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힐통령 062화
29. 인스턴스 던전(2)
인스턴스 던전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모든 사람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개방형 인던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입장을 신청한 사람만이 활동할 수 있는 비개방형 인던이었다.
‘나는 비개방형으로 가야겠지.’
비개방형 인던은 개방형에 비해 드랍률이 현저히 떨어져서 수리비나 간신히 건지는 곳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개방형 인던을 찾는 이들은 많았으니,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만 던전 랭킹을 갱신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스턴스 던전 - 쥐들의 왕국에 입장하시겠습니까?]
“그래.”
[인스턴스 던전 - 쥐들의 왕국에 입장하셨습니다.]
남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독립된 공간의 던전.
그곳에 입장한 카이는 인상부터 찡그렸다.
“우읍, 냄새…….”
쥐들의 왕국이 위치한 장소는 아쿠에리아의 하수도였고, 당연히 냄새가 고약했다.
하지만 이것 또한 깨라고 만들어놓은 던전!
카이는 던전 입구의 바닥에 굴러다니는 일회용 마스크를 주워서 착용했다.
‘한결 낫네.’
적어도 더 이상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 때문에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동시에 카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자. 작전은 전부 짜뒀으니까.’
독하게 마음을 먹은 카이는 다짜고짜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찍, 찌직!”
“찌지집!”
음식물 쓰레기들을 파먹던 거대 쥐들은 왕국을 침범한 모험가를 발견하곤 몰려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돼.’
지금은 유유자적하게 몬스터들을 한 마리, 한 마리씩 잡으면서 갈 상황이 아니었다.
‘최대한 빠르게. 무조건 빠르게! 핵심은 빠르게 공략하는 거야.’
카이는 현재 자신의 수준이라면 이곳을 깨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점을 맞춘 건 자신의 이름을 솔로 랭킹 몇 위까지 올려놓을 수 있는지였다.
‘순위가 높을수록 물의 현자에게 인정을 받는 건 쉽겠지.’
카이는 고개를 돌려 뒤쪽을 힐끔 쳐다봤다.
‘따라붙은 거대 쥐는 12마리인가.’
레벨이 71인 몬스터이니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아무리 카이라고 해도 이들과 정면에서 싸운다면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
하지만 애초에 카이는 이들과 싸울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인던은 보스만 잡으면 클리어로 인정되잖아?’
그렇다. 보스만 확실하게 죽일 수 있으면 잡몹을 잡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소리!
한때 유저들 사이에서 이런 방법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잡몹들을 모두 무시한 채 보스방으로 달려가서 보스만 처치하는, 보스 런(Boss Run) 작전.
하지만 애석하게도 성공한 파티는 단 하나도 없었다.
‘보스를 잡고 있는 사이 잡몹들이 뒤를 덮쳐서 전멸을 당했지.’
그들의 패배 요인은 명확했다.
몬스터들이 도착하기 전에 보스를 죽이기에는 화력과 시간이 부족했던 것!
‘하지만 난 다르지.’
카이는 신성 폭발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몬스터들을 따돌릴 수 있다.
그 말은 즉 보스와 일대일로 싸울 수 있는 시간이 남들보다 여유롭다는 소리.
게다가 태양의 사제가 지닌 버프와 각종 스페셜 칭호로 인해 공격력이 부족하지도 않다.
‘그리고 보스방으로 가는 길은 이미 머릿속에 넣어놨어.’
쥐들의 왕국은 하수도에 마련된 인던이었기에, 당연히 길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꼬여있었다.
미리 지도를 외워놓지 않고 몬스터들을 잡으면서 진행을 한다면 10시간도 넘게 걸리는 던전!
“자, 그럼…….”
카이는 자신을 물어뜯으려고 맹렬하게 달려오는 거대 쥐 무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열심히 잘 따라오세요. 신성 폭발!”
스킬의 시전과 동시에 그를 뒤쫓던 거대 쥐 무리가 빠르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카이를 뒤쫓는 거대 쥐의 수는 점점 더 많아졌지만, 그들은 카이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게다가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카이는 이밖에도 보험을 들어놓은 상태였다.
‘저쪽의 코너! 저기가 제일 중요해!’
카이는 앞에 보이는 코너를 돌아 거대 쥐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순간, 놀 스켈레톤을 소환했다.
띠링!
[놀 스켈레톤 6마리가 소환됩니다.]
“으으으, 아쉬워라!”
안타까움이 구구절절이 묻어나오는 신음 소리!
하지만 카이는 빠르게 정신을 수습하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코너를 돌자 나온 것은 바로 하수도의 중심.
