럼…….’

급하게 정신을 차린 그는 모니터 떠오른 0의 개수를 세기 시작했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천만 원이지?”

게다가 앞자리는 3으로 시작한다.

한정우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내가 숫자도 못 읽는 머저리가 아니라면, 이거 3천만 원인 것 같은데?’

[입찰금 갱신 - 307골드 20실버, 30,720,000원]

일단 자신의 시력은 멀쩡한 걸로!

하지만 한정우의 입에서는 안도의 한숨은커녕, 김빠진 콜라처럼 애매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와~ 대~ 단해~”

동시에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고개가 모로 기울여졌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고작 매직 등급의 아이템이다.

심지어 특수 능력조차 달려 있지 않고, 방어력이나 마법 방어력도 썩 훌륭한 편은 아니다.

‘그런데 왜 이 아이템을 구매하지 못해서 이 난리냐고.’

신종 사기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동시에 가장 먼저 사라졌다.

‘이게 사기라면 나한테 피해가 있어야겠지. 하지만 어딜 봐도 없잖아?’

누가 되었든, 이렇게 비싼 가격에 팔찌를 사 가면 한정우의 입장에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지……?”

한정우가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클라드, 그 성질 더럽고 오만한 녀석이 이런 잡템을 들고 다닐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하지만 그는 들고 다녔다.

그랬기 때문에 카이에게 죽었을 때 아이템을 떨어뜨린 것이고.

‘대체 왜 들고 다녔을까?’

이유는 분명히 있을 터.

카이는 아이템의 설명을 다시 한번 읽어내렸다.

“고대왕이 잠든 곳의 위치를 알고 있는 길잡이라…….”

주웠을 때는 매직 등급이라서 그냥 지나쳤지만, 이 상황이 되자 이것만큼 의심스러운 문장은 없었다.

‘아무래도 이 팔찌는 이 고대왕이라는 것과 상관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중요한 건 지금 자신에게 고대왕과 관련된 정보가 전무하다는 것!

한 마디로 이 아이템이 있어 봐야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지를 모른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정우는 잠시도 쉬지 않고 입찰을 갱신하는 아이디들을 주시했다.

일정 금액 이상이 넘어가면 구매 신청을 할 때 아이디를 공개해야 되고, 당연히 그 계정에는 물건을 구매하기에 충분한 돈이 들어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지금 계속해서 입찰 경쟁을 하는 10명…… 이 녀석들은 진짜 현금을 들고 있다는 소리지.’

게다가 그곳에 묘한 신경전이 존재한다는 건, 단순히 입찰금이 올라가는 것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한정우의 입꼬리가 재미있다는 듯 말려 올라갔다.

‘이놈이 검은 벌에 소속된 놈이네.’

아이디는 [나비처럼날아라].

항상 새로운 입찰가가 갱신되면, 30초가 지나기 전에 몇만 원을 더 얹어서 상위 입찰을 하는 녀석이었다.

‘우리 나비 님은 아주 발등에 불이 떨어지셨고…… 그렇다는 건 나머지 놈들이 10대 길드겠네.’

검은 벌이 알고 있는 것을 그들이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한 마디로 이 아이템의 가치를 한정우 같은 일반인은 모르지만, 메인 에피소드를 저 멀리까지 진행한 이들은 알고 있다는 소리!

“뭐, 가장 비싸게 입찰하는 놈이 사가겠지.”

한정우는 정말 단순하게 생각했다.

이 사건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알지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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