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60화 (60/441)

# 60

힐통령 060화

27장. 경매대란(3)

4천 골드, 한화로 무려 4억이나 되는 큰돈.

누군가는 평생을 일해도 모으지 못하는 돈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금액으로 고작 매직 아이템 하나를 산 미친놈이 있었다.

‘정말 운이 좋았어.’

묘한 가격 경쟁과 서로 간의 신경전, 자존심 싸움!

그 모든 것들이 절묘하게 섞인 지금이 아니면 절대 이런 가격에 팔 수 없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카이는 물건을 구매한 산드로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언노운 : 낙찰을 축하드립니다.]

[산드로 : 시끄럽다. 계좌번호랑 은행이나 불러.]

사실 이 아이템에는 이 정도의 값어치가 없었다.

만약 고대왕의 던전에서 대박이 터지더라도, 4억이라는 수익을 뽑는 건 어려웠다.

그 때문인지 경매에서 승리를 한 산드로는 하나도 기뻐 보이지 않았다.

[언노운 : 제가 말했을 텐데요. 신상을 캐는 짓은 하지 말라고. 대금은 가상 계좌를 드릴테니 그쪽으로 보내세요. 물건은 돈 받으면 우편으로 보내드릴 테니까.]

말을 마친 카이는 채팅방을 나가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이들을 쳐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아마 나 제대로 찍혔겠지?’

처음부터 이 경매에서 승리할 수 있는 건 단 한 명뿐이었다.

게다가 검은 벌과 타이탄 길드는 아예 경매에 참가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낙찰받은 블랙마켓을 제외한 9개 길드는 과연 카이를 어떻게 볼까?

‘자신들의 자존심은 있는 대로 긁어놓고, 그 값으로 거금을 챙긴 재수 없는 놈으로 보겠지.’

한 마디로 세계 10대 길드 중 9개의 길드를 적으로 돌리게 된 셈이다.

그렇다고 블랙마켓이 카이를 보호해줄까?

‘저놈들이? 에이, 설마.’

그들은 돈을 주고 물건을 구입했으니 카이까지 보호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슬프지만 그건 사실이기도 하고.

‘하지만 나한텐 또 하나의 무기가 있다.’

카이는 홀로그램 키보드를 마치 악기처럼 두드렸다.

[언노운 : 아, 참고로 지금까지 나눈 채팅 로그는 모두 저장해 뒀습니다.]

다들 머리가 좋은 이들이니 이 정도의 짧은 경고면 충분했다.

세계 10대 길드는 명성과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돈 따위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곳이다.

당연히 자신들의 이미지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뭐, 물론 10대 길드나 되는 놈들이 물건 좀 못 샀다고 나한테 해코지할 리는 없겠지만…….’

세상에는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는 법!

돌다리도 그냥 건너는 것보다는 두들겨 보고 건너는 것이 훨씬 안전한 법이었다.

‘안전장치 하나 정도는 마련해 두는 게 좋지.’

만약 10대 길드 중 누군가가 이번 경매를 빌미로 카이를 건드린다면, 카이는 곧장 채팅 로그를 풀어버릴 생각이었다.

돈이 없어서 경매에서 이기지도 못해놓고 분풀이로 판매자를 죽이는 파렴치한이라는 타이틀.

그런 더럽고 졸렬한 이미지를 선물 받기 싫으면 나 건드리지 마!

그것이 바로 카이가 그들에게 남긴 말의 속뜻이었다.

‘일단 한 명이 나 건드리면…… 그 뒤는 다른 길드들이 알아서 해줄 테고.’

저들은 세계 10대 길드라는 타이틀로 묶여 있기는 해도, 절대 그 사이가 친밀하지는 않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며 어떻게든 서로를 물어뜯으려고 하니까.

그런 상황에서 카이를 건드리는 길드가 나온다?

‘쟤네가 언론 플레이 다 해줄 텐데 뭐.’

한마디로 카이는 손도 안 쓰고 코를 풀 수 있게 된다는 것!

[산드로 : 돈, 보냈다.]

[언노운 : 확인해 보겠습니다.]

인터페이스를 터치해 인터넷을 켠 카이는 가상 계좌로 확실히 4억이라는 돈이 들어온 것을 확인했다.

[언노운 : 특급 우편으로 보낼 테니 오늘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산드로 : …….]