이 커다란 던전을 열 갈래로 나누어버리는 갈림길이 등장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거대 쥐들을 분산시키려면 놀 언데드가 최소 아홉 마리가 나와줘야 베스트인데…….’
하지만 여섯 마리로도 거대 쥐들의 이목을 흩어놓을 수는 있을 터.
카이는 곧장 그들을 다른 통로로 달려가게 만든 뒤,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꺼내 통로 바닥에 깔아놓았다.
“오케이, 이걸로 준비는 끝.”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카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보스방으로 향하는 통로로 몸을 날렸다.
“찌직! 찌지짓!”
잠시 후 갈림길에 도착한 거대 쥐들은 바닥에 자신들의 얼굴을 파묻고 연신 코를 킁킁거렸다.
아무리 하수도에 살고 있다지만, 개와 비견될 정도로 후각이 크게 발달한 쥐들에게 모험가의 냄새를 맡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찌짓!?”
하지만 냄새를 맡는 것과 동시에 패닉 상태에 빠진 거대 쥐들!
그들은 사실 산타가 없다는 걸 깨달은 아이처럼 허망한 기분을 느끼며 통로에 떨어진 물건을 쳐다봤다.
[오크 가죽]
등급 : 노말
오크들 특유의 노린내가 배어 있는 가죽입니다. 질기고 튼튼하기에 겨울용 의복이나 방어구로 만들기 좋은 가죽입니다.
“……찟!”
모험가 한 명의 손바닥 위에서 잔뜩 놀아난 거대 쥐들은 분노했다.
날카로운 앞니를 번뜩인 그들은 열 갈래로 나뉘어 카이를 뒤쫓았다.
***
“후우, 후우.”
카이는 신성력이 바닥나기 전에 신성 폭발 스킬을 취소했다.
하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상태였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도착했다. 보스방.’
눈앞의 부서진 철창의 너머에는 이 던전의 보스가 등장한다.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카이는 거칠어진 숨을 돌리며 생각했다.
‘던전 입장 후 보스방까지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50초 정도.’
카이의 신성력은 26,000 정도였다.
본래대로라면 신성 폭발 스킬을 최대한으로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26초가 한계일 터.
하지만 그가 50초라는 시간 동안 신성 폭발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성수]
등급 : 매직
태양의 신 헬릭을 섬기는 태양교의 고위 사제들이 특별히 정제한 성스러운 물입니다.
마시면 신성력이 10,000만큼 회복되고 부정적인 상태가 해제됩니다.
던전에 입장하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태양교에서만 특별히 생산되는 매직 등급의 성수 포션!
당연한 말이지만 이 정도의 아이템이 저렴할 리가 없었다.
“후우, 물의 현자 한 번 만나겠다고 돈만 팍팍 깨지네.”
텔레포트 비용 9골드를 포함해서, 병닥 1골드씩 하는 성수를 다섯 병이나 샀으니 그 가격만 140만원이다.
투자하는 금액이 높아질수록 물의 현자를 반드시 만나고 말겠다는 집념도 깊어졌다.
‘성수는 세 병 썼으니까…… 두 병 남았나.’
카이는 그 자리에서 남은 성수 두 병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크으, 역시 돈값을 하네. 성수가 제일 맛있다니까.”
포션마다 맛이 다르다지만, 시원한 이온 음료 맛이 나는 성수가 단연 최고!
입가를 닦아낸 카이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보스방에 진입했다.
“크르륵…….”
일반적인 거대 쥐와는 울음소리부터 다른 녀석.
거대 쥐보다 앞니가 3배나 큰 녀석은 입가에 고인 침을 뚝뚝 흘려대며 붉은색 눈을 번들거렸다.
[더러운 쥐들의 왕, 트레빈저. LV.78]
‘속전속결. 거대 쥐들이 오기 전에 해치우는 게 핵심이야.’
카이는 이번 던전 공략에 본인의 모든 노력을 병째 들이부었다.
오크 주술사 토벌에서 유용하게 사용한 페르메의 독마저 남김없이 사용할 정도!
‘더 이상 못 쓰는 게 아깝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아끼다가는 영원히 못 써.’
카이는 두 번째 도전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처럼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했다.
스킬과 아이템, 돈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잔꾀까지!
그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던전에 입장하기 전에 뮤튜브를 둘러봤기 때문이었다.
‘그림즈라고 했었나.’
던전에 입장하기 전에 잠깐 마주친 마법사의 이름이었다.
마법사가 솔플을 한다는 점이 신기했던 카이는 그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거대한 충격을 받았다.
72레벨부터 85레벨까지.
그림즈는 하루도 빠짐없이 쥐들의 왕국 던전에 도전했다.
그가 뮤튜브에 올린 동영상 중 쥐들의 왕국에 도전하는 영상만 200여 개가 넘었다.
‘……1위라는 목표를 손에 넣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히든 클래스라는 사기적인 직업에 기댄 채 큰 노력을 해보지는 않았던 카이는 크게 반성했다.
‘나에겐 절박함이라는 게 부족하구나.’
강해져서 랭커가 되고, 돈도 많이 벌어서 가족들에게 떳떳해지고 싶다.
목표가 단순한 만큼, 카이가 들인 노력도 단순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
게으른 토끼는 노력하는 거북이를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지금 당장 카이가 그림즈와 1대 1로 대결을 한다면,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3달 후에는? 반년 후에는?
‘히든 클래스가 아닌 다음에야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한정되어있어.’
더 좋은 장비, 더 좋은 스킬들을 얻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모든 유저가 돈이 많을 수는 없는 법.
결국 그들은 필연적으로 본인이 가진 능력을 갈고닦을 수밖에 없다.
‘기본기의 중요함. 후이 관장이 항상 나에게 하던 말이었지.’
물론 카이는 태양의 사제라는 직업을 지니고 있다.
어쩌면 저들과는 태생 자체가 달라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천년만년 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들이 하는 노력을 나도 한다면, 더욱 강해질 수 있는 건 당연한 사실이지.’
반드시 강해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것을 거부하는 건 카이의 상식선에서는 불가능한 일!
그것이 카이가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이유였다.
‘내가 걷고 있을 때, 다른 이들은 뛰고 있었어.’
보이지도 않는 밑바닥에서 그들은 열심히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이상, 그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나도 뛰어야지.’
단단한 눈빛으로 트레빈저를 노려보던 카이가 검을 까딱였다.
“덤벼. 찍찍이.”
“크아아앙!”
본인은 찍찍이가 아니라고 항의라도 하듯,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달려드는 트레빈저!
“…….”
녀석을 바라보는 카이의 눈은 두려움으로 인해 떨리지도, 흥분에 삼켜진 채 들뜨지도 않았다.
마치 겨울날 꽁꽁 얼어붙은 호수처럼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
‘다른 건 몰라도 저 녀석의 앞니 찍기 공격은 조심해야 돼.’
한 번 대상을 물면 체력을 모두 갉아먹을 때까지 물어뜯는 트레빈저의 필살기였다.
파티에서는 동료들이 트레빈저를 공격해서 그 기술을 끊어줄 수 있었지만, 솔로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한마디로 그 기술에 걸리면 모든 것이 끝!
위기감을 느낀 피부가 오싹오싹해지자, 카이의 입꼬리는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내가 말이야. 지난번에 오크 로드랑 싸울 때 아주 좋은 걸 배웠어.”
제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도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
카이와 트레빈저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들은 서로의 눈이 마주친 순간, 움직였다.
휘이이익!
먼저 트레빈저가 자신의 거대한 몸을 팽이처럼 돌렸다.
녀석의 엉덩이에 달린 두껍고 기다란 꼬리가 카이를 향해 채찍처럼 쇄도했다.
줄넘기처럼 가느다란 꼬리가 아니었다.
튼튼한 노끈을 몇 겹이나 묶어놓은 것처럼 두껍고 단단한 꼬리였다.
그 공격을 미리 예상하고 먼저 움직이고 있던 카이의 움직임에는 여유가 있었다.
‘우선 공격부터 피한다.’
카이의 무릎이 굽혀지며 상체가 뒤로 넘어갔다.
그 무게를 지탱하는 허리와 옆구리에 엄청난 힘이 들어갔다.
콰아아아앙!
카이를 대신해 하수도의 철창을 부서버린 트레빈저의 꼬리!
강력하지만, 중요한 건 빗나갔다는 것이다.
씨익.
미소를 카이는 활처럼 굽혀져 있던 허리를 그대로 튕기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동시에 뻗어 나가는 칼날!
푸욱!
“찌짓!”
날카로운 검이 녀석의 두툼한 뱃살을 쑤욱 파고들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페르메의 독에 중독된 상처 부위는 순식간에 까맣게 물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야. 칼날 쇄도!”
칼날 쇄도는 회전력을 담은 검을 상대방의 급소로 내지르는 스킬이다.
그럼 과연 상대의 뱃속에 검이 박혀 있는 상태에서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그냥 더럽게 아픈 거지.”
“크어엉, 크아아아앙!”
트레빈저의 냄새나는 입에서 시끄러운 비명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