경매는 끝났고, 돈도 확실하게 받았다.

그 말은 더 이상 이 채팅방에 머물 이유가 없다는 뜻!

[언노운 님이 채팅방을 나가셨습니다.]

그들의 만남만큼이나 강렬한 이별이었다.

***

5억 2천 9백만 원.

이번 경매에서 판매한 아이템들이 벌어들인 총 액수를 확인한 한정우가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진짜 대박을 터뜨리긴 했구나.”

가장 큰 대박은 검은 벌 녀석들이 떨어뜨린 길잡이의 수색 팔찌였지만, 유니크 아이템과 레어 아이템의 가격만 해도 1억이 넘어갔다.

‘역시 레이드는 돈이 돼, 아니, 아니지.’

한정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레이드는 돈이 되지만, 머릿수가 많아지면 이 정도는 아니다.

‘역시 혼자서 하는 레이드는 돈이 돼. 이게 맞는 말이야.’

모든 돈과 경험치, 칭호를 독식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솔플의 최대 장점!

한정우는 돈의 쓰임새를 정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번 달 말에 독립을 해야 하니까 원룸부터 하나 계약하고, 골드도 약간은 들고 다녀야겠지.’

이런저런 계획을 짜다 보니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찌뿌드드한 몸을 스트레칭으로 푼 한정우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럼 이제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어볼까.”

죽음의 술래잡기를 업로드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편집이 필요했다.

햇살의 따스함을 외치는 소리를 아예 삭제하는 정도의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작업을 모두 마친 한정우의 표정은 어두웠다.

‘음…… 생각보다 별로네.’

오크 로드와 오크 주술사, 그리고 검은 벌 길드까지 한번에 해치웠다.

당연한 말이지만 참교육 동영상보다는 몇 배나 멋있는 결과물이 나와야 했다.

하지만 그의 편집 실력은 초보자라고 칭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

절대 스스로 만족할 만한 퀄리티의 영상은 나오지 않았다.

‘조금 더 박력 있고, 멋있게 만들고 싶은데…….’

해결법은 간단했다.

바로 이 분야의 프로를 고용하는 것!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래, 돈은 조금 들겠지만, 영상을 이런 수준으로 낼 수는 없어.’

어차피 이제는 돈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돈을 펑펑 써도 마르지 않을 것 같은, 최고로 High한 기분!

“이것이 졸부가 된 기분인가!”

씀씀이에 거리낌이 없어진 한정우는 당장 업계 최고의 전문가를 고용했다.

영상 하나를 편집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무려 500만 원!

그 돈을 망설임 없이 지불한 한정우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났다.”

토벌대의 레이드도 힘들었지만, 이후의 뒤처리도 피곤한 일들뿐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냥 레이드를 몇 번 더 뛰는 게 나을 정도.

“에휴, 검은 벌 놈들은 왜 그런 걸 드랍해서 사람을 이렇게 귀찮게 만드는지.”

검은 벌의 스팅이 들었다면 뒷목을 붙잡고 쓰러졌을 만한 발언!

다시 한번 통장의 액수를 뿌듯한 눈으로 쳐다본 한정우는 오랜만에 치킨을 시켜먹었다.

***

“요즘 자주 보는군.”

하루 만에 만난 아르센 남작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카이가 그를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쌓아놓은 토벌 포인트를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보유한 토벌대 포인트 : 1,617P]

오크 로드와 오크 주술사를 처치하고 혼자 꿀꺽한 엄청난 수치의 포인트!

당연한 소리지만 카이는 이번 토벌대에서 기여도 1위를 가볍게 차지한 상태였다.

“아마 토벌대의 공적치로 보상을 받기 위함이겠지?”

“예.”

짧고 굵게 대답한 카이의 머릿속에는 이미 교환할 아이템이 떠올라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적당한 수준의 유니크 장비를 세 개 받아서 판매하려고 했지만…….’

검은 벌 녀석들 덕분에 돈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졌다.

지금 당장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5억이 넘는데 뭐가 아쉬워서 돈을 추구하겠는가?

‘당장 나를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

지금 카이의 머릿속을 꽉 채운 건 무려 1,500포인트짜리 물건!

더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카이가 당당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불사의 의지 스킬 북으로 교환하겠습니다.”

“훌륭한 선택일세.”

빙그레 미소를 지은 아르센 남작은 곧장 책장에서 한 권의 책을 꺼냈다.

책에서는 영롱하기 짝이 없는 분홍, 보라색이 뿜어져 나오며 카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가 이번 토벌대에 내건 물품 중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일세.”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적정 레벨의 유니크 등급 장비 교환권은 500포인트.

그렇다면 1,500포인트짜리 스킬 북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불사의 의지(Passive)]

등급 : 유니크

사망 시 체력을 1% 회복하며 5초 동안 불사(不死) 상태가 됩니다.

불사 상태일 때는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쿨타임 : 30일(게임 시간)

사용 제한 : 없음.

스킬의 쿨타임은 게임 시간으로 30일, 그러니까 현실 시간으로도 무려 10일이나 되었다.

하지만 죽음을 한 번 모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스킬!

카이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역시 1,500포인트짜리다!’

목숨이 한 개인 것과 두 개인 것은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상황에 따라 조금 더 적극적인 움직임을 펼칠 수도 있을 테니까.

‘여차하면 동귀어진을 할 수도 있고.’

단숨에 스킬을 터득한 카이는 어깨가 든든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자리에 앉은 아르센 남작이 지나가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떠나는가?”

“예.”

“……하긴, 자네가 이 도시에 온 지도 벌써 한 달 정도 되었군.”

“그동안 남작님께는 신세를 정말 많이 졌습니다. 종종 들릴게요.”

“맛있는 식사가 그리울 때면 언제든 찾아오게.”

푹신한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기댄 아르센 남작은 말을 이었다.

“내가 한마디 해도 되겠나?”

“경청하겠습니다.”

카이가 고개를 짧게 숙이며 진중한 눈빛을 드러냈다.

“자네가 강함을 추구하는 이상, 앞으로도 수많은 난관을 겪게 될 것이야.”

“그 어떤 난관도 제 앞길을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카이의 목소리와 두 눈이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아르센 남작은 흐뭇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래야지.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모험가라면 그 정도는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남작이 인정한 최고의 모험가!

그건 단순한 겉치레가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에 담겨있는 진심이 카이의 마음 한구석을 따듯하게 울렸기 때문이다.

“남작님…….”

살짝 감동을 받은 카이의 목소리가 늘어지자, 아르센 남작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 혹시 착각할까 싶어서 미리 말해두네만, 자네보다 강력한 모험가는 해변가의 모래만큼이나 많네.”

“……그 정도로 많지는 않을 텐데요?”

“그 정도로 많네.”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단호함!

순식간에 감동이 흩어진 카이가 뚱한 표정을 짓자, 아르센 남작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역시 자네는 놀려먹는 재미가 있다네.”

“이제 놀릴 사람 없어서 적적하시겠네요.”

“그러니 가끔 들리게. 나이를 먹으니 이것만큼 재미있는 게 또 없어.”

꾸욱.

아르센 남작과 악수를 한 카이는 몸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아! 맞다.”

뒤적뒤적.

인벤토리를 뒤져 물건 하나를 꺼낸 카이는 그것을 아르센 남작에게 보여줬다.

“남작님, 혹시 이 물건이 뭔지 아십니까?”

“음? 모르겠네. 그게 뭔가?”

아르센 남작은 카이가 들고 있는 새카만 구슬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둠의 정수 조각이라는 건데…… 페르메가 죽으면서 뱉어낸 겁니다.”

“페르메라면…… 거미의 숲에 살고 있는 그 거미 여왕 아닌가?”

“맞습니다. 이 구슬 때문에 페르메와 그녀의 자식들이 흉폭하게 변한 겁니다.”

“으음…… 그런 일이 있었나.”

턱을 쓰다듬던 아르센 남작은 골똘히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지 모르겠군.”

“그렇군요.”

카이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센 남작조차 모른다면 도서관을 열심히 뒤져보는 수밖에.

다시 인사를 마친 카이가 방을 나서려 하자, 아르센 남작이 황급히 그를 불러세웠다.

“잠깐! 생각해 보니 물의 현자, 그분이라면 알고 있을 수도 있겠군.”

“……물의 현자요?”

“라시온 왕국의 재상이었지만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고 계신 분이지.”

카이의 눈이 빛났다.

“그분은 어디에 가면 만나 뵐 수 있습니까?”

“물의 도시, 아쿠에리아로 가게나.”

카이의 다음 목적지가 정해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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